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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연희동 산책 “궁동 근린공원“

소인배(小人輩).com|2023년 7월 10일

서울 연희동 산책 “궁동 근린공원“ 서울 연희동 북서쪽에서는 궁동산을 찾을 수 있다. 궁동산을 지나면 홍제천으로 이어지는 길을 찾을 수 있는데, 궁동은 현재 근린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어서 연희동 주민들에게 산책길을 제공하고 있다. 오랜만에 휴일을 맞이해서 연희동 궁동산 둘레길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연희동에서 구전으로 전해지는 장희빈 우물터를 시작으로, 궁동산에 올라서 연희동을 내려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연희동 궁동 근린공원” 연희동에서 찾을 수 있는 궁동 근린공원은 서대문 04 버스를 이용해서 편하게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날은 개인적으로 산책을 위해서 방문한 날이기에 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올라가 보았다. 경사가 제법 있는 길이라 조금 숨이 찼지만, 궁동 공원에 올라서 내려다보는 연희동의 경치도 제법 장관이었다. “궁동산 체육관” 궁동 공원에서는 궁동산 체육관과 서대문 자활후견센터와 같은 시설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곳은 궁동산 체육관이었는데, 말 그대로 체육관 형태의 건물이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 보니, 여러 유명인들의 사인이 벽에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아마도 배드민턴을 배울 수 있는 곳으로 보였다. 내부의 시설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실내화로 갈아 신고 들어가라는 팻말이 있어서 따로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길을 따라서, 걷다 보면, 서대문 자활후견인센터를 찾을 수 있기도 하다.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기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건물이라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증가로 차도 육교“ 천천히 둘러보면서 걷다보니 육교가 눈에 들어왔다. 연희동에서 홍제천 방향으로 이동하다 보면, 보이는 육교이다. 길을 지나다니면서, 도로 위의 육교는 어떤 곳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우연히 길을 따라 걷다가 이 길을 마주해 보니, 일반적인 길과는 크게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차가 다닐 수 있고,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는 육교이다. 단, 육교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제법 운치 있기도 하다. 어느 육교에서든 육교에 올라서 차도를 내려다보는 경치는 특별한 분위기를 풍긴다. 증가로 차도 육교에서는 홍제천 방향으로 감상할 수 있기도 하고, 연희동 방향으로 감상할 수 있기도 하다. “안산도시 자연공원으로 이어지는 육교” 증가로 차도 육교를 건너면, 안산 도시 자연공원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이 날은 궁동 근린공원만 가볍게 둘러보려고 돌아본 날이었기에 안산 자연공원까지는 가보지 않았다. 다음에 시간이 되면 안산 공원도 한 번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희동에서 찾을 수 있는 부담스럽지 않은 높이의 궁동산 근린공원, 산책이 필요한 시간에 가볍게 둘러보기에 좋은 공원이다. “서울 연희동 궁동 근린공원” 주소 :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산 118-1

서울 연희동 산책 “궁동 근린공원“

소인배(小人輩).com|2023년 7월 10일

서울 연희동 산책 “궁동 근린공원“ 서울 연희동 북서쪽에서는 궁동산을 찾을 수 있다. 궁동산을 지나면 홍제천으로 이어지는 길을 찾을 수 있는데, 궁동은 현재 근린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어서 연희동 주민들에게 산책길을 제공하고 있다. 오랜만에 휴일을 맞이해서 연희동 궁동산 둘레길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연희동에서 구전으로 전해지는 장희빈 우물터를 시작으로, 궁동산에 올라서 연희동을 내려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연희동 궁동 근린공원” 연희동에서 찾을 수 있는 궁동 근린공원은 서대문 04 버스를 이용해서 편하게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날은 개인적으로 산책을 위해서 방문한 날이기에 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올라가 보았다. 경사가 제법 있는 길이라 조금 숨이 찼지만, 궁동 공원에 올라서 내려다보는 연희동의 경치도 제법 장관이었다. “궁동산 체육관” 궁동 공원에서는 궁동산 체육관과 서대문 자활후견센터와 같은 시설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곳은 궁동산 체육관이었는데, 말 그대로 체육관 형태의 건물이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 보니, 여러 유명인들의 사인이 벽에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아마도 배드민턴을 배울 수 있는 곳으로 보였다. 내부의 시설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실내화로 갈아 신고 들어가라는 팻말이 있어서 따로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길을 따라서, 걷다 보면, 서대문 자활후견인센터를 찾을 수 있기도 하다.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기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건물이라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증가로 차도 육교“ 천천히 둘러보면서 걷다보니 육교가 눈에 들어왔다. 연희동에서 홍제천 방향으로 이동하다 보면, 보이는 육교이다. 길을 지나다니면서, 도로 위의 육교는 어떤 곳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우연히 길을 따라 걷다가 이 길을 마주해 보니, 일반적인 길과는 크게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차가 다닐 수 있고,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는 육교이다. 단, 육교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제법 운치 있기도 하다. 어느 육교에서든 육교에 올라서 차도를 내려다보는 경치는 특별한 분위기를 풍긴다. 증가로 차도 육교에서는 홍제천 방향으로 감상할 수 있기도 하고, 연희동 방향으로 감상할 수 있기도 하다. “안산도시 자연공원으로 이어지는 육교” 증가로 차도 육교를 건너면, 안산 도시 자연공원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이 날은 궁동 근린공원만 가볍게 둘러보려고 돌아본 날이었기에 안산 자연공원까지는 가보지 않았다. 다음에 시간이 되면 안산 공원도 한 번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희동에서 찾을 수 있는 부담스럽지 않은 높이의 궁동산 근린공원, 산책이 필요한 시간에 가볍게 둘러보기에 좋은 공원이다. “서울 연희동 궁동 근린공원” 주소 :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산 118-1

