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Posts
85 posts덕수궁 돈덕전의 모던라이트: 대한제국 황실조명을 통해 본 고종
덕수궁에 들어가면 입구에서 13시 방향 끝에 돈덕전이 있습니다. 이 돈덕전은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3년 전인가 수백억 원을 들여서 복원을 했습니다. 조선의 영빈관이었던 돈덕전을 복원하다 이걸 왜 복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경복궁도 덕수궁도 국가유산청이 엄청난 예산을 들여서 고궁 복원을 꾸준히 지속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관광 자원이 그렇게 풍족한 나라가 아니다 보니 이런 고궁의 역할을 더 키우려나 봅니다. 다만 복원을 해도 경복궁은 눈요기가 많은 건 아닙니다. 복사 붙이기 같은 전각들의 연속된 배치라서 좀 보다 보면 지루하더라고요. 돈덕전은 다릅니다. 이 건물은 고종이 영빈관으로 활용하던 공간으로 서양 대사관이나 귀빈들을 모시고 수시로 파티를 열고 행사를 했던 서양식 건물입니다. 그러나 소실되었다가 다시 복원해 놓았습니다. 외형은 정동길에 있던 중명전과 비슷한 서양식 건물인데 더 크고 웅장합니다. 돈덕전 개방 초기에 가봤다가 실망하고 다시는 안 갔습니다. 실망한 이유는 그냥 2층 짜리 건물일 뿐이지 이 건물이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애초부터 만드는 것 자체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외형은 좋습니다. 다만 안을 채운 콘텐츠가 너무 단순하더라고요. 당시 부산 엑스포 유치한다고 온통 부산 엑스포 홍보 영상만 가득 틀어 놓았습니다. 뭐든 만들면 그 안에 뭘 채울지 고민을 하고 운영해야 하는데 너무 정부 정책 홍보 장소로 활용하는 모습이 보기 안 좋더라고요. 고궁에 왜 정부 홍보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안 갔습니다. 지난 눈 내리던 1월 초에 덕수궁 갔다가 날이 추워서 몸 녹이러 들어갔다가 좋은 전시회를 봤습니다. 모던라이트: 대한제국 황실조명 2025년 3월 3일까지 전시 2024년 11월 27일부터 2025년 3월 3일까지 매주 월요일 빼고 화~일요일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돈덕전에서는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보빙사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봤습니다. 1883년 미국과 조약을 맺고 교류를 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미국 사신이 방문을 한 후 그 답례로 홍영식, 유길준, 서광범 등의 사절단이 1883년 7월 인천항을 출발해서 9월 2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합니다. 이 보빙사들은 미국의 최신 문물과 기술을 직접 목격합니다. 이중에서 가장 놀란 것은 아무래도 전기였겠죠. 호롱불로 밤을 밝히던 시절인지라 해 떨어지면 대부분 잤습니다. 해 뜨면 일어나고요. 그런데 전기를 이용한 전등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에 동양 최초로 전기와 전등을 덕수궁에 도입한 나라가 조선입니다. 심지어 일본보다 빨랐다고 하죠. 초기 에디슨 탄소 필라멘트 전구입니다. 지금은 LED 램프지만 90년대까지는 전구가 참 많았습니다. 일본산 대나무를 태워서 얇게 만든 것이 탄소 필라멘트입니다. 그럼에도 1,000시간 정도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정도도 엄청난 발전이었습니다. 또한 직류 전류를 사용해서 전기를 멀리 보낼 수 없었죠. 그래서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기가 가까운데 있어야 했습니다. 