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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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posts민주주의 온기가 가득했던 노무현 시민센터
온실 속에 있을 때는 내가 온실에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온실에서 나와서 혹독한 추위를 경험하면 아! 그때 내가 있었던 곳이 온실이었구나를 깨닫게 되죠. 전 후회를 잘 안 합니다. 어차피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딱 한 분에 대해서는 좀 후회를 합니다. 물론 저도 변명거리는 있습니다. 전 세상이 앞으로 전진하는 줄 알았습니다. 경제발전을 넘어서 민주주의까지 완성한 거의 유일한 나라인 한국이 미국이나 유럽의 국가처럼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가 될 줄 알았죠. 또한 당시는 남북통일 모드도 가동 중이라서 한민족은 앞으로 날아오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좀 심하게 비판한 적도 있긴 합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그때가 대한민국 최고의 태평성대였구나를 깨닫게 되네요. 한 20대 청년이 물어봅니다. 언제가 가장 좋았었냐고. 바로 대답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이라고요. 경제적으로는 이명박 정권이 더 낫긴 했습니다. 사회 인프라의 대대적인 변화는 2010년 초반에 많이 실현되었고 저도 그때 나라가 부강 해졌구나를 느꼈으니까요. 창덕궁 돌담길 옆 노무현 시민센터 창덕궁 돌담길의 원서동에는 노무현 시민센터가 있습니다. 여기 원래 불교 박물관인가 미술관인가 있던 곳인데 여기를 매입하더니 이렇게 거대한 건물을 지은 것이 한 3년 전입니다. 언제 한번 간다 간다 하고 시간이 없어서 지나치기만 했네요. 그러다 시간이 나서 들어가 봤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상징색인 노란색의 바람개비가 가득 보이네요. 건물은 독특한 외형입니다. 입구에는 노무현 재단 정기 후원 가입 부스가 있네요. 많은 분들이 정기 후원을 하고 있어요. 전 노무현 정신을 경험해 봤잖아요. 시민들의 깨어 있는 파워가 세상을 바꾼다는 걸 직접 목격했고요. 물론 깨시민이라고 조롱하는 인간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살아보니 그런 나와 다른 정치적 지향점을 가진 사람들과 토론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걸 요즘 깨달았습니다. 그나마 나이 젊은 사람들은 대화를 통해서 서로 양보하고 생각을 수정할 이유도 여유도 있었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아무 생각이 없거나 젊은 꼰대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내린 생각의 결론은 나와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과는 토론하지 않는다입니다.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닌데 세상이 그렇게 됐습니다. 이미 결론은 다 내리고 거기에 맞춰서 생각을 하는 인간들 투성이거든요. 따라서 그런 것에 에너지 쏟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생각이 고정되면 항상 썩기 마련입니다. 고인물이 달리 냄새가 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전 진보 깊숙이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그냥 주변인으로 머물면서 진보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그러나 노무현은 다릅니다. 노무현은 진보의 상징 인물이 되었지만 지금은 그냥 노무현은 노무현입니다. 한 할아버지가 복도 끝에 앉아 계셨습니다. 누구나 들어와서 몸을 녹이고 생각을 확장하고 나갈 수 있습니다. 노무현은 행동하는 시민 정신을 참 많이 강조했고 실제로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만들어지고 자기 목소리를 냈던 시기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이 중진국의 함정에 빠졌을 때 빠르게 1인당 GDP를 증가시킨 정권이 노무현 정권으로 2003~2008년 사이에 1인당 GDP 증가율이 무려 10,297달러였습니다. 