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식악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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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무형문화재 김관식 악기장과 함께 나만의 난타북 만들기, 수강신청하세요
대전전통나래관(동구 소제동)에서는 대전무형문화재 기능 부문 보유자의 활동을 지원하고, 전승교육과 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불상조각장과 소목장, 악기장(북메우기), 단청장, 초고장 등의 교육을 하는 무형문화전수학교가 1년 단위로 운영됩니다. 음식 분야에서는 조리시설을 갖춘 교육실에서 송순주, 국화주, 각색편 등의 교육이 이루어집니다. 불상조각장, 소목장 등의 기능 분야 전수학교는 매월 3월부터 11월까지 종목에 따라 12회 또는 19회 강좌가 진행되는데요. 악기장 김관식(북메우기) 보유자와 함께 하는 난타북 만들기는 총 3기로 매 기수마다 6회의 교육으로 이루어집니다. 편백나무 북통.......
겨울방학 무형문화놀이학교- ② 김관식 악기장과 소고만들기
방학 때 뭐 하지? 방학 때마다 부모님의 한결같은 고민입니다. 요즘에는 학교 다니기 전부터 선행학습이며 예체능까지 학원 다니느라 바쁜 아이들인데요. 대전에서는 겨울방학을 이용해 우리 전통악기와 무형문화재에 대해 배우고, 직접 소고를 만들어 가는 프로그램이 2차례에 걸쳐 진행됐어요. 대전전통나래관 겨울방학무형문화놀이학교 소고만들기 프로그램입니다. 소고는 손잡이가 달린 작은 북으로 농악 등에서 사용하는 전통악기입니다. 참가자들은 대전무형문화재 제 12호 김관식 악기장(북 메우기)님으로부터, 북통 양면에 가죽을 대고 가죽끈으로 꿰어 붙이는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들었어요. 무두질을 한 젖은 가죽을 끈으로 꿰어 붙인 다음 며칠간 말리면, 가죽이 마르면서 팽팽하게 됩니다. 북통에 가죽을 꿰어 메우는 방법을 설명하는 김관식 악기장 소고만들기 재료를 하나씩 받은 어린이들은 각자 열심히 끈을 꿰어 나가는데요. 말랑말랑한 가죽판이지만 귀가 큰 바늘에 꿴 가죽끈을 작은 구명에서 잡아 빼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끈이 꼬이지 않게 해야 하기 때문에 의외로 어려워 했는데요. 그래도 김관식 악기장, 보조교사인 악기장의 사모님과 따님의 도움으로 어느덧 소고가 완성이 됩니다 완성된 소고를 들고 뿌듯한 표정으로 인증샷을 찍기도 하고, 김관식 악기장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학교 음악시간에는 이번 시간에 직접 만든 소고를 가져가겠다고 하는 어린이도 있었습니다. 겨울방학 무형문화놀이학교 소고만들기를 통해, 생애 처음 손수 만든 전통악기를 갖게 된 소중한 시간이 됐겠지요? 2019 대전광역시 소셜미디어기자 조강숙
"북에 제 인생을 걸었습니다" 대전무형문화재 김관식 악기장
3대째 북메우기를 이어 온 대전무형문화재 김관식 악기장 인터뷰 "북에 제 인생을 걸었습니다." 7월 20일부터 대전전통나래관에서는 '화양연화 -북으로 메워낸 순간들'이라는, 악기장 김관식선생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대전무형문화재 제12호 김관식 악기장(북 메우기) 이번 전시회는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 30주년을 기념해 마련을 했는데요. 북메우기 악기장과 88서울 올림픽이 무슨 관계가 있었을까요. 답은 바로 '서울올림픽 개회식' 안에 있습니다. 굴렁쇠 소년과 함께 88서울올림픽 개회식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한 장면은 '어가행렬' 재현이었는데요. 어가행렬에서 임금님이 앉는 자리에 올려져 메인스타디움으로 입장했던 (당시) 세계 최대의 용고가 전세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평화통일의 북'으로 이름 붙인 이 북은 울림판 지름이 2.2m, 북통길이 2.3m, 무게 480㎏으로 1988년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북으로 기록이 됐고, 지금은 서울올림픽 기념관에 전시돼 있습니다. 88서울올림픽 개회식에 등장한 '어가행렬' 속 용고 (김관식악기장 소장 사진) 이번 전시회의 제목은 '花樣年華(화양연화), 북으로 메워낸 순간들'인데요. 