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궁 시드니 쇼크 관련 2번째 3번째(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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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 3번째 :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기사의 핵심은 세번째 꼭지의 마지막입니다.한국 양궁은 시드니 쇼크를 바탕으로 하지 않았음 절대로 지금의 위치에 못올라왔을 것입니다. 더불어.FITA라운드 도입땐(1987년) 어느 한국 언론에서도 'FITA가 한국 견제하려고 경기 방식 바꿨다' 는 소리 안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여자양궁은 '김진호' 라는 스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습니다.우스운 이야기지만 LA금메달 리스트 '서향순'은 지금 같은 방식에서는 절대로 선발 될 수 없는 선수였습니다. 낙하산으로 선발전 출전해서 간신히 턱걸이 했고 LA올림픽 출전을 놓고도 뒷말이 있었던 분입니다. 그래서 몇몇 언론에서 1980년대 후반의 개혁 이전에 '추천선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 대표적인 선수가 서향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