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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숙소 호캉스 롯데시티호텔대전 리버뷰 디럭스룸 조식 내돈내산후기
대전숙소 호캉스 롯데시티호텔대전 리버뷰 디럭스룸 조식 내돈내산 후기 올봄 대전여행은 무잼이 아닌 유잼 대전을 알게끔 해주었던 계기였다. 어쩌다가 한 개 포스팅을 남겨두고 이제서야 전하려니 다시 대전 가고 싶어집니다.^^ 당시 2개 대전 숙소에서 머물렀었다. 친구 찬스였던 대전 토요코인 호텔 스위트룸 투숙했고 또 하나는 롯데시티호텔 대전이다. 대전 갈만한곳 도보 가능 롯데시티호텔 대전 위치 대전 롯데시티 호텔은 짧고 굵게 대전 여행을 즐기러 가기 좋은 위치! 호캉스로도 제격인 숙소이다. 도보로 한빛탑, 엑스포 과학공원, 신세계백화점, 엑스포타워 를 갈 수 있고 호텔 앞 갑천이 흐르고 둔산대교를.......

대전복합터미널 숙소 대전 호텔 룩 도시락 호텔조식
대전복합터미널 숙소 대전 호텔 룩 도시락 호텔조식밥보다 잠을 더 중요히 여기는 나의 아침은 지난밤부터 시작된 달콤한 꿈나라 여행의 절정과 결말을 동시에 맺는 타이밍이다. 숙면을 최대한으로 누리는 걸 감안해서 맞춰둔 알람에 응답하며 일과를 곧장 시작하는데, 아침식사를 꼭 챙겨야 하는 이들이 밥 먹는데 쓴 시간만큼 더 잔다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여행 중엔 호텔 조식 시작 시간 맞춰 챙길 정도로 내 태세는 180도 뒤바뀌는데, 눈으로 풍경 즐기는 여행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고 싶은 의지이자, 상대적으로 덜 붐비는 시간 활용을 통해 조식 뷔페 장소의 분위기를 온전히 만끽해보고자 하는 데 있다. 하지만 한 공간에 많은 이들이 몰.......

대전 호텔, 성심당 DCC 가까워 좋은 롯데시티호텔 호캉스 야식
대전 호텔 성심당 DCC 가까워 좋은 롯데시티호텔 호캉스 야식#대전호텔 #대전성심당국내 1박2일 여행 중 찾은 대전 호텔 롯데시티. 성심당 DCC점이 바로 코앞에 있어 빵순이 행복한 호캉스 즐겼다. 야식 챙기러 야밤에 찾아가고, 조식 먹고 궁금증 찾지 못해 브런치 하러 또 가고. 1박2일 동안 성심당 두번 간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차차 하기로 하고 이번 포스팅에선 대전여행 계획하는 사람들이 머물면 좋을 호텔 이야기 먼저 하기로 한다. 대전여행코스로 성심당과 한밭수목원 그리고 엑스포다리 야경을 챙기 좋은 위치에 있는 호텔 같이 구경할까? 빨로빨로빨로미. :)한밭수목원 동원 구경하다 엑스포 다리 건너 있는 4성급 대전호텔.......
