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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9년 2월 8일 |
아직은 약간은 칙칙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지만 입춘이 지났으니 봄기운은 저 땅 속에서부터 스믈스믈 올라오고 있을 것입니다.
올해는 여러가지로 중요한 의미가 담긴 해입니다.
대전시를 중심으로 보면 대전시가 된 지 70주년, 대전광역시 승격 30주년을 기념하는 '대전방문의해(2019~2021)' 원년이고요. 대한민국 전체로 보면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대전방문의 해(2019~2021) -대전시 70년 대전광역시 30년 기념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4월11일) 100주년
대전방문의 해 대표 콘텐츠-이응노화백(이응노미술관)
2019 이응노미술관 소장품 특별전
대전의 명소 이응노미술관도 올해는 중요한 해인데요/ 고암 이응노 화백 서거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응노미술관은 2019년 첫 전시로 이응노 화백의 걸작을 엄선해 소장품전을 시작했습니다.
또한 대전시가 대전방문의해를 맞아 대전 대표 콘텐츠로 이응노 화백을 선정했다고 합니다.
2019 이응노미술관 소장품 특별전
1.18.~3.24. / 11~2월 10~18시, 3~10월 10~19시
(매주 수요일 20~21시 이응노 톡 운영)
관람료 어른 500원/ 어린이,청소년,노인 등 300원
관람마감시간 종료 30분 전까지 입장.
이번 소장품특별전은 이응노 화백의 대표작을 몇 가지로 분류해 전시합니다.
1전시실과 2전시실에서는 이응노 화백을 대표하는 군상 시리즈(1980년대)와 판화 작품, 1980년대 세라믹 작품, 문자추상 작품을 전시합니다.
이응노 화백은 1950년대에 파리로 가서 회화를 선보일 때, 종이에 먹, 전각 등의 한자추상 작품을 창작했습니다. 1960년대에 들어서서는 문자추상 작품으로 발전시키면서 프랑스 미술계에 성공적으로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세라믹 작품은 1989년대 프랑스 도자공장과 협업으로 진행됐습니다. 접시 같은 세라믹 작품을 남기면서 순수 조형물도 작업했습니다. 손으로 조물조물 흙을 만지면서 만든 자연스런 곡선의 작품입니다.
3전시실에는 먹으로 그림 회화작품, 문자추상 타피스트리 작품, 프랑스에서 벽지 작품을 만들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4전시실에서는 릴리프(올록볼록한 부조 판화작품) 작픔을 전시합니다.
종이나 직물을 볼록하게 약각한 원판에 눌러 찍어내어 요철의 주어 입체감을 살린 작품인데요. 재료에 따라 다른 느낌을 주면서 색을 입혀 회화적인 감을 살린 작품도 있습니다.
전통 무늬와 고가구의 무늬 등 전통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작품은 수십 년 전 작품인데도 매우 현대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입니다.
전시의 끝자락에는 1980년대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에서 촬영한 이응노 화백의 사진이 있습니다.
"날마다 반복하는 생활 형태에서 변화를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청신한 맛을 가지게 하며 단조로운 생활에서 동경의 생활로 이끄는 것이랴. 도회의 잡음 속에서 잠시나마 해방을 얻어 새로운 풍경과 그 인식 등은 모두가 심기일전하여 고민을 잊게 하고 대자연에서 오는 경이에서 속된 탈을 벗고 무한한 유열과 감격에 잠긴다는 것.... 그러기에 우리는 여행을 즐기고 새로운 풍경을 접한다"
이응노 화백은 이런 마음으로 늘 새로운 작품을 창작했나 봅니다.
4전시실 감상을 마치고 경사로를 올라오면 노란 벽이 나타납니다.
군상 스탬프 체험을 하는 벽으로 준비해놨네요.테이블 위에 있는 스탬프를 종이에 찍어서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도 되고 벽에 자유롭게 찍어넣어 공동의 작품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번 설날 연휴에 많은 분들이 다녀갔으면 벽에 찍힌 군상의 무리가 훨씬 많아졌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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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9년 1월 15일 |
"쳐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40 여 년간 전국각지, 아니 전세계를 돌며 수집한 장구를 전시하는 고당 한기복 선생이 말합니다.
