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英雄 (2002)
By 멧가비 | 2020년 12월 31일 |
대놓고 [라쇼몽]식 구성을 빌려오고 있는데도 반대로 색채의 미학을 강조했던 흥미로운 레지스탕스 영화. 이연걸 견자단의 상상 결투 씬은 중화권 모든 무협 영화를 통틀어 손에 꼽힐 명장면이다. 듣자하니 김성수의 [무사]를 참고했다고 하던데, 좋은 레퍼런스에 음악, 화면구성, 편집 까지, 가히 이 장면 하나에 총력을 쏟아 부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마저 들 정도. 캐릭터 설정이 재미있다. 실제 역사의 진시황과는 별개로 이 영화 속 영정은 피를 묻힌 전쟁 군주의 면모와 난세를 끝내려 한다는 명분이 혼재하는, 외로운 다크 나이트인 셈이다. 그리고 그 대척점에 선 무명은 영정을 암살하기 위해 거쳐 온 아수라장을 설명하는 일종의 나레이터 쯤 된다. 타겟의 목에 칼을 꽂기 일보직전에 칼 끝을 돌리고 자신을 희생하
주성치 리뷰 시리즈 - 소림축구 少林足球 (2001)
By 멧가비 | 2021년 1월 6일 |
이 영화에서 주성치는 드물게도 처음부터 강하고 바른 사람이다. 즉, 기존 주성치 영화들 속 주성치들이 반드시 하나 쯤 갖고 있던 성장, 타락, 협잡, 개과천선, 재기, 각성 등의 면모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러한 요소들을 오맹달과 소림사 동료들에게 양보한다. 즉, 주성치 원맨쇼에서 벗어나 롤을 나눠 갖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팀 스포츠인 축구를 소재로 삼은 것은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주성치 단독 연출작에서 이러한 변화를 보인다는 것은 주목할 포인트다. 감독으로의 겸직 때문에 바빠서 그 많은 롤을 소화하기 버거웠던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 쯤 부터 이미 자신의 비중을 줄여 나가서 아예 전업 감독으로 전환할 것을 고려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고. 어쨌든 주성치의 작가 감독으로서의 자의식이
무인 곽원갑 霍元甲 (2006)
By 멧가비 | 2015년 8월 5일 |
황비홍 시리즈로 유명한 이연걸이 중년에 접어들어 황비홍과는 정반대의 캐릭터를 연기했다는 점이 중요 포인트. 서극-이연걸 콤비가 만든 황비홍은 싸우면서도 옷에 흙 한 통 안 묻히는 선비 중의 선비요, 무도(武道)를 신성시하는 성인과도 같은 모습이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중화의 허세를 다 걷어내고 싸움에 미쳐 똥 오줌 못 가리는 무뢰배를 연기한다. 그것도 그 곽원갑이라는 캐릭터를 갖고 말이다. 곽원갑을 성장형 캐릭터로 묘사하기 위해 초반부를 무뢰배 캐릭터로 설정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곽원갑의 제자들 역시 색주가를 돌며 외상이나 지고 다니는 동네 양아치들로 묘사했다는 점을 보면 확실히 무인들의 세계가 단순히 의협의 세계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까놓고 말해, 혈기 넘치는 젊은 장
정무문 精武門 (1972)
By 멧가비 | 2016년 11월 19일 |
전작에 이어 다시 나유 감독, 각본이지만 단 1년 만에 작품 전체가 이소룡 스타일의 완성에 근접한 것으로 미뤄보건대, 촬영장에서 늘 태만했다던 나유 감독 대신 거의 이소룡 주도로 만들어진 영화일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홍콩 무협-권격 영화의 계보에 있어서 아편전쟁 이후 열강들에 대한 저항을 다룬 영화 중 가장 상징적인 영화 중 하나일 것이다. 사부의 죽음과 "동아병부" 조롱에 분노한 진진은 일본인들의 가라테 도장을 격파하고 러시아인 파이터를 꺾는다. 중화권 관객에게 호소할 소재를 기가 막히게 고른, 좋은 비즈니스 영화인 셈이다. 그런가하면 반대로 진진은 민족성을 탈피한 국적 불분명의 Asian badass의 모습도 갖추고 있다. 정무관 내의 배신자를 찾아내 처벌하는 모습은 진진이 단순한 민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