반면 테슬라가 만든 교류는 멀리까지 전송해도 전압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에디슨이 만든 회사는 GE가 되었습니다. 반면 테슬라의 교류를 이용한 회사가 웨스팅하우스였습니다. 교류의 장점은 전압을 올려서 멀리까지 전송을 해도 전압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사용처 근처에서 높은 전압을 변전소에서 낮춰서 사용하고 있죠.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는 교류가 기본입니다. 그래야 바닷가나 저 멀리 지방에 있는 발전소의 전기를 서울 같은 대도시에 공급할 수 있으니까요. 교류와 직류의 전쟁을 다룬 2019년 영화가 로 한국의 정정화 촬영감독이 촬영을 맡았습니다. 이 영화 극장에서 봤는데 너무 재미있게 봤어요. 아이들에게 추천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전기 전쟁 이야기는 정말 전기처럼 짜릿해요. 에디슨은 조선 덕수궁에 전기를 공급하고 전등을 이용해서 야간에도 빛나는 덕수궁으로 만듭니다. 그 전구는 위와 같은 상들리에에 꽂혀 있었습니다. 조선이 그리고 대한제국이 전국에 전기를 공급하려고 했다면 교류를 사용하는 웨스팅하우스와 손을 잡았겠죠. 그러나 덕수궁만 사용할 생각이라서 에디슨과 손잡은 듯합니다. 왕정국가의 한계죠. 왕이 다 해 먹는 나라! 지금도 한국은 왕정국가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요. 그래서 백성과 국민이 사는 나라라고 하죠. 입구에는 빛을 이용한 만화경 같은 공간이 있는데 아이들이 참 좋아하네요. 상들리에와 당시 사용한 전구와 전등갓 등을 볼 수 있는데 지금 봐도 엄청나게 화려하네요. 왕실에서나 사용할 법한 화려함이 가득하네요. 동서양이 혼합된 정자 같은 정관헌에도 전기가 들어갔습니다. 1900년에는 엄청나게 화려한 상들리에가 가득했네요. 밤에도 활동하는 인간! 우리 인간은 시간을 더 벌였지만 한국은 이 전등과 전기의 힘으로 야근의 나라가 됩니다. 지금은 야근하고 싶어도 일거리가 줄어서 못하는 자연스럽게 되었네요. 왕실에서 사용한 다양한 서양식 인테리어도 소개되고 있습니다. 전기가 들어왔다고 모든 고궁 전각에 전기를 넣을 수는 없었습니다. 목재 건물이라서 전기 화재에 아주 취약했고요. 그래서 등피라는 석유등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전등갓을 통해서 직사광 또는 확산광을 비춥니다. 이 석유등은 난로 겸용 같네요. 엄청 큽니다. 조선시대가 너무 개화를 늦게해서 스스로 힘을 키우지 못한 것은 지금도 아쉽게 느껴지네요. 그러니 친일파 윤덕영, 이완용에 밀려서 스스로 사인을 하고 나라를 팔아 버렸죠. 물론 고종은 저항했지만 동학 농민을 외국 군대의 기관포로 학살한 것 또한 고종입니다. 따라서 고종을 영화나 드라마가 너무 미화시키는데 무능한 왕 중에 하나가 고종입니다. 아직도 기억나요. 1980년대만해도 분위기가 못난 왕하면 첫 번째가 고종이었는데 영화와 드라마가 고종을 비운의 왕 어쩌고 하면서 명성왕후까지 덩달아서 조선의 훌륭한 왕이자 왕비로 묘사했습니다. 그러다 요즘은 다시 재평가를 받고 있네요. 고종 그렇게 좋은 왕 아닙니다. 또 얼마나 돈을 많이 썼겠어요. 당시 조선은 그리고 지금도 광산이 많고 희귀 광물이 풍부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채광권을 여러 외국에 다 팔아먹었죠. 그 팔아먹은 돈으로 사치를 한 느낌도 납니다. 그러니 이런 화려한 장식품들이 있었겠죠. 물론 이 자체는 크게 비판할 것은 아니긴 합니다만 고종 자체는 무능함이 절실하게 느껴지네요. 고종도 잘한 행동도 많죠. 그러나 사람이 너무 유우부단하고 특히 민비라는 외척세력을 쳐내지 못한 것이 참 문제였고 그래서 무능하다는 겁니다. 마치 지금의 김건희 같은 인물이 민비였는데 이 민비가 당시 한국을 이끌 뛰어난 지식인이자 영특한 김옥균, 박영호 등을 배척합니다. 이 개화파들이 일으킨 혁명이 갑신정변이고 이를 고종이 받아들입니다. 