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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11|아이템:남아메리카(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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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815일차, 가난한 자들의 갈라파고스

하쿠나마타타|2018년 5월 23일

이카에서 바로 수도 리마로 올라가려 했지만 잠깐 바다를 보러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그래서 무작정 서쪽으로 향했다. 이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파라카스(Paracas)라는 나름 유명한 관광지가 있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가난한 여행자들의 갈라파고스'라고 한다. 갈라파고스 섬은 에콰도르에 있는 섬으로 수많은 동물과 아름다운 해양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진화론으로 잘 알려진 다윈이 기초 조사를 했던 곳이 바로 갈라파고스다. 파라카스가 얼마나 대단한 곳이면 그 갈라파고스가 별명으로 붙었을까? 궁금해서 가보기로 했다. 이카에서는 버스를 타고 1시간 20분 정도만 가면 파라카스에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리 멀지 않았다. 배낭을 챙겨 들고 시내 방향으로 걷다가 싸구려 호스텔에 체크인을 했다. 이카부터 더워진 날씨에 밖으로 나가기 꺼려졌지만 잠깐 동네를 살펴보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관광객이 많아서 그런지 기념품 가게가 꽤 많았다. 해변에는 수영을 즐기는 사람이 꽤 많았으나 기대했던 것에 비해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다. 아무래도 작은 마을에 관광객이 몰리는 지역이다 보니 물가가 꽤 비쌌다. 여기저기서 부르는 호객꾼을 물리치고 길가에 있는 노점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쳐 어설픈 스페인어로 대화를 시도하니 웃음을 지으며 몇 마디 한다. 자욱한 연기에 구워지고 있는 것은 치킨, 8솔이었다. 냄새를 맡고 강아지들이 몰려왔지만 혼자 먹기에도 양이 부족해 나눠줄 수는 없었다.여기까지 보면 대체 왜 이곳이 '가난한 여행자들의 갈라파고스'인지 실감나지 않는다. 여느 해변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다. 조금 더 알아보니 파라카스에서 야생 동물을 보고 싶다면 국립공원을 찾아가야 했다. 크게 두 군데가 있었는데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바예스타 섬(Isla Ballestas)이었다. 어렵지 않게 숙소에서 투어를 예약했다. 보통 투어비는 30솔이었지만 입장료가 별도였다. 다음날 아침 선착장으로 나가보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보트를 기다리고 있었다.사람을 가득 태운 배는 시끄러운 모터 소리와 함께 바다로 나갔다. 짠 내음이 가득 담긴 바다 바람을 맞았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투어를 하기 적합하지 않은 흐린 날씨가 불만이었다.한참 달리다 보니 좌측 언덕 위에 독특한 그림이 보였다. 누구는 선인장이라고 하고, 누구는 촛대라고 하는데 이 그림은 지금도 누가 그렸는지 모른다고 한다. 더 신기한 점은 모래 언덕에 그린 이 그림이 굉장히 오래되었을 것이라 추측되는데 염분이 섞인 바람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지금까지도 그림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고 한다.잠시 후 우리는 엄청난 수의 새를 보게 되었다. 바위 섬에 가득 새가 앉아 있어, 새가 바위를 뒤덮고 있는 모양새다.한가로이 수영을 즐기는 물개와 바다사자도 볼 수 있었다.바예스타 섬 투어 관련 사진을 보면 꼭 나오는 바위 다리에 도착했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다리 주변으로는 여러 동물이 가득했다. 너무 멀리 있어 카메라로 담기 어려웠지만 한 줄로 걸어가고 있는 펭귄도 볼 수 있었다.투어를 즐기는 다른 배도 다리 주변에 모여 한동안 설명을 듣고, 사진을 찍었다.바예스타 섬 투어는 오로지 보트 위에서만 보고 즐길 수 있다. 좀 더 가까이 가서 동물을 보거나 섬에 내리지 못한다. 물론 굳이 가까이 가서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바위 섬마다 커다란 바다사자가 자리를 잡고 있다.사람들이 쳐다보건 말건 한가로이 늘어져 있다.