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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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816일차, 남미 최대의 인디오 시장

하쿠나마타타|2021년 3월 11일

세계일주를 할 당시 짤막한 형태로 틈틈이 올렸던 '실시간 여행기'를 마무리하지 못해 늦게나마 다시 올리려 합니다. 시간이 너무 지나버려 비록 '뒤늦은 여행기'가 되었지만 여행했던 순간을 기록으로 끝까지 남기고 싶습니다. 아마도 이 시리즈를 끝내야 밀린 다른 여행기를 작성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에콰도르를 여행한다면 거의 무조건 갈라파고스 제도를 떠올릴 만큼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곳이지만 나는 부족한 시간, 돈으로 인해 포기하고 계속해서 북쪽으로 이동했다. 다음 목적지는 콜롬비아로 넘어가기 전 잠깐 들린 오타발로(Otavalo)였다. 키토에서 오타발로행 버스를 타려면 북쪽에 있는 터미널로 가야 했다. 도시 구조가 길게 늘어져 있는 형태라 가는 데만 1시간이 걸렸다. 터미널에 도착해 보니 지역별 버스 회사가 엄청나게 많은지 간판이 많이 보이고, 직원들은 좁은 공간에서 상반신만 쭉 내밀고 영업을 하고 있다. 버스 회사는 트란스 오타발로(Trans Otavalo)였고 2.5달러였다. 오타발로까지는 약 2시간 정도 걸렸다. 오타발로에 도착해 일단 숙소로 향했다. 빈센트가 오타발로에 있을 때 지냈던 곳이라며 알려줬는데 호텔 예약사이트에는 나오지 않았다. 체크인을 하고 보니 빈센트가 왜 여기로 가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10달러짜리 저렴한 숙소인데 침대가 3개나 놓인 커다란 방을 나 혼자 썼다. 사람이 많으면 도미토리로 운영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아무도 없었다. 옥상에 올라갈 수도 있었다. 탁 트인 풍경은 아니지만 뒤에 높은 산이 자리 잡고 있어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오타발로는 그리 북적이는 도시가 아닌가 보다. 딱히 오타발로에 대해 아는 게 있는 것도 아니라 일단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조금 걷다 보니 동네의 중심지로 보이는 볼리바르 공원(Parque Simón Bolivar)이 나왔다. 남미의 큰 도시에서 봤던 거대한 광장에 비하면 아담한 편이고, 사람도 많지 않아 조용했다. 공원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성당이 있다.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한 후 근처에 있는 동네 끝에 있는 시장을 둘러봤다. 우리나라에서만 돼지 머리를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남미에서 저렴하게 한 끼를 해결하고 싶으면 시장을 찾았다. 오타발로 시장에도 허름해 보이는 현지 식당이 몇 군데 있었는데 바로 점심을 먹은 터라 메뉴만 구경했다. 정육점과 야채 코너가 있다. 산딸기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0.5달러에 한 주먹 샀다. 보통 시장이 가장 북적이고 그래서 남미를 여행할 때는 소매치기 위험이 있는 편이다. 그런데 오타발로 시장은 무슨 일인지 북적이는 느낌 없이 한적했다. 평소 오타발로의 분위기를 알려주는 듯했다. 공원으로 돌아오니 아까는 못 봤던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눈에 띄었다. 계절이 반대였던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는 혹독한 추위를 경험했는데 북쪽으로 올라오다 보니 조금은 따뜻한 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동네를 조금 돌아봤지만 볼거리는 별로 없었다. 오타발로에 대해 몇 번 들었던 적이 있어 나름 관광객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에콰도르의 전통 옷이라고 해야 할지 돌아다니면 자주 보게 되는데 이렇게 허리가 날씬한 사람이 있으려나? 아무튼 날씬한 사람이 입으면 정말 예쁠 것 같다. 숙소에서 쉬다가 배고픔과 무료함에 밖으로 나갔다. 어두워진 공원에는 여전히 사람이 없었다.