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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9 posts2022년 가을, 창경궁 3
양화당이라는 건물이고 이 건물도 창경궁의 침전 중 하나라고 한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파천했던 인조가 환궁하면서 이곳에 거처한 일이 있으며, 고종 15년(1878년) 철종비 철인왕후 김씨가 이곳에서 승하하였다고 한다. 양화당이라는 현판은 순조의 어필이라고 한다. 언덕 위에는 일본식 박물관이 있었는데 철거가 되었다고 하지만 언덕에서 바라본 전망은 정말 멋지고 이곳을 소개해 주신 가이드 분도 이 곳이 창경궁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라고 하셨다. 언덕을 넘어가면 창경궁 후원이 나오고 춘당지라는 연못이 있다. 본래 이 곳은 국왕이 농업을 장려하기 위해 농사를 시연하는 땅인 권농장(勸農場)이 있던 곳이었으나 일제가 없애고 연못을 파서 일본식 정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창경원 시절에는 이 위를 떠다니는 케이블
서울 대학로 “혜화동 풍경”
반응형 서울 대학로 “혜화동 풍경” 오랜만에 서울 혜화동에 다녀오게 되었다. 혜화동은 개인적으로는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처음 서울에 발을 내디딘 곳이 바로 혜화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정확하게는 혜화동 바로 옆에 있는 명륜동에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 대학로, 혜화동 풍경” 혜화동은 다른 말로는 “대학로”라고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 서울대학교 본관은 관악구에 가 있지만, 과거에는 현재 서울대학교 병원과 마로니에 공원이 있던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의 다른 이름은 “대학로”라고 불렸다고 알려져 있다. “혜화로터리에서 서울과학고까지…” 혜화동의 이름은 동 내에 소재한 혜화문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혜화동의 주민센터는 “한옥”으로 된 건물로 유명한데, 혜화로터리에서 서울과학고 방향으로 걸어 올라가다 보면 찾을 수 있다. 로터리에서 서울과학고 방향으로 걸어가다보면, 정겨운 혜화동의 거리를 만나볼 수 있다. 길을 따라서 가다 보면, “장면 총리 가옥”을 만나볼 수 있기도 하다. 장면 총리 가옥은 아주 오래전에 한 번한번 소개를 했던 적이 있는 곳인데, 당시에는 카메라가 좋지 않아서, 항상 사진에서 아쉬움이 남았었다. 이번에 다시 한 번 이 동네를 돌아보는 김에 잠깐 들러서 사진을 한 번 담아보았다. 장면 총리 가옥 : https://theuranus.tistory.com/6897 “한옥 집을 많이 찾을 수 있는 혜화동” 혜화동 골목골목에서는 한옥 건물을 많이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되고 있는 한옥 건물도 있는데, 한옥 살이가 궁금하다면, 한 번 이용해 보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기도 하다. 또한, 연극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대학로이기에 소극장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성균관대학교, 서울대학교 병원 등…” 또한, 대학로라는 이름답게 근처에서는 다양한 대학교 캠퍼스를 찾아볼 수 있기도 하다. 성균관대학교 서울캠퍼스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및 병원, 갓톨릭대학교, 한성대학교, 성신여대 등을 가까이서 찾아볼 수 있다. “서울 혜화동 : 혜화동 로터리” 주소 : 서울 종로구 혜화동 반응형
서울 대학로 “장면 총리 가옥”
반응형 서울 대학로 “장면 총리 가옥” 소위 대학로라고 불리는 서울 혜화동에서는 장면 총리 가옥을 찾을 수 있다. 다른 이름으로는 “장면 가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장면 총리 가옥” 장면 총리 가옥은 “운석 장면” 선생님이 원래 넓은 앵두밭 맨 아랫자락에 성북동에서 흘러 내려오는 맑은 시냇가 터를 잡아 짓고, 1937년 8월부터 살던 집이다. 위치는 명륜동 1가 36번지 1호였고, 대지 124평,에 재래식 안채 28평, 신식 사랑채 17평 그대로 보전되어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장면 선생과 부인 김옥윤 여사가 진, 의숙, 건, 익, 순, 흥, 명자 일곱 남매를 키우며 평생을 살았다고 한다. “장면 가옥의 보존” 집의 설계와 시공은 장면 선생의 막내 차남 김정희 씨가 실시했고, 지금까지도 아무런 변형도 없이 원형 그대로 고스란히 보존되어 왔다고 한다. 다만, 1950년 초가을 전란 중에 사랑채 응접실에 포탄을 맞아 한 차례 수리한 적이 있고, 그 후로 문화재청의 요청으로 나라가 이 집을 “장면 가옥”으로 지정, 매입하면서, 전폭적으로 복원하여 종로구청 관리하에 두었다고 한다. 이 가옥은 전통 한옥의 특징을 유지하면서도 욕실과 화장실의 내실화, 대청의 거실화 등 1930년대 주택개량운동과 신주거 문화운동의 영향이 드러나 있어 근대 주거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가치가 있다. “장면 선생님의 삶” 장면 선생님은 이 집에 살면서 동성 상업학교 교사, 교장, 민주의원에 이어 입법의원, 제3차 유엔총회 한국수석 대표, 교황청 파견 대통령 특사, 초대 주미 특명전권 대사, 제6차 유엔총회 파견 한국 수석대표, 제2대 국무총리, 민주당 창당 최고위원, 제4대 대한민국 부통령, 용산 갑구 5대 민의원, 제2공화국 내각책임제 국무총리, 민주당 총재와 같은 삶을 살았다. 5.16 군사쿠데타 혁명재판에서 법정구속을 받고, 옥고와 연금 끝에 이 집에서 선종(1966.6.4)하기까지 종교인, 교육자, 외교관, 정치인 등 다양한 일을 하면서 파란만장한 인생을 보냈다. 국민장은 6월 12일에 거행되었다. “지금까지도 계속 보존되어 있는 장면가옥” 장면 가옥은 지금까지도 보존이 되어 오고 있으며, 개방이 되어 있다. 무료로 방문할 수 있으며, 집안 내부까지 들어가서 볼 수 있다. 다만, 내부로 들어가는 경우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니 참고하도록 하자. 그리 넓지 않아서 한 번 둘러보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 작은 가옥이다. “서울 혜화동 : 장면 가옥” 주소 : 서울 종로구 혜화로5길 53 (우)03068 반응형
2022년 가을, 비원 2
창덕궁의 특징은 휴식 공간이 확보되어 연못과 정자가 많다는 것이고 가끔 숲에서 사냥을 즐기기도 하셨다고 한다. 이건물은 존덕정인데 2중 6각 지붕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특이하고 내부에도 천정에 황룡과 청룡을 장식하여 특별히 공을 들인 것 같다. 창덕궁에 있는 관람지라는 연못인데 한반도 모양으로 생긴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그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 관람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부용정처럼 다리를 연못에 담그고 있으나 비교적 작은 지붕으로 그렇게 화려하게 지어 놓지는 않았다. 그래도 특이하게 적용된 곡면, 계단을 내려와 들어가는 구조가 눈길을 끌었다. 펌우사라는 건물인데 이름이 특이하고 한자를 풀어보면 어리석은 자에게 돌침을 놓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관람지 부근의 건물 중에 유일하게 온돌이 설치되어 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