이전 정부보다 81%나 증가했죠. 경제대통령이라고 했던 이명박 정부가 7.2%인 1,673달러, 수요일마다 드라마 보려고 관저에서 안 나왔던 박근혜 정부가 오히려 2,837달러로 11,5% 성장을 했습니다. 제가 서두에 말했지만 한국이 성장하는 느낌을 확실하게 줬던 시기가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이유가 경제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가 1인당 GDP 증가액이 4,746달러로 59%, 이은 노무현 정부가 81%로 두 정부가 1인당 GDP를 무려 15,000달러 올려놓았습니다. 아직도 기억나요. 이런 노무현 정권에게 경제를 포기한 경포 대통령이라고 손가락질했던 정당이 당시 한나라당이었습니다. 지금은 내란 수괴 방탄을 자처하는 국민의 힘의 전신이죠. 제가 화가 나는 건 한나라당은 부끄러움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박근혜 당 대표가 천막당사 쇼를 하고 무릎 사죄쇼도 했습니다. 그런데 국민의 힘은 쇼도 안 합니다. 제대로 된 사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한남동 내란 수괴 관저 앞에서 성명문이나 44명이 모여서 낭독하고 있어요. 그러면 그런 신념이면 윤 수괴가 밥 먹고 가라고 했으면 밥을 먹죠. 그건 또 아니다 싶은지 안 먹고 나오더라고요. 내 인생 최고의 짜릿했던 대선인 2002년 대선 1층에는 대형 스크린에 영상이 틀어져 있는데 한참 봤습니다. 그리고 2002년 연말에 있었던 대선 내용이 나오네요. 지금은 박근혜 탄핵 때문에 대선이 봄에 개최되지만 원래는 겨울이었습니다. 12월 중순에 대선 투표를 했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있던 그해는 정말 행복한 한 해였습니다. 2002년 연말에 김대중 정권 다음을 잡을 대선 후보로 이회창과 노무현이 나왔습니다. 여름만 해도 이회창의 압승이 예상되었습니다. 지금은 더 하지만 당시도 우익은 콘크리트 지지층이 30%는 깔고 가기에 조금만 잘하면 쉽게 대선을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김영삼이라는 경제를 박살 낸 신한국당 출신 대통령이 나왔음에도 김대중 대통령이 김종필과 합당하고 별 쇼를 다 해서 겨우 겨우 당선이 됩니다. 아니 나라 경제 박살 낸 정권이 이름 바꾼다고 그걸 또 지지하는 국민들이 있는 나라입니다. 전 대한민국 국민 중에 아직도 조선시대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봉건주의 국가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기본 30%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은 근본적으로 우익이 장악하는 시기가 길다고 느껴져요. 이는 갈수록 더 심해질 겁니다. 젊은 우익 세력이 커가고 있으니까요. 2002년 대선도 그랬습니다. 김대중 정부가 그렇게 심한 실정을 한 것도 아니지만 이회창 후보가 대쪽 이미지로 승승장구했습니다. 이에 민주당은 풀뿌리 대선 경선을 시작합니다. 전국을 돌면서 당원들의 투표를 통해서 노무현이라는 당시에는 가능성이 낮은 후보가 민주당 후보로 나옵니다. 그러나 힘에 부쳤고 이에 정몽준과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정몽준이 대선 전날 손을 뿌리칩니다. 이때 망했다고 생각했죠. 그렇데 대선 투표 당일날은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아침나절은 노무현 후보가 밀렸습니다. 저 날 생각나요. 친구도 저도 주변 사람에게 투표하라고 네이트와 ms 메신저로 문자로 투표 독려 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그리고 점심 먹고 대역전이 일어납니다. 방송차량들이 이회창 후보 자택 앞에 모여 있다가 오후가 들어서 분위기가 바뀌자 서서히 노무현 후보 자택 앞으로 하나둘 모이기 시작합니다. 당선된 후에 대규모 호위 차량과 함께 이동하는 모습까지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1층에는 이렇게 쉬어갈 수 있는 휴게 공간이 있습니다. 지하로 가는 계단이 있어서 내려가 봤습니다. 지하층은 강연장과 세미나실이 있습니다. 다목적홀로 다양한 강의를 합니다. 