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초의 워싱턴DC '지하철 하이킹' 다섯번째 이야기는 어느 도시에나 있는 기차역과 그 앞의 광장, 그리고 한국분들이라면 특히 관심 없어할 기념물 두 곳을 묶어서 소개한다. 이어질 마지막 한 편이 더 남았으니까, 그 날 4시간 하이킹을 해서 총 6개의 포스팅을 작성하게 되는 셈이라, 위기주부 블로그 역사상 가장 '시성비(時性比)'가 좋은 날이었다 할 수 있겠다. 물론 소개한 장소들이 블로그 방문객들에게는 무의미해서, 댓글도 거의 달리지 않는 쓰잘데 없는 글들이 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전편에 소개한 우편박물관을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면, 같은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다른 거대한 건물의 멋진 회랑이 나오는데, 지하철역 지상출구와 연결된 옆문을 통해 내부로 들어가봤다.
그 곳은 옛날에는 미국 수도의 대표적 관문이었던 기차역인 유니언 스테이션(Union Station)으로, 1908년에 최초로 지어진 후에 1980년대에 현재의 모습으로 거의 재건축이 되었다고 한다.
정문과 연결된 메인로비의 웅장한 모습인데, 재미있는 사실 하나 알려드리면 국립공원청(National Park Service) 최대의 흑역사가 여기서 벌어졌다. 1970년대 철도여객이 급감해서 역사가 썰렁해지자, NPS 주도로 여기에 DC의 역사를 보여주는 175석의 극장 및 당시 최첨단의 코닥 슬라이드 기계 100대를 이어붙여서 관광지들을 보여주는 내셔널 비지터센터(National Visitor Center)를 만들어 독립 200주년인 1976년에 맞춰 오픈했다. 하지만 이용객이 없어서 불과 2년만에 문을 닫았는데, 설치와 운영에 당시로 1억불(현재로 약 5억불)의 돈을 날렸단다.
위키피디아에서 가져온 이 사진과 같이 로비를 지하로 파내고, 그 벽면에 조각조각 나눠진 화면들로 의사당의 모습 등을 크게 슬라이드쇼로 틀어놓고 사람들이 힘들게 계단을 내려가 걸어서 구경하도록 했는데, 이게 100% 실패할 수 밖에는 없었던 이유는 그냥 기차역 정문 밖으로 나가면...
의사당 지붕이 실물로 눈에 보이는데, 바쁜 관광객들이 누가 쪼개진 화면을 보려했겠느냔 말이다! ㅎㅎ 이제 횡단보도를 건너고 사람들을 내려주는 플랫폼을 지나서 역앞 광장의 가운데로 가보자~
컬럼버스서클(Columbus Circle)로 불리는 유니언역 광장에는 필라델피아 '자유의 종' 리버티벨(Liberty Bell)의 커다란 복제품과 함께,
1912년에 만들어진 대리석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기념분수(Christopher Columbus Memorial Fountaiin)가 있지만, 수리가 필요한 상황이라서 물이 나오지 않은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사선의 루이지애나 애비뉴(Louisiana Ave)를 따라 남서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다음 목적지가 나온다.
정식 이름이 Japanese American Memorial to Patriotism During World War II로 아주 긴 기념물이 삼각형 모양의 부지에 만들어져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일본의 진주만 폭격 후에 미본토의 일본계 미국인들을 강제로 이주시켰던 10곳의 강제수용소 이름이 원형의 벽에 새겨져 있는데, 2012년에 아래 여행기를 올렸던 만자나(Manzanar)와 2021년에 차로 정문 앞을 그냥 스쳐 지나갔던 튤레이크(Tule Lake) 이름이 낮익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중의 일본계 미국인 강제수용의 역사에 대해서는 위를 클릭해서 보시면 사진과 함께 잘 설명이 되어있다.
멀리서 봤을 때 연말에 설치했던 전구를 밝히는 전선을 아직 치우지 않은 것으로 잠깐 생각했었는데,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두 마리의 학을 감고있는 것은 바로 철조망이었다. 약 12만명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직업과 재산을 포기하고 외진 수용소로 향해야 했고, 강제징집된 일본계 청년들은 유럽전선에서는 전투부대에, 태평양전선에서는 통역과 도청 등의 임무에 투입되었다.
