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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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아이 A.I. Artificial Intelligence (2001)
안드로이드 소년 데이빗은 스윈튼 부부의 유사 자녀로 입양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용도 폐기"되어 숲에 버려진다. 단지 스윈튼 부부의 아들인 마틴이 살아서 돌아왔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론이 있다. 일본의 로봇 공학자 모리 마사히로(森政弘)는 자신의 논문에 실린 그래프의 한 부분을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라 명명한 바 있다. 말하자면, 로봇이(혹은 인간을 지향한 다른 무언가가) 인간을 닮아갈 수록 오히려 거부감과 위화감,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효과에 대한 것이다. 흔히 쇼윈도의 마네킹이나 3D 비디오 게임의 CG 퍼펫을 통해서 체험할 수 있다. 데이빗은 마틴의 자리를 대체해 아들로 여겨지지만 로봇이라는 태생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마치 [바이센테니얼

바이센테니얼 맨 Bicentennial Man (1999)
아이작 아시모프의 원작은 프랑켄슈타인의 역발상인 동시에 피노키오의 어른 버젼 혹은 해방 이후의 흑인에 대한 은유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요소들을 갖고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것은 사회의 시스템이 아닌, 자기 스스로 결정할 일이라는 메시지가 읽히기도 하는,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응원 같기도 하다. 영화는 여기에 로맨스를 가미해, 마치 해방된 노예와 주인 가문 여성의 투쟁처럼 보이게 각색된다. 혹은 사회적으로 암묵의 금기인 모든 관계의 로맨스를 대입해도 좋을 것이다. 로봇의 시선에서 인간성을 정의하는 과정으로 영화는 진행된다. 집사 로봇인 앤드루는 자신의 몸을 점차 인간에 가깝게 개조해 나가는 과정에서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유한함" 혹은 "불완전성"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즉, 그토록

매트릭스 The Matrix (1999)
굳이 비교를 하자면 [터미네이터] 플롯을 확장한 개념이다. 인간에게 반기를 든 기계가 인간을 몰살시키기로 결정하면 터미네이터 세계관이 되는 거고, 매트릭스에 넣어 살아있는 건전지로 써먹기를 결정했다면 이 영화의 세계관이 되는 셈이다. 전자의 기계들이 분노했다면, 후자인 이 영화의 기계들은 조금 더 생산적으로 머리를 굴렸다고 볼 수 있겠지. "살아있다"는 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을 탐구하는 과정의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속 인간들에 국한해서 말하자면, 죽음보다 못한 삶임에도 실체를 직시하는 것이 중요한지(모피어스) 아니면 허상에 속더라도 삶을 누린다는 느낌과 만족감이 더 중요한지(사이퍼)에 대한 대비가 중요한 고민이다. 그러나 바꿔 생각하면 인간들을 사육하기로 결정한 기계들에게도 해당되는 동일한 고민

13층 The Thirteenth Floor (1999)
[트루먼 쇼]처럼 자신이 가짜 세상의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선 [버추오시티]의 SID처럼 세상으로 나오려는 인공지능, [로보캅]처럼 자아의 주체는 기억이라고 하지만 [블레이드 러너] 혹은 [매트릭스]처럼 그것은 전자 신호로 만들어진 가짜 기억. 즉, "자아"에 대해 철학적 냄새를 풍기는 SF 영화 속 아무개들의 집합체같은 영화다. 철학적이다 못해 추상적인 고민에 빠진 인물은 빈센트 도노프리오가 연기한 제리 애쉬튼. 그러나 이 남자, 아니 이 CG 퍼펫은 "나는 누구인가"라며 한가하게 처지를 비관하지 않는다. 뻔한 존재론적 고민에 빠지는 대신 그는 그래픽 세상과 그래픽 몸에서 벗어나 현실로 역류해 유저의 몸을 차지한다. 소 뒷걸음질로 쥐 잡듯 돌발적인 상황이었지만 어쨌든 그는 그렇게 자신이 태어난 곳


![[웹툰단행본] 『통제구역관리부』 1권 후기 : 이상한 변칙과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는 공간에 대하여](https://img.zoomtrend.com/2026/06/09/1780996474-SE-5eda86fa-0d63-4afd-b8dd-b801879fed5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