노무현 시민센터가 뭐라고 정의하자고 하면 노무현 정신을 느낀다는 거창한 걸 지우면 그냥 인문학 공간이라고 느껴집니다. 우리가 정신적인 빈곤을 느끼는 이유가 우리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이 없거나 그 기능이 저하되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그런 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강하게 나갈 때는 강하게 나가다가도 반성할 일이 있으면 반성을 합니다. 서민들과 시민들의 대통령이었죠. 우익들도 인정하는 것이 대통령이라는 권위를 허문 최초의 대통령이라고 하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에게 감화되었다고 하잖아요. 지하 2층인데 소원 트리가 있네요. 시설이 아주 아주 좋네요. 이번엔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카페 공간에 올라가 봤습니다. 여기는 '커피 사는 세상'입니다. 잠시 들린 것이라서 커피는 주문을 안 했습니다. 커피도 팔지만 저같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따뜻한 물도 준비되어 있고 차도 마실 수 있습니다. 물론 무료입니다. 카페가 2층과 3층에 있는데 공부하는 분들도 많네요. 카메라로 촬영하다가 눈치가 보여서 좀 찍다가 스마트폰으로 전환했습니다. 3층 밖에는 발코니가 있는데 바람개비 마당이 보이네요. 노무현을 너무 신성시한다는 비판을 하는 분들도 있지만 전 큰 어른 같은 분이라서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역대 대통령 중에 가장 좋았습니다. 뭐든 가치는 상대적이죠. 이명박, 박근혜, 특히 윤석열을 겪어 보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통령이기도 합니다. 당시는 왜 내가 화를 냈는지 왜 못마땅해했는지 지금은 좀 후회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전 이 나라가 앞으로 나아가는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역사는 반복될 뿐입니다. 발코니에서 보니 창덕궁 담장과 그 너머도 보이고 허름한 집도 보이네요. 저 멀리 남산 타워도 보이네요. 이 원서동은 보고 갈 곳이 참 많습니다. 역사적인 공간도 많고요. 불편한 점도 있죠. 주차와 그 흔한 편의점도 약국도 저 인사동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그러나 풍광과 역사와 골목과 이런 공간이 있어서 바람 쐬고 싶을 때는 그냥 종로로 나옵니다. 서울에서 가장 서울 같지 않은 공간들이 가득합니다. 드라마 촬영 장소로도 많이 활용되는 동네이기도 하죠. 관광객들은 이런 곳을 보고 서울이 참 전통적인 공간이 많다고 느끼지만 여기만 이렇습니다. 그나저나 이 돌담 길의 주차장은 좀 없애면 안 될까요? 돌담길 걷는 재미가 없어요. 대형 지하 주차장 좀 만들어서 넣거나 주차 빌딩을 만들던가요. 그리고 여기는 영화 에서 정해인이 김고은이 탄 차를 따라가던 길의 마지막이 여기입니다. 영화 자체는 크게 잘 만든 영화는 아닌데 이상하게 제 모습이 투영되었는지 한동한 영화앓이를 했어요. 사람이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면 같은 것도 달리 보이게 되고 내 것으로 보이게 되잖아요. 그런데 정해인 같은 청춘이 지금도 참 많을 겁니다. 이 원서동은 한옥과 연립주택이 가득합니다. 고도제한이 있어서 아파트 못 지어요. 앞으로도 안 지었으면 해요. 거대한 북카페 같은 노무현 시민센터 한 나라의 지도자가 다독가이거나 애독가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책을 즐겨 읽는 사람치고 근원적으로 악한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책은 99%가 좋은 사람이 되라고 말하지 폭탄제조법, 사람 속이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은 없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다독가였죠. 반면 이명박, 박근혜, 특히 윤석열 수괴는 뭔 책을 읽었다는 소리를 못 들어 봤습니다. 노무현 재단에서 추천하는 책들이 가득 꽂혀 있네요. 책이 빈 걸 보면 누가 들고 가서 읽고 있나 봅니다. 계단을 내려가면 더 거대한 책장이 나옵니다. 책 꺼내서 읽을 수 있네요. 이 공간이 참 좋네요. 