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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posts여행 815일차, 가난한 자들의 갈라파고스
이카에서 바로 수도 리마로 올라가려 했지만 잠깐 바다를 보러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그래서 무작정 서쪽으로 향했다. 이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파라카스(Paracas)라는 나름 유명한 관광지가 있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가난한 여행자들의 갈라파고스'라고 한다. 갈라파고스 섬은 에콰도르에 있는 섬으로 수많은 동물과 아름다운 해양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진화론으로 잘 알려진 다윈이 기초 조사를 했던 곳이 바로 갈라파고스다. 파라카스가 얼마나 대단한 곳이면 그 갈라파고스가 별명으로 붙었을까? 궁금해서 가보기로 했다. 이카에서는 버스를 타고 1시간 20분 정도만 가면 파라카스에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리 멀지 않았다. 배낭을 챙겨 들고 시내 방향으로 걷다가 싸구려 호스텔에 체크인을 했다. 이카부터 더워진 날씨에 밖으로 나가기 꺼려졌지만 잠깐 동네를 살펴보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관광객이 많아서 그런지 기념품 가게가 꽤 많았다. 해변에는 수영을 즐기는 사람이 꽤 많았으나 기대했던 것에 비해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다. 아무래도 작은 마을에 관광객이 몰리는 지역이다 보니 물가가 꽤 비쌌다. 여기저기서 부르는 호객꾼을 물리치고 길가에 있는 노점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쳐 어설픈 스페인어로 대화를 시도하니 웃음을 지으며 몇 마디 한다. 자욱한 연기에 구워지고 있는 것은 치킨, 8솔이었다. 냄새를 맡고 강아지들이 몰려왔지만 혼자 먹기에도 양이 부족해 나눠줄 수는 없었다.여기까지 보면 대체 왜 이곳이 '가난한 여행자들의 갈라파고스'인지 실감나지 않는다. 여느 해변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다. 조금 더 알아보니 파라카스에서 야생 동물을 보고 싶다면 국립공원을 찾아가야 했다. 크게 두 군데가 있었는데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바예스타 섬(Isla Ballestas)이었다. 어렵지 않게 숙소에서 투어를 예약했다. 보통 투어비는 30솔이었지만 입장료가 별도였다. 다음날 아침 선착장으로 나가보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보트를 기다리고 있었다.사람을 가득 태운 배는 시끄러운 모터 소리와 함께 바다로 나갔다. 짠 내음이 가득 담긴 바다 바람을 맞았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투어를 하기 적합하지 않은 흐린 날씨가 불만이었다.한참 달리다 보니 좌측 언덕 위에 독특한 그림이 보였다. 누구는 선인장이라고 하고, 누구는 촛대라고 하는데 이 그림은 지금도 누가 그렸는지 모른다고 한다. 더 신기한 점은 모래 언덕에 그린 이 그림이 굉장히 오래되었을 것이라 추측되는데 염분이 섞인 바람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지금까지도 그림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고 한다.잠시 후 우리는 엄청난 수의 새를 보게 되었다. 바위 섬에 가득 새가 앉아 있어, 새가 바위를 뒤덮고 있는 모양새다.한가로이 수영을 즐기는 물개와 바다사자도 볼 수 있었다.바예스타 섬 투어 관련 사진을 보면 꼭 나오는 바위 다리에 도착했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다리 주변으로는 여러 동물이 가득했다. 너무 멀리 있어 카메라로 담기 어려웠지만 한 줄로 걸어가고 있는 펭귄도 볼 수 있었다.투어를 즐기는 다른 배도 다리 주변에 모여 한동안 설명을 듣고, 사진을 찍었다.바예스타 섬 투어는 오로지 보트 위에서만 보고 즐길 수 있다. 좀 더 가까이 가서 동물을 보거나 섬에 내리지 못한다. 물론 굳이 가까이 가서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바위 섬마다 커다란 바다사자가 자리를 잡고 있다.사람들이 쳐다보건 말건 한가로이 늘어져 있다.여러 동물을 보는 것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문제는 지독한 냄새로 잠시도 숨을 쉴 수 없었다. 너무 지독했다. 