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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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별궁 “운현궁”

By 소인배(小人輩).com | 2019년 3월 6일 | 
조선의 별궁 “운현궁” 서울에는 5대 메이저 궁궐 외에도 작은 궁궐들이 있습니다. 별궁이라고 칭하기도 하는 곳들이 있는데요. 그중에서 흔히 “대원군궁”으로 알려진 “운현궁”이 있기도 합니다. 대원군궁으로 알려진 궁궐은 3곳이 있는데요. 도정궁, 누동궁과 이곳, 운현궁이 있는데, 3곳의 대원군궁 중에서 유일하게 제 모습을 온전하게 유지하고 있는 곳은 “운현궁” 밖에 없다고 하지요. “대한제국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과 그의 식솔들이 살았던 운현궁” 운현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운니동에 위치하고 있는 궁궐로 대한제국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 어머니 여흥부대부인 민 씨가 기거했던 사가였습니다. 또한 이 곳은 고종이 출생한 곳이기도 하고, 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지냈던 곳이기도 하지요. “고종의 생가로 알려진 운현궁” 1863년 고종이 12세의 나위로 즉위하고, 대원군이 섭저아게 되면서 이 곳은 고종의 생가로 잘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이 곳의 이름인 운현은 조선시대 천문을 맡아보던 관청인 서운관 앞의 고개라는 의미에서 운현이라고 붙였다고 하지요. “다른 조선의 궁궐과 마찬가지로 축소된 운현궁” 다른 조선시대의 궁궐과 마찬가지로, 운현궁 역시도 기존의 규모에 비해서 현재는 많이 축소된 편입니다. 과거 흥선대원군의 권세가 강했을 때는 오늘날의 덕성여대 부설 평생교육원으로 쓰이는 운현궁 양관을 포함한 운현초등학교, 일본문화원까지 포함한 모든 지역이 운현궁에 속했다고 하지요. “현재 남아있는 운현궁의 건축물들...” 하지만, 현재는 규모가 축소되어서 많은 건물이 남아있지는 않습니다. 대원군이 주로 사용했다는 아재당, 사랑채인 노인당, 안채인 노락당, 별채인 이로당 등이 있으며, 운현궁의 경비와 관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거처했던 수직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운현궁 뒤쪽으로는 서양식 건물이 하나 눈에 들어오는데, 이 건물이 바로 “양관”이라는 곳인데요. 과거에는 운현궁에 속했던 건물이지만, 이제는 덕성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조선의 별궁 중의 하나로, 대원군궁이라고 불리는 “운현궁”에 대해서 한 번 살펴보았습니다. “서울특별시 종로, 운현궁”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운니동 삼일대로 464 전화번호 : 02-766-9090 홈페이지 : http://www.unhyeongung.or.kr/ 운영시간 : (11월-3월) 9:00 - 18:00 (마지막 입장 마감 30분전) / (4월-10월) 9:00 - 19:00 (마지막 입장 마감 30분 전) / 월요일 휴관 특징 : 흥선대원군, 고종 생가, 조선, 대한제국

명당 (2018) / 박희곤

By 기겁하는 낙서공간 | 2018년 10월 29일 | 
출처: 다음 영화 효명세자의 묫자리를 쓰는 과정에서 반기를 들었다가 직책에서 쫓겨나고 부인과 아이가 살해 당한 지관 박재상(조승우)은 복수를 다짐하며 민가에 땅을 봐주며 10여년을 지낸다. 복수하려는 가문의 수장 김좌곤(백윤식)의 뒤를 파며 김씨 가문의 선조가 묻힌 곳을 찾던 박재상은 자신과 같은 목적을 가진 왕족 흥선(지성)과 만나게 된다. 조선시대 권력 교체 시기 야심가들과 엮인 지관의 휘둘리는 인생을 다룬 역사 스릴러. 주요 등장인물이 역사의 풍운아들이고 결과가 이미 뻔하며 주인공의 운명 역시 완전한 해피엔딩일 수 없다는 점에서 [관상]의 직계 속편에 해당한다. 역사적 사실에 극화적인 각색이 더 많고 주인공과 주변 인물이 더 전형적인 인물로 만들며 성격이 달라졌는데, 각색에 현장감이 대단했던 만