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근처에 가니 사진을 찍는 가족들이 보였다. 왜 이렇게 심심한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적당히 끼니를 해결할 식당을 찾아 들어가 가장 만만한 '뽀요'를 달라고 했다. 남미에서는 워낙 치킨을 많이 먹으니 아마 내가 가장 먼저 익힌 스페인어는 '뽀요'가 아니었을까. 다음날 떠나기 직전이 되어서야 오타발로는 살아있는 가축을 사고파는 '가축시장'이 유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장이 열리는 날과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가축시장이 열리는 날까지 기다리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인디오들의 일반 시장도 있다는 것이다. 아침부터 시장이 열린다는 곳으로 향했다. 정말로 재래시장이 있었다. 공터에는 벌써 노점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고, 몇 군데는 분주하게 준비 중이었다. 오타발로에 온 이후 한 번도 여기가 관광지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인디오 재래시장에서 여행자들이 흥정하는 모습을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에콰도르는 남미에서 원주민(인디오) 비율이 유난히 높은 나라이고, 그중에서도 오타발로는 에콰도르의 대표적인 인디오 마을이라고 한다. 때문에 인디오들의 전통적인 의상이나 먹거리, 공예품을 쉽게 볼 수 있는 편인데 그래서 이런 시장이 열리게 된 것 같다. 색깔이 알록달록하고 독특한 무늬나 그림이 있어 기념품으로는 딱이다. 단지 여행이 아직 얼마나 더 남아 있는지 모르는 나에겐 이런 기념품은 짐이다. 무슨 이유인지 갑자기 가방이 너무 사고 싶어 졌다. 그런데 가방의 모양은 다 비슷해 보여도 색깔과 패턴이 워낙 다양해 마음에 드는 걸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시장을 한 바퀴 돌면서 가방만 구경했는데도 금방 시간이 갔다. 결국 가방을 사버렸다. 남미의 원주민들이 많은 볼리비아부터 북쪽으로 올라오니 직접 손으로 짠 옷이나 스웨터를 많이 보게 되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막상 가격을 물어보면 그리 싸지 않다. 흥정을 더 해봐야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페루 쿠스코가 가장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것 같다. 그냥 커다란 기념품 가게로 보면 된다. 인디오 시장은 이제 막 열어서 그런지 구경하는 손님은 별로 없었다. 인디오들의 모습이 담긴 그림도 많다. 돌아다니다가 인디오가 그려진 냉장고 자석을 잠깐 구경만 했을 뿐인데 아주머니가 내 손을 꼭 잡으며 1달러를 깎아준다고 강매 아닌 강매를 당했다. 그래도 에콰도르 최고봉인 침보라소 산을 바라보고 있는 인디오의 모습을 누군가가 직접 그린 거라 꽤 마음에 들었다. 어제 갔던 현지 시장과는 정반대의 느낌으로 철저하게 여행자들을 상대하는 시장이다. 에콰도르를 마지막으로 한국으로 간다면 여기서 카펫을 하나 사고 싶다. 가방도 사고, 자석도 샀으니 더이상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여유는 없었다. 국경을 넘어 콜롬비아로 가려면 서둘러야 했기 때문에 적당히 한 바퀴 더 돌아보고 나왔다. 오타발로 시장이 남미 최대 인디오 시장이라고 하는데 낮에 조금 더 북적인다면 분위기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냥 기념품 구경하는 재미로 가보면 될 것 같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커다란 돼지머리가 있는 식당을 보고 곧장 들어가 봤다. 주문을 하기 전에 어떤 음식인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오르나도(Hornado)라고 한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다면 말이다. 커다란 돼지머리가 귀엽게 보이까지 했다. 하나 달라고 하니 그 자리에서 이것저것 퍼서 담아줬다. 3달러였다. 고기는 보쌈을 먹는 듯한 부드러운 식감과 바삭한 돼지 껍데기가 있었고, 상큼한 양파 샐러드가 있어 기름진 돼지고기와 잘 어울렸다. 정말 오랜만에 맛있게 한 끼를 해결한 것 같다.