나미비아 케이프크로스에서 엄청난 무리의 물개를 봤을 때 못지 않다.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새가 까맣게 뒤덮고 있다. 무서울 정도로 새가 많다 보니 세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보트는 계속 주변을 맴 돌았지만 특별히 관심이 가는 곳은 없었다.이미 여러 차례 보긴 했어도 새보다는 얘네들이 더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꺽꺽거리는 소리와 냄새로 친해지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유일하게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동물이었다.이렇게 여러 바위 섬 주변을 돌아본 후 파라카스로 돌아갔다. 생각보다 더 일정이 짧다.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니 하늘이 맑아졌다. 여행자의 운이란, 항상 이런 식이다.기대했던 바예스타 섬 투어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해 다른 투어는 하고 싶지 않았다. 기대를 접게 만들었다. 그냥 혼자서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고, 기념품 가게를 구경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가난한 여행자들의 갈라파고스는 무슨, 거창한 별명에 비해 볼거리는 별로 없었다. 애초에 '가난한 자'를 위한 곳이니 실망할 필요는 없었던 것일까? 가난한 여행자인 나는 이 정도에서 만족해야만 했다. 아레키파를 여행할 때 숙소에서 만났던 독일인 아저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하고 있어 페루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많이 가봤다고 했다. 페루 북부의 마추픽추라 불리는 쿠엘랍(Kuelap)이 있다는 것도 이 아저씨 덕분에 알게 됐다. 그리고 파라카스 부근 피스코(Pisco)에는 또 다른 알려지지 않은 유적지, 탐보콜로라도(Tambo Colorado)가 있다고 들어 찾아 가보게 되었다. 어떤 유적지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새로운 도시를 간다는 의미도 있었다. 피스코는 파라카스에서 그리 멀지 않아 콜렉티보를 타고 20분이면 갈 수 있었다.파라카스는 그래도 관광객이 많아 꽤 밝은 느낌이었다면 피스코는 낡은 건물과 칙칙함이 가득한 작은 도시였다. 거리에서 관광객도 거의 볼 수 없었다. 오로지 벽돌만 쌓아 올리고 철근은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집만 보였다.유적지를 바로 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시간이 애매하다는 핑계를 대며 그냥 동네를 돌아다니며 하루를 보냈다. 이런 곳에서 하루를 보낸다는 건 어쩌면 이상한 여행자만 가능할지 모른다.다음날 탐보콜로라도를 가기 위해 거리로 나섰는데 광장에서 어떤 행사인지는 모르겠지만 퍼레이드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귀여운 꼬마 아이들이 걷는가 하면, 반짝이는 복장을 입고 안무를 하는 학생들도 보였다.이런 퍼레이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피카츄가 보였다.탐보콜로라도로 가는 길은 꽤 험난했다.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 시장 근처에서 미크로(미니밴)를 탈 수 있다고는 알아 냈지만 정확히 어디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사람마다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복잡하고 지저분한 시장 근처에서 혼자 걷기를 수십 분, 탐보콜로라도로 가는 미크로를 찾을 수 있었다. 다만 출발까지는 30분이나 남았다고 했다. 간단히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게 없을까 미크로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니 철판에 돼지고기를 구워 파는 음식이 있었다. 딱 봐도 맛있어 보여 주저하지 않고 하나 달라고 했다. 먹기 좋게 돼지고기를 자른 뒤 감자와 옥수수를 넣고 그 위에 상추를 올려줬다. 껍질 부위가 살짝 딱딱하지만 고기는 부드러워 보쌈을 먹는 것 같았다. 매운 소스를 뿌려 먹으니 내 입맛에 딱 맞았다. 이렇게 맛있게 먹었는데 3솔밖에 하지 않았다.하나 더 달라고 해서 또 먹었다. 아주머니와 어설픈 스페인어로 몇 마디 주고 받았는데 무척 즐거워하셨다. 그러다 이 동네에서 사진 하나 남기지 않는 것 같아 카메라를 꺼내 들고 사진으로 남겼다. 