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스의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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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 자격증 없이 안내하다 걸리면 벌금이 최고 160만원

초유스의 유럽|2024년 4월 11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은 아직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 속에 묻혀 있다. 우크라이아와의 전쟁에서 푸틴에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갈 때 다음 전선으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곳이 바로 18세기 초부터 러시아 영향권에 있었던 발트 3국이다. 발트 3국에서도 가장 전쟁 발발 가능성이 높은 나라가 벨라루스와 러시아 영토 칼리닌그라드와 국경을 이루고 있는 리투아니아다. 이른바 수바우키 회랑이다. 수바우키라는 이름은 이 지역이 폴란드 수바우키(Suwałki) 지방과 리투아니아 수발키야 (Suvalkija)  지방이 국경을 이루고 있는데서 유래되었다. 이 회랑의 총길이는 80 km다. 이 회랑만 점령한다면 발트 3국을 폴란드와 서유럽로부터 완전히 차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 상황 속에서도 이곳의 일상생활은 예전처럼 평온하기만 하다. 특히 이상기온현상으로 4월 초 리투아니아는 섭씨 29.2라는 역대 최대 기록을 세웠다. 보통 4월 하순이나 5월 초순에 피는 일본 벚꽃이 올해는 4월 초순에 피기 시작했다. 벌써 창문 너머로 단풍나무가 연두색으로 겨울 나뭇가지를 완연히 물드리고 있다. 아래 영상은 4월7일 찍은 벚꽃공원의 모습이다. 3월 초순부터 인근 폴란드를 비롯한 유럽 나라들의 관광객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 도시인 빌뉴스를 찾아오고 있다. 4월 초순부터 한국 관광객들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리투아니아는 8개월 지속되는 관광안내사(편의상 가이드로 칭한다) 수업에 참석하고 시험을 통과해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에게만 가이드 행위를 할 수 있다. 물론 가이드는 영업활동을 하기 전에 세무소에 신고를 하고 일정한 세금을 내고 영업허가증을 받는다. 리투아니아 유네스코 세계문화 빌뉴스 구시가지 전경 드물지 않게 리투아니아 가이드협회는 리투아니아 정부 근로감독기관과 무자격 가이드 여부를 가리기 위해 검문을 실시하고 있다(관련글). 리투아니아 행정위반법 150조(내용)에 따르면 면허나 허가없이 영업활동을 할 때 개인에게 부과되는 벌금은 390유로에서 최고 1,100유로다. 리투아니아 행정위반법 127조(내용)에 따르면 불법적으로 영업행위를 하는 사람을 이용해 영업 활동을 하는 자(관광회사 등이 해당)는 2,200유로에서 최고 4,000유로의 벌금을 내야 한다. 초유스(최대석)는 가이드 자격증을 취득해 합법적으로 리투아니아에서 관광안내 활동을 하고 있다. 리투아니아아 빌뉴스, 라트비아 리가, 에스토니아 탈린 등을 비롯해 발트 3국 투어 가이드가 필요하신 분은 [email protected] 또는 카톡 아이디 chojus로 연락주십시오.

