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듯한 개소리

그래비티(Gravity)

By  | 2013년 10월 28일 | 
그래비티를 보는 내내 숨이 막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중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이 더 와닿는 것은 중력의 결핍을 통해 중력의 존재감을 극대화시켰기 때문이다. '머리들'이란 제목의 그림에 머리가 없는 사람들을 그려놓은 것처럼,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어떤 것들은 결핍을 통해 그 존재감을 나타낸다. 영화는 시간 내내 우주에서의 결핍을 통해 우리가 가진 것들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손에서 물건을 놓쳐도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아 다시는 잡을 수 없는장면이나, HAM 통신에서 들리는 개 짖는 소리, 아기 울음소리처럼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던 것들을 보여준다. 우주정거장 밖을 이동하는 장면에서는 혹여나 손을 놓칠까봐 마음을 졸이게 된다. 중력이 없어 감각이 차단당한 상태에서 관객은 오히려

인터스텔라 - 시간이 없어서 편지가 길어졌다

By  | 2014년 11월 8일 | 
시간이 없어서 편지가 길어졌네요'라는 편지 끝말이 생각난다. 이것저것 말하고싶은 건 많은데 정리가 안되면 주절주절 이야기 하다 분량만 많고 주제가 모호한 글이 나온다. 편지는 그래도 되지만 영화는 다르다. 약간 지루하다는 평이 많은 초반부는 괜찮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불안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초반부가 "스토리"라는 느낌이라면, 중반부부터는 "여기서부터는 영상!"이라는 느낌으로 스토리가 단절된다. 음악으로 치자면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주법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부터는 제가 손이 얼마나 빠른지 보여드릴게요"라는 느낌으로 자신의 속주를 과시하는 느낌이다. 특히 종반부의 스토리는 데우스엑스마키나로 보일 정도로 개연성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극장이야기

By  | 2015년 6월 14일 | 
출근을 하는 길에 스탭들에게 인사를 한다.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을 앞둔 나는 다른 이들에 비해 나이가 많은 편이다. 여자애들은 대부분 스물 둘 셋이고, 남자애들은 아직 군대를 가기 전이거나, 나보다는 빠른 스물 한 살 쯤에 군대를 갔다가 전역한 애들이 많다. 물론 나도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라 형이나 누나들도 더러 있다. 그렇게 나이에 맞게 손을 흔들거나 고개를 꾸벅이고 인사를 한 뒤 탈의실로 간다. 유니폼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하의는 따로 지급되지 않기 때문에 정장바지든, 검은색 면바지든 알아서 옷을 입는다. 극장 알바는 컨, 박스, 어셔 세개로 나누어진다. 컨은 컨세션의 약자로 극장 매점에서 일하는 알바를 뜻한다. 박스는 표를 파는 애들이고, 어셔는 표를 받고 안내를 한다. 특별히 나누어지는 기준은

수퍼내츄럴

By  | 2020년 12월 3일 | 
15년 동안 보던 수퍼내츄럴이 드디어 결말이 났다. 대학시절 보던 미드 중에 하우스와 함께 가장 롱런한 미드인데, 어찌보면 유치한 판타지물을 15년 동안 계속 볼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악마를 칼로 썰고 다니는 마초적인 내용이나 배경음악은 뒤로 하고, 가장 큰 이유는 고통스러운 삶만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희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주인공들의 삶 때문이다. 드래곤볼처럼 적이 강해지는 만큼 나도 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죽여도 죽여도 더 강한 악마가 나오고 천사와 신도 악마보다 더한 나쁜놈인 세계관이다보니 두 주인공은 말그대로 둘 말고는 믿을 사람이 없다. 그래서 둘은 죽어도 다시 살아나고 살아있으면 희망이 없는, 정말로 지옥같은 삶을 15시즌 동안 반복하면서 'I'm tired'란 말을 수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