哲學本色
Posts
26 posts
루시(이시훈)
루시(LUCY), 2014년 9월 6일) 1. 이디오피아? 수단? 예전의 지식이라 기억이 희미하다. 70년대 초반 중동전쟁과 오일쇼크, 스태그플레이션 위기가 엄습해오던 그때, 일단의 젊은 연구자들이 그들의 캠프에서 술을 마시며 비틀즈의 ‘루시 인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드’를 틀어놓고 있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하나의 뼛조각들에 환호하고 있었다. 그들은 동아프리카 내륙에서 고인류의 흔적을 찾는 연구팀이었다. 그들은 기존 오스피랄로피테쿠스 중에서도 새롭고 오래된 종의 뼈를 찾아냈고, 골격 상당수가 보전된 이 여성의 뼈에 그들은 자신들이 듣고 있던 비틀즈의 노래 제목을 따서 루시라는 이름을 붙였다. 2. 인류는 1억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의 유전자를 다른 개체로 전승해왔다. 우린 그것을 번식
뻐꾸기 둥지를 보고 난 단상 -생각 연습장(배종렬)
요즘 제가 술도 안마시고 꼬박 꼬박 챙겨보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바로 kbs2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일일 드라마 ‘뻐꾸기 둥지’ 인데요,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나면 기가막힌 타이밍으로 드라마가 시작을 하기에 부른 배를 붙잡고 게으름을 피우면서 보기 안성맞춤이지요.중 장년층의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일 연속극이라 드라마의 호흡도 길고, 주부들의 공감과 분노를 불러 일으키기 딱 좋은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드라마를 소개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니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드라마를 보다보면 생겨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해 볼까 합니다. 1.우선은 계층이동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드라마에서 악역을 맡고 있는 이화영은 나레이터 모델을 하고 미혼모이며, 불임에 힘들어 하는 백연희 대신에 정병
해무(이시훈)
1. 이 영화에는 전반적으로 설국열차의 냄새가 난다. 봉준호가 직접 연출하진 않았지만 기획과 각본, 제작 등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고, 감독도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을 함께 한 이라는 점이 그런 냄새에 논리적 근거를 제공한다. 영화의 결말을 철저히 비교해서 보라, 기존 구조의 붕괴와 해체, 탈주를 통한 새로운 가능성의 발견, 남녀 두 사람이 새로운 삶의 조건에 살아남은 것 등..ㅎ 물론 해무의 결말은 설국열차의 결말이 주는 상상력과는 조금 다른 상상력을 제공한다. 아니 설국열차의 결말이 상상력을 제공한다면 해무의 결말은 약간의 상상력과 함께 여운을 준다. 2. 그리고 이 영화에는 좌파적 비판 정신이 묻어난다. 한국 자본주의의 문제는 영화의 전개를 이끄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영화는 '전진호'라는
신은 없다 (Religious, 2008)
신은 없다 (Religious, 2008)래리 찰스 감독영화는 일종의 도장깨기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빌 마허가 종교 지도자, 스스로를 예수로 여기는 자, 일반 신도, 개신교 테마 파크에서 예수로 일하는 뮤지컬 배우, 기독교 신앙을 공표하는 국회의원, 주지사, 과학자 뿐만 아니라 이슬람 지도자, 몰몬교, 몰몬교에서 나온 사람들, 마리화나교, 이슬람 동성애자들까지 만나며 그들의 신앙을 묻고, 신앙의 실체가 과연 존재하는지를 알아보려는 방식.(개신교 테마파크가 플로리다에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무슨 공룡 테마 파크도 아니고.) 빌 마허가 만나는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거의 근본주의적 태도를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그가 하는 질문은 왜 공관복음에서 예수에 대한 기술이 일치하지 않는지, 청동기 문화에서 정립된

여름의 끝(The End of Summer, 2013)
여름의 끝 (The End of Summer, 2013) 쿠마키리 가즈요시 감독 1. 토마코는 신의 정부이다. 토마코는 한 남자와 몇 년전 결혼하여 딸까지 낳아 살고 있다 료타를 알게 되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이혼하여 도쿄로 가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료타가 아니라 우연히 술을 따르는 일을 하다 만나게 된 신과 함께 지내게 된다. 신과 함께 행복하다가 여겨온 그녀의 삶에 다시 료타가 등장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2. 그러니까, 료타가 아이자와 토마코의 집에 처음 들어오게 된 계기는 토마코가 그저 '심심했기' 때문이다. 본가로 돌아간 신 없이 감기를 앓던 토마코는 그저 심심했기 때문에 료타를 자신의 집으로 부른다. 어쩌면 그 심심함은 토마코가 느낀 외로움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