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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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posts![[향토문화] 군인 토벌대 초토화..아라1동 웃인다(잃어버린마을) 터](https://img.zoomtrend.com/2023/11/20/6d06b3d0-66f9-589c-8aef-0991174fbf24.jpg)
[향토문화] 군인 토벌대 초토화..아라1동 웃인다(잃어버린마을) 터
[향토문화] 군인 토벌대 초토화..아라1동 웃인다(잃어버린마을) 터 https://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5354 주민들도 인다마을을 중심으로 성을 쌓고 집단생활을 하다가 인다마을 정착 아라1동 웃인다(잃어버린마을) 터 지역 ; 제주시 아라1동 652, 724-2, 731번지 일대. 시대 ; 대한민국(1948) 유형 ; 잃어버린마을 아라1구의 ‘웃인다’는 ‘인다’ 마을의 위쪽에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1600년대초에 설촌된 전(田)씨의 집성촌으로 전좌수 등 20여호에 100여명의 주민들이 살았다. 4·3 당시 1948년 11월 14일 갑자기 들이닥친 군인 토벌대의 초토화작전으로 집집마다 불을 질러 모든 가옥이 전소되었다. 주민들.......
![[향토문화] 군인 토벌대 초토화..아라1동 웃인다(잃어버린마을) 터](https://img.zoomtrend.com/2023/11/20/6d06b3d0-66f9-589c-8aef-0991174fbf24.jpg)
[향토문화] 군인 토벌대 초토화..아라1동 웃인다(잃어버린마을) 터
[향토문화] 군인 토벌대 초토화..아라1동 웃인다(잃어버린마을) 터 https://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5354 주민들도 인다마을을 중심으로 성을 쌓고 집단생활을 하다가 인다마을 정착 아라1동 웃인다(잃어버린마을) 터 지역 ; 제주시 아라1동 652, 724-2, 731번지 일대. 시대 ; 대한민국(1948) 유형 ; 잃어버린마을 아라1구의 ‘웃인다’는 ‘인다’ 마을의 위쪽에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1600년대초에 설촌된 전(田)씨의 집성촌으로 전좌수 등 20여호에 100여명의 주민들이 살았다. 4·3 당시 1948년 11월 14일 갑자기 들이닥친 군인 토벌대의 초토화작전으로 집집마다 불을 질러 모든 가옥이 전소되었다. 주민들.......
![[향토문화] 다양한 형태의 생활상 연구 도움..오등동 오드싱마을성담](https://img.zoomtrend.com/2025/07/01/d763501c-6c8a-58f6-9ab3-874b20b6394d.jpg)
[향토문화] 다양한 형태의 생활상 연구 도움..오등동 오드싱마을성담
[향토문화] 다양한 형태의 생활상 연구 도움..오등동 오드싱마을성담 https://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5284 죽성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오드싱에 정착.. 죽성마을은 잃어버린 마을이 되어 버렸다. 오등동 오드싱마을성담 위치 ; 제주시 오등동 608-5, 612, 616번지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방어시설(마을성담) 오드싱은 오등생의 토박이 지명으로, 『제주읍지』(1783년)에 ‘오등생리’(吾登生里)라 적혀 있다. 4·3 당시 이승만 정부에 의해 제주도 중산간 마을 소개령이 내려져 1948년 11월 중순경부터 소개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오등리에는 1948년 11월 7일 토벌대가 느닷없이 들이닥쳐 마을을 불태워버리자 주민들.......
![[향토문화] 청년들 토벌대 피해 은신했던 곳..온평리 모낭궤(은신처)](https://img.zoomtrend.com/2025/04/23/fb7035ce-dc50-5e36-9df8-5911ef16a941.jpg)
[향토문화] 청년들 토벌대 피해 은신했던 곳..온평리 모낭궤(은신처)
[향토문화] 청년들 토벌대 피해 은신했던 곳..온평리 모낭궤(은신처) http://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2215 모낭궤(모남궤)는 온평리와 난산리의 경계에 있는 용암동굴이다. 온평리 모낭궤(은신처) 위치 ; 성산읍 온평리 2797-1번지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용암동굴(은신처) 모낭궤(모남궤)는 온평리와 난산리의 경계에 있는 용암동굴이다. 입구는 온평리에 있으나 궤는 난산리까지 길게 이어져 있고 내부는 2층 구조로 넓고 생수가 흘러 물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주민들은 증언한다. 4·3 기간중인 1948년 가을께 온평리 주민 특히 청년들이 토벌대를 피해 은신했던 곳이다. 다음은 『온평리지』에 실려 있는 이 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