대전 최초의 호텔은 자유헌이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에 나온 수많은 신문들을 보면, 당시 대전의 풍경,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1920년부터 1949년까지 발행된 신문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대전의 근대문화를 엿볼 수 있을 겁니다. 화려함과 아픈 풍경이 동시에 스치기도 하지만 그 또한 우리의 과거겠죠. 자유헌, 대전 최초의 호텔 그리고 양식당 1912년 부산 철도호텔을 기점으로 일본 호텔들이 하나둘 개업을 합니다. 이때 생긴 호텔들은 대부분 열차역 앞에 있어, 역전 호텔이라 불렀습니다. 1920년대 중반 일본인이 세운 호텔이 대전에도 들어섰습니다. 위치는 대전역 앞, 호텔의 명칭은 ‘자유헌(自由軒, 지유켄)’. 자유헌은 3층으로 된 벽돌건물로, 호텔이자 서양요리를 제공하는 경양식과 일본인들의 지역 행사가 열리는 연회장, 사교장이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필자가 최초로 발굴한 자유헌 신문 광고입니다. (아래 오른쪽, 자유헌 신문광고. '대전역전' '양식'이라는 인쇄가 선명하다. 출처: 1927년 6월 28일 조선신문) 1932년 10월 12일자 동아일보를 보면, 대전역 근처 코트에서 제6회 전조선개인정구 대회 결승전이 개최되었습니다. 경기 후에 선수들과 대회 주최자들은 자유헌으로 가서 다화회(茶話會)를 열었습니다. 다화회는 차와 화과자를 비롯해 간단한 요리를 즐기는 자리였는데 일본인들에게는 인간관계를 잇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자유헌에는 양식당이 있었는데 “나이프, 스푼들이 신기해서 자주 고객들이 호주머니에 넣어가”(출처: 경향신문 1974년 12월 28일)는 해프닝이 벌어지곤 했답니다. 대전에 최초로 생긴 호텔이자 양식당 자유헌은 주로 일본인들을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서양음식을 구경할 수 있던 진기한 곳이었습니다. (대전역 앞에 있는 3층 건물들 자리에 자유헌 건물이 있었다. 2019년 2월의 풍경) 보문산에 풀장이 생기다 1934년 3월 28일 보문산에 풀장이 준공식을 합니다. 1928년에 이미 보문산공원이 생긴 걸 보면, 보문산은 이미 개발되고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보문산 등산로의 안내석. 1962년 4월 5일에 세워졌다.) 3월 28일 풀장 준공에 앞서 개장을 하여 사람들이 수영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당시 기사에는 보문산 풀장의 개발에 대전읍 조선인 유지들이 조합을 조직해서 진행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시절에 풀장을 이용하는 조선인들이 얼마나 됐을지는 의문이 듭니다. 이듬해 1935년 8월에 대전읍 수영대회가 보문산 풀장에서 성황리에 열렸다는 기사가 보도 됩니다. 초중고생, 회사원, 일반청년 70여 명의 선수들이 출전을 했는데 입상자 명단에는 일본인 이름뿐입니다. 그때가 식민지 시대였음을 말해주는 풍경입니다. (보문산 풀장이 문을 열다. 출처: 1934년 3월 28일 매일신보) (보문산 풀장에서 열린 수영대회. 출처: 1935년 8월 27일 매일신보) 보명수, 대전에서 만든 국민 소화제 지금도 유명한 동화제약의 활명수는 일제강점기에 나온 소화제입니다. 당시 활명수가 큰 인기를 끌자 엇비슷한 상표를 단 소화제들이 쏟아집니다. 통명수, 회생수, 소생수, 낙천약수, 민생수, 위활수, 보명수… 등등. 해방이 끝난 1949년 충청매일신문에는 보명수 광고가 등장합니다. “명성이 놉고 정평 있는 보명수의 효능 새삼스렇이 말슴 안켔음니다 총판매 대전부 원동 충청남도제약주식회사” (보명수 신문광고. 대전시가 되기 직전 대전부 시절이다. 출처: 1949년 8월 6일 충청매일) 보명수(保命水)는 서울을 비롯해서 몇 곳에서 제조를 했는데, 그중 하나가 대전 대흥동(현재 뾰족집 인근)에 있던 공민제약에서 제조를 한 것입니다. 공민제약은 자매회사격으로 충청남도약품주식회사를 따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보명수가 비록 활명수의 인기에 편승하긴 했지만, 대전에서는 인기가 많은 제품이었다고 합니다. 대전 사람들에게만은 활명수에 못지않은 소화제가 보명수였던 모양입니다. 대전 최초의 호텔이자 양식당 자유헌, 보문산의 풀장, 그리고 보명수…. 이제는 모두 사라져 기록으로 만 존재하지만, 대전의 삶과 역사가 된 소중한 흔적으로 남아있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