여행 814일차, 회색빛 도시와 어설픈 적도 박물관

하쿠나마타타|2021년 3월 8일

세계일주를 할 당시 짤막한 형태로 틈틈이 올렸던 '실시간 여행기'를 마무리하지 못해 늦게나마 다시 올리려 합니다. 시간이 너무 지나버려 비록 '뒤늦은 여행기'가 되었지만 여행했던 순간을 기록으로 끝까지 남기고 싶습니다. 아마도 이 시리즈를 끝내야 밀린 다른 여행기를 작성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바뇨스를 떠나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Quito)로 향했다. 바뇨스에는 한국인 여행자로 가득했기에 키토로 향하는 버스에 나 말고 한국인 여행자가 3명 더 있었다는 건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었다. 아주 잠깐 대화를 이어가긴 했지만 키토에 도착한 후 바로 헤어졌다. 택시를 타고 가겠다는 무리와 달리 나는 버스를 택했기 때문이다. 택시는 20달러나 했지만 버스는 고작해야 0.25달러였다. 키토는 북쪽과 남쪽에 큰 버스터미널이 있다. 바뇨스에서 출발한 버스는 남쪽에 있는 터미널에서 내려다 줬는데 사람들 사이로 배낭을 메고 걸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물어 겨우 마리스칼 수크레(Mariscal Sucre)로 가는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일반 버스를 2개 연결한 큰 버스였지만 앉을자리는 없었다. 미리 알았던 숙소를 찾아가 체크인을 하고 밖으로 나와 점심을 먹었다. 빈약한 치킨 한 조각에 콩과 밥이 놓여 있을 뿐이었는데 4달러였다. 키토에 온 이유는 단 하나, 무려 2년 전 아르메니아에서 만났던 빈센트와 다시 만나기 위해서였다. 빈센트는 미국에서 차를 가지고 중미를 거쳐 남미로 내려오고 있었고, 마침내 나와 에콰도르에서 마주치게 된 것이다. 나보다도 오랜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는 반가움을 더 격하게 표했던 빈센트는 곧바로 축배를 들자고 했다. 그동안 어떤 여행을 했는지 각자의 모험담을 쏟아내느라 맥주 한 병을 해치우는 건 순식간이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한국식 프라이드치킨을 파는 식당을 발견해 자연스레 2차를 시작했다. 맥주와 안주가 더 필요했던 우리에게 치킨은 딱이었다. 여행을 하다가 누군가를 다시 만난다는 건 정말 신기하고 즐거운 일이다. 다음날 나는 고장 난 휴대폰을 고치러 사설 수리소를 방문했다. 생각보다 전문적인 곳인지 1시간 만에 말끔한 휴대폰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빈센트와 함께 키토를 돌아보기로 했다. 남미의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구 시가지에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 건축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하늘이 흐려서인지 매연으로 가득해서인지 키토의 분위기는 그리 밝지 않았다. 구 시가지로 가는 도중 보였던 보토 나시오날 대성당(Basílica del Voto Nacional)이 눈에 띄었다. 규모가 크고 중후한 멋이 있어 나름 키토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라 할 수 있다. 특이하게도 성당 외벽에 악어나 재규어(?)와 같은 동물 석상이 있다. 보토 나시오날 대성당 2달러의 입장료를 내고 성당의 내부나 첨탑을 올라갈 수 있다. 꼭 가봐야 하는 곳 중 하나라고 하는데 그냥 내키지 않았다. 조금 더 걸어가니 키토의 구 시가지가 나타났다. 여행하다 만났던 동생이 키토에서 강도를 만나 칼로 위협도 당하고 가방도 뺏겼던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자연스레 가방 끈을 한 번 더 꼭 죄였다. 플라사 그란데(Plaza Grande)는 구 시가지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남미의 다른 도시에 비해 광장의 규모가 작아 보였다. 좀도둑이 많다는 게 사실인지 광장 주변에는 경찰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구 시가지는 시장처럼 번잡해 보이기만 했지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프란시스코 성당 주변은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건물이 몰려 있었지만 무슨 이유인지 대규모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갑자기 비가 쏟아져 빈센트와 나는 아무 곳이나 들어가 봤다. 과거 에콰도르 원주민들의 생활 모습을 담은 그림이나 조각들이 걸려 있어 흥미로웠다. 