아주머니는 혼자 여행하고 있다는 내가 걱정이 되는지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아무래도 시장은 사람이 많아 복잡한 데다가 이곳에는 관광객이 많지 않아 눈에 띄기 때문이다. 고맙다는 말을 하며 미크로에 탔는데 창문 너머로 아주머니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탐보콜로라도까지 가는 동안 후덥지근하고, 지루했다. 피스코에서 45km 떨어져 있지만 작은 마을을 거치며 1시간이나 걸렸다. 여기서 내린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과연 이런 곳에 관광객이 찾아오는지 의심부터 들었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다행히 사람은 있다. 이렇게 인적이 드문 곳에 관광객이 찾아왔으면 반가워 할 법도 한데 입장료로 5솔만 받아갔다. 사무실 옆에는 작은 박물관이 있다. 메마른 땅으로 나가면 거대한 흙벽돌 유적지가 눈에 들어온다.워낙 알려지지 않은 관광지다 보니 눈으로 구경하는 것만으로는 정확한 정보를 알기 어려웠다. 이곳 역시 잉카의 유적이라는 것, 이 지역의 이카(Ica)와 친차(Chincha)를 정복해 몇 가지 복합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 정도만 알게 되었다.15~16세기에 만들어진 곳으로 잉카제국의 행정구역, 제단의 역할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측한다.흙벽돌로 쌓아 올렸지만 잦은 지진에도 피해가 없어,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라고 한다. 문을 통해 들어가보면 여러 개의 방이 연결되어 있다. 사람이 살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근처에 가이드나 안내판이 전혀 없어 아무 생각 없이 돌아봤다.탐보콜로라도의 또 다른 이름은 푸카와시(Pukawasi)로 '빨간집'이라는 뜻이다. 벽면에 남아있는 빨간색 도료 때문이다. 어느 방에 들어갔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기도 하고, 혼자 외로이 돌아봤다. 멀리서 현지인으로 보이는 관광객이 잠깐 보이긴 했지만 이내 사라졌다.용도를 알 수 없는 사다리꼴, 삼각형 무늬가 있다.좁은 길을 따라 가면 막혀 있는 벽을 만나게 된다. 단순한 구조인데 벽면이 비슷해 미로처럼 헤매기도 한다.위로 올라가 탐보콜로라도를 내려봤다. 여러 개의 방이 복잡하게 있고, 바로 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는 구조였다. 뒤에 있는 언덕에 뭔가 있는 것 같아 올라가봤다. 그런데 관광객이 오르는 곳이 아닌 듯 길이 아예 없었다. 일단 오르기 시작했으니 끝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힘들게 올라갔는데 아무 것도 없다. 언덕 위에 세워 놓은 십자가는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언덕 위에서 탐보콜로라도, 그 앞을 지나는 도로, 그리고 멀리 검은산을 바라보며 잠시 바람을 쐬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봤다 생각해 내려가는데 가는 길이 너무 미끄러워 식은땀이 흘렀다. 손을 짚고 겨우 내려갔다.애초에 탐보콜로라도가 어떤 유적지인지도 모른 채 왔으니 어떤 의미를 찾겠다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돌아서서 탐보콜로라도를 카메라에 담았다.여기까지 찾아오는 것도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돌아가는 것도 문제였다. 도로에는 지나가는 차가 거의 없었는데 조금 있으면 해가 질 시간이었다. 미크로가 언제 올지도 알 수 없으니 마냥 기다려야 했다. 만약 미크로가 오지 않으면 히치하이킹이라도 해야 피스코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20분 정도 기다리니 미크로가 보여 손을 흔들어 세웠다. "피스코?"라는 말에 아저씨는 손짓을 보였다.먼 거리를 왔다갔다 했으니 눈꺼풀이 절로 감겼다. 여전히 어색했던 피스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워진 상태였다. 적당한 곳에서 치킨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동네를 잠깐 걸었다. 밤에는 날씨가 선선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꽤 많이 보였다. 페루 여행을 하면서 돌아다니는 외국인이 나 혼자였던 곳은 여기뿐이었다.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더 한적하고 어두웠다.