도서검색대에서 책을 검색하고 다 읽으면 여기에 놓을 수 있네요. 사람들의 흔적들이 참 많네요. 노무현을 기리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참 많습니다. 이분들이 참이다 옳다 선이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상대적이니까요. 다만 노무현을 기리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포용적입니다. 부끄러워할 줄 압니다.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모든 것들을 경멸합니다. 부끄러움이 사라진 세상이 전 참 견디기 힘드네요. 지금 보세요. 내란 일으키고 잘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보세요. 정말 경멸하고 혐오합니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이 책은 진보 진영에서 필독서가 되었죠. 이 현상은 전 아들 부시 대통령에게 가난한 켄터키 사람들이 지지하는 걸 보면서 의아해했던 부분이죠.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자 정당인 '국민의 힘'을 지지하는 사람들 다수가 가난한 노인 분들이 참 많아요. 부자들이야 이해가 가죠. 자기 이익에 부합하니까요. 이 책과 함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가 이 궁금증을 풀어줍니다. 다 프레임 전쟁이죠. 1층에는 굿즈 판매대가 있습니다. 시간 없어서 못 들렸는데 다음에는 저 노란 우산 하나 사야겠어요. 너무 예쁘네요. 요즘 노무현 정권에서 만든 2030 정책인가에 사람들이 놀라죠. 근미래의 한국에 대한 계획을 세운 것인데 앞날을 보는 뛰어난 보고서인가 해서 놀라워하고 있어요. 노무현 정권 때 저출산 계획을 만들었으니까요. 다양한 책 추천도 참 잘 받았습니다. 눈 오는 날이었는데 참 온기를 많이 느끼고 왔네요.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탄핵을 3번이나 하는군요 노무현, 박근혜,윤석열 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습니다 이번엔 국힘당도 참석해서 투표를 했는데요 https://naver.me/xP8KjZTF 계엄의 여파가 결국 탄핵까지 오는군요 윤석열 대통령을 취임 할때부터 말이 많았죠 김건희 리스크를 안고 시작한 대통령이었죠 워낙 말들이 많으니... 결국 탄핵안이 가결되네요 이제 헌법재판소에서 판결을 내야 할텐데 제판관리 부족하죠? 어떻게 해결이 될지.... 지금 광화문과 여의도는 난리일테지만... 아마도... 용산은 아무생각 없을 듯.... 계엄에서 탄핵까지.... 우리나라는 어디로 가는건가요?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죽음을 맞이한 포드극장 국가유적지(Ford's Theatre National Historic Site)
반응형 물론 사람들마다 평가가 다를 수는 있지만,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국가의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과 관련된 곳을 '넓은 의미의 국립공원'으로 지정을 해서 관리하는 미국 국립공원청(National Park Service)의 기준으로 본다면, 최후를 맞이한 이 곳을 포함해서 출생과 성장과정 등에 직접적으로 관련있는 장소가 5곳이나 각각 국가의 유적지나 기념물로 연방정부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 남북전쟁 당시의 미국 제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이라고 할 수 있다. 워싱턴DC의 백악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현대식 건물들 사이에서 1800년대의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포드 극장(Ford's Theatre)이 있다. 남북전쟁이 끝난지 5일 후인 1865년 4월 14일 금요일 저녁에 여기서 연극을 관람하던 링컨 대통령이, 암살범 존 윌크스 부스(John Wilkes Booth)가 쏜 총을 맞고 다음 날 아침에 사망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옆 건물에 만들어진 입구로 들어가면, 커다란 링컨의 사진과 함께 이 극장을 옛날 모습으로 복원해서 박물관으로 운영하는데 도움을 준 기부자들의 명단이 보이는데, 가운데 줄에 'SAMSUNG'이라고 적혀있는 것이 눈에 띈다. 