이걸 지속했다면 조선은 또 다른 역사를 가진 나라가 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고종이 민비 앞에서 이 개혁 세력을 내치라는 말에 홀라당 넘어가서 갑신정변은 3일 만에 끝납니다. 얼마나 우유부단했는지 을사늑약을 할 때도 뜨드미지근한 태도를 보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친일파 탓을 하지만 한 나라의 왕 아닙니까. 자결을 하든 자신을 따르는 군사를 이끌고 저항이라도 해야죠. 그냥 친일파 대신들이 협박했다고 어! 나라 줄게 대신 왕이라는 호칭은 유지해줘 가 뭡니까? 그리고 김씨 외척 세력을 막기 위해서 민씨를 택했는데 민씨 외척 세력에 조선이 거덜이 납니다. 게다가 외교를 왕이 해야 하는데 민비가 했습니다. 민비의 말을 그대로 따르던 것이 또 고종이죠. 그런데 또 고종은 민비를 좋아하지 않고 후궁인 엄귀비를 사랑했다고 하죠. 영친왕의 어머니인 엄귀비가 조선의 국모였다면 조선은 또 달랐을 겁니다. 봉건국가와 근대국가가 혼재되었던 조선 말기 모습을 그린 그림도 있네요. 보면서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이런 화려한 전등을 만들 돈이 있으면 자주 국방을 일으켜서 군사를 키워서 최소 한 나라와 대결할 정도는 될 군대만 만들어도 일본이 치려고 하면 러시아와 손잡고 일본군을 막고 러시아 군대가 진격하면 청나라와 손을 잡고 막던지 외교 줄타기를 해야 하는데 민비가 구식, 신식군대 차별이나 하고 에효. 나라 꼬라지가 지금과 참 비슷하다고 느껴져서 보면서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더라고요. 물론 이 전시회는 화려함을 전시하는 것이지 역사를 가르키지도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역사 덕후가 되어가는 제가 그냥 보여주는 대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네요. 그런 못난 왕임에도 또 왕이 독살을 당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한 나라의 왕이 죽자 조선 백성들이 나와서 슬퍼했다고 하죠. 아이들이 좋아하는 인터렉티브한 체험 공간도 있네요. 조선 왕실의 상징꽃인 오얏꽃 문양도 있네요. 이조 왕조의 상징꽃으로 자두의 꽃을 오얏꽃이라고 합니다. 창덕궁의 유리 등갓들도 엄청 화려하네요. 나라는 망하게는데 화려함이 천국 수준이네요. 돈덕전의 운영에 변화가 필요하다. 고종에 대한 비판의 글이 주가 되었는데 우리가 고종에 대한 생각을 좀 바꿔야 합니다. 자꾸 경성시대니 뭐니 하면서 근대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와 영화를 만들면서 레트로 어쩌고 하는데 그 시대는 참으로 부끄러운 시대였다는 건 인지했으면 합니다. 또한 고종에 대한 미화도 그만했으면 하고요. 너무 위대한 왕으로 모시는 느낌이라서 부러 많이 담았습니다. 돈덕전은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지하에 당시 벽돌과 터가 보이네요. 바닥 유리로 만들어서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2층에는 근대화 여정을 담은 전시회가 있는데 이런 전시회도 보면 고종의 실책 같은 건 안 담더라고요. 뭐 다 그렇죠. 숨길 역사는 가리고 숨기고 우리가 잘한 것만 담습니다. 복도는 당시 인테리어로 만든 듯 합니다. 벽에는 해리포터의 사진처럼 움직이는 사진이 있습니다. 디스플레이인데 유의미한 분들이 많네요. '호머 헐버트'는 한글에 띄어쓰기를 도입한 분입니다. 당시 한글은 한문처럼 띄어쓰기가 없어서 무슨 뜻인지 모를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에 영어처럼 띄어쓰기를 하면 어떻겠냐고 조언을 하고 조선어학회와 주시경 선생은 이를 받아들여서 띄어쓰기를 도입합니다. 이에 언어 전달력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띄어쓰기가 좀 복잡해야죠. 그래서 항상 띄어쓰기 때문에 맞춤법 지적을 많이 받습니다. 