잠시 휴식을 취할 겸 근처 펍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구석진 골목으로 들어가 봤다. 몇 개월 간 남미를 여행하다 보니 이제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이런 거리가 익숙했다. 낡은 집 사이로 분위기가 좋아 보이는 카페나 식당도 몇 군데 보였다. 키토의 남쪽 언덕 위에는 천사상(Loma El Panecillo)이 있는데 유명한 관광지이자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빈민촌에 위치하고 있어서 걸어서 올라가면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수 없이 들었다. 실제로 보니 확연히 다른 동네 분위기가 느껴졌다. 여행을 하면서 지나고 보니 위험한 동네를 모르고 다녔던 적은 많은데 그렇다고 위험하다는 것을 미리 알고 가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물론 택시를 타고 오를 수 있지만 이날 키토의 날씨가 너무 안 좋았고 빈센트도 별로 가고 싶지 않다고 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회색빛으로 물든 키토는 크게 감흥이 없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동행하니 그냥 즐거웠다. 우리의 수다는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저녁에 나와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고 맥주를 마셨다. 고작해야 2잔 정도 마셨기에 취기가 올라온 것도 아닌데 우리는 동네 한복판에서 셀카를 찍으며 신이 났다. 이렇게 몇 년 만에 예상하지도 못한 곳에서 재회를 하면 가끔은 세계가 그리 넓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다음날 아침을 먹기 위해 동네를 돌아다녔는데 터무니없이 비쌌다. 주변에 여행자를 위한 숙소가 꽤 많이 몰려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물가가 꽤 비쌌던 거 같다. 빈센트도 여기 너무 비싸다는 말을 계속하며 일부러 저렴한 곳까지 찾아가자고 했다. 다른 데서는 3달러로 충분히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아침이 10달러가 넘었으니 비싸다는 말이 절로 나올만했다. 스페인어로 적도(Ecuador)라는 뜻인 '에콰도르'에 왔으니 적도 박물관에는 가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빈센트는 오후에 떠날 예정이라 적도 박물관을 다녀오면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다며 미리 작별 인사를 나눴다. 오랜만에 만나 너무 반가웠지만 서로의 방향이 다르기에 헤어짐은 당연했다. 아쉬워하지 않았다. 또 어딘가에서 만날 수 있겠지. 적도 박물관으로 가는 버스에서 엄청나게 익숙한 국방색 가방이 눈에 띄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인이었다.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니 예상대로 적도 박물관으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잠깐의 동행자가 생겼다. 사실 난 잘 모르고 갔지만 적도 박물관은 두 군데가 있었다. 하나는 '세상의 중앙'이라고 불리는 미타델문도(Mitad del Mundo)로 여기에 기념탑과 적도선이 있다. 그런데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진짜 적도가 이곳이라고 믿고 있는 인디오 적도 박물관(Museo de Sitio Intiñan)이 더 유명하다. 입장료도 4달러로 저렴하고 볼거리도 더 많다고 해서 인디오 적도 박물관으로 갔다. 인디오 박물관이라 그런지 가이드가 나서서 과거 이 적도 부근에서 살았던 인디오들의 독특했던 생활상을 얘기해준다. 가령 다른 부족의 적을 죽인 후 머리를 잘라 가지고 다녔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미라처럼 변한 그 머리를 볼 수 있다. 사람의 머리가 저렇게 작아질 수 있나 보다. 언뜻 보면 잔인해 보이기도 하고, 야만적이라 느껴질 수 있지만 그건 현재의 기준에서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예나 지금이나 남미에서 식용으로 먹고 있는 기니피그(꾸이)가 있다. 실제 모습을 보니 너무 귀엽다. 이런 귀여운 친구들이 남미에서는 별미로 식탁에 오른다니. 부족들이 실제 사용했다고 여겨지는 물건들이다. 인디오 관련 조형물이 곳곳에 배치돼 있지만 최근에 만들어진 것 같다. 인디오들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적도 체험이 이어졌다. 적도에 있기 때문에 1년 내내 해시계의 그림자의 방향이 똑같다고 한다. 