'전통타악그룹 굿'의 대표인 한기복 선생은 평생 모아온 장구와 북 등의 악기를 한 곳에 모은 전시회를 열고 있는데요. 지난 1월 2일 중구 대흥동 고당마당에서 '삼국시대부터 현대까지, 역사를 거슬러 만나는 - 장구이야기展'이 개막했습니다.
개막이라고 말하기에 전시실은 다소 협소하고, 일반적인 전시회에서 흔히 보는 유리장 하나 없지만 전시품들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귀한 것들입니다.
이번 전시에는 한기복선생이 40년 전부터 사용하거나 수집한 작품, 기증 받은 작품, 재현 작품 150 여 점을 선보이고요. 장구와 북, 기타 전통악기와 국악용품 300여 점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저는 전시 이틀 째인 3일 오후에 관람했는데요.
마침 대학에서 판소리를 전공하고 있는 학생들과 같이 하게 됐어요. 이 학생들은 즉석에서 합창으로 '풍구타령'을 들려줬는데요. 한기복 선생은 즉석에서 장구로 장단을 맞춰줬습니다. 짧지만 공연을 보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전시에서 만난 악기들은 저 같은 문외한이 보기에도 아주 귀한 것들이었습니다.
평소 이곳을 방문했을 때 잘 보관하고 있던 악기들을 보았지만, 이렇게 한 곳에 모아 놓으니 그 양이 방대합니다. 전시실이 협소한 것이 아쉽습니다.
울림통이 도자기인 장구들
장구는 원래 울림통의 가운데가 잘록하게 생겼죠. 1500년 전인 삼국시대에 '허리가 잘록해'라는 의미로 요고라고 불렸던 것도 있습니다. 고려시대 도자기 장구, 조선 숙종 때 쯤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구의 모양은 저마다 크기와 색깔이 다 다릅니다.
삼국시대 요고 (복원품)
전시품 중 특히 요고는, 지난 2000년 경기도 하남시 이성산성에서 출토된 장구를 실측한 것인데요. 몸통 길이 42㎝에 지름 16㎝, 길이 58㎝로 재현한 장구라고 합니다. 요즘 사용하는 장구보다는 조금 작습니다.
전시된 북에서 세월의 풍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각종 북
장구 중에는 '악학궤범 장구'라고 이름 붙인 것이 있었는데요.
우연한 기회에 손에 넣은 장구로서, 악학궤범에 기록된 장구와 모양과 크기가 일치해 이름을 붙였다고 해요.
장구와 북 외에도 징과 운라, 꽹과리, 바라 등 전통 타악기와, 아쟁, 거문고 등 현악기, 외국에서 수집한 젬베, 퍼쿠션 등의 악기도 있습니다.
징과 운라
아쟁 가야금 거문고
또 전통농악에 사용하던 상모와, 짚으로 엮은 장구 등 모든 것이 신기했어요.
인도, 네팔 등 외국의 타악기도 모양과 크기가 조금식 다르기는 하지만, 인간이 생각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외국에서 수집한 악기들
전시된 악기가 대부분 타악기인데, 악기만큼이나 다양한 연주용 채들도 신기했습니다.
장구채나 북채, 꽹과리 채 외에도 모양만으로는 어떤 악기를 연주하는 채인지 잘 모르겠는 것도 있었어요.
각종 타악기를 연주하는 채. 모양도 크기도 다양하다.
또 하나 눈길을 끈 악기는 고생창연한 풍금이었습니다.
