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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나야르스크 Красноярск - 16 .fin
그 뒤에는 별로 적을 만한 것이 없었다. 기차를 탈 때 필요한 먹을 거리를 슈퍼에서 좀 구입하고, 아무 생각 없이 역으로 돌아갔다. 걸어서. 이미 역까지 가는 골목은 약 5번 정도를 왕복했었다. 버스를 타지 않아도 역까지 자동으로 발걸음은 움직였고, 딱히 사진기를 들 생각은 들지 않았다. 거리의 모습은 눈 안에 충분히 담겨 있었고, 지금 필요한 것은 정리할 시간일 뿐이었다. 지친 몸은 어제와 같은 의자 위에 얹어졌다. 그곳에서 머릿 속의 글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크라스나야르스크에서 남은 시간은 금세 불타 없어졌다. 쳇바퀴를 돌릴 준비가 끝난 듯, 기차는 시끄럽게도 선로와의 마찰음을 내며 승객들을 재촉하였다. 여독에 찌든 유학생을 태운 기차는 언제나와 같은 속도로 이르쿠츠크로 출발했다. 디지털 카메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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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나야르스크 Красноярск - 15
러시아라고 다른 나라 사람과 유별난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날이 추워질 수록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의 수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건 너무 심했다. 아무리 한 겨울이라지만, 공원 에는 사람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 방금 지나왔던 혁명 광장에도 두어 명 정도 지나가는 인파는 있었다. 하지만, 이 공원에는 정말 아무도 없었다. 빗자루질이 잘 된 보도블럭만이, 이 곳에 청소부는 있다는 사실을 말해줄 뿐이었다. 상록수로 구성된 중앙 보도를 지나서야, 왜 이 곳에 사람이 없는지 얼추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기는 일반적인 뜻의 공원이 아니었다. 이름만 ‘중앙 공원’이지

크라스나야르스크 Красноярск - 14
12시 15분. 다시 시내로 돌아왔다. 정오를 넘겨 하늘 꼭대기를 등반한 태양은 빠르게도 반대편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버스를 타기 위해 출발했던 시계탑 앞에서 다시 내렸기에, 주변의 건물들은 어느 정도 눈에 익은 모습들이었다. 하지만 빛이 비친다는 그 하나만으로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달았다. 동이 트기 전, 가장 어두울 그 때 보았던 시청사는 마치 축제를 하듯 형형색색의 네온등으로 밝혀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세상에서 가장 밝은 조명 아래 보이는 건물의 모습은 언제나 보았던 러시아의 그것이었다. 마지막 남은 시간은 따로 계획을 잡지 않고 돌아다니기로 하였다. 조금 더 자연스러운, 크라스나야르스크스러운 모습을 느껴보기로 하였다. 언제나 여행을 할 때는 꼭 해야 할 것

크라스나야르스크 Красноярск - 13
올라온 반대편을 구경하러 예배당 너머로 내려가 보니, 무척이나 반가운 물건을 발견했다. 다름 아닌 105mm 견인곡사포. 필자는 강원도 고성에서 105mm포병으로 복무했었다. 겨울만 되면 눈이 발목까지는 예사요 무릎까지 쌓이는 일도 잦아 제설작전때마다 여기가 무슨 시베리아 한복판이냐고 투덜댔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벌판 위에, 그 때 만졌던 쇠덩이가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여기는 포상도 아니고, 딱히 방열을 할 필요도 없었다. 몸은 가만히 있었지만, 다만 기억만이 그 때로 잠시 돌아갔다. 경치를 구경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2년의 세월을 되짚어 보았다. 잠시간의 망중한에 빠져있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나니 어느 새 정오가 훌쩍 지나 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