너무나도 유명한 적도를 기준으로 싱크대의 물 회오리 방향을 관찰했다. 그러니까 적도에서는 물이 그대로 빠진다는 것이고 남쪽에서는 시계 방향, 북쪽에서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물 회오리를 치며 빠진다는 논리다. 오래전에 싱크대의 물이 빠지는 방향은 적도와 전혀 상관이 없다는 글을 봐서 그런지 시작부터 어설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다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신기했던 실험 중 하나로 적도에서는 쉽게 할 수 있다는 계란 세우기였다. 여기서 계란을 잘 세우면 일종의 인증서 같은 것을 주는데 난 아무리 시도해도 세울 수 없었다. 근데 상식적으로 적도가 아니더라도 계란을 세울 수 있지 않을까? 이게 적도랑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 눈감고 적도선을 똑바로 걸어보라고 한다.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균형을 잃으며 빨간 선을 벗어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것도 적도와는 관련이 없어 보였다. 나중에 적도 실험에 관한 내용을 찾아보니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전부 적도와 관련이 없었다. 적도가 아닌 곳에서도 똑같은 결과가 나오지만 단지 자주 해보지 않는 실험일 뿐이다. 물 빠짐과 코리올리 효과(전항력)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고 있는 빨간 선도 적도가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찝찝하다는 생각보다는 임의로 그어진 적도 위에서 기념사진 한 장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즐거움이 더 크다는 게 다행이랄까. 야마에게 먹이 주는 것도 언제나 재밌다. 미타델문도 박물관도 그리 멀지 않으니 가봤다. 그런데 굳이 들어갈 필요도 없어 보였고 멀리서 보였던 적도탑이 전부였다. 에콰도르에서 적도 체험은 이렇게 마무리했다. 잠깐 동행했던 한국인 역시 같은 동네에 있는 숙소에서 묵고 있어서 버스를 타고 같이 돌아와 근처 중국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저녁에도 특별한 계획이 없다고 하니 이따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아침부터 열심히 걸어 다녀 너무 피곤했던지 침대에 눕자마자 기절했다. 저녁시간에 일어나 한국인 여행자에게 연락을 해봤는데 연락이 오지 않았다. 몇 시간 기다리다 어쩔 수 없이 혼자 저녁을 먹으러 나갔고, 숙소로 돌아와서는 베네수엘라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한참이 지나고 난 후 한국인으로부터 연락이 오긴 왔는데 뭔가 씁쓸했다. 깊게 잠이 들었다고, 그리고 저녁을 먹었다니 다행이라고 했다. 그럴 수 있다. 근데 연락을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이 나온 것도 아니고, 지금이라도 만나자는 말이 나온 것도 아니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내가 생각하는 여행자의 마인드와는 너무도 달랐다. 오랜 경험상 여행지에서 짧은 만남도 길고 긴 인연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는 맥주를 마시며 피식 쓴웃음을 지어야 했다.

[U-20] 대한민국 1:0 에콰도르

타누키의 MAGIC-BOX|2019년 6월 11일

이강인 귀요미 등극ㅋㅋㅋㅋㅋㅋㅋㅋ 대박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광연 골기퍼 선방도 좋았고 사상 첫 결승 진출이라니 ㅜㅜ 크으~~ 주모오오오오~~~

여행 811일차, 에콰도르 바뇨스 '세상 끝의 그네'

하쿠나마타타|2019년 4월 5일

에콰도르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다윈에게 진화론의 영감을 줬던 단연 갈라파고스 섬이다. 그렇지만 갈라파고스는 늘 예산 압박에 시달리는 장기 여행자에게는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여행지다. 무조건 비행기를 타야 했고, 들어가자마자 내야 하는 입도비, 비싼 물가는 '나중에'라는 말로 접어야 했다. 콜롬비아로 가는 길목에 있었기에 빠르게 지나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에콰도르의 첫 번째 도시는 쿠엔카(Cuenca)였다. 이른 아침에 도착하자마자 숙소에서 체크인을 한 뒤 야간 이동의 피로를 풀기 위해 잠시 쉬었다. 에콰도르는 짐바브웨 이후 오랜만에 달러를 쓰는 나라였다. ATM에서 돈을 인출하자 미국 달러가 나왔다.    