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용PD

해치를 연출한 전과 후1.

By  | 2019년 5월 9일 | 
'해치'를 제작하면서 보니, 그 사이 제작현장이 많이 변했더군요. 이를 테면, 주 68시간 근무를 지켜야 했고, 제작진 내부에서의 성평등 이슈도 과거에 비해 중요해져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거시적으로 학문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변화도 있겠지만, 저는 이 자리에서 제가 소소하게 겪은. 또는 주도한 변화 몇 가지를 소개할게요. 우선 태블릿PC 대본. 이번에 연출하면서 저는 책으로 만든 대본을 중반 이후에는 들고 다니지 않았어요. 예전에 대본이 여유있게 나왔을 때는 책에다 콘티를 하고, 점검을 하며 촬영했고, 여유가 없을 때는 이른 바 쪽대본, A4용지에 인쇄해서 대본을 들고 다녔습니다. 이번에는 아래와 같이 태블릿 PC에 대본을 pdf 파일로 받아, 어플을 이용해 실행시키고, 사용했어요. 이런 전자

무식하면 용감하다

By  | 2017년 12월 16일 | 
무식하면 용감합니다. 조연출 시절, 한 배우를 다른 드라마와 같은 시기에 출연하도록 캐스팅했습니다. 그런데, 그 배우의 스케줄이 좋지 않아, 제 드라마 촬영에 지장이 있었습니다. 혈기를 참지 못해, 상대 드라마의 제작진 사무실로 찾아갔습니다. 연기자의 스케줄이 꼬이는 이유가, 드라마 주인공 집이 전라남도 광주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뜸 도대체 왜 주인공 집은 광주에 잡아서, 우리를 이렇게 고생시키냐고 짜증을 냈습니다. 그때, 저를 바라보던 상대 제작진의 황당한 얼굴이 생각납니다. 그들의 마음의 소리는 아마 이렇지 않았을까요? "무식하면 용감하구나." 배우의 스케줄이 아무리 꼬여도 그렇지, 타 드라마 촬영지가 광주이든, 서울이든 그건 제가 상관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제 사정을

해치를 연출한 전과 후 2.

By  | 2019년 5월 15일 | 
주 68시간 근무 제도. 이 얘기를 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군요. 올 하반기부터는 주 52시간 근무제도가 드라마 제작 현장은 물론, 우리나라 전체 노동 현장에 적용된다고 합니다. 저는 이번에 주68 시간 체제에서 제작을 해봤습니다. 눈에 보이는 변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68시간을 현장에 적용하려면, 15시간 근무를 4일 할 수 있고, 8시간 근무 1일 정도로 제작 일정을 잡아야 합니다. 주5일 근무입니다. 아침8시에 촬영을 시작하면 밤11시에 끝나는 날이 4일 정도, 나머지 하루는 8시간 촬영할 수 있습니다. 일정을 시작한 후, 촬영 장소를 이동한다면 그것도 근무 시간에 포함됩니다. 촬영 시작 전부터 노동 시간에 관련한 현장에서의 잡음이 들려왔고, 몇 드라마에서는 제작사의 대표나, 제작

<성별이 하나 뿐인 세상>

By  | 2020년 11월 22일 | 
요즘 페미니즘 이슈도 커지고, 반페미니즘 움직임도 커지고 하니, 이런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어느날 지구상에 새로운 코로나 질병이 돌았는데, 한 쪽 성별을 거의 전멸시킨 거에요. 남자만 남든가, 여자만 남든가... 예를 들어, 여자만 남은 한반도라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인류는 더 이상 생식을 할 수 없어서 자멸의 길을 걷기 시작할까요? 아님 여자들이 성 생식을 분화해서, 남자의 구실을 하는 여자를 만들어 낼까요? 남자가 없어진 그 사회에서는 여성이 대우받는 아름다운 사회가 일어날까요? 아니면 다시 누군가는 쇼비니스트가 되고, 가부장과 계급, 권력이 집중된 또다른 권위적인 사회가 되버릴까요? 남녀의 문제가 사실은 권력의 문제임을 다시 재현할까요? 남자들이 좋아하는 (좋아한다고 믿는) 예쁜

<지상파를 떠나자>

By  | 2019년 6월 7일 | 
취업 준비를 하는 후배이자 제자들의 안부를 묻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SBS가 사정이 좋지 않다는 걸 들어서인지, 올해 SBS에서 신입사원을 뽑는지 물어보더군요. 아는대로 대답을 해주고 제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TV보니? 대답은 짐작 하시다시피... 그나마 제게 위안에 되는 대답은 저는 'POOQ'을 열심히 본다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말에 제가 반문했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즐겨 이용하지도 않는 미디어에 뭐하러 취업 준비를 하니? 너희도 이용하지 않는다면 미래가 불확실한 곳인데..." 이제 SBS는 하루에 15개에서 17개에 이르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이 힘겹습니다. 드라마와 뉴스, 교양 프로그램은 돈 먹는 하마가 되었습니다. 다른 장르는 모르겠지만, 드라마는 돈 먹는 하마가 된 거 확실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