여러 동물을 보는 것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문제는 지독한 냄새로 잠시도 숨을 쉴 수 없었다. 너무 지독했다. 나미비아 케이프크로스에서 엄청난 무리의 물개를 봤을 때 못지 않다.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새가 까맣게 뒤덮고 있다. 무서울 정도로 새가 많다 보니 세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보트는 계속 주변을 맴 돌았지만 특별히 관심이 가는 곳은 없었다.이미 여러 차례 보긴 했어도 새보다는 얘네들이 더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꺽꺽거리는 소리와 냄새로 친해지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유일하게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동물이었다.이렇게 여러 바위 섬 주변을 돌아본 후 파라카스로 돌아갔다. 생각보다 더 일정이 짧다.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니 하늘이 맑아졌다. 여행자의 운이란, 항상 이런 식이다.기대했던 바예스타 섬 투어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해 다른 투어는 하고 싶지 않았다. 기대를 접게 만들었다. 그냥 혼자서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고, 기념품 가게를 구경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가난한 여행자들의 갈라파고스는 무슨, 거창한 별명에 비해 볼거리는 별로 없었다. 애초에 '가난한 자'를 위한 곳이니 실망할 필요는 없었던 것일까? 가난한 여행자인 나는 이 정도에서 만족해야만 했다. 아레키파를 여행할 때 숙소에서 만났던 독일인 아저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하고 있어 페루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많이 가봤다고 했다. 페루 북부의 마추픽추라 불리는 쿠엘랍(Kuelap)이 있다는 것도 이 아저씨 덕분에 알게 됐다. 그리고 파라카스 부근 피스코(Pisco)에는 또 다른 알려지지 않은 유적지, 탐보콜로라도(Tambo Colorado)가 있다고 들어 찾아 가보게 되었다. 어떤 유적지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새로운 도시를 간다는 의미도 있었다. 피스코는 파라카스에서 그리 멀지 않아 콜렉티보를 타고 20분이면 갈 수 있었다.파라카스는 그래도 관광객이 많아 꽤 밝은 느낌이었다면 피스코는 낡은 건물과 칙칙함이 가득한 작은 도시였다. 거리에서 관광객도 거의 볼 수 없었다. 오로지 벽돌만 쌓아 올리고 철근은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집만 보였다.유적지를 바로 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시간이 애매하다는 핑계를 대며 그냥 동네를 돌아다니며 하루를 보냈다. 이런 곳에서 하루를 보낸다는 건 어쩌면 이상한 여행자만 가능할지 모른다.다음날 탐보콜로라도를 가기 위해 거리로 나섰는데 광장에서 어떤 행사인지는 모르겠지만 퍼레이드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귀여운 꼬마 아이들이 걷는가 하면, 반짝이는 복장을 입고 안무를 하는 학생들도 보였다.이런 퍼레이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피카츄가 보였다.탐보콜로라도로 가는 길은 꽤 험난했다.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 시장 근처에서 미크로(미니밴)를 탈 수 있다고는 알아 냈지만 정확히 어디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사람마다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복잡하고 지저분한 시장 근처에서 혼자 걷기를 수십 분, 탐보콜로라도로 가는 미크로를 찾을 수 있었다. 다만 출발까지는 30분이나 남았다고 했다. 간단히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게 없을까 미크로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니 철판에 돼지고기를 구워 파는 음식이 있었다. 딱 봐도 맛있어 보여 주저하지 않고 하나 달라고 했다. 먹기 좋게 돼지고기를 자른 뒤 감자와 옥수수를 넣고 그 위에 상추를 올려줬다. 껍질 부위가 살짝 딱딱하지만 고기는 부드러워 보쌈을 먹는 것 같았다. 매운 소스를 뿌려 먹으니 내 입맛에 딱 맞았다. 이렇게 맛있게 먹었는데 3솔밖에 하지 않았다.하나 더 달라고 해서 또 먹었다. 아주머니와 어설픈 스페인어로 몇 마디 주고 받았는데 무척 즐거워하셨다. 