점심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적당히 저렴한 식당이 있는지 찾으며 걸었는데 그리 어렵지 않게 '메뉴델디아(Menu del Dia)'라고 쓰여있는 식당을 발견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오늘의 메뉴라고 해야 할까? 남미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메뉴로 수프, 메인, 음료 등이 나오면서 저렴함이 특징이다. 이날도 에콰도르에서 처음 먹은 메뉴델디아 메뉴는 3달러였다.   스페인 식민시대의 오래된 건물이 많긴 했지만 동네는 깔끔한 편이었다.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있는지 쿠엔카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처음 도착한 도시에서 적응하는 방법은 무작정 걷는 것이다.   조금 걷다 보니 강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작은 개울이 나왔다. 이 개울을 사이에 두고 도시가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다.   맑은 날씨에 걸으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 알록달록한 벽화를 구경하고, 길거리에서 파는 불량식품 같은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었다.    누군가는 에콰도르에서 쿠엔카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하는데 기대할 만큼 특별하진 않았다. 지나고 생각해 보면 매연 가득한 키토나 범죄율이 높다고 알려진 과야킬에 비하면 쿠엔카는 훨씬 괜찮은 동네임에 틀림없다.   쿠엔카에서는 손으로 직접 만드는 파나마 모자가 유명하다고 한다. 에콰도르에서 만든 모자인데 중미에 있는 나라 이름이 붙은 이유는 파나마를 통해 여러 나라로 수출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모자도 관심이 없었고, 모자를 사더라도 들고 다닐 자신도 없었다. 아무튼 목적지 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도시를 한 바퀴 돌게 되었다.    어느 건물 안에는 재래시장이 있었다. 페루, 볼리비아와는 조금 다른 인디오들의 외모와 옷차림이 눈에 띄었다. 과거 잉카제국의 영향에 있었던 이곳은 스페인 식민시대를 거치면서 거의 다 사라진 상태지만, 인디오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광장을 지나면 쿠엔카를 대표하는 새로운 성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멀리서 봐도 푸른색의 돔이 인상적이다.    성당 주변에는 꽃을 파는 노점이 여럿 있었다. 확인해 보진 않았지만 아마 여기서 성당 안 여러 성인 앞에는 여기서 산 꽃이 놓여 있을 것이다.   쿠엔카의 밤은 꽤나 조용했다.   아무리 작은 도시라도 보통 이틀 이상 머무는 편인데 북쪽으로 빠르게 올라가기로 했다 보니, 바로 다음날 아침에 바뇨스(Baños)로 이동했다. 바뇨스로 가는 버스는 아침에 한 대 뿐이었지만 사실 매 시간 있었던 암바토(Ambato)로 가는 버스를 탄 후 바뇨스로 가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바뇨스로 가는 여정은 굉장히 지루했다. 좁은 버스는 그렇다 쳐도 중간에 사람을 태우기 위해 수시로 정차했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낮에 타는 장거리 버스라서 그런 듯하다.   거의 9시간 만에 바뇨스에 도착했다. 바뇨스는 작은 동네지만 여행자로 항상 북적이는 곳이다.    미리 만나기로 했던 사람들과 얘약했던 숙소를 찾아가 체크인하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잠깐 걸었을 뿐인데 한국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사실 남미에서 한국인 여행자를 만나기란 그리 어렵지 않지만 에콰도르, 그것도 바뇨스에 이렇게 한국 사람이 많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루 종일 이동하느라 제대로 먹은 게 없었다. 숙소를 찾아 걷다 우연히 발견했던 허름한 식당이 생각나 무작정 찾아갔다. 연기로 가득했던 허름한 식당에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곱창을 팔고 있었다. 페루에서 만났던 어느 한국인 여행자가 바뇨스에서 먹었던 곱창이 그렇게 맛있다고 칭찬을 했었는데 첫날에 우연히 찾아온 것이다. 때마침 곱창을 먹으려고 기다리던 한국인 여행자 4명과 합석하게 되었다. 우리는 통성명도 하지 않은 채 수다를 떨고, 맥주와 곱창을 해치웠다.   