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방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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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 둘러보기

[현대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 둘러보기
남산골 한옥마을은 개장한 지 얼마되지 않은 곳으로 서울 남산 제모습 찾기 사업의 일환으로 시행되었습니다. 남산골 한옥마을은 서울 중구 필동의 남산골공원에 있는 한옥 마을의 이름입니다. 1989년에 시작된 남산 제모습 찾기사업으로 각지에 흩어져 있는 한옥을 한군데 모아 조그마한 볼거리가 있는 마을을 조성하여 1998년에 남산골 한옥마을로 문을 열었습니다. 원래 남산골 한옥마을이 있는 자리는 수도방위사령부가 주둔하고 있던 부지로 군사보호구역이었다 합니다. 하지만 서울시가 남산 제모습 찾기사업에 의해 서울시와 수도방위사령부가 합의하여 서울시가 수도방위사령부에서 남산골 한옥마을이 들어선 지금의 땅을 인수하고 군사보호구역에서 해제되면서 서울시 민속자료와 한옥 5개동을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총

[근대 한성] 독립의 상징인가, 오욕의 상징인가... 독립문을 가다

[근대 한성] 독립의 상징인가, 오욕의 상징인가... 독립문을 가다
지금 사적 32호로 지정되어 있는 독립문은 1890년대 초 서재필 등 개화파에 의해 건립이 추진되었습니다. 독립협회는 중국 사신들을 환영하던 중국 사대의 치욕스런 상징이었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의 상징을 건설하기위해 고종에게 건의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라는데... 사실 영은문은 독립문이 세워질 당시에 이미 헐려 있었습니다. 중일전쟁이 끝난 후 승전국인 일본은 영은문을 헐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독립문은 1896년에 공사를 시작해 1897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사바틴의 설계로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본따 만들어진 독립문의 현판은 지금은 희대의 매국노로 일컬어지는 이완용이 썼습니다. 사실 독립문이 건립될 당시만 하더라고 이완용은 조선의 독립에 열망이 컸던 독립열사였습니다. 독립협회 창립당시 독립협회

[조선 한성] 흥인지문(興仁之門)

[조선 한성] 흥인지문(興仁之門)
조선의 사대 관문 중 하나인 흥인지문은 도성을 만들 당시 만들었던 사대문 중 동쪽에 있는 문이라 해서 동대문이라고도 합니다. 원래 조선 창업 당시 사대문의 이름은 유학의 덕목인 “인의예지신”을 따라 지었는데 이에 따라 동서남북의 사대문은 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으로 지었는데 다른 문들과 달리 흥인지문만 이름이 넉자입니다. 이는 고종 때 한양 동쪽의 지기가 약하다고 하여 그 지기를 돋우기 위하여 넉자로 지었다고 합니다. 흥인지문은 숭례문과는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는데 숭례문이 크고 화려한 면이 특징이라면 흥인지문은 숭례문보다는 소박하고 아담한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흥인지문은 숭례문과 동일한 2층의 누각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정면 5칸 측면이 2칸인 다포계열의 2층 건물입니다. 석축 가운

[현대 서울] 동대문 역사 문화공원

[현대 서울] 동대문 역사 문화공원
동대문 역사공원은 옛 동대문 운동장이 있던 자리에 생긴 공원입니다. 원래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이 있던 자리에는 동대문 운동장이 있었고 그 동대문 운동장이 철거되면서 동대문 디자인플라자를 조성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이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사업이어서 이러저런 말이 많았지만 어쨌던 동대문 운동장은 철거되고 그 자리에 디자인플라자 건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동대문 운동장은 일제시대 히로히토 왕세자의 생일을 기념하는 건축물로 만들어진 경성 운동장이 모태가 되었습니다. 일제 경성에서 유일하게 스포츠를 할 수 있는 공간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몇 안되는 장소였기 때문에 일제의 감시가 언제나 삼엄한 곳이었다 합니다. 그 경성 운동장은 해방 후 서울 운동장이 되었고 잠실 종합 운동장이 생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