원촌동 숭현서원, 유학자 8인 배향된 팔현묘

By 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8년 7월 19일 | 
대전에는 서구 도산서원과 유성구 숭현서원이 있는데요. 그중 숭현서원(대전광역시기념물 제27호)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된 후 복원되지 못하다가 비교적 최근인 2001년에 복원이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곳입니다.  지금 이곳에서는 그렇게 풍광 좋은 자연을 만나기 힘들겠지만 예전에 이 앞에 아무것도 없을 때는 지금의 갑천이 흐르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숭현서원 입구에 있는 영귀루는 선비들이 주변 풍광을 감상하며 시를 읊조리기도 하던 숭현서원의 문루입니다.  현재 숭현서원은 8월 말까지 동재와 서재 지붕 및 관리사 동의 보수공사가 진행 중인데요. 협문과, 기와, 내부 보수 및 외부 정화조 신설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숭현서원은 1585년(선조 18)에 정광필, 김정, 송인수를 모시기 위해 용두록에 세워 삼현서원이라고 불렸는데요. 1592년 사액을 받았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9년(광해군 1)에 중건했습니다.      숭현서원은 1695년(숙종 21) 김장생·송준길·송시열을 추가 배향했습니다. 1585년은 참 평화로운 조선의 시대였죠. 7년 후의 임진왜란이 발발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해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국 통일을 하고 2년 후 관백이 되었습니다. 매번 이 길을 지나가면서 가는 곳의 이정표를 보았지만 그냥 작은 건물 두어 개쯤 남아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는 규모가 있는 편이네요.  이곳의 공사가 가장 크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다른 곳의 입구는 막혀 있지만 이곳을 통하면 숭현서원의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고택 공사는 복원이 생명이라고 합니다.   송시열이 이곳에 관련내용을 적었는데 지금은 옛날 내용을 적어서 새롭게 새웠습니다.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을 역임한 정광필. 이조참판, 대사헌 등을 거쳐 형조판서를 역임한 김정. 사헌부 대사헌과 관찰사등을 역임한 송인수. 이 모두를 모시는 숭현서원은 지금의 목동 자리에 있었다가 이곳으로 옮겨져 복원됐고요. 계룡시에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김장생과 송촌동 동춘당 송준길, 송시열이 추가로 모셔지게 됩니다.    향교의 경우 명륜당, 동재, 서재등의 건물이 일률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면 서원들은 대체적으로 웅장하면서도 세미함이 살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립기관과 사립기관의 차이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듯 합니다.   여러곳을 돌아다니며 향교와 서원을 많이 만나보는데 확실히 서원의 건축물들이 더 기교가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숭현서원이 복원을 마치고 새단장한 모습으로 돌아오길 기대해봅니다.    

15_0325 조선말, 왕실 문화를 찾아 운현궁을 거닐어 보고...

By 김영윤의 여행보따리 | 2015년 3월 25일 | 
조선말, 왕실 문화를 찾아 운현궁을 거닐어 보고... 오늘 오후 늦게 들르게 된 운현궁은 우리나라 왕실 문화의 산실이라 하는 곳이다. 이곳에 연관된 인물은 흥선 대원군과 고종 그리고 명성황후를 떠올리게 된다. 사적 제 257호로 지정되어 있는 운현궁은 1864년 고종이 지었고 1996년에 증수하였다고 하며, 이곳은 조선 26대 임금인 고종이 등극하기 전에 살았던 잠저로서, 생부 흥선 대원군 이하응의 집이다. 흥선 대원군은 이곳을 무대로 10여 년간 집정하면서 어린 아들을 대신해서 정치를 하였다. 서운관이 있던 고개에서 유래된 지명을 따서 운현궁이라 불렀다고, 1864년에 노안당을 짓고 1869년에 이로당과 영로당을 세웠다. 창덕궁을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고종 전용 경근문과 흥선 대원군을 위한 공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