그리고 도서관 같은 공간이 있는데 이 공간은 초기와 달리 대충 운영하네요. 도서관이라고 하기에는 책도 많지 않고 무엇보다 누가 이런데까지 와서 책을 읽겠습니까? 많은 관공서나 전시관 또는 박물관을 보면 공간을 채우지 못하면 이상하게 도서관으로 만들어 놓더라고요. 아니 누가 책 읽으러 박물관을 가며 전시회를 가요. 물론 관련책이 많은 도서관이라면 또 다를 겁니다. 그러나 여기는 책이 없습니다. 거의 없습니다. 저 빈 책장 보세요. 뭐하자는 공간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생각 없이 공간을 만들고 운영하는 느낌이네요. 정권이 바뀌고 국가유산청장이 바뀌면 여기도 여론이나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서 좀 더 활용가치가 높은 공간으로 만들었으면 하네요. 하다 못해 사진 찍는 거 좋아했다던 고종이나 대한제국 사진전이라도 하던가요. 특히 에서 박제한 친일파가 서 있는 사진을 크게 프린팅 해서 누구나 쉽게 알 수 있게 해 놓으면 얼마나 좋아요. 평일이라도 그렇지 찾은 사람도 많지 않네요. 그나마 초기에는 인스타각이라고 베란다에서 줄 서서 사진 찍던 것도 이제는 안전상 문제로 베란다는 폐쇄했습니다. 여러모로 아쉬운 공간 운영이네요. 다만 1층 전시회는 그럼에도 참신한 전시회였네요. 한국에 전기가 들어온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동시에 무능한 고종까지 떠올리게 하네요.

서울 여행 덕수궁 전시 돈덕전 국립현대미술관 궁궐 구경 볼거리
서울 여행 덕수궁 전시 돈덕전 석조전 국립현대미술관 궁궐 구경 서울 도심 한복판에는 궁궐들이 많이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이 중에서 시청역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덕수궁은 돈덕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는 전시가 있어서 지금과 같은 겨울에 찾아도 볼거리가 꽤 많더라고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 서울 궁궐 하면 생각나는 곳과는 약간 떨어져 있고 경복궁에 비하면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볼거리도 많고 지하철을 이용해서도 쉽게 찾아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럼 어떤 것을 구경할 수 있었는지 볼거리 살펴보도록 할게요. 1. 덕수궁 덕수궁은 서울에서 겨울 여행을 즐기기에 좋은 궁.......

서울 데이트 코스 추천,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기며 산책하기 좋은 궁궐 ::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 창덕궁
눈 내리는 겨울, 궁궐에 방문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평소와는 달리 눈이 쌓인 고궁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여유롭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있는데요. 겨울 풍경을 눈에 담으며 조용하게 산책하기 좋은 서울 궁궐을 소개해 드립니다. 매월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는 무료 입장이 가능하니 참고해 주세요! ⭐추천 장소⭐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 창덕궁 1. 경복궁 ◇ 운영시간 · (11월~2월) 월, 수~일요일 09:00~17:00 (입장마감 16:00) · (3월~5월, 9월~10월) 월, 수~일요일 09:00~18:00 (입장마감 17:00) · (6월~8월) 월, 수~일요일 09:00~18:30 (입장마감 17:30) ※ 매주 화요일 정기휴무 ◇ 인근 주차장 이용 경복궁은 조선시대.......