그러다 이 동네에서 사진 하나 남기지 않는 것 같아 카메라를 꺼내 들고 사진으로 남겼다. 아주머니는 혼자 여행하고 있다는 내가 걱정이 되는지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아무래도 시장은 사람이 많아 복잡한 데다가 이곳에는 관광객이 많지 않아 눈에 띄기 때문이다. 고맙다는 말을 하며 미크로에 탔는데 창문 너머로 아주머니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탐보콜로라도까지 가는 동안 후덥지근하고, 지루했다. 피스코에서 45km 떨어져 있지만 작은 마을을 거치며 1시간이나 걸렸다. 여기서 내린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과연 이런 곳에 관광객이 찾아오는지 의심부터 들었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다행히 사람은 있다. 이렇게 인적이 드문 곳에 관광객이 찾아왔으면 반가워 할 법도 한데 입장료로 5솔만 받아갔다. 사무실 옆에는 작은 박물관이 있다. 메마른 땅으로 나가면 거대한 흙벽돌 유적지가 눈에 들어온다.워낙 알려지지 않은 관광지다 보니 눈으로 구경하는 것만으로는 정확한 정보를 알기 어려웠다. 이곳 역시 잉카의 유적이라는 것, 이 지역의 이카(Ica)와 친차(Chincha)를 정복해 몇 가지 복합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 정도만 알게 되었다.15~16세기에 만들어진 곳으로 잉카제국의 행정구역, 제단의 역할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측한다.흙벽돌로 쌓아 올렸지만 잦은 지진에도 피해가 없어,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라고 한다. 문을 통해 들어가보면 여러 개의 방이 연결되어 있다. 사람이 살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근처에 가이드나 안내판이 전혀 없어 아무 생각 없이 돌아봤다.탐보콜로라도의 또 다른 이름은 푸카와시(Pukawasi)로 '빨간집'이라는 뜻이다. 벽면에 남아있는 빨간색 도료 때문이다. 어느 방에 들어갔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기도 하고, 혼자 외로이 돌아봤다. 멀리서 현지인으로 보이는 관광객이 잠깐 보이긴 했지만 이내 사라졌다.용도를 알 수 없는 사다리꼴, 삼각형 무늬가 있다.좁은 길을 따라 가면 막혀 있는 벽을 만나게 된다. 단순한 구조인데 벽면이 비슷해 미로처럼 헤매기도 한다.위로 올라가 탐보콜로라도를 내려봤다. 여러 개의 방이 복잡하게 있고, 바로 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는 구조였다. 뒤에 있는 언덕에 뭔가 있는 것 같아 올라가봤다. 그런데 관광객이 오르는 곳이 아닌 듯 길이 아예 없었다. 일단 오르기 시작했으니 끝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힘들게 올라갔는데 아무 것도 없다. 언덕 위에 세워 놓은 십자가는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언덕 위에서 탐보콜로라도, 그 앞을 지나는 도로, 그리고 멀리 검은산을 바라보며 잠시 바람을 쐬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봤다 생각해 내려가는데 가는 길이 너무 미끄러워 식은땀이 흘렀다. 손을 짚고 겨우 내려갔다.애초에 탐보콜로라도가 어떤 유적지인지도 모른 채 왔으니 어떤 의미를 찾겠다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돌아서서 탐보콜로라도를 카메라에 담았다.여기까지 찾아오는 것도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돌아가는 것도 문제였다. 도로에는 지나가는 차가 거의 없었는데 조금 있으면 해가 질 시간이었다. 미크로가 언제 올지도 알 수 없으니 마냥 기다려야 했다. 만약 미크로가 오지 않으면 히치하이킹이라도 해야 피스코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20분 정도 기다리니 미크로가 보여 손을 흔들어 세웠다. "피스코?"라는 말에 아저씨는 손짓을 보였다.먼 거리를 왔다갔다 했으니 눈꺼풀이 절로 감겼다. 여전히 어색했던 피스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워진 상태였다. 적당한 곳에서 치킨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동네를 잠깐 걸었다. 밤에는 날씨가 선선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꽤 많이 보였다. 페루 여행을 하면서 돌아다니는 외국인이 나 혼자였던 곳은 여기뿐이었다.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더 한적하고 어두웠다.

