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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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무장대 물러가자 경찰, 보복 총살극 벌여..삼양2동 삼양지서 터

[향토문화] 무장대 물러가자 경찰, 보복 총살극 벌여..삼양2동 삼양지서 터

[향토문화] 무장대 물러가자 경찰, 보복 총살극 벌여..삼양2동 삼양지서 터 https://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0616 4·3 당시 삼양지서는 삼양과 도련, 봉개, 용강, 회천을 담당하던 토벌근거지였다 삼양2동 삼양지서 터 위치 ; 제주시 삼양이동 2139-9번지(일주동로393) 시대 ; 일제강점기∼대한민국 유형 ; 관공서(경찰지서) 터 삼양지서는 일제강점기인 1926년 경찰관 주재소로 설치되었다. 해방 이후 국립경찰의 창립과 동시 제주경찰서 삼양지서로 개칭되었다. 4·3 당시 삼양지서는 삼양과 도련, 봉개, 용강, 회천을 담당하던 토벌근거지였다.(제주4.3유적Ⅰ) 무장대는 4월 3일 새벽 2시경 도내 24개 경찰지서 가.......

[향토문화] 수정사 옛터 뒤쪽..외도1동 절뒤·절뒤왓(학살터)

[향토문화] 수정사 옛터 뒤쪽..외도1동 절뒤·절뒤왓(학살터)

[향토문화] 수정사 옛터 뒤쪽..외도1동 절뒤·절뒤왓(학살터) https://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0268 이곳에서 벌어진 가장 큰 학살은 이완영 일가족 12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외도1동 절뒤·절뒤왓(학살터) 위치 ; 외도일동 435-11번지(우정로3길13) 일대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학살터 절뒤란 수정사 옛터 뒤쪽이라는 뜻이다. 4·3 당시에는 밭이 있어서 절뒤왓이라고 불렀다. 4·3 당시 토벌대에 의해 주민들이 학살된 곳이다. 토벌대는 1948년 12월 7일 강창선(34 男 하귀리), 김호중(25 男 하귀리), 12월 21일 이문주(24 男 광령리), 홍준표(20 男 광령리) 등 중산간 주민들을 학살했다. 1949년 1월 24일에는 외도리.......

[향토문화] 육지부에서 들어온 경찰..외도1동 응원경찰주둔소 터

[향토문화] 육지부에서 들어온 경찰..외도1동 응원경찰주둔소 터

[향토문화] 육지부에서 들어온 경찰..외도1동 응원경찰주둔소 터 https://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0148 이용되었던 건물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어린이공원이 들어서 있다 외도1동 응원경찰주둔소 터 위치 ; 외도1동 492-11번지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건물(응원경찰주둔소) 터 4·3 당시 외도리에는 외도지서가 있었고 그 외에 응원경찰이 외도1구에 주둔했다. 응원경찰이란 제주도내의 경찰력이 부족하다고 하여 육지부에서 들어온 경찰을 말한다. 맨처음 들어온 것은 1947년 2월 23일이다. 충남 50명, 충북 50명이 들어왔는데 이들 중 제주경찰서에 근무하던 경관이 3·1절 발포 사건을 일으켰다. 3월 1일에는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