딱 봐도 일제시대의 것으로 보였는데요. 한기복선생은 풍금 케이스에 새겨진 문양이나 글씨 등으로 보아 일제강점기 때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대청호오백리길 황새바위에서 연주하는 한기복선생
장구와 북을 직접 만들기도 하고(고당국악사), 언젠가 우리나라 최초의 '장구박물관'을 세우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고당 한기복 선생. 평생의 '장구사랑 이야기'는 조만간 다시 들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당마당은 주소를 알아도 찾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중구 대흥동 우리들공원 인근 골목에 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장구를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사전에 전화로 문의를 하고 기왕이면 한기복선생으로부터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에 꼭 한번 관람을 권합니다.
삼국시대부터 현대까지, 역사를 거슬러 만나는 - 장구이야기展
전시일시 : 2019. 1. 2 ∼23(수)
전시장소 : 고당마당(고당국악사)
대전광역시 중구 중앙로122번길 17 (대림 BD 7층)
관 람 료 : 무 료
관람문의 : 042-226-5658
2019 대전광역시 소셜미디어기자 조강숙 By
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9년 2월 28일 |
동춘당 공원 (대덕구 송촌동)
2019년 새해 타종식을 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입춘(2월 4일)도 지나고 우수(2월 19일)도 지났어요. 이제 며칠 후 경칩(3월 6일)이 지나면 그야말로 봄인데요.
우수 겸 정월 대보름을 지난 동춘당 공원을,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산책을 했습니다. 동춘당 공원은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학자인 송준길(1606-1672)의 호를 따서 지은 별당 이름에서 붙여진 이름이에요.
동춘당 송준길선생은 조선 효종 때 대사헌,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지냈는데요. 모든 관직을 물러난 후 거처하던 종택과 더불어, 늘 봄과 같다는 뜻인 선생의 호 동춘당(同春堂)을 따서 지은 별당 건물입니다.
동춘당은 1963년에 보물 제 209호로 지정될 정도로 건축학적 의미가 크다고 해요.
보물 제209호 회덕동춘당
동춘당은 조선시대 별당 건축의 유형을 잘 보여주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조는 앞면 3칸·옆면 2칸 총 6칸인데요. 오른쪽 4칸은 대청마루, 왼쪽 2칸은 온돌방입니다. 대청의 앞면·오른쪽·뒷면 등 3면에 쪽마루를 냈고, 들어서 여는 열개문을 모두 들어 열면 내부와 외부가 따로 없이 모두 열리는데요. 아직은 날씨가 쌀쌀해 문을 열어놓지 않았네요. 여름에는 열개문이 모두 열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대청과 온돌방 사이의 문도 들어 열 수 있게 돼 있는데요. 대청과 온돌방의 구분없이 별당채 전체를 하나의 큰 공간으로 활용해 무대가 있는 정자 같은 느낌을 줍니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건물 전체를 4각형의 키가 높은 돌로 받쳐놓은 것인데요. 이런 양식은 조선 후기의 주택건물에서 많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건물 전체를 돌로 맏쳐놓아 대청 아래 공간이 높은 동춘당
동춘당이라고 쓰인 현판은 송준길 선생이 돌아가신 6년 후 숙종 4년(1678)에 우암 송시열이 쓴 글씨라고 합니다.
동춘당 뒤쪽으로는 종택이 있어요. 이곳은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로서, 지난 2016년에는 국가민속문화재 제289호로도 지정됐습니다.
동춘당 왼쪽 담장을 끼고 진입로를 지나 대문을 들어서면 一자 모양의 사랑채와 ㄷ자 모양의 안채가 있고요. 그 오른쪽에는 사당인 가묘와 별묘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동춘당 종택에 대한 안내판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아직도 동춘당에 대한 불천위 제사와 기타 졔례가 행해진다고 합니다. 또 건축학적으로는, 사랑채와 안채, 부엌, 마루 등이 한 채에 달려 있는 양통집이라고 합니다.
동춘당 종택 대문
사랑채는 앞면 6칸·옆면 6칸입니다.