가이드 자격증 없이 안내하다 걸리면 벌금이 최고 160만원

초유스의 유럽|2024년 4월 11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은 아직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 속에 묻혀 있다. 우크라이아와의 전쟁에서 푸틴에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갈 때 다음 전선으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곳이 바로 18세기 초부터 러시아 영향권에 있었던 발트 3국이다. 발트 3국에서도 가장 전쟁 발발 가능성이 높은 나라가 벨라루스와 러시아 영토 칼리닌그라드와 국경을 이루고 있는 리투아니아다. 이른바 수바우키 회랑이다. 수바우키라는 이름은 이 지역이 폴란드 수바우키(Suwałki) 지방과 리투아니아 수발키야 (Suvalkija)  지방이 국경을 이루고 있는데서 유래되었다. 이 회랑의 총길이는 80 km다. 이 회랑만 점령한다면 발트 3국을 폴란드와 서유럽로부터 완전히 차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 상황 속에서도 이곳의 일상생활은 예전처럼 평온하기만 하다. 특히 이상기온현상으로 4월 초 리투아니아는 섭씨 29.2라는 역대 최대 기록을 세웠다. 보통 4월 하순이나 5월 초순에 피는 일본 벚꽃이 올해는 4월 초순에 피기 시작했다. 벌써 창문 너머로 단풍나무가 연두색으로 겨울 나뭇가지를 완연히 물드리고 있다. 아래 영상은 4월7일 찍은 벚꽃공원의 모습이다. 3월 초순부터 인근 폴란드를 비롯한 유럽 나라들의 관광객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 도시인 빌뉴스를 찾아오고 있다. 4월 초순부터 한국 관광객들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리투아니아는 8개월 지속되는 관광안내사(편의상 가이드로 칭한다) 수업에 참석하고 시험을 통과해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에게만 가이드 행위를 할 수 있다. 물론 가이드는 영업활동을 하기 전에 세무소에 신고를 하고 일정한 세금을 내고 영업허가증을 받는다. 리투아니아 유네스코 세계문화 빌뉴스 구시가지 전경 드물지 않게 리투아니아 가이드협회는 리투아니아 정부 근로감독기관과 무자격 가이드 여부를 가리기 위해 검문을 실시하고 있다(관련글). 리투아니아 행정위반법 150조(내용)에 따르면 면허나 허가없이 영업활동을 할 때 개인에게 부과되는 벌금은 390유로에서 최고 1,100유로다. 리투아니아 행정위반법 127조(내용)에 따르면 불법적으로 영업행위를 하는 사람을 이용해 영업 활동을 하는 자(관광회사 등이 해당)는 2,200유로에서 최고 4,000유로의 벌금을 내야 한다. 초유스(최대석)는 가이드 자격증을 취득해 합법적으로 리투아니아에서 관광안내 활동을 하고 있다. 리투아니아아 빌뉴스, 라트비아 리가, 에스토니아 탈린 등을 비롯해 발트 3국 투어 가이드가 필요하신 분은 [email protected] 또는 카톡 아이디 chojus로 연락주십시오.

가이드 자격증 없이 안내하다 걸리면 벌금이 최고 160만원

초유스의 유럽|2024년 4월 11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은 아직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 속에 묻혀 있다. 우크라이아와의 전쟁에서 푸틴에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갈 때 다음 전선으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곳이 바로 18세기 초부터 러시아 영향권에 있었던 발트 3국이다. 발트 3국에서도 가장 전쟁 발발 가능성이 높은 나라가 벨라루스와 러시아 영토 칼리닌그라드와 국경을 이루고 있는 리투아니아다. 이른바 수바우키 회랑이다. 수바우키라는 이름은 이 지역이 폴란드 수바우키(Suwałki) 지방과 리투아니아 수발키야 (Suvalkija)  지방이 국경을 이루고 있는데서 유래되었다. 이 회랑의 총길이는 80 km다. 이 회랑만 점령한다면 발트 3국을 폴란드와 서유럽로부터 완전히 차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 상황 속에서도 이곳의 일상생활은 예전처럼 평온하기만 하다. 특히 이상기온현상으로 4월 초 리투아니아는 섭씨 29.2라는 역대 최대 기록을 세웠다. 보통 4월 하순이나 5월 초순에 피는 일본 벚꽃이 올해는 4월 초순에 피기 시작했다. 벌써 창문 너머로 단풍나무가 연두색으로 겨울 나뭇가지를 완연히 물드리고 있다. 아래 영상은 4월7일 찍은 벚꽃공원의 모습이다. 3월 초순부터 인근 폴란드를 비롯한 유럽 나라들의 관광객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 도시인 빌뉴스를 찾아오고 있다. 4월 초순부터 한국 관광객들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리투아니아는 8개월 지속되는 관광안내사(편의상 가이드로 칭한다) 수업에 참석하고 시험을 통과해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에게만 가이드 행위를 할 수 있다. 물론 가이드는 영업활동을 하기 전에 세무소에 신고를 하고 일정한 세금을 내고 영업허가증을 받는다. 리투아니아 유네스코 세계문화 빌뉴스 구시가지 전경 드물지 않게 리투아니아 가이드협회는 리투아니아 정부 근로감독기관과 무자격 가이드 여부를 가리기 위해 검문을 실시하고 있다(관련글). 리투아니아 행정위반법 150조(내용)에 따르면 면허나 허가없이 영업활동을 할 때 개인에게 부과되는 벌금은 390유로에서 최고 1,100유로다. 리투아니아 행정위반법 127조(내용)에 따르면 불법적으로 영업행위를 하는 사람을 이용해 영업 활동을 하는 자(관광회사 등이 해당)는 2,200유로에서 최고 4,000유로의 벌금을 내야 한다. 초유스(최대석)는 가이드 자격증을 취득해 합법적으로 리투아니아에서 관광안내 활동을 하고 있다. 리투아니아아 빌뉴스, 라트비아 리가, 에스토니아 탈린 등을 비롯해 발트 3국 투어 가이드가 필요하신 분은 [email protected] 또는 카톡 아이디 chojus로 연락주십시오.

