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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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교장 관사 습격 등 격렬한 항거..대림리 양공팔 지사 생가 터

[향토문화] 교장 관사 습격 등 격렬한 항거..대림리 양공팔 지사 생가 터

[향토문화] 교장 관사 습격 등 격렬한 항거..대림리 양공팔 지사 생가 터 https://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4909 양공팔 지사의 생가 터에는 2022년 10월 새로운 2층 건물이 지어졌다. 대림리 양공팔 지사 생가 터 위치 ; 한림읍 대림리 1460번지 시대 ; 대일항쟁기 유형 ; 위인선현유적(생가 터) 양공팔(梁公八. 1911∼?)의 본관은 濟州, 양달행(梁達行)의 아들로 구우면 대림리 1460번지에서 태어났다. 구우공립보통학교(現 한림초)를 졸업하고 제주공립농업학교에 진학하여 1931년 3월 9일 졸업하였다. 1931년 3월 제주공립농업학교 졸업 당시, 졸업사정회(卒業査定會)에서 이른바 사상 불순(思想不純)을 이유로 졸.......

3·1운동 100주년 기념 영화 '항거' 관람! 대한독립만세~

1900년대 초 일제강점기에는 의병 투쟁, 동학농민전쟁, 의열 투쟁 등 밑으로부터 전개되어 온 민중운동과 독립협회 같은 단체들의 활동이 있었습니다. 이 시기 일제는 한국인들을 대하면서 3일에 한 번 조선인과 명태는 두들겨 패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영화'항거-유관순 이야기'는  3월에 꼭 봐야할 영화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요. 대전시민사랑협의회가 시민과 함께 영화 '항거'를 관람하는 행사를 개최한다하기에 당연히 참여했습니다. 영화 '항거'는 1919년 3.1 만세운동 후 3평도 안 되는 서대문 감옥 8호실 속, 영혼만은 누구보다 자유로웠던 유관순과 8호실 여성들의 1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포스터부터가 의미심장해 보입니다. 유관순은 약자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삶의 마지막을 결정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강하다고 말했습니다. 유관순은 충분히 살 수 있는 기회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이 주도한 삶을 살고 독립운동에 헌신하다가 세상을 떠났죠. 무척이나 실용성이 있는 태극기 담요를 주어서 집에서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날 영화관람후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3.1 운동 이후 독립운동 과정에서 보인 여성들의 투쟁은 결코 남성들에게 못지않았다고 합니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따르면 3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전국 집회 횟수는 1,542회, 참여자는 2,051,448명에 달했습니다. 이중 사망자는 7,509명, 부상자는 15,850명, 체포된 사람은 46, 306명, 불탄 민가는 715채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영화의 제목은 '항거'이지만 점화라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이지 않을까란 생각도 해봅니다. 이화학당에서는 유관순에게 명예졸업장을 주었는데요. 천안의 유관순기념관에 가면 만날 수 있습니다.  영화를 봤으니 3.1 운동과 유관순을 다시 생각해보기 위해서 유관순 열사 사적지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지금 유관순 열사는 의사로 격상하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데 그 중심에 천안이 있습니다.  유관순 기념관은 3·1운동 100주년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유관순의 사진이 항상 어딘가 그늘져 보이고 그래서 유관순의 일상도 그러리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유관순은 상당히 쾌활한 소녀였다고 합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3·1운동 100주년을 대대적으로 알리고 있기 때문인지 몰라도 평일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유관순 사적지를 찾아서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감옥에 갇혀서도 항거를 멈추지 않았는데요. 3·1운동은 점화를 했을 뿐 그 불은 감옥에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비폭력 평화시위를 지향했던 것은 당시의 의미도 있었지만 막강한 일본의 군사력에 민중들이 다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10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이 땅에서 완전히 일제의 잔재를 씻어내지는 못했습니다. 이제 바로 설 때가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3·1운동 100주년인 올해가 매우 중요한 시기가 아닐까요.