설경 맛집 덕수궁의 눈 내리는 풍경
눈 내리는 풍경은 도시에서는 그렇게 아름답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튀기면 다 맛있고 모든 풍경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다 아름답습니다. 정동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덕수궁 설경입니다. 하얀 눈을 뒤집어쓴 고궁의 전각들이 참 아름답습니다. 이런 지붕이 있는 건물 중에 한옥 지붕이 참 예쁩니다. 반면 덕수궁 뒤에 있는 빌딩이나 현대 건축물은 볼품없습니다. 그리고 고궁이 예쁜 이유는 오래된 나무들이 참 많아요. 특히 소나무가 많아서 겨울에도 푸르게 빛이 납니다. 하얀 눈을 뒤집어쓴 전나무 소나무 참 보기 좋아요. 다만 너무 내리면 나무가 눈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집니다. 덕수궁은 입장료가 1천원으로 저렴합니다. 모바일 교통카드로도 입장 가능해서 아주 편리하게 입장이 가능합니다. 덕수궁 입장 후에 바로 오른쪽으로 가면 연못이 있어요. 둥근 호안의 연못인데 가운데 인공섬도 있습니다. 창경궁 춘당지도 그렇고 고궁에는 가운데 인공섬들이 참 많아요. 다 한국식 정원이죠. 눈이 많이 내린 날은 노출을 1스톱 올려놓고 촬영하는 게 좋아요. AI 시대에도 노출시스템은 평균값을 찾아가는 구닥다리 노출계라서 우리가 적응해야 해요. 하얀색이 많다 보니 그에 맞게 노출을 맞추면 얼마나 좋아요. 카메라는 멍청해서 그냥 평균적인 피사체겠지 하고 자기가 강제로 노출을 맞춰요. 그래서 검은색이 가득하거나 하얀색이 가득한 사진은 적정 노출로 찍으면 회색으로 담겨요. 뭐 저 같은 경우는 RAW 파일로 찍고 후보정에서 조절해요. 어차피 촬영한 사진 바로 SNS에 올리지 않으니까요. 그럴 거면 그냥 스마트폰으로 찍고 말죠. 중화전입니다. 2층 짜리인데 화재로 전소되고 다시 만들 때 1층으로 만듭니다. 여기 덕수궁은 고종이 애용하던 궁으로 예전 이름은 경운궁입니다. 외국인들이 경복궁을 많이 가는데 거긴 너무 커요. 다 돌아보기 쉽지 않죠. 여기 덕수궁은 많이 쪼개지고 사라져서 작아졌습니다. 작지만 볼 거리는 많아요. 처마 밑에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재미가 고궁의 재미죠. 눈 내릴 때는 고궁 가보세요. 아주 좋아요. 다른 계절에는 몰랐는데 정관헌 근처에 소나무가 엄청 많네요. 눈 내리는 사진 잘 찍는 방법 중 하나가 셔터스피드입니다. 위 사진은 셔터스피드가 1/60초로 눈이 찍찍 선으로 그은 것처럼 나옵니다. 눈이 멈춘듯한 사진은 최소 1/250초 이상으로 올려야 눈이 멈춘 사진으로 담겨요. 배경은 어두운 계열이어야 하얀 눈이 잘 보입니다. 그러나 함박눈이 아니면 눈송이가 크게 담기지 않아요. 이럴 때는 플래시를 팡하고 강제 발광 시키면 이렇게 카메라 앞을 지나는 눈송이가 플래시 빛을 맞고 크게 담깁니다. 풀프 미러리스는 내장 플래시가 없지만 크롭 미러리스는 대부분 내장 플래시가 있어요. 