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서울의 동작동 국립묘지, 정확한 명칭으로는 국립서울현충원과 비교되는 미국의 알링턴 내셔널 세메터리(Arlington National Cemetery)를, 여기 현충일에 해당하는 메모리얼데이(Memorial Day) 다음 일요일에 다녀왔다. 한국에서 국립묘지는 정치인들이 사진 찍히러 가는 곳이라는 선입견이 박혀서인지, 수도권에 20년 가까이 살았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는데, 여기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해보니... 나의 선입견이 잘못되었거나, 아니면 한국과 미국의 국립묘지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다르거나, 둘 중의 하나일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전 일찍부터 환영소(Welcome Center)를 통해 입장하기 위해 보안검색을 기다리는 많은 방문객인데, 빨간 셔츠를 맞춰입은 사람들은 수학여행을 온 학생과 인솔자들이다. 또 유럽에서 온 단체 여행객들도 많아서 이미 버스 주차장은 만차였고, 입구 도로변까지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웰컴센터 내부에는 이 곳의 설립역사와 규모 등에 대한 안내판들이 있는데 차차 설명을 드릴 예정이고, 중앙에 의장대 '나팔수'가 밀랍인형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세워진 모습이 작년에 방문했던 미육군 국립박물관의 전시를 떠올리게 했다.
포토맥 강을 사이에 두고 워싱턴DC의 링컨 기념관과 마주보고 있는 버지니아 주의 알링턴 국립묘지 전체 지도로, 북쪽 끝에 표시된 유명한 미해병대 전쟁기념비(Marine Corps War Memorial)부터 동남쪽의 펜타곤 메모리얼과 함께 소개했던 제일 아래 미공군 기념물(Air Force Memorial)까지의 거리가 약 3km나 된다. 묘지 왼편을 Joint Base Myer–Henderson Hall 군기지가 감싸고 있는데, 현재 미국 전역의 164개 국립묘지들 중에서 최대인 알링턴은 군대가 직접 관리하는 딱 2곳중의 하나이다. (다른 1곳은 워싱턴DC 안에 있고, 게티스버그 등 국립 공원에 포함된 14곳은 국립공원청이, 나머지 148곳은 보훈부가 관리함)
당연히 국립묘지 입장료는 없지만, 사진의 셔틀과 트램을 번갈아 타며 전체를 설명과 함께 둘러보는 투어는 유료로 운영이 되고 있는데, 일요일이라 그런지 이용객이 제법 있었다. 당연히 우리 부부는 단체 관람객들 무리에 슬쩍 휩쓸려 여기저기 설명을 주워들으며 그냥 걸었다~
원래 국립묘지의 정문으로 1932년에 반원형으로 건설된 건물은 리모델링을 거쳐서, 1997년에 여군 기념관(Military Women's Memorial)으로 별도 지정이 되었다. 내부에는 미군에서 여성의 활약과 그 역사 등이 소개되어 있다는데, 관심이 있으신 분은 둘러보셔도 좋을 듯 하다.
그리고 등장하는 끝없이 세워진 묘비들... 현재 400,000구 넘게 여기에 매장 또는 봉안되어 있고, 지금도 매년 평균 6,500건의 장례가 진행된단다. 멀리 언덕 위쪽의 묘비들이 크고 좋아 보이는 것은 옛날에는 계급별로 매장 구역이 달랐기 때문으로, 초기에는 흑인과 남부군도 별도로 나눴지만, 지금은 그런 모든 구별은 당연히 없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묘지가 있어도 사람의 동상은 딱 2개밖에 없다는데, 그 중의 하나인 Sir John Dill 5성 장군의 기마상이다. 그는 영국인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연합군 지휘를 위해 워싱턴에서 근무하다가 사망해서, 국립성당에서 성대한 장례식을 치른 후에 알링턴에 묻혔다고 한다.