허정숙 - 정문주가 쓴 에스페란토 글을 발굴하다

초유스의 유럽|2024년 4월 11일

오늘 페이스북이 1년 전 2023년 4월 11일에 올린 글을 상기시켜 주면서 공유할 것을 제안했다. 내용인즉 필명 정문주의 실명이 허정숙이다.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자 허정숙이 쓴 에스페란토 글을 페이스북을 통해 지인들에게 알렸다. 하지만 기록용으로 사용하는 이 블로그에는 올리지 않았다. 1년 전 당시 차일피일 미루었을 것이다. 1990년 헝가리 엘테대학교에서 에스페란토학을 전공할 때 부다페스트에 살고 있는 에스페란토 도서 및 정기간행물 등을 수집하는 퍼이시 카로이(Fajszi Károly)를 방문했다. 개인도서관으로 사용하는 그의 넓은 아파트에서 1938년과 1939년 홍콩에서 발행된 잡지에 실린 안우생(Elpin)의 글을 찾아냈다. 안우생(1907-1991)은 안중근의 동생 안공근의 장남이다. 이후 여러 해를 거쳐 헝가리,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등지의 도서관에서 그의 글들을 직접 수집했다. 그 결과물이 2004년 한국에스페란협회가 발행한 《Verkoj de Elpin - 안우생 문집》이다. 이 책에 실린 작품수는 총 40편이다. 자작시 3편, 번역시 14편, 원작 단편소설 2편, 번역 단편소설 12편, 번역 극본 4편, 기타 5편이다. [관련글: (안우생의) '에스페란토'로 항일을 노래하다 (한겨레 21 504호)]. 당시 간행물에서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에스페란티스토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글도 함께 복사했다. 코로나 시대 2020년 11월부터 리투아니아에서 살면서 매주 수요일 한국에 살고 있는 에스페란티스토들에게 안우생의 문학작품 공부를 줌(Zoom)으로 지도하는 중에 원문을 찾아볼 일이 종종 생겼다. 이때 보관하고 있던 자료들 사이에 임철애(Im Ĉol Aj)가 쓴 (조선 여성들의 생활상)가 우연히 눈이 띄었다. 이 글은 1938년 8월호 《Orienta Kuriero》에 게재되었다. 임철애라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독립운동가 박차정이다. [관련글: 박차정 - 임철애가 쓴 에스페란토 글을 발굴하다] 30여년 전 안우생 문집을 만들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던 중 정문주(Ĝong Mun Ĝu)라는 이름의 기사(Studentoj en Koreo)가 있기에 한국인일 가능성이 아주 높아서 이 기사 또한 복사해서 보관해왔다. 수집 자료들을 살펴볼 때마다 정문주라는 사람이 누구일까라고 화두를 걸었는데 드디어 2023년 4월 11일 알게 되었다. 우연히 인터넷 자료 검색를 하던 중 허정숙의 필명이 정문주라는 사실이다. 허정숙은 중국 하얼빈에서 활동했던 남자현처럼 남성들과 함께 해외의 전장을 누비며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이어간 여전사가 되었다. 처음 남경으로 간 허정숙과 최창익은 김원봉이 속한 조선민족혁명당에 가입해 활동하다가 중국공산당 근거지인 화북의 연안지역으로 옮겨 활동했다. 1938년 최창익이 화북조선청년연합회(후일 화북조선독립동맹)을 결성해 본인은 대표, 허정숙이 부대표를 맡았다. 허정숙은 특기를 살려 중국에 체류할 당시 과 등 잡지 발행을 돕고 정문주라는 필명으로 조선학생운동에 관한 글을 게재했다. * 출처: https://graduate.yonsei.ac.kr/_res/ysinmun/etc/inmun122_2.pdf 저자: 신유리, 권경미 이어 또 따른 논문은 정문주가 허정숙이라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했다. 1936년 조선을 떠나 남경에 도착한 허정숙은 ‘한국민족혁명당’에 가담하였다. ‘한국민족혁명당’은 약산 김원봉(1898-1958)의 의열단을 중심으로 중국 관내의 5개 단체가 결집한 통일전선당이었다. 