바뇨스에서는 칠레에서 밤새도록 술을 마셨던 동빈이와 다시 만났다. 동빈이와 날짜를 맞춘 것도 있지만 바뇨스에 한국 사람이 많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공기 좋은 곳에 위치한 이 작은 마을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가 매력적이다.   동빈이와 함께 만나게 된 한국인들과 다음날 곧장 래프팅을 하러 갔다. 확실히 18달러면 괜찮은 가격인 것 같다. 물론 여럿이라 약간 할인이 되긴 했지만.   래프팅에 앞서 구명조끼를 입고 노를 챙긴 뒤 간단한 교육을 받았다.    물을 무서워하지만 일단 신난다.   래프팅을 처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바뇨스에 도착하기 전에 이곳 물살이 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날씨도 흐려서 살짝 걱정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거칠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만 더 빨랐으면 더 재미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다.    물살이 약한 곳에서는 가이드의 의도 혹은 자신의 의지로 한 번씩 물에 빠진다.   두 팀으로 나뉘어서 탔기 때문에 경쟁하면서 노를 젓거나 물싸움을 하는 건 기본이었다.   간혹 무자비한 사람들로 인해 강제로 물에 빠지기도 한다. 구명조끼를 입었지만 물살이 빠른 지점 전에 보트로 돌아와야 한다.   보통 노를 천천히 젓다가 물살이 세지는 지점에서 노를 힘껏 저으며 빠져나간다. 바위가 있는 지역은 특히 위험할 수 있다.    조금 더 스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우린 충분히 즐거웠다.   계속해서 물싸움을 하면서 내려오다 보니 어느덧 하류에 다다랐다. 이제는 물에 빠져도 허리까지 밖에 오지 않는다.   오랜만에 계곡에서 래프팅을 하니 정말 재미있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한국 여행자를 한 번에 많이 만났던 적은 손에 꼽는데 유독 남미만큼은 달랐다. 그렇다고 남미 여행지마다 한국 사람을 만났던 것도 아니었다. 관광지나 큰 도시에서만 한국인을 만나기 쉬웠다고 해야 할까. 바뇨스라는 작은 동네에 이렇게 많은 한국 사람이 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며칠 뒤 더 많은 한국 사람이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동빈이를 제외하고 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같이 술을 마시며 어울렸다.    남미에서 거기에 한국 사람들끼리 어울린다는 이유로 술자리가 금방 끝날 리 없었다. 처음에는 맥주를 마시다 금방 병을 비우자 보드카로 종목을 바꿔 마시기 시작했다. 한참을 마시다 보니 하나 둘 숙소로 들어갔고, 뭔가 아쉬웠던 나를 포함한 네 명은 다른 장소로 옮기기로 했다.   알록달록한 조명 아래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거리를 걷다 보면 확실히 세련된 맛은 아니었다. 촌스러움을 가득했던 만코라와 비슷했다. 아무래도 바뇨스는 작은 동네였으니까. 아무튼 '프리드링크'를 준다는 클럽에 들어갔다가 무지하게 쓴 술을 마시고는 바로 나왔다. 너무 시끄러웠다. 맞은편에 있는 다른 술집에서도 프리드링크를 주길래 들어갔는데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프리드링크로 준 술은 빨강색, 노란색, 초록색이 층을 이룬 예쁜 칵테일이었는데 재미있게도 잔에 불이 붙어서 나왔다.   이번에도 프리드링크만 마시고 나갈 수는 없어 남미에서 자주 마셨던 브라질 칵테일 카이피리니야를 달라고 했다. 밖은 여전히 시끌벅적하고, 자정을 넘어서까지 술을 마시던 우리는 끝내 취하지 않았다.   어쩌면 사진으로 더 유명한 장소가 바뇨스에 있다.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면 까사델아르볼(La Casa del Arbol)에 갈 수 있다. 스페인어로 까사는 집이고 아르볼은 나무이니까 번역을 하자면 '나무집'정도 되겠다.   나무집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그네 때문이다. 언덕 위에 있는 그네를 타고 뒤에서 사진을 찍으면 마치 공중에서 묘기를 부리는 것처럼 아찔한 장면이 담겨 나온다.   그네를 탈 수 있는 곳은 두 군데가 있다.   둘 다 그네를 타면서 사진 찍기 좋지만 역시 나무집 아래 있는 그네가 더 잘 나온다. 양 옆 기둥이 없는 데다가 절벽에 가까이 있어 사진으로는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놀이'로 보인다.    