최근에 여기 묻힌 사람 중에서는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2020년에 사망한 여성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의 묘비로, 육군에 복무했던 남편과 합장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RBG'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일생이 다큐멘터리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특히 참배객이 많은 것은 소녀들의 우상이었던 이유도 있지만, 가장 유명한 묘지의 가까이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바로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한 사람이라면 빠지지 않고 들리는, 1963년 11월 22일에 텍사스에서 암살당한 제35대 존 F.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 대통령 묘소이다. 참고로 여기 매장된 역대 미국 대통령은 JFK를 포함해 딱 2명 뿐인데, 다른 한 명은 제27대 윌리엄 태프트(William Howard Taft)로 여군 기념관 북쪽에 묘소가 있다. (언덕 위에 보이는 그리스 신전 스타일의 건물은 '알링턴 하우스'로 이 곳의 역사와 함께 별도 포스팅으로 소개할 예정)
중앙의 큰 석판 두 개에 JFK와 1994년에 합장된 그의 아내였던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Jacqueline Kennedy Onassis)의 이름이 적혀있고, 좌우의 작은 석판들은 1956년에 사산한 딸 Arabella와 1963년 8월에 태어나 이틀만에 죽은 아들 Patrick의 두 자녀를 함께 기리는 것이란다.
재클린의 아이디어로 급히 만들어져 암살 3일 후에 진행되었던 국장에서 그녀가 불을 붙였다는 '영원의 불꽃(Eternal Flame)'은 위치를 옮겨서 지금도 활활 타오르며 알링턴 국립묘지를 상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원래 무덤은 약간 위쪽의 언덕에 작게 만들어졌었는데, 전세계에 생중계가 되었던 그의 장례식 이후에 매일 수 만명의 참배객들이 다녀가는 바람에, 4년 후인 1967년에 현재의 넓은 장소로 이장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60년이 지난 지금도 매일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옛날에 알링턴을 포함한 미국의 국립묘지들은, 유족들이 고향에서 성대하게 장례를 치르고 묘소를 관리할 수 없는 경우에, 국가의 도움을 받기 위해 선택하는 장소로 여겨졌단다. 하지만 케네디 대통령이 여기 묻힌 이후로는 명예로운 장지로 인식이 바뀌었고, 매장이나 이장을 원하는 신청자가 폭증을 해서 현재까지도 그 영향이 이어지고 있다.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가 알링턴하우스를 구경한 후에 찾아온 곳은 추모극장(Momorial Amphitheater)인데, 여기 바로 서쪽에 있는 우주왕복선 챌린저와 컬럼비아 사고의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비를 예습을 해놓고는 까먹어서 방문하지 못했던게 아쉽다~
1920년에 만들어진 이 야외 원형극장은 알링턴 국립묘지의 주요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특히 동쪽 무대의 뒷편에 있는 '무명용사의 묘(Tomb of the Unknown Soldier)'에서 여름철에는 30분마다 보초병 교대식이 열리는 것을 보기 위해서 왔는데, 시계가 11시반이 넘어가고 있어서 급하게 건너편으로 걸어갔다.
다행히 가장 대표적인 장면인 장총을 든 두 명의 보초병을 좌우에 세워두고 지휘관이 가운데 서있는 모습을 계단과 난간을 가득 메운 사람들 어깨 너머로 잠깐 볼 수 있었다.
이 군인들은 국립묘지를 관리하는 포트마이어(Fort Myer)에 주둔한 3rd U.S. Infantry Regiment 소속으로, 그 부대는 흔히 '올드가드(Old Guard)'로 불린다. 그들 중에서도 여기 보초병으로 선발되는 것은 최고의 명예로 여겨지는데, 신체 조건이나 동작 테스트는 당연하고 보초를 서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을 듯한 국립묘지의 역사와 수 많은 묘소의 위치를 묻는 필기시험도 통과를 해야 한단다.