그 후 40여년이 지난 1988년에야 레이건 대통령이 당시 미정부의 반헌법적인 인권유린에 대해 공식사과 후 1인당 2만불의 배상금을 지급하고, 1990년에 여기 기념물이 만들어지게 된다.
일본식 선정원(Zen Garden)과 비슷하게 만들어 놓은 곳도 있는데, 물이 얕게 고이는 풀(pool)이지만 겨울이라 물을 잠궈놓았다. 여기서 남쪽으로 교차로를 건너면 키 큰 나무들이 심어진 작은 숲이 나오는데, 그 속에 본편에서 소개하는 마지막 기념물이 높이 세워져 있다.
작년에 알링턴에 있는 네덜란드 카리용(Netherlands Carillon)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지도에 태프트 메모리얼 카리용(Taft Memorial Carillon)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한국인들에게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감정이 좋지 않은 제27대 윌리엄 태프트(William Taft) 대통령을 기념하는 종탑이라고 생각하며, 정면으로 돌아가서 계단을 올라가 반대쪽 동상을 바라봤는데...
콧수염에 뚱뚱한 태프트 대통령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확인을 해보니 그의 장남인 로버트 A. 태프트(Robert Alphonso Taft) 상원의원으로 1952년 아이젠하워와 맞붙은 공화당 내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이겼다면 최초의 '부자(父子)' 대통령 타이틀을 챙길 수도 있었던 사람이었다.
경쟁상대였던 아이젠하워의 대통령 당선을 도운 후에 3선으로 상원 집권당 원내대표에 선임되어 "Mr. Republian"으로 불리며 차기를 노렸지만, 1953년 63세의 나이에 암으로 재임중 급사하는 바람에 입법을 거쳐 1959년에 의사당 북쪽에 이 특이한 상원의원 기념물이 만들어진 것이란다. "그런데 왜 하필 종탑(carillon)으로 만들었을까?"
이제 '헌법대로' Constitution Ave를 따라서 야트막한 의사당 언덕(Capitol Hill)을 오르는 하이킹의 가장 힘든(?) 구간이 나왔다. 이 길을 따라가면 지하철 하이킹 계획의 시발점이 되었던 2016년에 지정되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준국립공원(National Monument)이 하나 나오는데, 미국 대법원과 함께 시리즈 마지막 편으로 소개해드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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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에서 워싱턴DC까지 1차 대륙횡단을 7박8일로 마친 후에, 버지니아에 도착해서 5박을 하며 머무르기는 했지만, 집도 구해야하고 자동차도 고장나는 등 여러 일로 스트레스를 받아 제대로 쉰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는 비행기를 타고 LA로 돌아와서 바로 2차 대륙횡단을 시작해서 5박을 더 했으니, 전날 콜로라도 듀랑고(Durango)에 도착했을 때 우리 부부는 18일째 유랑생활을 하고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부근 관광은 둘째치고 일단은 잘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2박을 예약했는데, 이것은 두 번의 대륙횡단 도중에 유일하게 한 숙소에서 연달아 숙박했던 것이다.
늦잠을 푹 자고, 밀린 빨래도 하고, 점심까지 먹은 후에 설렁설렁 듀랑고 시내구경을 나섰다. (구글맵으로 지도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아침에 잠깐 아래 지도의 도로를 조금이라도 자동차로 달려볼까 고민을 했었지만, 이삿짐을 가득 실은 승용차로 해발 1만피트의 고갯길을 넘는 것도 부담스럽고, 무엇보다 산 위에는 단풍이 다 떨어졌을 것 같아서 관뒀었다.
샌후안스카이웨이(San Juan Skyway)는 콜로라도 남서부의 산악지대를 한바퀴 도는 관광도로로, 기아 자동차의 대형 SUV 이름을 따온 마을인 텔루라이드(Telluride)와 '미국의 스위스'라는 별명의 우레이(Ouray), 그리고 거기서 남쪽 실버튼(Silverton)까지 이어지는 '백만불짜리 도로' 밀리언달러하이웨이(Million Dollar Highway) 등으로 유명하다. 또 여기 듀랑고에서 실버튼까지는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관광열차도 매일 운행을 한다.