여행 811일차, 와카치나 사막에서 신나는 버기투어
이카(Ica)로 가는 버스에서 비몽사몽 정신 없이 졸다 보니 날이 밝았다. 몸이 찌뿌둥하고 더위가 느껴져 입고 있던 옷을 벗으며 창밖을 바라봤는데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온통 황량하고 메마른 사막이었다.버스는 와카치나(Huacachina)로 가는 갈림길에서 잠시 멈췄다. 아무래도 외국인 여행자는 와카치나로 곧장 가는 경우가 많고, 버스터미널까지는 조금 멀기 때문에 중간에서 내려주는 것 같다. 나는 잠이 덜 깬 상태로 어리둥절하다가 독일인 여행자 2명이 내리는 것을 보고 따라 내렸다. 그들은 와카치나로 갈 예정이었지만 애초에 이카에서 뭘 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나는 미리 봐두었던 숙소로 찾아갔다. 다행히 그리 멀지 않았다. 한국에서 만든 자동차지만 이제 한국에서는 희귀한 티코 택시를 타고 10분만에 도착했다.내가 찾아간 곳은 이카 어드벤처2 호스텔인데 시설이 굉장히 좋았다. 이른 아침이라 체크인을 바로 할 수 없었지만 친절하게 맞이해 준 직원은 조식을 먹을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부페식으로 마련된 조식은 6달러짜리 호스텔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풍성했다. 쿠스코와 아레키파와는 달리 이카는 무척 더웠다.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낡은 티코와 뚝뚝이 내뿜는 매연과 소음만큼이나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숙소에서 중심부까지 거리가 꽤 멀어 한참 걸었다.여태 지나왔던 다른 도시와 달리 공원도 딱히 관광지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다른 여행자도 많지 않았다.오로지 이카에서 기억나는 것은 노란색 티코 택시였다.바깥에서 보기만 했지만 교회조차도 사막과 어울리는 색깔이었다.호스텔에서 쉬고 있을 때는 중국인 여행자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고, 다음날에는 한국인 여행자와 오랜만에 만나 저녁을 같이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다음날 곧바로 헤어지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페루에서는 바쁘게 이동하는 여행자가 많다 보니 어쩔 수 없다.이카에서 기대하는 것은 오로지 사막의 오아시스 와카치나다. 그리 멀지 않아 택시를 타고 쉽게 갈 수 있는데 조금 달렸을 뿐인데도 도로 양 옆으로 거대한 모래 언덕이 보였다.사막에 오아시스가 있다고 하니 기대를 했는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분위기였다. 오아시스는 무조건 맑고 투명할 줄 알았다.오아시스에서 보트를 타는 사람들이 보였다. 규모가 크지 않아 걸어서 한 바퀴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와카치나에서 꼭 해봐야 하는 것은 버기카를 타고 모래 언덕을 달리는 버기투어다. 그런데 이날은 페루의 큰 공휴일이 껴있어 리마에서 내려온 많은 사람들 때문에 버기투어 시간이 2시간에서 1시간으로 줄었고, 이미 내가 예약했던 곳에서는 한참 뒤에나 탈 수 있다는 말을 전했다. 거기에 불친절한 태도까지 보여 오랜만에 짜증이 폭발했다. 어차피 이 작은 동네에 버기투어를 하는 여행사는 널리고 널렸으니 예약을 취소하고, 직접 돌아다니면서 찾아봤다.여러 업체 중에 2시간을 달린다고 소개하는 곳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잠시 기다린 후 10명을 태운 버기카는 붕붕 소리를 내며 언덕을 향해 달렸다. 특이하게도 나와 네덜란드인 여행자를 제외하고 전부 페루인이었다.사실 나는 미리 예약했던 버기투어 업체의 태도에 화가 나있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와카치나까지 와서 버기투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튼 살짝 기분이 안 좋은 상태로 버기카를 탔는데 달리자마자 너무 신나 아무 생각도 안 났다. 환호성이 절로 나왔다.모래언덕에서 내려갈 때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아찔했다. 거의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는데 그때마다 뒤에 있던 페루인들은 환호가 아닌 비명을 질렀다.물론 사막 여행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보통 사막에 있을 때는 목이 바싹 마르고, 걷기만 하다 고개를 제대로 들 수 없었는데 이곳에서는 놀이동산이 온 것처럼 신이 났다.버기투어에는 버기카를 타고 계속 모래언덕을 오르내리는 것 말고도 잠시 멈춰서 보드를 타는 샌드보딩도 포함돼 있다. 버기투어를 하면 보통 2~4번 정도 샌드보딩을 타게 되는데 처음에는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한다.