여행 811일차, 와카치나 사막에서 신나는 버기투어

하쿠나마타타|2018년 2월 11일

이카(Ica)로 가는 버스에서 비몽사몽 정신 없이 졸다 보니 날이 밝았다. 몸이 찌뿌둥하고 더위가 느껴져 입고 있던 옷을 벗으며 창밖을 바라봤는데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온통 황량하고 메마른 사막이었다.버스는 와카치나(Huacachina)로 가는 갈림길에서 잠시 멈췄다. 아무래도 외국인 여행자는 와카치나로 곧장 가는 경우가 많고, 버스터미널까지는 조금 멀기 때문에 중간에서 내려주는 것 같다. 나는 잠이 덜 깬 상태로 어리둥절하다가 독일인 여행자 2명이 내리는 것을 보고 따라 내렸다. 그들은 와카치나로 갈 예정이었지만 애초에 이카에서 뭘 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나는 미리 봐두었던 숙소로 찾아갔다. 다행히 그리 멀지 않았다. 한국에서 만든 자동차지만 이제 한국에서는 희귀한 티코 택시를 타고 10분만에 도착했다.내가 찾아간 곳은 이카 어드벤처2 호스텔인데 시설이 굉장히 좋았다. 이른 아침이라 체크인을 바로 할 수 없었지만 친절하게 맞이해 준 직원은 조식을 먹을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부페식으로 마련된 조식은 6달러짜리 호스텔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풍성했다.   쿠스코와 아레키파와는 달리 이카는 무척 더웠다.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낡은 티코와 뚝뚝이 내뿜는 매연과 소음만큼이나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숙소에서 중심부까지 거리가 꽤 멀어 한참 걸었다.여태 지나왔던 다른 도시와 달리 공원도 딱히 관광지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다른 여행자도 많지 않았다.오로지 이카에서 기억나는 것은 노란색 티코 택시였다.바깥에서 보기만 했지만 교회조차도 사막과 어울리는 색깔이었다.호스텔에서 쉬고 있을 때는 중국인 여행자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고, 다음날에는 한국인 여행자와 오랜만에 만나 저녁을 같이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다음날 곧바로 헤어지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페루에서는 바쁘게 이동하는 여행자가 많다 보니 어쩔 수 없다.이카에서 기대하는 것은 오로지 사막의 오아시스 와카치나다. 그리 멀지 않아 택시를 타고 쉽게 갈 수 있는데 조금 달렸을 뿐인데도 도로 양 옆으로 거대한 모래 언덕이 보였다.사막에 오아시스가 있다고 하니 기대를 했는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분위기였다. 오아시스는 무조건 맑고 투명할 줄 알았다.오아시스에서 보트를 타는 사람들이 보였다. 규모가 크지 않아 걸어서 한 바퀴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와카치나에서 꼭 해봐야 하는 것은 버기카를 타고 모래 언덕을 달리는 버기투어다. 그런데 이날은 페루의 큰 공휴일이 껴있어 리마에서 내려온 많은 사람들 때문에 버기투어 시간이 2시간에서 1시간으로 줄었고, 이미 내가 예약했던 곳에서는 한참 뒤에나 탈 수 있다는 말을 전했다. 거기에 불친절한 태도까지 보여 오랜만에 짜증이 폭발했다. 어차피 이 작은 동네에 버기투어를 하는 여행사는 널리고 널렸으니 예약을 취소하고, 직접 돌아다니면서 찾아봤다.여러 업체 중에 2시간을 달린다고 소개하는 곳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잠시 기다린 후 10명을 태운 버기카는 붕붕 소리를 내며 언덕을 향해 달렸다. 특이하게도 나와 네덜란드인 여행자를 제외하고 전부 페루인이었다.사실 나는 미리 예약했던 버기투어 업체의 태도에 화가 나있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와카치나까지 와서 버기투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튼 살짝 기분이 안 좋은 상태로 버기카를 탔는데 달리자마자 너무 신나 아무 생각도 안 났다. 환호성이 절로 나왔다.모래언덕에서 내려갈 때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아찔했다. 거의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는데 그때마다 뒤에 있던 페루인들은 환호가 아닌 비명을 질렀다.물론 사막 여행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보통 사막에 있을 때는 목이 바싹 마르고, 걷기만 하다 고개를 제대로 들 수 없었는데 이곳에서는 놀이동산이 온 것처럼 신이 났다.버기투어에는 버기카를 타고 계속 모래언덕을 오르내리는 것 말고도 잠시 멈춰서 보드를 타는 샌드보딩도 포함돼 있다. 버기투어를 하면 보통 2~4번 정도 샌드보딩을 타게 되는데 처음에는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한다.