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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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posts수안보 “충주 미륵대원지”
수안보 “충주 미륵대원지” 충주에서 21km 정도 떨어져 있는 수안보 역시도 충주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역사적인 유물을 보유하고 있는 곳입니다. 수안보에서 동쪽으로 조금 이동하면 “중원 미륵리사지”라고 알려졌던 곳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곳은 “충주 미륵대원지”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지요. “수안보에서 찾을 수 있는 충주 미륵대원지” 이렇게 과거에는 “중원 미륵리사지”라는 이름이었던 장소는 “충주 미륵대원지”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는데요. 이렇게..

늦가을 늦은 오후, 법광사터...
- 법광사터로 가는 숲길 시간의 흐름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습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옵니다. 그리고 겨울이 가면 다시 봄이 찾아옵니다. 우리 또한 나고, 자라고, 그리고 늙어 죽습니다. 삶과 죽음, 태어남과 사라짐, 대비되는 이 둘은 대체 무엇인가요? 절터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이러한 이 두 명제를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은 포항 신광면에 있는 법광사터(法光寺址)를 찾아갑니다. - 단풍이 물든 나무 이제 계절은 가을의 막바지에 다다랐습니다. 노랗고 빨갛게 물든 나뭇잎은 바람이 불지 않아도 스스로 땅에 떨어져 쌓입니다. 늦은 오후 햇빛은 이미 그 힘을 잃었습니다. - 삼층석탑 법광사터로 향한 숲길을 걷다 보면, 먼저 담장으로 둘

회암사 터에서 3대 화상을 만나다
덤벙거림으로 인하여 잠시 제 손을 떠난 스맛폰을 좌포청 최시형 스승의 참형터(=단성사 터)에서 다시 찾아 돌아오는 길에 회암사 터를 들렀지영회암사는 조선 태조의 또 하나의 왕궁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지영아시다시피 기록에 따르면 고려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영조선 중기 문정왕후의 불교 부흥까지는 견디었지만, 그 뒤 원인모를 화재로 폐사되었다고 하네영“3대화상문화제”라는 제목으로 회암사지박물관 옆 마당에 무대가 세워지고, 행사 천막도 세워지고 아이들이 뛰어다니더군영세 번째 항암치료를 마친 까닭에 조금은 무거운 몸이었지만, 날이 좋은 탓에 가벼운 마음으로 회암사 터 옆 군부대에서 열어 준 임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살살 회암사 터로 향했지영 여러 번 와 보았지만, 올 때마다 새로움을 느끼는 건 철이 달

빈 절터의 적막함, 운흥사터
- 운흥사터 한때 양산 통도사보다 더 컸다는 운흥사는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빈 절터는 억새밭으로 변했습니다. 구름처럼 몰려왔다는 신도들로 말미암은 소란스러움이나 스님의 염불 소리, 그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울렸을 맑은 풍경 소리를 이제 이곳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오직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 그리고 무성하게 자란 억새만이 빈 절터에 머물고 있을 뿐입니다. - 운흥사터의 돌 축대 운흥사터 옆을 흐르는 냇가에는 예전에 쌓은 돌 축대가 남아 있습니다. 요런 저런 모양의 돌을 솜씨 좋게 맞추어 쌓은 이 돌 축대는 얼마나 오랫동안 이곳에 있었을까요? 절은 이미 오래전에 없어졌고, 그리고 세월이 흘렀어도, 돌 축대는 여전히 이렇게 남았습니다. - 운흥사터 운흥사터는 적막함 그 자체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