보드를 들고 아래를 내려다 보니 꽤 높고 경사졌다. 시작하기도 전에 걱정하는 친구들이 몇 있었다.샌드보딩은 일어 서서 탈 수도 있지만 보통은 잘 미끄러지기 위해 엎드려서 타는 경우가 많다. 보드가 매끄럽게 잘 나가게 하기 위해서인지 양초를 이용해 바닥면을 닦았다.나도 살짝 걱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었으나 까짓 거 타보자는 심정으로 보드에 몸을 맡겼다. 속도가 빨라 순식간에 아래로 내려왔다. 그런데 무섭다는 생각은커녕 한 번 더 타고 싶을 정도로 정말 재미있었다. 보통은 나머지 사람들이 다 탈 때까지 아래에서 기다리는데 나와 네덜란드인 친구는 또 타고 싶어서 걸어서 언덕을 올라갔다. 근데 발이 푹푹 빠지는 사막이니 올라가는 게 너무 힘들었다. 우리는 한참 동안 기어 올라가 또 한 번 보드를 탔다.다시 신나게 버기카를 타고 이동한 후 다른 모래언덕에서 멈췄다. 이번에 내려갈 곳은 아까보다 훨씬 높은 곳이었다. 누구도 선뜻 먼저 내려가겠다 하지 않았다. 웃기만 했다. 네덜란드인 여행자는 항상 먼저 보드를 타겠다고 나섰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아저씨가 뒤에서 보드를 밀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용기를 낸 다른 사람들도 보드를 타기 시작했다. 몇 명은 여전히 무섭다고 호들갑을 떨었다.빠르게 내려가는 보드를 보며 나도 얼른 타고 싶어졌다.내 차례가 왔다. 아까보다 경사가 심했지만 훨씬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기록으로 남기면 좋을 것 같아 페루 친구들에게 동영상 촬영을 부탁하고 엎드렸다. 속도감에 정신이 없었지만 정말 신나고 재미있었다. 보드만 꽉 잡고 내려가면 되니 그리 어렵지도 않다.다시 버기카를 타고 모래언덕을 넘어다녔다.마지막 샌드보딩 장소는 정말 까마득한 높이였다. 두 번째까지는 어찌어찌 탄다고 하는데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높이라 몇 명은 못 타겠다며 포기했다. 나 역시 긴장이 되었지만 망설이지 않고 엎드렸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와 높이로 인해 훨씬 더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다.우리는 버기카를 타고 돌아다니며 모래언덕에서 시간을 더 보냈다.해가 지기 시작했다. 이제 오아시스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버기투어를 마치고 돌아가기는 길에 오아시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와카치나 내에서 걸어다닐 때는 잘 몰랐는데 언덕 위에서 바라보니 사막 한 가운데 오아시스가 나름 신비롭게 다가왔다.버기투어를 마친 많은 여행자들은 이곳에 모여 함께 사진을 찍는다.리마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했던 페루 친구들은 영어도 제법해서 대화하는데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 우리는 오아시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후 헤어졌다. 버기투어가 끝나고 다시 이카로 돌아왔다. 모래언덕을 타고 내려오는 샌드보딩을 했으니 온몸이 모래투성이었다. 일단 샤워부터 하고 다음을 생각하기로 했다. 원래 이카에서 오래 머물 생각은 아니었지만 당장 떠나기에는 계획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하루만 더 머물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페루 공휴일이 겹쳐서 이카 내 모든 숙소의 가격이 올랐을 뿐만 아니라 빈 방을 찾기조차 어려웠다. 도시 한복판에서 텐트를 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배낭을 메고 무작정 숙소를 찾아다녔다. 인터넷에서 나와있지 않은 굉장히 낡은 숙소도 50솔 이상 달라고 할 정도로 가격이 2배 이상 올랐다. 10군데 이상 돌아다니다 보니 어두컴컴한 밤이 되었다. 이대로 오늘 잘 곳을 찾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하던 찰나 구석진 곳 낡은 숙소에서 남는 방을 찾았다. 가격도 30솔로 그리 비싸지 않았고 싱글룸이다 보니 하루 지내는데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이곳이 정확히 어디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고, 동네 분위기도 어두웠지만 배낭을 내려놓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나는 곧장 바로 앞에 있는 허름한 식당으로 가서 닭국수로 저녁을 해결했다. 그러다 옆에 있는 현지인들과 말도 안 되는 대화를 이어갔는데 이런 것도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하니 더 재미있었다.