보드를 들고 아래를 내려다 보니 꽤 높고 경사졌다. 시작하기도 전에 걱정하는 친구들이 몇 있었다.샌드보딩은 일어 서서 탈 수도 있지만 보통은 잘 미끄러지기 위해 엎드려서 타는 경우가 많다. 보드가 매끄럽게 잘 나가게 하기 위해서인지 양초를 이용해 바닥면을 닦았다.나도 살짝 걱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었으나 까짓 거 타보자는 심정으로 보드에 몸을 맡겼다. 속도가 빨라 순식간에 아래로 내려왔다. 그런데 무섭다는 생각은커녕 한 번 더 타고 싶을 정도로 정말 재미있었다. 보통은 나머지 사람들이 다 탈 때까지 아래에서 기다리는데 나와 네덜란드인 친구는 또 타고 싶어서 걸어서 언덕을 올라갔다. 근데 발이 푹푹 빠지는 사막이니 올라가는 게 너무 힘들었다. 우리는 한참 동안 기어 올라가 또 한 번 보드를 탔다.다시 신나게 버기카를 타고 이동한 후 다른 모래언덕에서 멈췄다. 이번에 내려갈 곳은 아까보다 훨씬 높은 곳이었다. 누구도 선뜻 먼저 내려가겠다 하지 않았다. 웃기만 했다.  네덜란드인 여행자는 항상 먼저 보드를 타겠다고 나섰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아저씨가 뒤에서 보드를 밀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용기를 낸 다른 사람들도 보드를 타기 시작했다. 몇 명은 여전히 무섭다고 호들갑을 떨었다.빠르게 내려가는 보드를 보며 나도 얼른 타고 싶어졌다.내 차례가 왔다. 아까보다 경사가 심했지만 훨씬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기록으로 남기면 좋을 것 같아 페루 친구들에게 동영상 촬영을 부탁하고 엎드렸다. 속도감에 정신이 없었지만 정말 신나고 재미있었다. 보드만 꽉 잡고 내려가면 되니 그리 어렵지도 않다.다시 버기카를 타고 모래언덕을 넘어다녔다.마지막 샌드보딩 장소는 정말 까마득한 높이였다. 두 번째까지는 어찌어찌 탄다고 하는데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높이라 몇 명은 못 타겠다며 포기했다. 나 역시 긴장이 되었지만 망설이지 않고 엎드렸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와 높이로 인해 훨씬 더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다.우리는 버기카를 타고 돌아다니며 모래언덕에서 시간을 더 보냈다.해가 지기 시작했다. 이제 오아시스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버기투어를 마치고 돌아가기는 길에 오아시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와카치나 내에서 걸어다닐 때는 잘 몰랐는데 언덕 위에서 바라보니 사막 한 가운데 오아시스가 나름 신비롭게 다가왔다.버기투어를 마친 많은 여행자들은 이곳에 모여 함께 사진을 찍는다.리마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했던 페루 친구들은 영어도 제법해서 대화하는데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 우리는 오아시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후 헤어졌다. 버기투어가 끝나고 다시 이카로 돌아왔다. 모래언덕을 타고 내려오는 샌드보딩을 했으니 온몸이 모래투성이었다. 일단 샤워부터 하고 다음을 생각하기로 했다. 원래 이카에서 오래 머물 생각은 아니었지만 당장 떠나기에는 계획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하루만 더 머물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페루 공휴일이 겹쳐서 이카 내 모든 숙소의 가격이 올랐을 뿐만 아니라 빈 방을 찾기조차 어려웠다. 도시 한복판에서 텐트를 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배낭을 메고 무작정 숙소를 찾아다녔다. 인터넷에서 나와있지 않은 굉장히 낡은 숙소도 50솔 이상 달라고 할 정도로 가격이 2배 이상 올랐다. 10군데 이상 돌아다니다 보니 어두컴컴한 밤이 되었다. 이대로 오늘 잘 곳을 찾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하던 찰나 구석진 곳 낡은 숙소에서 남는 방을 찾았다. 가격도 30솔로 그리 비싸지 않았고 싱글룸이다 보니 하루 지내는데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이곳이 정확히 어디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고, 동네 분위기도 어두웠지만 배낭을 내려놓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나는 곧장 바로 앞에 있는 허름한 식당으로 가서 닭국수로 저녁을 해결했다. 그러다 옆에 있는 현지인들과 말도 안 되는 대화를 이어갔는데 이런 것도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하니 더 재미있었다.