서울 연희동 ”장희빈 우물터“

소인배(小人輩).com|2023년 7월 9일

서울 연희동 ”장희빈 우물터“ 서울 연희동에는 구전으로 전해지는 장희빈 우물터가 있다. 연희삼거리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이동하면 우물터를 찾을 수 있는데, 이곳이 바로 ”장희빈 우물터“로 전해지는 곳이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장희빈 우물터“ 장희빈 우물터 일대는 예로부터 연희궁 앞이라 하여 궁뜰이라고 불렸고, 궁동, 궁말, 대궐재, 장희빈 우물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또한, 마을 앞의 느티나무가 정자와 같다고 하여 정자말, 정잣말, 정자동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근처의 궁동 근린공원 아래에는 조선 후기 숙종의 총애를 받던 장희빈의 친정집으로 알려진 오래된 집이 있었고, 그 동쪽 아래에는 장희빈이 사용했다고 알려진 우물이 있었으며, 그 옆에는 500년가량 된 느티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우물터만 남아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장희빈 우물의 유래“ 장희빈 우물터 일대는 조선시대 초부터 이궁인 연희궁이 있어 예로부터 이곳은 공말, 궁들, 대결재와 양실 최초의 풍받을 얻어 서장실, 장희빈 우물이란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최초의 이궁은 정종 3년(1400), 정중이 아우인 태종에게 왕위를 선위 후 이 곳을 피궁으로 사용하여 세종 7년(1425) 8월 연희궁이라 칭하게 되었으며, 이에 궁실관리들과 궁녀들의 사가가 있어 궁말 여러 곳에 우물들이 있었다고 하나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간직하고 있는 샘이 바로 "장희빈 우물"이다. 그 후 숙종(1674~1720) 때 폐비된 인현왕후를 뒤 이은 희빈장 씨가 폐서인의 몸으로 이곳 사가에 잠시 머물 때 마셨던 우물로 전해지고 있으나 기름의 고증이나 검증된 바는 없다. 그러나 연희동에서 오래전부터 구전으로 “이 우물은 장희빈이 마신 물"이라고 옛 어른들이 대대로 가꾸어 오고 있어 우리동 보물찾기 사업으로 선정하여 복원하게 되었다. “숙종의 빈, 경종의 어머니 장희빈“ 장희빈은 숙종의 빈이며, 경종의 어머니이다. 숙종보다는 2년 연상으로 본명은 장옥정으로 전해지며, 조선 왕조 역사상 유일하게 궁녀 출신으로 왕비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여인이다. 1688년 소의로 있을 때, 왕자 윤(뒤의 경종)을 낳았고, 다음 해 1월 윤이 원자로 봉해지면서 희빈에 오르게 되었다. 그 해 7월 인현왕후 민 씨가 폐위되고, 1690년 윤이 세자로 책봉되면서 왕비로 책립 되었다. 이후 1694년 4월 민비가 복위됨에 따라 다시 희빈으로 강등되었고 오빠 정희재와 함께 복위를 도모했으나 무산되었다. 1701년 민비가 병으로 죽자, 궁인, 무녀 등과 함께 민비를 무고했다는 서인의 탄핵을 받고 사사되었으며, 숙종은 이후 빈을 비로 승격하는 것을 법으로 금했다. ”연희동의 장희빈 우물터“ 연희동의 한적한 동네에서 찾을 수 있는 장희빈 우물터는 잘 복원되어 유지가 되어 오고 있다. 하지만, 방문했던 날에는 우물의 뚜껑이 닫혀 있어서 내부를 볼 수는 없었다. 세월이 흘러서, 이제는 연희궁을 근처에서 찾을 수는 없지만, 장희빈의 추억을 담고 있는 우물터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 연희동, 장희빈 우물“ 주소 : 서울 서대문고 연희로 15길 74