부엌 위는 다락으로 꾸몄고, 앞에는 1칸 살림집을 달았는데, 여기에서는 집안의 여러가지 일을 맡아보던 청지기가 살았다고 합니다. 또 대청마루와 큰 사랑방 앞에는 툇마루가, 작은 사랑방 앞에는 툇마루보다 2배 정도 높은 누마루가 있고요. 그 아래로는 아궁이가 있습니다. 참 독특한 구조이지요. ㅡ자 모양의 동춘당 종택 사랑채
안채에는 현재 송준길선생의 후손이 살고 있어요.
동춘당가의 가양주로 오래 내려오고 있는 '국화주'가 대전무형문화재 제9-나호로 지정돼 있는데요. 이 곳에서 살고 있는 동춘당의 13대 종부 김정순 보유자가 아드님, 따님과 함께 보존 전승을 하고 있습니다.이곳에서는 동춘당가에서 전해 내려오는 음식과 국화주 등을 테마로 하는 여러가지 행사가 열리고 있어요. '동춘당가 500년 여름 생신상' 행사가 대표적이죠.
동춘당 종택 별묘(왼쪽)와 가묘(오른쪽)
동춘당과 종택의 오른쪽 뒤로는 또 하나 전통 가옥이 보입니다. 건물 앞에는 빗과 비녀 모양의 조형물과 함께 소나무 아래로 시비가 있습니다. 바로 호연재 김씨의 시비입니다.
이곳에 소대헌·호연재 고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동춘당 송준길의 둘째 손자 송병하가 분가하면서 짓고 살기 시작해서,송병하의 아들 소대헌 송요화가 1714년 이곳으로 이전해 지었습니다. 그 이후 현재 11대손 까지 살아오고 있는 집으로, 송요화의 부인인 호연재 김씨는 17세기에서 18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많은 시를 남겼습니다. 조선시대 여류 문장가로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을 꼽지만, 호연재는 이들을 뛰어넘을 만큼의 문재를 보여 134 수의 한시를 남김으로써, 여류문학사의 공백을 메꾸어 줄만하다는 평가를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을 소대헌·호연재 고택이라고 합니다. 안채와 큰사랑채(소대헌)·작은사랑채(오숙재), 가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소대헌 호연재 고택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큰사랑채인 소대헌이 있고 오른쪽에 작은사랑채인 오숙재가 있습니다.큰 사랑채 소대헌
한 집안에 이렇게 사랑채가 두개나 있는데, 이런 양식은 충청지역에서는 아주 드물다고 해요. 사랑채의 처마가 좀 길면서도 전체적으로 그 모양이 아주 단아합니다.작은사랑채 오숙재
ㄱ자 모양의 안채는 작은사랑채의 왼쪽에 나있는 중문을 지나서 출입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호연재 김씨가 기거하면서, 여성이라서 펼치지 못한 꿈에 대한 울분을 삭히면서 시를 지었을 안채. 지금은 너무도 조용합니다. 이곳에 호연재 김씨가 지은 시가 모두 보관돼 있다고 합니다.소대헌 호연재 고택의 안채
안채 뒤로는 약간 높은 위치에 가묘가 있어요. 宋氏家廟라는 현판이 붙어 있습니다.
소대헌 호연재 고택 앞에는 자그마한 바위에 '금암(琴巖)'이라고 암각이 선명히 남아 있는데요, 금암 송몽인이 여기에 걸터앉아 거문고를 탔다고 합니다. 참 운치가 있지요?
또 동춘당 공원 한가운데는 '송씨 3세 효자정려 구허비'가 세워져 있는데요. 뜬금없이 비석이 이곳에 서있는 이유가 있어요.
원래의 효자 정려는 1861년에 후손들이 이사하면서 정문이 대화동으로 옮겨 가게 되자, 이곳에 그 터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라고 하는데요. 송씨삼세 효자는 선교랑 송경창과 그의 손자인 지평 송시승, 그리고 시승의 아들인 도사 송유관을 지칭한 것이라고 해요. 이들은 모두 쌍청당 송유의 후손이며 3세가 모두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겨 나라에서 정려가 내려졌고요. 그 사적이 국가가 반포한 '삼강행실록'에 기록되었다고 설명이 돼 있네요. 조선시대에는 효행을 굉장히 중요시 한 것 같아요.