바로 이 기차역에서 듀랑고-실버튼 협궤열차(Durango & Silverton Narrow Gauge Railroad)가 아침에 출발을 하는데, 전날 표 가격과 시간도 다 알아봤지만... 무려 두 명의 만장일치로 그냥 늦잠을 푹 자며 쉬는 것을 선택했던 것이다.^^
하루에 한 번 있는 관광열차가 떠나고 난 기차역의 내부는 아주 한산했다. 안에 있는 기념품 가게를 잠시 둘러본 후에 역사를 관통해서 철로가 있는 쪽으로 나갔다.
이 도시도 해발 2천미터 가까운 고지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기는 아직 노란 단풍이 좀 남아 있었다.
우리가 둘러볼 곳은 철로 건너편에 만들어져 있는 여기 D&SNG Museum, 즉 이 관광노선에 관한 철도박물관이었다.
전형적인 미국 시골의 박물관 내부를 떠올리게 하는... 수 많은 전시품이 실내에 이리저리 빼곡한 모습이 정겨웠다~
일단 사모님이 백옥같은 피부의 미남 차장님하고 함께 사진 한 장 찍으셨다.^^
퇴역한 증기기관차 한 대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듀랑고-실버튼 노선은 미국에서 얼마 남아있지 않은 증기기관차가 아직도 정기적으로 운행되는 곳으로 철로 자체가 미국의 국가유적(National Historic Landmark)으로 지정이 되어있단다.
기차가 지나는 광산촌 마을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있었는데, 클릭해서 설명과 함께 확대해서 보실 수가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기차가 지나는 도시의 모형도 아주 크게 만들어 놓았고, 가장 대단한 것은 저 철로들이...
전체가 다 연결이 되어서 실제로 모형기차가 움직이며 돌아 다니는 것이었다! 예전에 LA 그리피스 공원에 있는 월트디즈니 캐롤우드반(Walt Disney's Carolwood Barn) 기차박물관에서도 움직이는 모형기차들을 본 적이 있는데, 이런 디오라마와 움직이는 모형기차 만들면서 놀면 참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아직도 든다...^^
그 외에도 서부시대 골동품 등과 또 작은 장난감 군인들이 시대별로 많이 전시가 되어 있었고, 천정에는 하늘을 나는 오토바이(?)도 한 대 매달려 전시되어 있었다. 저 멀리 입구쪽에 보이는 사람들은 가이드 투어를 하는 것 같았는데, 조금 따라다니가 구경을 마치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여기 관광열차도 아니마스 강(Animas River)의 좁고 깊은 계곡을 따라 놓여진 철로를 달리기 때문에 위쪽의 경치가 잘 보이도록 이렇게 천정이 뚫어진 객차들이 있는데, 우리 부부는 이 모습을 본 순간에 결혼 20주년 기념여행으로 페루 쿠스코에서 마추픽추 갈 때 탔던 페루레일의 추억이 떠올랐다.
객차 앞에서 커플사진을 찍고 있는데, 저 멀리 기차가 오는 소리가 들려서 관광열차가 돌아오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앞쪽에 눈을 치우는 장치를 달고 있는 노란 디젤기관차가 하나의 화물칸만 달고는 역에 들어왔다. 샌후안스카이웨이(San Juan Skyway)를 기차나 자동차로 돌아보는 것은 다음에 다시 콜로라도 남서부를 방문하게 되면 해보기로 하고, 기차역을 나서서 주변 가게들 구경이나 하기로 했다.
그 중 한 곳의 입구 바닥에 커다랗게 붙어있던 그랜드서클(Grand Circle) 지역을 보여주는 지도이다. 대륙횡단기 전편에서 소개했던 지도보다는 서클의 반지름이 훨씬 더 크고 중심도 남동쪽으로 치우쳐서, 콜로라도 샌후안 국유림(San Juan National Forest)과 뉴멕시코의 산타페(Santa Fe)까지 포함하는 것이 보인다. 사이즈야 어찌 되었건 간에 이제 미서부의 그랜그서클과도 안녕이다~
오른편 스트라터 호텔(Strater Hotel)은 1887년에 지어져서 지금도 영업을 하는 곳으로, 1989년에 설립된 미국역사호텔(Historic Hotels of America) 협회의 32개 창립멤버 중의 하나인 전통이 있는 곳이라 한다. 이제 편하게 숙소로 돌아가서 콜로라도 듀랑고(Durango)에서의 휴식을 마치고, 다음날 부터는 다시 동쪽으로 미지의 길을 달려서 대륙횡단 이사를 계속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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