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교회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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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교회탑
짧게 바다 근처 여행을 하고 집. 다시 일이 있어 하루동안 구례를 다녀왔다. 피아골 가다가 연곡분교 지나 오른 쪽 길 오르막을 힘차게 밟아야만 나의 오래된 갤로퍼는 그 마을이 닿을 수 있었다. 농평마을 농평교회. 그 옛날 교회가 멀어, 어머니는 땅을 내어 교회를 지었고,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지을 농평분교 땅을 내 주었다. 그 시절 학교들은 거의 모두, 마을공동체나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단어는 몰랐으나 소리없이 나눔을 실천할 줄 알았던 이들이 내어 놓은 땅이었다. 젊은이가 떠나고, 아이들이 사라지고, 학교는 문을 닫고. 그렇다면 그 학교 땅은 다시 마을로 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작은 학교를 문닫게 만드는 지금의 행정은, 돌아오고 싶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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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수학 강사
군 복무를 기점으로 초등 학교에서 일하게 된 시절. 가장 큰 고민은 돈 문제였다. 가족들의 생활비와 동생 학비를 벌어야 했는데, 군인 월급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초등학교에 간 군인 아저씨) 외 할아버지의 공장 사택에서 머무른 덕에 다행히 가족들이 굶을 일은 없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모두 빚이고 신세지는 일이었다. 수입이 생기면 외 할아버지에게 드리곤 했다. 당연히 안 받으려고 하셨지만, 우선 드리고 나서 돌려 받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군 입대 전에 했던 댄스 팀 활동 이력을 이용해서 몇 군데에서 춤을 가르쳤다. (음악과 무대) 기독교가 아님에도 교회 청년부를 대상으로 하기도 했고, 초등학생에서 방과후 수업을 진행.......

카메라 시점이 꼬였을 때
격주로 회사 이야기를 에세이로 쓰고 있다. 첫번째, 피쳐폰 개발 회사에서의 김부장님 이야기. 두번째, 온라인 게임 회사에서 30살이 되던 순간의 이야기. 세번째 회사를 앞두고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이렇다할 에피소드가 없기도 했고 너무 짧게 다닌 회사이기도 하다. 삶에서 의미는 분명히 있는 시간이었지만 막상 쓰더라도 재미는 없을 것 같았다. 쓸까 말까 고민하며 노트북으로 화상 미팅에 접속했다. 삼성에서 운영하는 모 기관 프로젝트 멘토링을 하기 위해서였다. 잠시 후 나는 멘붕에 빠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기획 멘토로 등록되었다고 들었는데, 멘티 전원이 프로그래머였고, 기술적인 질문이 들어왔다. 게다가 게임 개발에서 쓰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