이걸 이용해 보세요. 2층 전각인 석어당은 조선 최고 못난 왕인 선조가 임진왜란 당시 빤스런을 했다가 돌아와보니 경복궁이 불타서 사라졌니다. 이에 덕수궁에서 머물렀는데 그 덕수궁 전각 중에 석어당에서 주로 머물렀습니다. 가장 눈여겨봐야 할 전각입니다. 2층 목조 건물이자 단청이 없습니다. 단청이 없는 전각은 사무 공간으로 보시면 됩니다. 여기서 선조가 죽은 건물이기도 합니다. 선조는 참 못난 왕으로 역사책을 읽다 보면 인조와 선조가 참 못나고 못난 왕으로 기록됩니다. 광해군이 인조반정이라는 쿠데타로 끌려 와서 인목대비 앞에 엎드렸던 곳이기도 합니다. 인목대비는 선조의 마지막 중전인데 이 인목대비의 아들인 영창대군을 광해군이 죽입니다. 직접적으로 제거한 건 아니고 아랫것들을 시켜서 죽입니다. 이유는 왕위 계승 때문이죠. 선조가 광해군을 그렇게 싫어 했습니다. 정실부인 사이에서 낳은 자식도 아니고 결정적으로 시기심과 질투심이 강했던 선조는 임진왜란 당시 자신 보다 광해군을 더 따르는 백성의 모습에 뻑이 쳤을 겁니다. 그러다 인목대비라는 젊은 중전을 들이고 영창대군이 태어나자 우쭈쭈하는 도를 넘어섰습니다. 세자 책봉하고 왕의 계승 서열 1위인 자신을 거들떠도 안 보고 영창대군만 애지중지하니 광해군이 화가 났습니다. 그러다 선조가 죽자 바로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폐위시킵니다. 선조가 죽은 전각인 석어당은 인목대비가 머무는 전각이 됩니다. 어떻게 보면 조선시대 가장 어두운 역사를 지닌 시기가 참 못난 왕이 연달아 나오면서 점점 국력이 쇠하게 됩니다. 정관헌입니다. 동서양의 건축 양식이 섞여 있는데 러시아 건축가 사비친이 만든 정자입니다. 여기서 차를 마시고 외부 손님과 차를 마셨다고 합니다. 고종은 커피를 좋아했다고 하죠. 그런데 여기서 커피를 마셨다는 소리가 많은데 확인된 바는 없다고 해요. 그럼에도 여기서 커피를 마시고 대한민국 최초의 커피숍이라고 알려집니다. 한 때 여기를 개방했었는데 요즘은 막아 놓았어요. 행사 기간에만 개방하는 듯 하네요. 정관헌 뒤에는 예쁜 흙길이 있습니다. 산새소리가 엄청 들리더라고요. 고궁이 이래서 좋아요. 도심 한 가운데서 자연을 가득 느낄 수 있어서요. 경복궁은 이런 게 없어요. 코로나 시국에 오픈한 돈덕정입니다. 이 건물도 사비친이 설계했다는 소리가 있네요. 덕수궁에서 각종 연회를 하던 공간으로 활용했는데 여기도 덕수궁 화재 때 사라졌던 곳입니다. 그러다 이걸 다시 복원해 놓았습니다. 지금 가보니 전시 휴게 공간으로 활용하던데 개방 초창기 때의 활력은 사라졌네요. 좋은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네요. 2층에는 휴게공간과 작은 도서실 같은 공간이 있는데 전체적으로 큰 계획을 가지고 만든 곳이 아니다 보니 부실한 콘텐츠가 좀 아쉽긴 합니다. 그래도 덕수궁의 위용을 살짝 느낄 수 있네요. 한 때 인스타그램 성지로 유명했는데 발코니로 못 나가게 다 막아 놓았습니다. 석조전도 덕수궁만의 매력이죠. 조선이 나름 개화를 하려고 노력한 흔적인데 이거 짓느라고 돈 엄청 썼어요. 덕수궁에서 한 시간 이상 머물렀는데 참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