교대식이 다 끝나고 저렇게 혼자 남은 병사가 무명용사묘를 지키는데, 국립묘지가 방문객들을 받는 동안에는 한쪽에 가만히 서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좌우로 왔다갔다 한다. (문을 닫은 후에는 2시간마다 교대를 한다는데, 아마도 왼편에 만들어 놓은 초소 안에 그냥 서있을 것 같음)
모자 위에 가득찬 물컵을 올려놓아도 물 한방울 안 떨어질 듯이 부드러우면서도 절도있게 걷는 것을 좀 구경했다. 찾아보니까 21초간 정면을 응시한 후에 이동방향으로 틀어서 또 21초간 정지, 그리고 정확히 21걸음으로 반대방향으로 이동 후에 다시 정면으로 방향 전환을 계속 반복한다고 한다. 아마도 바지 주머니에 진동 타이머를 넣어둔 것이 아닐까? ㅎㅎ
유럽의 여러 왕궁 등에서 행해지는 화려한 근위병 교대식에 비해서는 아주 단촐한 볼거리였지만,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했다면 반드시 직접 봐야할 의미있고 엄숙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24시간 지키는 석관 아래에는 실제로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한국전의 유해 3구가 잠들어 있단다. (1984년에 베트남전 미확인 유해도 추가했었는데, 나중에 DNA 분석으로 신원이 밝혀져서 고향의 국립묘지로 이장되었다고 함)
이 정도로 구경을 마치고 돌아가는데, 수 많은 묘비들 너머로 강건너 DC의 워싱턴 기념비가 뾰족하게 솟아있는 것이 나무들 사이로 보였다. 가끔 외국 정상이 알링턴 국립묘지를 공식방문해서 무명용사묘 등에 헌화하는 사진은 본 듯 한데, 미국 정치인이 새해를 맞거나 새로 어떤 자리에 뽑혔다고 여기를 오는 지는 잘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나중에 혹시 한국에 오래 머무를 기회가 오게 된다면 동작동 국립묘지, 국립서울현충원도 한 번 방문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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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에 우리 동네에 있는 트럼프 골프장을 소개하면서, 그가 자랑스럽게 만들어 놓은 "The River of Blood" 동판이 붙어 있는 국기 게양대를 보여드린 적이 있다. 여기를 클릭해서 보실 수 있는 그 포스팅에서, 남북전쟁 당시에 강물을 피로 물들이는 그런 대규모 전투가 그의 골프클럽 바로 옆에서 벌어졌다는 것은 뻥이고, 실제로는 포토맥 강의 상류 11마일 떨어진 리스버그(Leesburg) 강가에서 벌어진 작은 전투가 부근에서 유일한 교전이라고 알려드렸었다. 마침 리스버그 프리미엄아울렛에 급히 환불을 하러 혼자 갈 일이 있는 김에, 현재 북버지니아 지역공원으로 관리되고 있는 그 전쟁터를 둘러보았다.
공원 간판이 나오며 진입로가 비포장으로 바뀌어서, 약간 망설이다가 조심해서 계속 안으로 운전해 들어갔다. 볼스블러프(Ball's Bluff)라는 이름의 '볼(Ball)'은 동그란 공을 말하는게 아니고, 초대 대통령 워싱턴의 이름을 딴 George Washington Ball의 성씨인데, 그는 워싱턴의 어머니 Mary Ball 집안의 후손이었단다.
넓은 비포장 주차장의 옆에는 봄~가을의 주말에만 진행되는 무료 가이드투어를 위한 만남의 장소까지 잘 만들어져 있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안내판들도 여러 개가 세워져 있는데, 지도를 겸해서 전투상황을 보여주는 것 하나만 아래에 보여 드린다.
남북전쟁이 발발한 1861년의 7월에 남북이 맞붙었던 첫번째 불런 전투(First Battle of Bull Run) 이후로, 북버지니아에서는 처음으로 다시 교전한 10월 21일의 여기 전투상황을 보여주는 지도이다. 리스버그에 주둔하고 있던 빨간색 남군을 괜히 파란색 북군이 강을 건너 쳐들어 왔다가, 그림처럼 후퇴도 제대로 못하는 상태에서 포위 공격을 받게 된다. 양측 각각 1,700명 가량이 전투에 참가해서 사상자가 남군은 150명 정도였지만, 북군은 약 1,000명이나 되는 패배로 기록된단다.
트레일을 따라 조금 걸어가면 아래쪽으로 나무들이 거의 없는 풀밭이 나오는데, 가장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이다. 바로 직진하면 거기를 지나서 묘지가 나오지만, 안내에 따라서 왼편으로 Interpretive Battlefield Trail을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는데,
그 때 풀숲에서 나타난 사슴 두 마리... 아침 일찍 도로 옆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우리 동네에서는 흔한 야생 동물이다.
소소한 기념비와 안내판 등을 지나서 풀밭을 북쪽으로 돌아 강쪽으로 걸어가니까, 북군의 대포라는 설명과 함께 두 문이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다. 남북전쟁 당시의 이런 대포 사진이 슬슬 지겨워지는 것을 보니, 그 동안 관련된 장소들을 참 많이 소개한 것 같다...^^
전망대인 Bluff Overlook에 도착했지만 빽빽한 나무들 때문에 강물은 내려다 보이지 않았고, 멀리 보이는 언덕의 집은 포토맥 강 건너 메릴랜드 주이다. 5년전 러시모어와 콜로라도/와이오밍 주 자동차 여행의 스코츠블러프(Scotts Bluff) 준국립공원 여행기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여기 이름의 '블러프(bluff)'는 뻥이 아니라 절벽을 뜻한다. 즉, 북군은 하필이면 강가의 절벽 위에서 배수진을 치고 싸웠던 것이다.