여행 807일차, 아레키파와 콜카캐년

하쿠나마타타|2018년 1월 18일

쿠스코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여기저기서 삐끼가 달라붙었다. 아레키파로 간다는 말에 서로 이쪽에서 버스를 타라고 난리였는데 정말 정신이 없었다. 페루는 같은 노선이라도 여러 버스 회사가 운행하고 있어 경쟁이 치열했다. 여행자가 가장 많이 찾는 쿠스코는 말할 것도 없다. 가격이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려고 떠 봤는데 더 낮은 가격의 버스 회사를 소개해 주거나 조금씩 가격이 깎였다. 버스 가격도 흥정이 가능하다니 재밌다. 마침 내 옆에 있던 독일 여자 2명도 버스를 알아보고 있다가 같이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조금 더 넓은 좌석인 까마(Cama)가 40솔이라고 했는데 가격을 조금 더 깎아 35솔에 샀다.페루 제 2의 도시 아레키파(Arequipa)에는 아침에 도착했다. 호스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했지만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아 침대에서 쉴 수는 없었다. 딱히 할 일이 없었던 나는 마침 로비에 있던 프리워킹투어 종이를 보고 나갔다. 야간 버스를 타고 와서 몸이 조금 피곤하긴 했지만 익숙하지 않은 도시에서 워킹투어를 하면 빨리 적응할 수 있다.워킹투어는 호주에서 온 부부 여행자와 나밖에 없었다. 게다가 영어 가이드가 아니라 스페인어 가이드가 대신 나왔다고 했다. 다행히 영어를 아주 못하는 가이드는 아니었고 최선을 다해 알려주려고 했다. 가끔 말문이 막힐 때면 우리가 괜찮았다고 호응해줬다. 아레키파 중심에 있는 대성당을 구경한 후 곳곳에 있는 작은 성당을 돌아다녔다. 보통 성당의 내부만 잠깐 들어갔다 나오기 마련인데 나는 가이드의 설명에 따라 이곳저곳 살펴보게 되었다. 특히 건물 내부와 외부에 있는 작은 조각, 그러니까 천사나 아기 예수에 대한 설명이 많았다.가이드의 말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남미의 '최후의 만찬'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평상시 우리가 보던 그림과는 많이 다르다. 가운데는 페루에서 많이 먹는 기니피그 요리인 꾸이가 자리 잡고 있고 다른 음식도 전부 남미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페루인들에게는 유럽의 음식이 생소할 수밖에 없으니 자신들의 음식으로 채워 넣은 것이다. 똑같은 그림이지만 문화적인 배경에 따라 달라진다니 무척 재미있다.아레키파는 근처에 화산이 많다고 한다. 근처에 무려 18개의 화산이 있다고 하는데 가장 최근에 있었던 폭발은 15세기라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아레키파는 화산 활동과 지진이 늘 있는 곳이라 성당의 일부가 무너지거나 벽화가 깨진 것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건물을 지을 때도 화성암을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가이드를 따라 아레키파의 대표적인 시장인 메르까도 산 까밀로(Mercado San Camilo)에 갔다. 실내에서 있어 깔끔한 편이고, 볼거리가 풍부했다. 특히 한쪽에는 볼리비아 라파스 마녀시장에서 봤던 허가되지 않은 각종 약재나 이상한 제품을 팔고 있었다. 페루 사람들은 여전히 그러한 제품이 효과가 있다고 믿는가 보다.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시장 구경이 가장 재미있는 것 같다.가이드를 따라 치차도 마셔봤다. 치차는 페루뿐만 아니라 남미에서 즐겨 마시는 발효주인데 약간의 알콜이 있기도 하다. 시장에서는 커다란 양동이를 들고 와서 한 잔씩 팔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발효주인만큼 맛은 시큼하다. 달콤한 과일향이 가득하다.가이드와 함께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본 후 다시 아르마스 광장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식당으로 들어가 피스코사워가 아닌 코카사워를 시음했다. 페루니까 마약의 원료인 코카잎으로 칵테일도 만든다.워킹투어 일정을 모두 마친 후 허기를 채우기 위해 다시 시장으로 돌아왔다. 숙소에서 거리가 멀긴 했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내가 아레키파에 머무는 동안 시장에 자주 올 것만 같았다. 실제로 그랬다.가볍게 세비체를 먹었다. 시큼하고 고수의 향이 느껴져 세비체를 싫어하는 사람이 더러 있지만 나는 항상 맛있게 먹었다. 페루를 여행하는 동안 세비체를 거의 매일 먹었을 정도로 자주 먹었다.작은 의자에 쭈그려 앉아 커다란 컵에 담겨 나온 상큼한 과일 주스는 후식으로 최고였다. 다 마시고 "야빠!"라는 말을 하면 믹서기에 남아있는 과일 주스를 더 준다. 물론 말을 하지 않아도 더 주는 경우가 많긴 하다. 독일 친구로부터 배운 스페인어 야빠의 정확한 뜻은 모르겠으나 우리로 치면 '서비스'에 가깝다. 남미를 여행하는 동안 자주 써먹었다.빵에 웬 아저씨 얼굴이 붙어있다.아르마스 광장을 잠시 거닐어본다. 쿠스코의 아르마스 광장도 무척 인상적이었지만 아레키파의 아르마스 광장은 '예쁘다'는 말이 어울렸다. 작은 정원처럼 꾸며진 공간 뒤로 흰색 건물이 사방에 배치되어있다.아레키파는 페루 제 2의 도시지만 그리 크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아르마스 광장 주변은 한적하기까지 했다.