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어쩌면 보이지 않는 한 뼘을 품고 있는지 모르겠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면 그렇다. 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수 나무, 바다를 부유하는 부표 하나, 그리고 그저 '큰 거'라고밖에 지칭할 수 없는 무언가와 그렇게 연결되는 카페 앞의 커다란 개. 홍상수 감독의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를 보았다. 영화는 사무실 안 무언가를 적고있는 만희의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언어가 아닌 감각, 산문이 아닌 시, 장면보다 그 안에 담긴 섬세한 기운으로 흘러가는 시간은 여전하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촐하다. 영화 수입 회사에서 일하는 만희가 출장 중 돌연 해고 통보를 받고 벌어지는 일의 조각들이 전부다. 하지만 홍상수 영화에서 줄거리가 중요했던 적은 없고, 언제나 줄거리 사이사이의 교차와 어긋남, 이야기 조각조각의 부딪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