동춘당 공원에 세우진 이정표를 보니, 공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시직 공정려각, 송애당, 은진송씨 정려각이 있네요. 조만간 이곳들도 둘러볼 생각입니다.
이처럼 동춘당 공원은 동춘당과 동춘당 종택, 소대헌 호연재 고택 등을 통해 조선시대 양반가의 집이 어떻게 건축되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대덕구에서 조성한 '200리 로하스길' 중 약 5km 구간에 이르는 '동춘당 생애길' 중에 속해 있는 동춘당공원에서, 2019년 새봄을 맞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2019 대전광역시 소셜미디어기자 조강숙 By
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9년 9월 6일 |
황톳길 맨발축제로 유명한 계족산의 밤은 어떤 모습일까요? 언제가, 페이스북에서 계족산 야간 산행한 팀들의 사진을 보고 엄청 부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야간산행은 하고 싶다고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그렇게, 막연한 버킷리스트처럼 남아있던 계족산 야간산행을 실현시킬 수 있었던 날!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 산악인 이상은 씨가 "야~~ 한 산책"을 가자는 제안에 앞뒤 생각 없이 무조건 콜!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갈지 알 수가 없기에 무조건 콜 했습니다. 그렇게, 잊지 못할 멋진 기억으로 남을 계족산 달빛 산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약속 장소인, 장동에 위치한 계족산 관리사무소 앞.
스틱과 등산화까지 갖춘 완벽한 등산가 복장으로 참여하신 분도 계셨고,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집 앞 공원에 산책 나오듯이 가볍게 오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후자 쪽!(등산 경험이라고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열 손가락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제가 겁도 없이 무작적 오겠다고 신청했네요. 막상 도착하고 보니 슬슬 걱정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가다가 힘들어서 못 올라가면 어쩌나···.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이상은 샘을 따라 가벼운 준비 운동을 마치고 사브작사브작 계족산성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어둠에 잠긴, 산이 주는 마력 때문일까요? 두려움도 사라지고, 어색함을 느낄 새도 없이 어느새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는 우리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둠과 함께,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근심 걱정도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오롯이 산에 집중되는 순간... 이래서 사람들이 산에 가는 걸까? 싶어 지더군요.
중간중간, 이상은 샘이 산을 잘 오르는 비법(?)도 가르쳐 주시고, 서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오르다 보니 어느새 계족산 정상! 눈앞에 선물처럼 펼쳐진 대전시 야경에 모두 다 환호성을 지르며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지레 겁먹고 포기했다면, 결코 이런 순간을 맞이할 수 없었겠죠. 너무나 뻔하디 뻔한 교과서 같은 교훈도 다시 한번 마음속 깊이 새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각자 가지고 온 먹을거리들을 꺼내놓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서로의 얼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한 토막씩 꺼내어놓은 이야기보따리들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산 때문인지, 그 산속에 오른 사람들 때문인지 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큰 위로와 따뜻함을 느겼던 시간. 비단, 저뿐만이 아니라 이날 함께했던 분들 모두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 번으로 끝내지 말고 매달, 이렇게 계족산에 올라왔으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분분했던 밤.
아직도, 그 날의 따뜻함이 순간순간 미소 짓게 만들어주고, 삶이 참 재미없고 더디다 느껴질 때 버틸 수 있는 시간의 한 토막이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제게, 너무나 좋은 기억을 만들어준 계족산 달빛산행을 대덕구에서 공정·생태 여행으로 만드셨더라고요. 딱, 9월 한 달만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합니다. 제게 너무 좋은 기억을 선물해준 계족산 달빛 산행을 여러분도 만나보실 수 있으면 참 좋겠단 생각에 소개해 드립니다. 분명, 멋진 시간이 되실 거예요.
달빛 품은 계족산 낭만 산행 신청 링크 → http://bit.ly/2NFaF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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