1935년 7월 5일 결성된‘한국민족혁명당’에 허정숙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이 유입되자 당내의 우파들이 반발했다. 우파들이 대거 나간 이후 김원봉을 중심으로 주도권이 확립되면서 1937년 1월, ‘조선민족혁명당’으로 개칭하고, 1938년 10월 10일 군사조직으로 조선의용대를 설치했다. 조선민족혁명당은 조선민족전선연맹을 구성해 기관지 『조선민족전선』을 간행했는데, 허정숙은 정문주라는 가명으로 ‘조선학생운동’에 관한 논문을 싣기도 했다. * 출처: https://s-space.snu.ac.kr/bitstream/10371/170185/1/000000163110.pdf 저자:백숙현 1938년 7월호에 "Studentoj en Koreo" 글이 실렸고, 저자는 Ĝong Mun Ĝu다. 위 두 논문에 있는 내용과 일치한다. 1938년 7월호 허정숙이 정문주라는 필명으로 쓴 에스페란토 원문 기사다. Studentoj en Koreo (조선에 있는 학생들) - Ĝong Mun Ĝu (정문주) 허정숙 그리고 박차정 등의 에스페란티스토 활약으로 1937년 8월 25일 발행된 에 조선민족혁명당의 호소문 (조선인이여 일어나라!)라는 에스페란토 원문이 게재되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특히 중국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와 에스페란토는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에 여러 차례 기고한 Kimkemo라는 필명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인터넷 검색 덕분에 필명 임철애의 실명이 박차정, 필명 정문주의 실명이 허정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언젠가 당시 중국 에스페란토 잡지에 실린 한국인 에스페란티스토들의 실명이 다 밝혀지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L.Lujlang - "Labor-libro" por la koreaj laboristoj; Tagoj Li Kung Se - Malliberigita Japanio Kimkemo - Letero el Koreio; Pri nuntempa ĉina literaturo; La superakvego de la Flava Rivero 세계 공통어, 에스페란토 에스페란토는 자멘호프(1859~1917) 박사가 1887년 바르샤바에서 발표한 세계 공통어를 지향하는 국제어이다. 그가 태어난 폴란드 비아위스토크는 당시 여러 민족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의사소통이 어려워 민족간 불화와 갈등이 빈번했다. 이에 그는 모든 사람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중립적인 공통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유럽 언어의 공통점과 장점을 활용해 규칙적인 문법과 쉬운 어휘를 기초로 에스페란토를 창안했다. 에스페란토는 말이 같은 민족사회에선 그 민족어를 사용해 발전시키고, 말이 서로 다른 국제관계에서는 에스페란토를 쓰자고 주장한다. 현재 120여개 나라에 사용자가 산재해 있고, 이들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본부를 둔 세계에스페란토협회를 기점으로 광범위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20년 김억에 의해 보급되기 시작해 한국에스페란토협회와 주요 도시에 그 지부가 조직돼 있고, 서울에스페란토문화원은 매월 에스페란 토 강좌를 열고 있다. 도한 한국인이 개발한 를 통해 인터넷으로도 쉽게 배울 수 있다.