김관식 악기장에게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시기, 즉 화양연화는 단연코 88서울올림픽 때라고 말합니다. 김관식 악기장을 만나 88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에 세계최대의 북의 제작 기증에 얽힌 이야기, 조부님부터 아드님에 이르기까지 4대가 우리 전통북 제작을 전승하고 있는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Q. 어떤 동기로 88서울올림픽 때 용고를 제작하시게 됐나요. "충남 강경에서 태어나신 할아버지께서 북과 장구를 제작하셨고, 아버지도 그것을 이어받아 대전 성남동으로 이사를 한 뒤로도 이어나갔습니다. 1955년생인 저는 어려서부터 북과 장구를 가지고 놀았어요. 15-6세 되던 무렵 '어른이 되면 우리나라에 있는 북 중 가장 큰 북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죠. 1981년 바덴바덴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당시 사마란치 위원장이 88 올림픽 개최지로 "서울 꼬레"라고 외치는 순간 '아, 이 때다. 세계에서 가장 큰 북을 제작해 우리나라 전통문화와 큰북 소리를 세계인들에게 들려 주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김관식 악기장은 15-6세 때부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북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Q. 88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나 가족, 친지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셨나요. "가족을 비롯해 주변 사람 누구도 찬성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하지만 차근차근 이해를 시켰고 비용에 있어서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장장 2년 6개월간의 준비와 제작과정을 거쳐 1987년 4월 25일에 용고 제작을 마쳤고요. 올림픽조직위원회에 기증을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매스컴에서는 온통 화제가 됐지만, 정작 기증을 받을 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 아무런 답변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8개월 정도 지난 12월 4일 (※ 관련된 날짜를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김), 조직위원회로부터 기증을 받기로 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원본의 57% 축소제작해 전시된 서울올림픽 '평화통일의 북' Q. 세계에서 가장 큰 북이다 보니 가죽 등 재료를 구하는 것부터 제작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북 제작을 결심하자마자 뉴질랜드에서 북통으로 쓸 수령 150년 이상 된 나무 47쪽과, 1.5톤 이상의 종자소 5마리와 황소 3마리 분의 가죽 8장을 들여왔어요. 그것들을 잘 말리고 가공하면서 2년간 보관을 하다가 북통에 가죽을 메우고 마지막으로 단청을 했습니다. 이 기간이 2년 6개월이었어요. 북이 완성된 후 기증의사를 발표했고, 8개월을 기다린 끝에 조직위원회로부터 기증수락을 받았습니다. 완성된 북을 서울까지 직접 싣고 갔어요. 담당과장은 북이 이렇게 큰 것인줄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북을 제작하시는 분이라서 연세가 많으신 분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젊은 분이셨냐"며 또 한번 놀라워했죠." Q. 88서울올림픽 개회식 때 선생님이 기증하신 용고가 등장했을 때 남다른 감동을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1988년 9월 17일 올림픽 개회식 첫번째 순서로 강상제에 이어 메인스타디움으로 용고행렬이 입장을 하는데, 아나운서가 "대한민속국악사 김관식씨가 제작한 용고로, 현존하는 북 중 세계에서 가장 큰 북입니다"하고 소개를 하는데, 눈물이 앞을 가렸어요. 하지만 울 수도 없었던 게, 그 때부터 전화가 빗발쳤기 때문이에요. 