구경은 무료지만 30분 간격으로 입장 인원수를 제한하기 때문에,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박스오피스에서 표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 포드시어터 국가유적지(Ford's Theatre National Historic Site)라 적힌 문을 통해 극장 건물로 들어가는데, 현재 건물은 연방정부의 소유지만 운영은 Ford's Theatre Society라는 독립적인 재단이 맡고 있으며, 실제로 연극 공연을 하는 극장으로도 계속 운영이 되고 있다. 안내를 따라 걸어가면 계단을 내려가서 먼저 극장 지하에 만들어진 박물관을 구경하게 되는데, 돔을 건설 중인 국회의사당의 모형을 비롯해서, 링컨이 대통령으로 재임할 당시의 워싱턴 상황과 남북전쟁으로 인한 미국 사회의 분열 등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 역사공부를 너무 많이 했더니 대부분 본 듯한 내용이라서, 대충 흘겨보고는 빨리 공연장으로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큰 실수였다! 왜냐하면 이 올라가는 계단 옆의 공간에 암살범이 실제 링컨을 저격할 때 사용했던 데린저(Deringer) 단발권총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놓쳤기 때문이다. (암살에 사용된 무기를 전시해놓는 것에 대해 반대의견도 있다고 하며, 여기를 클릭해서 극장 홈페이지에서 사진을 보실 수 있음) 다시 지상층으로 올라오면 약간의 경사가 있는 긴 복도를 지나게 되는데, 양쪽 벽면에 링컨과 부스의 당일 행적이 시간별로 각각 그려져 있고, 두 명의 타임라인은 이제 들어갈 극장에서 밤 10시 15분경에 겹치게 된다. 안으로 들어서면서 극장이 예상보다 훨씬 커서 좀 놀랐던 기억이 난다. 국립공원청 직원이 무대에 올라가서 암살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는데, 2층에도 사람들이 있는 것이 보여서 우리도 바로 올라가보기로 했다. 레인저가 가리키고 있는 무대 옆 위쪽의 Presidential Box에서 링컨은 아내 및 뉴욕주 상원의원의 딸과 약혼자인 육군 소령과 함께 이라는 희극을 관람하고 있었는데, 당시 남부 출신의 유명한 연극배우로 극장 주인과도 잘 알고 지냈던 존 부스가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박스석 문을 열고 들어섰다. (입구에 경찰관 한 명만 배치가 되었는데, 그는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고 함) 부스는 제일 오른쪽 의자에 앉아있던 링컨의 뒷통수에 총을 발사해 치명상을 입히고, 육군 소령은 칼로 찌른 후에 무대로 뛰어내려서 "Sic semper tyrannis"를 외치고는 미리 극장 밖에 준비해 둔 말을 타고 도주했다 한다. 그가 외친 말은 위기주부가 살고 있는 버지니아(Virginia) 주의 모토로 아래의 예전 소개 포스팅을 클릭해서 보시면, 그 뜻과 함께 존 부스의 사진과 암살 순간을 그린 삽화 등을 보실 수 있다. 포드 극장 2층 객석의 뒤에 놓여진 커다란 링컨의 두상 조각의 설명을 아내가 자세히 보고 있다. 이게 국가유적지 관람의 끝이 아니고, 링컨이 총을 맞은 이후의 이야기는 이제 극장을 나가서 바로 길 건너편으로 이동해서 계속 이어진다. 극장 안에 있던 의사와 군인들에 의해서 들려져 나온 링컨의 상태는 도저히 백악관까지 갈 수 없는 중상이었기 때문에, 바로 맞은편에 당시 하숙집으로 운영되던 저 살구색의 피터슨하우스(Petersen House)로 운반이 되었다. 정면 벽에는 대통령 문양과 함께 에이브러햄 링컨이 총을 맞은 다음날 아침에 이 집에서 사망했다는 것과 1896년에 연방정부가 여기를 사들였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데, 미국이 역사적 장소의 보존을 위해 최초로 개인 소유의 주택을 구매한 것이라고 한다. 입구에 서있던 레인저에게 표를 보여주고 들어가면 먼저 거실이 나오는데, 지혜가 벽난로 위에 놓여진 링컨이 들것에 실려서 이 집으로 운반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을 보고 있다. 그리고 연결된 다른 방을 거쳐서 계단 아래의 제일 안쪽 방으로 들어가면, 바로 이 방에서 링컨 대통령은 1865년 4월 14일 아침 7시 22분에 56세로 숨을 거두었다 한다. 