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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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자연동굴 용장굴 있어..도평동 용장사 터

[향토문화] 자연동굴 용장굴 있어..도평동 용장사 터

[향토문화] 자연동굴 용장굴 있어..도평동 용장사 터 https://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1812 삼면이 멋스런 바위절벽으로 감싸인 아늑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도평동 용장사 터 위치 ; 제주시 도평동 1038-1번지(장군내길60-20)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절터 용장사는 삼면이 멋스런 바위절벽으로 감싸인 아늑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용장굴이라고도 불리는데 실제로 용장굴이라는 자연동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승려 김연선이 1933년 이곳에 위봉사 제주포교소로 처음 사찰을 설립했다. 4·3 시기에는 승려 백삼만(속명 백인수)씨가 주지로 있었는데 도평 주민들이 용장굴로 피신하기도 했다. 1949년 1월 3일.......

[향토문화] 현재 시내버스 종점 이용..도평동 뒷밭(학살터)

[향토문화] 현재 시내버스 종점 이용..도평동 뒷밭(학살터)

[향토문화] 현재 시내버스 종점 이용..도평동 뒷밭(학살터) https://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1783 무장대로 위장한 경찰과 특공대원들, 주민 15명 하원천변 뒷밭으로 데려가 총살 도평동 뒷밭(학살터) 위치 ; 도평동 779번지 인근 도근천(하원천)변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마을 터 1949년 1월 3일 무장대로 위장한 경찰과 특공대원들은 도평국민학교에 집합한 마을 사람들 중에서 도피자 가족이라며 주민들을 호명해 15명을 하원천변 뒷밭으로 데려가 총살했다. 도평동 노인회장 최후상(1935년생)씨는 “이 날 총살된 사람 중에는 어린이나 노인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고, 일가족 5∼6명이 학살된 집안도 있었다”.......

[향토문화] 원래 기와를 굽던 마을..도평동 왯벵디(잃어버린마을) 터

[향토문화] 원래 기와를 굽던 마을..도평동 왯벵디(잃어버린마을) 터

[향토문화] 원래 기와를 굽던 마을..도평동 왯벵디(잃어버린마을) 터 https://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1722 왯벵디 마을 터에는 대나무숲과 폭낭, 올레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도평동 왯벵디(잃어버린마을) 터 위치 ; 도평동 1104, 1112번지 일대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마을 터 "> 왯벵디는 와평동(瓦坪洞)이라고도 쓰며 원래 기와를 굽던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4·3 시기에 10여 호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당시 호주는 김기진, 김명하, 김무하, 김병로, 김병로 父, 김병헌, 김태문, 박경원, 백◎◎, 신목수, 신사연, 신용길, 신창수, 신창수 父, 양진하, 최운송 등이었다. 도평동은 해안 마을이지만 왯벵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