허정숙 - 정문주가 쓴 에스페란토 글을 발굴하다

초유스의 유럽|2024년 4월 11일

오늘 페이스북이 1년 전 2023년 4월 11일에 올린 글을 상기시켜 주면서 공유할 것을 제안했다. 내용인즉 필명 정문주의 실명이 허정숙이다.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자 허정숙이 쓴 에스페란토 글을 페이스북을 통해 지인들에게 알렸다. 하지만 기록용으로 사용하는 이 블로그에는 올리지 않았다. 1년 전 당시 차일피일 미루었을 것이다. 1990년 헝가리 엘테대학교에서 에스페란토학을 전공할 때 부다페스트에 살고 있는 에스페란토 도서 및 정기간행물 등을 수집하는 퍼이시 카로이(Fajszi Károly)를 방문했다. 개인도서관으로 사용하는 그의 넓은 아파트에서 1938년과 1939년 홍콩에서 발행된 잡지에 실린 안우생(Elpin)의 글을 찾아냈다. 안우생(1907-1991)은 안중근의 동생 안공근의 장남이다. 이후 여러 해를 거쳐 헝가리,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등지의 도서관에서 그의 글들을 직접 수집했다. 그 결과물이 2004년 한국에스페란협회가 발행한 《Verkoj de Elpin - 안우생 문집》이다. 이 책에 실린 작품수는 총 40편이다. 자작시 3편, 번역시 14편, 원작 단편소설 2편, 번역 단편소설 12편, 번역 극본 4편, 기타 5편이다. [관련글: (안우생의) '에스페란토'로 항일을 노래하다 (한겨레 21 504호)]. 당시 간행물에서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에스페란티스토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글도 함께 복사했다. 코로나 시대 2020년 11월부터 리투아니아에서 살면서 매주 수요일 한국에 살고 있는 에스페란티스토들에게 안우생의 문학작품 공부를 줌(Zoom)으로 지도하는 중에 원문을 찾아볼 일이 종종 생겼다. 이때 보관하고 있던 자료들 사이에 임철애(Im Ĉol Aj)가 쓴 (조선 여성들의 생활상)가 우연히 눈이 띄었다. 이 글은 1938년 8월호 《Orienta Kuriero》에 게재되었다. 임철애라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독립운동가 박차정이다. [관련글: 박차정 - 임철애가 쓴 에스페란토 글을 발굴하다] 30여년 전 안우생 문집을 만들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던 중 정문주(Ĝong Mun Ĝu)라는 이름의 기사(Studentoj en Koreo)가 있기에 한국인일 가능성이 아주 높아서 이 기사 또한 복사해서 보관해왔다. 수집 자료들을 살펴볼 때마다 정문주라는 사람이 누구일까라고 화두를 걸었는데 드디어 2023년 4월 11일 알게 되었다. 우연히 인터넷 자료 검색를 하던 중 허정숙의 필명이 정문주라는 사실이다. 허정숙은 중국 하얼빈에서 활동했던 남자현처럼 남성들과 함께 해외의 전장을 누비며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이어간 여전사가 되었다. 처음 남경으로 간 허정숙과 최창익은 김원봉이 속한 조선민족혁명당에 가입해 활동하다가 중국공산당 근거지인 화북의 연안지역으로 옮겨 활동했다. 1938년 최창익이 화북조선청년연합회(후일 화북조선독립동맹)을 결성해 본인은 대표, 허정숙이 부대표를 맡았다. 허정숙은 특기를 살려 중국에 체류할 당시 과 등 잡지 발행을 돕고 정문주라는 필명으로 조선학생운동에 관한 글을 게재했다. * 출처: https://graduate.yonsei.ac.kr/_res/ysinmun/etc/inmun122_2.pdf 저자: 신유리, 권경미 이어 또 따른 논문은 정문주가 허정숙이라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했다. 1936년 조선을 떠나 남경에 도착한 허정숙은 ‘한국민족혁명당’에 가담하였다. ‘한국민족혁명당’은 약산 김원봉(1898-1958)의 의열단을 중심으로 중국 관내의 5개 단체가 결집한 통일전선당이었다. 