[페루] 만코라 숙소, 로키 델 마르(Loki del Mar Hostel)
[기본정보]- 10인 도미토리 32솔- 깨끗한 시설과 수영장- 식당 운영- 매일 저녁 파티- 뒷문으로 나가면 바로 해변이라 위치가 좋음이른 새벽에 만코라에 도착한 후 동네를 돌아다니며 숙소를 찾아다녔다. 숙소는 많긴 했는데 생각만큼 가성비가 좋은 곳이 보이지 않았다. 거의 1시간 정도 돌아다니다 인터넷에서 봤던 로키 델 마르로 향했다. 막상 들어가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시설이 좋았다. 아마 볼리비아 라파스에 있던 로키 호스텔과 같은 체인 같은데 해변에 있어서 그런지 리조트형이었다. 외형만 보면 정말 리조트에 온 것만 같다.바로 옆이 해변임에도 많은 여행객들이 호스텔 안에서 수영을 하고 있다. 만코라는 특히 서양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하는데 호스텔만 보면 정말 그렇다.워낙 호스텔이 넓고 시설이 괜찮아서 도미토리에 체크인을 했다. 도미토리는 평범하지만 기본적인 것들은 다 있다. 개인용 사물함이 있어 중요한 물건을 두고 나올 수 있다.사실 비슷한 가격대의 더블룸도 있었으나 커다란 수영장과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보고 마음이 확 바뀐 것이다.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 수영장 바로 옆에 있다. 가격은 밖에서 먹는 것보다 조금 비싸지만 그렇게 부담되는 수준은 아니다. 그리고 해변 근처 식당의 경우 이곳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로키 델 마르 뒤쪽으로 작은 문이 하나 있는데 이곳으로 나가면 바로 해변이 나온다.나름 기대했던 해변인데 실제로는 그저 그랬다. 특히 해변 근처에 있는 바는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 놓고 손님을 맞이하려고 하지만 너무 한적했다.해변에서 보는 일출은 괜찮았다.당연히 해변이 더 분위기 좋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호스텔이 더 좋았다. 매일 파티가 열리니 노는 걸 좋아하는 외국인들은 굳이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었다.하루 정도는 이렇게 노는 것도 나쁘지 않다. 너무 피곤해서 늦게까지 술을 마시지는 못했지만 다른 외국인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떠들었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대부분의 말은 묻혔지만. 아무튼 만코라의 다른 어설픈 숙소보다 시설이 훨씬 좋아 하루나 이틀 정도는 이곳에서 머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만약 술을 마실 생각이라면 가급적이면 해피아워일 때 주문하는 게 좋다. 물론 해피아워도 비싼 편에 속하지만 2병을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페루] 아레키파 숙소, 프렌들리 아레키파 호스텔(Friendly AQP Hostel)
[기본정보]- 도미토리 24솔 - 시설이 깨끗하고 넓은 휴식 공간 - 조식 포함- 아르마스 광장에서 15분 거리아레키파에서는 먼저 여행했던 동생들이 추천해줬던 프렌들리 아레키파 호스텔을 찾아갔다. 처음에는 AQP가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아레키파(Arequipa)의 약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호스텔은 무척 깔끔한 편이다. 배낭여행자가 머물기에는 딱 괜찮았다.도미토리도 넓고 아늑했다. 아쉬운 점은 전기를 쓸 수 있는 곳이 멀리 떨어져 있어 충전을 하거나 노트북을 사용하기 어려웠다. 다행히 여기서 지낼 때는 거의 나 혼자 쓰는 날이 많아서 전기선을 끌어다 사용하곤 했다.귀중품을 보관할 수 있는 사물함도 있다.침대는 굉장히 푹신했고, 커텐이 있어 도미토리지만 아주 약간이나마 프라이버시를 보호 할 수 있다.1층 실내에는 TV와 소파가 있어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와이파이도 꽤 빠른 편이라 불편함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특히 작은 의자와 탁자는 혼자서 노트북을 하고 있을 때 무척 좋았다.실외도 공간이 꽤 넓다. 이곳에서 조식을 먹을 수 있는데 팬케이크와 스크럼블을 선택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팬케이크가 더 낫다. 탁구대도 있다.조식을 먹은 후 다른 사람들과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거나 밖을 돌아다니게 되는데 호스텔로 돌아오면 날씨가 더워져 주로 실내에만 있었다.호스텔의 단점이라면 남녀가 같이 사용하는 화장실이었다. 시설은 깨끗하고 공간도 넓었는데 화장실은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 그것만 제외하면 여러모로 괜찮은 숙소였다. 아르마스 광장까지도 익숙해지면 그리 멀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