서울 연희동 ”장희빈 우물터“

소인배(小人輩).com|2023년 7월 9일

서울 연희동 ”장희빈 우물터“ 서울 연희동에는 구전으로 전해지는 장희빈 우물터가 있다. 연희삼거리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이동하면 우물터를 찾을 수 있는데, 이곳이 바로 ”장희빈 우물터“로 전해지는 곳이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장희빈 우물터“ 장희빈 우물터 일대는 예로부터 연희궁 앞이라 하여 궁뜰이라고 불렸고, 궁동, 궁말, 대궐재, 장희빈 우물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또한, 마을 앞의 느티나무가 정자와 같다고 하여 정자말, 정잣말, 정자동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근처의 궁동 근린공원 아래에는 조선 후기 숙종의 총애를 받던 장희빈의 친정집으로 알려진 오래된 집이 있었고, 그 동쪽 아래에는 장희빈이 사용했다고 알려진 우물이 있었으며, 그 옆에는 500년가량 된 느티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우물터만 남아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장희빈 우물의 유래“ 장희빈 우물터 일대는 조선시대 초부터 이궁인 연희궁이 있어 예로부터 이곳은 공말, 궁들, 대결재와 양실 최초의 풍받을 얻어 서장실, 장희빈 우물이란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최초의 이궁은 정종 3년(1400), 정중이 아우인 태종에게 왕위를 선위 후 이 곳을 피궁으로 사용하여 세종 7년(1425) 8월 연희궁이라 칭하게 되었으며, 이에 궁실관리들과 궁녀들의 사가가 있어 궁말 여러 곳에 우물들이 있었다고 하나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간직하고 있는 샘이 바로 "장희빈 우물"이다. 그 후 숙종(1674~1720) 때 폐비된 인현왕후를 뒤 이은 희빈장 씨가 폐서인의 몸으로 이곳 사가에 잠시 머물 때 마셨던 우물로 전해지고 있으나 기름의 고증이나 검증된 바는 없다. 그러나 연희동에서 오래전부터 구전으로 “이 우물은 장희빈이 마신 물"이라고 옛 어른들이 대대로 가꾸어 오고 있어 우리동 보물찾기 사업으로 선정하여 복원하게 되었다. “숙종의 빈, 경종의 어머니 장희빈“ 장희빈은 숙종의 빈이며, 경종의 어머니이다. 숙종보다는 2년 연상으로 본명은 장옥정으로 전해지며, 조선 왕조 역사상 유일하게 궁녀 출신으로 왕비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여인이다. 1688년 소의로 있을 때, 왕자 윤(뒤의 경종)을 낳았고, 다음 해 1월 윤이 원자로 봉해지면서 희빈에 오르게 되었다. 그 해 7월 인현왕후 민 씨가 폐위되고, 1690년 윤이 세자로 책봉되면서 왕비로 책립 되었다. 이후 1694년 4월 민비가 복위됨에 따라 다시 희빈으로 강등되었고 오빠 정희재와 함께 복위를 도모했으나 무산되었다. 1701년 민비가 병으로 죽자, 궁인, 무녀 등과 함께 민비를 무고했다는 서인의 탄핵을 받고 사사되었으며, 숙종은 이후 빈을 비로 승격하는 것을 법으로 금했다. ”연희동의 장희빈 우물터“ 연희동의 한적한 동네에서 찾을 수 있는 장희빈 우물터는 잘 복원되어 유지가 되어 오고 있다. 하지만, 방문했던 날에는 우물의 뚜껑이 닫혀 있어서 내부를 볼 수는 없었다. 세월이 흘러서, 이제는 연희궁을 근처에서 찾을 수는 없지만, 장희빈의 추억을 담고 있는 우물터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 연희동, 장희빈 우물“ 주소 : 서울 서대문고 연희로 15길 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