조금 하류쪽에 있는 삼거리 표지판으로 강가로 내려가는 River Trail은 딱 봐도 경사가 너무 급해서 포기하고, 묘지가 있는 가운데 초원으로 방향을 틀었다. 나무에 칠해진 하늘색 직사각형과 포토맥 헤리티지 트레일(Potomac Heritage Trail) 표식이 보이는데, 여기서 강물로 내려간 후에 조금 더 이어지는 산책로가 버지니아 주 PHT의 마지막 북쪽 끝 구간이었다.
묘지로 향하는 길가의 작은 표석 옆에 성조기가 꽂혀 있고, 주변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캘리포니아 출신 지원병들로 구성되었던 펜실베이니아 71 연대(71st PA Regiment)를 지휘한 에드워드 D. 베이커(Edward Dickinson Baker) 대령이 여기서 전사한 것을 알려주고 있는데, 그가 누군고 하니...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전쟁에서 사망한 현직 상원의원(Senator)으로 그의 유해는 샌프란시스코 국립묘지에 묻혀있다. 그는 1811년 런던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으로 이민와서 일리노이 주에서 변호사가 되어 주의회에서 활동하며 1935년경부터 링컨과 친구가 되었고, 그 후 캘리포니아에서 정치활동을 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북쪽 오레곤으로 옮겨서 남북전쟁 발발 전해에 연방 상원의원으로 뽑혔다. 그래서 1861년 3월에 링컨이 대통령 취임식에 함께 마차를 타고 갈 만큼의 절친이었는데, 그의 전사 소식에 링컨은 거의 쓰러질만큼 오열했단다. 원래 링컨은 친구를 최전방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 여단장급의 소장(major general)에 임명하려 했지만, 그가 자신의 군경력에 비춰 대령(colonel)이면 충분하다며 사양했다고!
그 옆으로 나지막한 돌담으로 둘러싸인 볼스블러프 국립묘지(Ball's Bluff National Cemetery)가 나오는데, 현재 미국 전역의 164개 국립묘지들 중에서 3번째로 작은 규모라 한다.
남북전쟁이 끝난 1865년에 만들어져서, 이 전투에서 사망한 북군 54명의 유해가 여기 매장되었지만, 신원이 밝혀진 병사는 매사추세츠 주에서 온 1명 뿐이란다. 문이 잠겨 있어서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담 너머로 묘지 내부의 전체 모습이 한 눈에 보인다. 둥글게 세워진 비석은 모두 25개인데, 혹시라도 나중에 무료 가이드 투어를 하게되면 왜 54개가 아닌지는 물어볼 생각이지만... 아마 그럴 가능성은 없을 듯 하다~^^
대통령의 절친까지 전사한 굴욕적인 참패였던 이 전투 이후에, 미의회는 전쟁수행공동위원회(Joint Committee on the Conduct of the War)를 만들어서 전쟁의 진행상황을 감독하고 평가하게 되는데, 지휘관의 교체나 강경한 전략 추진 등으로 남북전쟁의 종전까지 큰 영향을 미친다.
초원을 가로질러 돌아가는 길에 이번에는 까만색의 다른 표석이 또 눈에 띄었는데 "그의 고향 주를 지키다가 용감히 쓰러졌다(fell bravely depending his native state)"고 적혀 있다.
Thomas Clinton Lovett Hatcher는 붉은 수염에 193cm의 장신으로 연대깃발을 들고 고향 버지니아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21살의 나이로 이 자리에서 전사한 후에, 리스버그 서쪽의 퍼셀빌(Purcellville) 교회 공동묘지에 묻혔단다... 지금까지 남북전쟁 관련 유적지는 연방정부 국립공원청 소유의 장소들만 둘러보다가, 처음으로 남부연합 지역의 주정부가 관리하는 곳을 방문한 셈인데 분위기에서 미묘한 차이가 느껴졌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남군의 입장에서 내전을 서술하고 전시한 장소들도 있다고 하니, 기회가 되면 그런 곳도 찾아가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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