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이 타는 삼십 분 동안만 이십 년 전 오늘로 돌아갈 수 있다. 향은 죽음과 제사를 상기시킨다. 과거가 바뀌면 현실도 바뀐다. 그렇게 바뀐 여러 번의 생은 한 인물 속에 켜켜이 쌓인다. 그 사실을 각성한 인물들에겐 예전 기억이 지워지지 않고 몇 겹으로 남아 있다. 마치 전생의 기억처럼. <나인> 속 세상은 거의 마지막까지 운명론적 세계관에 따라 움직인다. 다우주엔 관심이 없다. 인물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분화하지 않는다. 반드시 동일 인물로 수렴한다. 여러 개의 우주에서 여러 명의 내가 존재할 가능성은 애초 <나인>에선 다루지 않는 문제다. 과거와 현재가 긴밀히 맞물리며 삶이 수차례 바뀌어도 인물들의 궁극적인 운명은 변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죽음은 단지 몇 시간 뒤로 미뤄졌을 뿐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