아레키파 도시 내에는 관광지라고 할만한 곳이 많지 않았다. 그 중 가볼 만한 곳이 산타 카탈리나 수도원(Monasterio de Santa Catalina)인데 알록달록한 색상으로 더 유명하다. 입장료는 40솔로 조금 비싼 편이었다.평소라면 수도원은 관심 밖이었을 거다.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칠해진 내부는 무척 독특했을 뿐만 아니라 규모도 굉장히 컸다. 중간에 있는 나무와 작은 정원이 수도원을 더욱 아름답게 꾸며줬다. 스페인이 잉카제국을 정복한 후 페루인들에게 남아있는 '태양신'을 지우고 자신들의 카톨릭을 전파하기 위해 이 수도원이 세워졌다고 한다. 산타 카탈리나 수도원은 1579년부터 1970년까지 약 400년 간 역할을 하다가 개방된 곳이다. 수녀들이 생활했던 곳이라 수녀원이라고 불리기도 한다.고개를 들어 보면 곳곳에 있는 성화가 눈에 띈다. 수녀들이 이곳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작은 침대가 놓여 있는 방, 불을 피운 흔적이 남아있는 부엌도 살펴볼 수 있다.지금은 관광객들에게 개방된 곳이라 꽃을 놓고 예쁘게 꾸며 놓았다. 성가가 잔잔히 울리고 꽃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미로같이 복잡한 골목을 걸으며 과거로 돌아갔다. 비슷한 장소가 계속 나오기도 하지만 과거 종교를 의지하며 이곳에서 생활했던 수녀들의 삶을 엿볼 수 있어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의외로 이곳에 온 수녀들은 스페인 귀족들의 자녀라 많은 지참금을 내고 하녀도 거닐 수 있었다고 한다.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수도원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완전히 관광지로 바뀐 수도원에는 현재 수녀들이 없고, 근처 현대식으로 지어진 수녀원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수도원 그 자체로도 박물관의 역할을 하지만 어느 방에 들어가면 성화나 당시 쓰였던 물건들로 가득하다. 천지창조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쫓겨나는 장면이다. 개신교나 이슬람교에서는 신을 특정 이미지로 구체화하고 보이는 것을 숭배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성화도 금지하고 있지만, 카톨릭의 경우 성화에 관대한 편인데다가 오히려 식민지 건설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토착신앙이 아닌 카톨릭을 믿게 하기 위해서는 그림만큼 좋은 것이 없었을 테니까. 아레키파에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며칠 더 지내게 되었다. 쿠스코에 비해 물가가 저렴해 정말 좋았다.어김없이 시장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평소 먹어보지 못했던 음식이 보여 시도해봤다. 큰 고기 덩어리를 썰어 줬는데 돼지 껍데기에 고기가 조금 붙어 있었다. 이름을 물어보니 치차론이라고 했다. 딱딱한 부위도 조금 있지만 고기가 부드러워 보쌈을 먹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여행을 더 하다 알게 되었는데 보통 치차론은 돼지 껍데기 부위를 튀겨서 만드는 음식인데 이렇게 고기가 붙어있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치차론 과자도 있는데 그리 맛있지는 않았다.원래 내 계획은 아레키파에서 3일 정도 지내다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페루에 들어온 날부터 사진으로 봤던 콜카캐년이 바로 아레키파에서 출발한다. 얼마간 갈까 말까 망설이기를 수십 번, 결국 여행사에서 7솔이나 깎아준다는 말에(보통 50솔) 예약을 해버렸다. 콜카캐년은 트레킹으로도 갈 수 있지만 나는 투어를 이용해 당일치기로 떠났다. 새벽에 일어나 정신 없이 달리다 보니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고지대라 그런지 무척 추워 몸이 덜덜 떨었다.아침을 간단히 해결한 후 우리는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크게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었고 작은 성당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투어는 이곳을 꼭 거쳐가야 하는지 기념품을 파는 노점이 꽤 있었다.높은 산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알파카를 마치 애완동물처럼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당연히 팁을 목적으로 관광객들에게 사진을 찍으라고 꼬신다.야마와 독수리를 양 옆에 두고 사진을 찍는 남자는 무척 즐거워 보였다.콜카캐년은 미국의 그랜드캐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깊다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계곡의 깊이가 무려 3,270미터다.사진에서 봤던 그 장소, 콜카캐년 전망대가 보였다. 전망대 앞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의 깊은 계곡이다.