장하다, 대단하다, 세계가 보고 있다, 당신은 진정 나라를 위해 살고 있는 사람이다... 3일 내내 축하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왼쪽부터 올림픽 용고에 대한 기사, 용고기증 수령증, 박세직위원장의 자필 감사편지, 표창장 Q. 당시 88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로부터 엄청난 감사인사와 표창도 받으셨겠네요. "사실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올림픽 이후 그 어떤 감사표시도 없어서 많이 서운했어요. 올림픽 폐회식과 함께 올림픽 유치와 개최 등에 있어서 유공자 표창을 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죠. 안기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박세직 조직위원장을 통해 뒤늦게 표창을 받았습니다." 88서울 올림픽 유공 감사패와 트로피 Q. 늦게라도 유공 표창을 받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어떻게 된 일인가요? "박세직 조직위원장이 안기부장으로 재직하면서 모신문에 '서울 올림픽 이야기'를 연재했어요. 박위원장은 서울올림픽 개회식 최고의 장면으로 굴렁쇠 소년, 성화점화, 그리고 단연 1위는 용고행렬을 꼽으면서, "조직위원회가 감사장 하나 챙기지 못했다니 깜짝 놀랐다. 올림픽 개최에 있어서 공이 있는 사람을 세심하게 파악해 표창을 했는데 어떻게 용고 제작자는 챙기지 못하다니 미안한 마음 금할 길 없다"고 지면에 썼죠." 김관식 악기장이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88서울올림픽 관련 자료들 Q. 박세직 조직위원장과는 그 후로도 특별한 관계를 이어 오셨다고요. "지면 게재 후 안기부로 초청을 받았어요. 접견실에서 진심에서 우러나온 사과와 함께 표창장과 감사패, 감사장, 기장증, 직원용 넥타이와 스카프 등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 인연으로 우리 집안의 행사에도 4차례나 참석했죠. 아들의 결혼식 주례를 맡아주시기도 했어요." Q. 88서울 올림픽 이후에도 아주 중요한 대북(용고)를 제작하셨지요? 대표적으로 어떤 게 있나요? "1991년, 현재 청와대 춘추관 옥상에 설치된 신문고(용고)를 제작했어요. 조선시대 백성들이 왕에게 억울함을 직접 알리는 한 수단으로 대궐 밖 문루에 매달았던 신문고(申聞鼓)를 이용했습니다. 민의상달(民意上達)의 역사와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제작한, 울림판 지름 200cm, 북통길이 230cm의 대북이었습니다. 88서울 올림픽에서의 용고를 보고 청와대에서 요청이 왔고, 마침 올림픽 용고 제작을 위해 마련해 두었던 가죽의 여분이 있어서 곧장 제작에 들어갔죠." 왼쪽부터 청와대춘추관 용고(1991), 통일기원북 (1992, 통일전망대), 평화우정의북(1993, 대전엑스포기념관), 전진의북-진고(2008) / 축소재현본 ▶ 울림판 지름 200cm, 북통길이 230cm, 총중량 600kg에 달하는 통일기원북은 1992년 6월에 통일기원의 큰 뜻을 담아 제작 ·기증했다. 현재는 오두산 통일전망대에 설치돼 있다. ▶ 1993년 대전엑스포 개회식에 사용된 은 울림판 지름 216cm, 북통길이 245cm, 중량 1,000kg의 대형 북으로 30개월의 기간동안 1,000명이 동원되어 제작되었다. 원본은 대전엑스포 기념관에 설치되어 있다. ▶ 2008년 건군 60주년을 기념하여, 광복이후 지나온 60년을 바탕으로 미래의 60주년을 다짐하여 선진강군에게 미래로 세계로의 출정을 명령하는 국민의 뜻을 담아 를 제작하였다. 호랑이 문양은 용맹스러운 우리 군의 강한 모습을 표현한 것이며, 북에 둘러진 도자는 순국선열들의 호국의지를 계승하기 위해 전국대학생 국토순례단원들이 수집한 전적지의 흙과 물로 빚었다. 원본은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대전전통나래관 상설전시실에 전시된 김관식 악기장 자료 Q. 93대전엑스포는 대전시민에게는 자부심을 갖게 해준 행사였는데, 평화우정의북 기증에 있어서 오해가 있어서 조금 서운하셨다고요. "대전에서 정말 의미있는 행사를 하게 되니까 대전시민의 한사람으로서 기쁜 마음에, 조직위원회에 대북 제작기증 의사를 밝혔지만, 혹시 무슨 대가를 원하느냐는 반응이었어요. 하지만 정성껏 북을 제작해 기증을 했고, 개회식에 사용됐죠." Q. 3대째 전통방식으로 북을 만들어오시고, 아드님까지 4대째 이어오고 계시지요? "조부 (고 김재권선생)는 충남 논산시 채춘면에서 30여 년간 북을 제작했고, 조부의 유업을 이어받는 부친(고 김귀평선생)은 대전으로 옮겨 50여 년간 북을 만들었어요. 