'항거-유관순이야기'관람! 허태정 대전시장과 허심탄회 대화

의미있는 3월의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3.1운동이 일어난지 100주년이 되었고 4.19 혁명의 불씨를 당긴것으로 인정받은 대전의 3.8 민주의거가 국가기념일이 되고 첫 공식 기념식을 갖기도 했습니다. 이런 용감한 의거의 바탕에는 스스로 주인이고자 하는 民主주의가 있는데요, 몇년 전 촛불혁명으로도 우리는 다시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의미있는 시기에 딱 맞는 영화인 '항거 유관순이야기'가 개봉했는데요. 대전시민사랑협의회에서 시민들의 단체 영화관람 자리를 마련하고 삼일절 기념 에코백에 대형 태극기 망토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기미년 3월1일 정오 터지자 밀물같은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 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한강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 날을 길이 빛내자" 삼일절 노래 지금은 악보와 가사를 보지 않고 이 삼일절 기념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분들이 얼마나 있을 지 모르겠는데요, 제 학창시절에는 음악 교과서에 주요 국가기념일 노래가 다 실려있고 배우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초등학교 3학년 음악책에 실려있다고 하네요. 기념일 노래가 모두 훌륭한 뜻을 담고 있기에 기꺼이 익혔고 덕분에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목청껏 따라부를 수도있지요.   그런데 우리가 3.1운동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의로운 인물 중의 한 분인 유관순 열사가 최고의 훈장을 받은 줄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유관순 언니(누나)를 생각합니다. 옥 속에 갇혀서도 만세부르다 푸른 하늘 그리며 숨이 졌대요." 이런 유관순 노래도 있고, 어린 시절 이 노래를 부르며 고무줄 놀이를 하기도 했거든요. 물론 독립운동을 한 분을 성적표 매기듯 할 수는 없지만 역할의 무거운 정도는 생각해야 하는데, 1962년이 되어서야 유관순 열사가 받은 훈장은 건국훈장 3등급인 국민장(1990년에 독립장으로 개칭)이었다고 합니다.   올해 100주년을 기념해 광화문 앞 세종로에서 대대적으로 열린 삼일운동 100주년 기념식에서 드디어 유관순 열사에게 최고 훈장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습니다.  이것을 페미니즘과 묶어서 뭐라고 하는 소수의 말이 있기도 한데요/ 독립운동에 웬 페미니즘 이야기를 하는지, 그리고 사실 그동안 역할에 비해 낮은 대우를 받았던 것도 일종의 남성우월주의가 바탕에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시절은 어느 정도는 그랬으니까요. 이제라도 하나씩 바로잡아 나가야 삼일절 기념 노래에서 처럼 '동포야 이 날을 길이 빛내자'의 탄탄한 바탕이 될 것입니다. 대전시민사랑협의회가 마련한 영화 감상의 자리에는 온라인으로 신청받은 이백 명 가량의 시민이 참석했는데요, 먼저 대전방문의해(2019~2021)를 알리는 홍보영상을 관람하는 것으로 시작해 독립운동을 하던 당시 이야기를 담은 EBS교육방송의 인기 프로그램 '지식채널e'의 일부를 함께 보았습니다.   박은식 선생이 역사책 '한국통사'를 쓰셨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국사에서 배울 때 한글로만 배웠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통사를 '通史'(전 시대와 전 지역의 역사를 줄거리로 서술하는 역사 기술 방식)로 알고 있었습니다. 오호 통재라... 그런데 '지식채널e'에서 보니, 태백광노인 박은식 선생이 쓴 역사책은 '한국通史'가 아닌 '한국痛史'였습니다. 1864년부터 1911년까지 47년 동안 민족의 수난사를 담은 가슴 아픈 역사서로 우리나라 근대사를 최초로 종합적으로 서술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해방 후 일제강점기의 관료에서 대한민국 관료의 탈로 바꿔쓴 노덕술(마쓰우라 히로), 하판락(가와모토 마사오) 같은 변절 매국노들이 아직도 권력과 금력의 탈을 쓰고 주변에 버젓이 행세하고 있다면 이건 말이 안되는 얘기겠죠.  대한독립萬歲, 대한민국萬歲를 위한 탄탄한 베드로(반석)를 마련하기 위해 바로잡아야 하는 과거입니다. 