날개를 활짝 펴고 비행하는 콘도르가 내 머리 위로 지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콜카캐년에서 기대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콘도르를 직접 보는 것인데 간혹 보지 못했다는 후기도 있다. 나 역시 콘도르는 딱 두 마리만 봤다.아무래도 멀리서 비행하고 있어 콘도르를 사진으로 담기란 무척 어려웠다.계곡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사람들은 사진을 찍는데 정신이 없었다.사실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짧은 시간 동안 돌아본 콜카캐년은 그리 만족스럽진 않았다. 콜카캐년으로 들어올 때 외국인은 입장료로 70솔이나 내야 했던 것도 아까웠다.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사진은 하나 남겼다.다음 장소로 이동한 곳에는 작은 박물관이 있었다. 기념품 상점과 코카사워를 팔고 있었지만 그리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대신 바로 앞에 있던 알파카와 놀았다. 알파카에게 먹이를 주던 아이가 더 귀여웠다.다른 사람들도 나와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은지 알파카 무리에게 관심을 보였다.내 친구 알파카와 사진을 찍었다.가이드는 사진 찍기 좋은 장소가 있다며 차를 세웠다. 아쉽게도 근사하게 펼쳐진 이 계곡을 사진으로 다 담을 수 없었다.투어의 마지막 일정은 생뚱맞게도 온천이었다. 여기도 입장료를 내야 하고 애초에 난 수영복도 가지고 오지 않아 밖에서 시간을 때웠다. 반대편에 있는 이곳도 온천인지 탕 안에 사람들이 있었다.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해 아래로 내려가 봤다. 나처럼 온천에 가지 않은 사람들은 근처 풀밭에 앉아 쉬거나 간식을 먹고 있었다. 나는 미국 아저씨랑 친해져 몇 마디 나누게 되었다.이런 고지대에도 마을이 있는 법, 아이들 몇 명이 개울가에 앉아 있었다. 말을 걸어보려 해도 별로 반응이 없었다. 점심을 먹으러 이동했을 때는 부페만 팔고 있어 내키지 않았다. 나는 비싸다고 밥을 먹지 않았는데 밖에 나갔다 온 미국 아저씨가 빵을 사와서 나에게 내밀었다. 미국 아저씨는 평소 여행을 다니면서 영상을 촬영하고, 사진도 편집해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다고 나에게 보여줬다.또 어디로 이동해 도착한 곳은 작은 돌탑이 가득했던 곳이었다.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이 5,976미터인 것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머리가 띵하게 아파올 정도로 고지대라는 것은 분명했다.바람도 세차게 불어 한기가 느껴졌다. 원래 콜카캐년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야마와 알파카를 보는 시간이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바로 아레키파에 도착했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야마와 알파카가 보이지 않아서 그냥 왔다고 했다.저녁에는 다시 아르마스 광장으로 나왔다. 평소와 달리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로 빼곡해 특별한 공연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주민들이 나와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은 것 같아 아레키파 대성당이 보이는 2층에서 저녁을 먹었다. 야경도 근사했고 저녁도 나쁘지 않았다. 혼자라는 사실만 빼곤.아레키파를 떠나기 전 야나와라 전망대(Mirador de Yanahuara)로 걸어갔다. 다리를 건너고 좁은 골목길을 따라 조금 걸어야 했다.전망대는 그리 높지 않다. 그래도 주변이 탁 트여 경치를 바라볼 수 있고, 무엇보다 저 멀리 있는 미스티 산이 잘 보인다.아레키파 사진을 보면 항상 뒤에 보이던 산이다.특별한 것은 그리 많지 않아도 아레키파가 마음에 들었는데 페루에서 너무 몸이 무거워진 것 같아 떠나기로 했다. 다음 목적지인 이카(Ica)까지는 거리가 멀어 야간 버스를 타는 게 아무래도 좋아 보였다.버스터미널에 도착하면 쿠스코처럼 여러 명의 삐끼가 달라붙을 줄 알았는데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는 그렇게 귀찮다고 여겼는데 아무도 오지 않으니 뭔가 외로웠다. 삐끼가 없었으니 내가 직접 버스 회사를 돌아다니며 가격을 물어봐야 했다. 너무 많은 버스 회사가 있어 어떤 곳이 괜찮을지 고민이 됐다. 이름이 있는 버스와 가격 차이는 거의 2배였다. 그때 내 옆에 있던 한 가족이 이것저것 조언을 해줬다. 유창하진 않지만 영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무척 반가웠다. 이카까지 적당한 가격을 알려줬고, 나는 카운터로 가서 가격을 조금 깎아 40솔에 표를 구입했다. 다시 돌아와 표를 구입했다고 하니 잘했다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놀랍게도 나보다 한참 어린 20대 중반이었고, 여동생은 케이팝을 좋아한다며 수줍게 한국말 몇 마디를 꺼내면서 음료수를 하나 줬다. 아주머니는 그런 우리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잠깐이지만 호의가 베풀던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