저는 7살 때부터 두 분 곁에서 북 만드는 일을 도우면서 자연스럽게 가죽 만지는 데 재미를 느꼈죠. 가죽 냄새를 맡으며 북통 안에 들어가 놀면서 북과 가죽은 삶의 조건이자 존재의 이유가 됐어요. 아들에게도 이어져 4대째 가업을 잇고 있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죽을 때까지 북을 제작할겁니다. 전국에 북을 제작하는 곳이 20여 곳 되는데, 전통방식을 고수하는 데는 많지 않아요. 대부분 임가공해 온 재료를 사용합니다. 전통방식으로 북통을 만드는 과정과 가죽을 손질하는 것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이 드는 과정이지만 우리의 전통이기 때문에 대대손손 이어갈 생각입니다." 아직 건강은 괜찮아 북을 만드는 데 문제가 없다는 김관식 악기장 그는 "나는 북에 인생을 걸었다"라고 말하며 특별한 전시회에 찾아온 많은 축하객들 사이에서 환하게 웃음 짓습니다. 2018/07/18 - [대전문화생활/전시ㆍ강연] - 대전무형문화재 제12호 김관식 악기장의 화양연화(花樣年華)는? = 대전전통나래관 기획전시 = 花樣年華(화양연화), 북으로 메워낸 순간들 일 시 : 2018년 7월 20일(금) - 8월 19일(일) 10:00-17:00 (월요일 휴관) 장 소 : 대전전통나래관 3층 기획전시실 관람료 : 무료 관람문의 : 대전전통나래관 홈페이지 narae.djichc.or.kr:4445 ☏ 042-636-8008, 8061 2018 대전광역시 소셜미디어기자 조강숙
대전무형문화재 제12호 김관식 악기장의 화양연화(花樣年華)는?
대전무형문화재 제12호 김관식악기장(북메우기) 의 작품전시회가 7월 20일부터 8월 19일끼지 대전전통나래관(동구 소제동)에서 열립니다. 전시회 제목은 인데요. 동명의 홍콩영화도 있지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만개하는 화려한 꽃에 비유한 말입니다. 김관식 악기장이 말하는 '인생의 가장 화려한 시간'은 언제였을가요? 올해는 2018 평창올림픽이 개최된 해로,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이후 30년만의 국가적 행사가 치러졌습니다. 88서울올림픽은 김관식악기장에게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기억으로 새겨져 있는데요.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 개회식에서 김관식 악기장이 기증한 이 등장해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88 서울올림픽 개막식 당시 등장했던 '평화통일의 북' (김관식 악기장 소장 사진) 이제 30주년을 기념해, 전통방식과 김관식 악기장만의 방식으로 시대를 메워낸 작품들을 선보이는 전시회를 갖게 된 것인데요. 김관식악기장의 전시작품 이번 전시는 서울올림픽 개회식의 ‘평화통일의 북’, 대전엑스포 개회식의 ‘평화우정의 북’ 등 5점의 재현본과 함께 관련 소장품과 기록, 사진, 동영상 등 약 40건 177점을 선보입니다. (왼쪽)청와대 춘추관 용고 (오른쪽) 대전엑스포 '평화우정의 북' 김관식 악기장은 대전 유성구에 북을 제작하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무형문화 놀이학교 등을 통해 대전시민과 어린이들에게 우리 북의 소중함을 알리고 있습니다. (겨울방학 신나는 무형문화 놀이학교 / 소고만들기) ☞ http://daejeonstory.com/8782 그런데 김관식 악기장은 30년 전에 어떤 인연으로 88서울올림픽에 대북 용고를 제작해 기증하게 됐을까요? 그 이야기는 인터뷰기사를 통해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88서울올림픽 당시 '평화통일의 북' 재현본 북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전시물 = 대전전통나래관 기획전시 = 제 목 : 花樣年華(화양연화), 북으로 메워낸 순간들 일 시 : 2018년 7월 20일(금) - 8월 19일(일) 10:00-17:00 (월요일 휴관) 개막식 : 7월 20일(금) 15:00 장 소 : 대전전통나래관 3층 기획전시실 관람료 : 무료 관람문의 : 대전전통나래관 홈페이지 narae.djichc.or.kr:4445 ☏ 042-636-8008, 8061 2018 대전광역시 소셜미디어기자 조강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