실제 링컨이 누웠던 침대는 현재 시카고 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여기는 같은 디자인과 크기의 침대를 가져다 놓았는데, 침대가 너무 작아서 키가 큰 링컨을 대각선으로 눞여야만 했다고 한다. 임종 순간을 묘사한 그림과 직후의 방 사진, 그리고 링컨의 마지막 공식 사진이 함께 있는 설명판이다. 여기서 옆 건물과 연결된 통로를 지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가면 사망 이후의 이야기가 또 계속된다. 4층 애프터매스(Aftermath) 전시실에는 경로를 그린 두 개의 큰 지도가 차례로 나오는데, 첫번째는 링컨의 장례 운구 열차가 수도 워싱턴을 떠나서 고향인 일리노이(Illinois) 주의 스프링필드까지 이동했던 것을 보여주고, 두번째는 암살범 존 부스가 DC를 빠져 나와서 12일 후에 버지니아 주의 담배농장 창고에서 체포에 저항하다가 사살될 때까지의 도주경로를 보여주고 있다. 그 후 공범 8명이 군법재판소에 회부되어서, 그 중 4명이 암살사건 발생 약 3개월이 안되는 7월 7일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아랫층으로 내려가는 원형계단의 가운데 기둥 주위를 1층 바닥부터 여기 4층까지 모두 링컨과 관련된 15,000권의 서적으로 빼곡히 쌓아놓은 타워오브북스(Tower of Books)가 참 멋있었다. (갑자기 디즈니월드의 타워오브테러 놀이기구가 떠오름^^) 책으로 만든 '공든탑'을 밀어서 무너뜨리려는 아내의 위치에서 자세히 봤더니, 책의 앞뒤 표지만 진짜이고 가운데 부분은 모두 책두께에 맞춘 빈 플라스틱으로 만든 후에 접착제로 튼튼하게 서로 붙여놓은 것이었다. 3층 레거시(Legacy) 전시실은 미국과 전세계에서 그의 유산과 업적을 기리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왼편의 만화처럼 마블코믹스 멀티버스에서 캡틴아메리카, 스파이더맨과 함께 히어로로 등장한 것도 재미있었지만, 사진 가운데 벽면에 아주 관심을 끄는 전시물이 있었다. 한국 대표단이 포드 극장에 선물했다는 노무현 대통령이 쓴 링컨의 평전 책과 그 뒤의 호랑이가 그려진 접시를 설명과 함께 전시해 놓았다. 혹시 한자에 조예가 있으신 분은 호랑이 위에 씌여진 글이 무슨 뜻인지 댓글로 알려주시기를 바란다. 계속해서 원형계단을 따라 내려가는데 2층의 교육실은 문을 열지 않았고, 1층에는 기념품 가게가 자리잡고 있다. 그 벽면에는 이 가게가 특별히 삼성의 지원을 받은 사실에 감사한다는 작은 안내판이 붙어 있는 것도 특이해서, 마지막 사진으로 남기고는 링컨이 암살된 장소인 포드극장 국가유적지(Ford's Theatre National Historic Site) 구경을 마쳤다. 글의 맨 처음에 NPS에서 관리하는 링컨과 직접 관련된 장소가 5곳이라고 말씀을 드렸었는데, 지금 연재하고 있는 2차 대륙횡단 여행기에서 링컨이 출생한 장소가 역사공원으로 지정된 곳도 조만간 블로그에 소개될 예정이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경남 여행지 추천 김해 가볼만한곳 경상도 여행 드라이브 코스 봉하마을 노무현생가
1. 봉하마을 주소: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봉하로111번길 13-1 예전에는 경남 여행지 추천 장소로 김해 여행 몇 번 떠났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 잊어버리다시피 하고 찾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 진짜 오랜만에 김해를 들러보게 되었습니다 몇몇 경남 드라이브 코스 들이 있겠지만 제가 다녀온 곳은 딱 한 곳 봉하마을이었는데 가족들이 아직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찾아가 본다고 하여 김해를 가장 먼저 들리게 되었습니다 작은 시골 마을이 경상도 가볼만한곳 처럼 바뀌어버린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태어나서 살았던 고향이라고 해서 그를 추모하기 위한 사람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게 되었고 지금은 김해.......


![[웹툰단행본] 『통제구역관리부』 1권 후기 : 이상한 변칙과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는 공간에 대하여](https://img.zoomtrend.com/2026/06/09/1780996474-SE-5eda86fa-0d63-4afd-b8dd-b801879fed5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