실제로는 약간 경사진 언덕이라 무섭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로우앵글로 찍으면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그네처럼 보인다. 덕분에 '세상 끝의 그네'라는 별명도 있다.   넓은 공터에는 아담한 규모의 짚라인도 있다.   다만 짚라인을 타게 되면 중간 지점에서 멈추게 된다.   대부분 그네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지만 주변 경치도 제법 괜찮다.   사실 기대했던 것보단 별 게 없지만 단 돈 1달러에 오랫동안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나름 괜찮았다고 볼 수 있다.   그네 사진만 보고 바뇨스를 찾아오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까.   사진을 충분히 찍었다고 생각했을 때 내려왔다. 돌아가는 버스가 1시간마다 있었기에 시간을 잘 맞춰야 했다.   디마티아스 호스텔로 숙소를 옮겼다. 여전히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남미에서는 꼭 한국인 여행자들이 몰리는 숙소가 정해져 있다. 바뇨스에서도 그랬는데 다른 숙소는 텅 빈 곳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기만 한국인들로 북적였다. 우리가 묵고 있던 숙소는 더블룸이었음에도 도미토리인 이 숙소로 전부 옮겨가기로 해서 나도 오게 되었다. 비슷한 가격인데도 말이다. 물론 이곳 주방에는 조리도구가 많아 요리를 하고 함께 먹고 즐기기는 더 좋았다.   바뇨스에서는 액티비티를 하지 않으면 할 게 그리 많지 않다. 래프팅을 비롯해 캐녀닝, 캐노피, 번지점프 등 여러 액티비티를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하긴 했으나 여행 막바지라 생각했던 나는 절약 모드에 들어갔다. 나보다 어린 여자아이들이 여기 번지점프는 엉성한 줄만 묶고 바로 앞에 있는 다리에서 뛰어내리기 때문에 더 스릴 있다는 말에 쫄았던 것도 있다.   시장은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거나 음료를 마시기 좋다.   페루에서만 '꾸이'를 먹는 줄 알았는데 에콰도르에서도 즐겨 먹나 보다. 통구이 된 기니피그를 보면 있던 식욕이 사라지게 된다. 흥미롭긴 하지만 굳이 먹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경험 삼아 먹어봤으면 어땠을까 싶다. 아마 옆에서 가이 먹어보자고 꼬셨으면 먹었을 텐데 혼자라서 구경만 한 것 같다.    관광지답게 어딜 가도 숙소와 기념품 가게를 찾을 수 있다.   한 바뀌 돌아보면 소박한 동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돼지껍데기에 흥미를 느껴 먹어봤는데 그냥 고무를 씹는 느낌이었다.   저녁에는 폭포 바로 아래 있는 야외 온천에 갔다. 입장료는 3달러였는데 동네 온천이니 특별할 건 없었고, 냉탕과 온탕 그리고 수영장이 있었다. 저녁에는 다 여기로 오는 것인지 꽤 많은 사람들이 온천을 즐기고 있었다. 시설이 좋다거나 온천에 대한 기대는 애초에 하지도 않았고 따뜻한 물에 오랫동안 몸을 담그고 오는 것으로 만족했다.   여행 811일 차, 노트북과 휴대폰이 박살 났다. 이를 어쩐담.   숙소에는 지난번 곱창 먹을 때 만났던 한국인 여행자들도 있었다. 몇 번 지나치며 인사를 했던 게 전부였는데 이날은 앉아서 계속 수다를 떨게 되었다. 나보다 형이었던 찬열이형은 대전에 연고가 있었고, 잠시 뒤에 합류했던 유경누나는 내가 2년 동안 군생활을 했던 강원도 원통 출신이라고 했다. 그 때문인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수다가 이어지게 되었다.    아마도 1년 이상 여행한 장기 여행자, 그리고 비슷한 나이 또래라서 말이 잘 통했나 보다. 우리의 수다는 아침부터 밤까지 지칠 줄 몰랐다.    이제는 익숙해진 바뇨스 밤거리를 걷다 술자리를 이어갔다. 여행하면서 1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수다가 이어진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수다가 즐거운 사람들을 만났는데 아쉽게도 바뇨스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아침에 배웅 나온 유경누나가 하루만 더 있으라고 했는데 키토에서 만날 친구가 있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한국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한 뒤 거리로 나섰다. 헤어짐은 일상이지만 또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여행의 매력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