온라인에 공개된 자료 사진, '항거 유관순이야기' 영화가 끝나고 당시 독립운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룬 유관순과 같은 젊은 아니 어린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수형카드가 엔딩 크리딧 화면에 주르륵 올라갔습니다. 그 분들이라고 무섭지 않았을까요. 그 발끝만치도 따라가지 못하는 저로서는 그 비장했을 마음들을 생각하며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를 관람한 후 시민들과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는 허태정 대전시장 영화 관람 후에는 늦은 시각이었지만 대전시 서셜미디어기자단이 허태정 대전시장과 함께 다과를 나누며 한 시간 정도 격식없는 허심탄회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허태정 대전시장은, 나라를 빼앗기고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도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하고 마침내 지금의 역사를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 순국선열, 조상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고 이어서 청년기자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청년 기자는 대전에서 청년 활동이나 청년 취업 지원에 대해 대전시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구체적인 방안을 질문했는데, 허태정 시장으로부터 '현재 논의 중인 좋은 소식'이 곧 발표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답변에 기뻐했습니다. 삼일운동100주년, 임시정부100주년을 맞아 시민이 주관하는 독립운동 루트를 탐방하는 계획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는데뇨. 마침 대전시에서는 중구 어남동 신채호 생가를 중심으로 신채호 기념관을 세울 계획으로 있어서 신채호 선생과 관련된 신채호 루트 같은 것도 좋겠다는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신채호 선생은 칭다오로 망명했다가 블라디보스톡, 북경에서 활동하기도 하고, 상하이 임시정부에도 참여했다가 1928년에 일제에 잡혀서 여순(旅順, 뤼순)법원에서 10년 형을 선고받고 여순감옥에 복역 중 1936년에 옥사했습니다. 또한 국립대전현충원이 있고 그곳에서 영면하고 계신 순국선열이 많은데요. 세월이 흐르면서 무연고 묘지가 생기고 있는데, 현충원에서도 잘 돌보고있지만 대전에서도 각별히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영화 관람 때 받은 대형 태극기를 펼쳐들고 허태정 대전시장과 함께 자유분방하게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나란하게 줄을 서서 주먹을 불끈 쥐고 화이팅을 위치며 찍는 기념 사진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이렇게 자연스러운 단체사진이 정말 맘에 들죠~!^^ 게다가 허태정 대전시장이 직접 셀카봉을 들고 찍으며 대화를 마무리했는데, 의미있는 영화를 본 깊이 만큼이나 즐거운 대화 시간이었습니다. 태극기 망토는 바로 이렇게 사용하는 것이랍니다. 태극기망토를 어깨에 두르니 앞으로 똑딱이가 있어서 고정시킬 수 있었습니다. 헤어지기 전에 남은 사람들끼리 아쉬움을 달래며 찰칵~!

항거 - 유관순 이야기

DID U MISS ME ?|2019년 3월 4일

보기 어려운 종류의 영화인 것은 맞다. 가뜩이나 스트레스 받고 지치는데, 왜 내 돈 주고 두 시간동안 괴롭고 힘들어야 되냐- 정도의 생각이 들만하거든. 유관순 열사 또는 여러 애국지사들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관람하는 데에 어느정도의 정신적+체력적 용기가 필요한 종류의 영화처럼 보인다는 것. 하지만 막상 본 영화는, 굉장히 이성적으로 전략을 잘 짠 영화였다. 일제강점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다루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가 펼쳐지는 데다가, 결정적으로 흑백 영화라는 점에서 이준익 감독의 를 떠올리지 않기란 어렵다. 그만큼 제작 규모나 연출의 결이 비슷한 영화인데,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좀 더 좋음. 흔히들 국뽕 영화라 말한다. 애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