1935년 7월 5일 결성된‘한국민족혁명당’에 허정숙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이 유입되자 당내의 우파들이 반발했다. 우파들이 대거 나간 이후 김원봉을 중심으로 주도권이 확립되면서 1937년 1월, ‘조선민족혁명당’으로 개칭하고, 1938년 10월 10일 군사조직으로 조선의용대를 설치했다. 조선민족혁명당은 조선민족전선연맹을 구성해 기관지 『조선민족전선』을 간행했는데, 허정숙은 정문주라는 가명으로 ‘조선학생운동’에 관한 논문을 싣기도 했다. * 출처: https://s-space.snu.ac.kr/bitstream/10371/170185/1/000000163110.pdf 저자:백숙현 1938년 7월호에 "Studentoj en Koreo" 글이 실렸고, 저자는 Ĝong Mun Ĝu다. 위 두 논문에 있는 내용과 일치한다. 1938년 7월호 허정숙이 정문주라는 필명으로 쓴 에스페란토 원문 기사다. Studentoj en Koreo (조선에 있는 학생들) - Ĝong Mun Ĝu (정문주) 허정숙 그리고 박차정 등의 에스페란티스토 활약으로 1937년 8월 25일 발행된 에 조선민족혁명당의 호소문 (조선인이여 일어나라!)라는 에스페란토 원문이 게재되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특히 중국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와 에스페란토는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에 여러 차례 기고한 Kimkemo라는 필명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인터넷 검색 덕분에 필명 임철애의 실명이 박차정, 필명 정문주의 실명이 허정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언젠가 당시 중국 에스페란토 잡지에 실린 한국인 에스페란티스토들의 실명이 다 밝혀지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L.Lujlang - "Labor-libro" por la koreaj laboristoj; Tagoj Li Kung Se - Malliberigita Japanio Kimkemo - Letero el Koreio; Pri nuntempa ĉina literaturo; La superakvego de la Flava Rivero 세계 공통어, 에스페란토 에스페란토는 자멘호프(1859~1917) 박사가 1887년 바르샤바에서 발표한 세계 공통어를 지향하는 국제어이다. 그가 태어난 폴란드 비아위스토크는 당시 여러 민족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의사소통이 어려워 민족간 불화와 갈등이 빈번했다. 이에 그는 모든 사람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중립적인 공통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유럽 언어의 공통점과 장점을 활용해 규칙적인 문법과 쉬운 어휘를 기초로 에스페란토를 창안했다. 에스페란토는 말이 같은 민족사회에선 그 민족어를 사용해 발전시키고, 말이 서로 다른 국제관계에서는 에스페란토를 쓰자고 주장한다. 현재 120여개 나라에 사용자가 산재해 있고, 이들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본부를 둔 세계에스페란토협회를 기점으로 광범위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20년 김억에 의해 보급되기 시작해 한국에스페란토협회와 주요 도시에 그 지부가 조직돼 있고, 서울에스페란토문화원은 매월 에스페란 토 강좌를 열고 있다. 도한 한국인이 개발한 를 통해 인터넷으로도 쉽게 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