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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9년 3월 6일 |
올해는 3.1 독립만세운동이 발발한 지 100년, 한 세기를 맞는 뜻깊은 해입니다. 3월 1일을 전후해 전국적으로 많은 기념행사가 열렸습니다만, 3.1 독립운동으로 인해 대전에 새로 지어졌던 '대전감옥소'에 대한 기록과 역사를 짚어보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 소개합니다.
1919 대전감옥소(Archives of Daejeon Prison Since 1919) / 대전근현대사전시관 특별전시실
이번 전시는 대전근현대사전시관(구.충남도청사) 특별전시실에서 오는 6월 30일까지 열립니다.
지난 2월 28일 개막식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대전시립박물관이 운영하게 된 대전근현대사전시관(구.충남도청사)
오후 4시, 대전근현대사전시관 1층 로비 중앙계단 앞에서 전시관계자와 시민 등 50 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시가 개막됐습니다.
먼저 성악가 최영민이 '아름다운 나라'와 '우정의 노래'를 연주하고, 대전시립박물관 류용환 관장의 인사말이 이어졌습니다.
류용환 관장은, 3.1 독립만세운동과 역사를 함께 하는 대전감옥소는 도산 안창호와 몽양 여운형, 심산 김창숙 등 항일독립운동가들이 투옥돼 고초를 겪은 시설이라며, "이번 전시회를 통해 더 많은 이름없는 선각자들의 희생정신과 흔적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류용환 대전시립박물관장
이어서 주요내빈 및 관계자가 전시회 테이프커팅식을 가졌고요.
<(왼쪽부터) 노원록 민중당대전시당 위원장, 백남우 '옛터를 생각하고 돌아보는 모임' 사무국장, 류용환 대전시립박물관장, 민양운 풀뿌리여성마을숲 대표, 안여종 대전문화유산울림 대표, 김정호 백제문화원장, 최지원 한밭문화마당 대표>
전시회를 기획한 고윤수 대전근현대사전시관 학예연구사가 전시된 자료를 차례차례 설명해 주었습니다.대전감옥소는 100년 전 3.1 독립만세운동으로 인해 대거 검거된 독립투사들을 수감할 공간이 부족하자, 당시 충남 대전군 중촌리(현재 대전 중구 중촌동)에 짓기 시작해, 그 해 5월에 총 면적 3만 4천 평, 구내면적 1만 4천평 규모로 준공됐는데요. 이번 전시는 대전감옥소의 기록과 흔적들을 모은 일종의 아카이브입니다.
전시실 입구의 인물은 이번에 전시된 대전감옥소 수형자 기록 중에 있는 엄창복으로, 한인애국단으로서 중국에서 국내로 잠입하다가 체포돼 서대문형무소를 거쳐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독립운동가입니다. 수형기록에 따르면 죄명이 치안유지법 위반이에요. 관람객들에게 전시에 대한 설명을 하는 고윤수학예사
전시장의 첫번째 전시물은 1923년 대전감옥소가 대전형무소로 개칭한 후의 모습을 1/77로 축소한 모형과 함께, 수형자 카드에 게재된 수형자들의 얼굴을 슬라이드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1923년 개칭한 대전형무소 1/77 모형과 수형자 카드 슬라이드
그리고 지금은 훼손된 망루와 우물 등 남아있는 일부 시설과 사진, 기록 등과 함께, 대전감옥소에서 대전형무소로 개칭하면서 '사상범 감옥'으로 지정된 사실과 시설 확충 등, 1945년 해방 되기까지 연혁을 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슴이 찡한 전시물은 수감자들의 신상과 죄목 등을 적은 54명의 수형기록카드인데요.여기에는 수감자의 사진과 이름, 본적, 태어난곳, 주거, 신장, 직업, 죄명(대부분 치안유지법 위반) 뿐 아니라 촬영장소와 시간, 보존원판, 검거관서 등 총 27개 항목이 자세히 기록됐씁니다.
죄명으로는 출판법과 국가총동원법, 폭발물취체, 보안법 등이 있고, 절도와 강도살인, 주거침입절도도 있네요.
그리고 현재까지 확인된 수형기록카드의 가장 늦은 연번은 65,193번이라고 해요.
전시된 수형기록카드
대전형무소의 신축설계도를 비롯해 감방, 청사, 공장, 취사장과 목욕장, 정문, 검신실, 돈사 등 부분별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상세한 기재사항 등도 확인할 수 있도록 돋보기도 준비돼 있는데요. 건축학을 공부하는 사람한테는 아주 귀한 자료가 될 것 같아요.
대전형무소의 구조물 별로 자세한 설계를 볼 수 있다
2018년 8월 '옛 대전형무소 역사관광 자원화 조성사업' 공사중 새로 발견된 유구의 구제발굴조사 현장에 대한 자료도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이후의 취사장 명문벽돌과 작업장, 이동로, 배수로로 추정되는 곳, 창고와 담장, 그리고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구상유구(도랑 형태의 구조물), 수혈(땅 속으로 파내려간 구덩이) 등을 발굴하고 있는 현장 사진 등입니다.
2018년 대전형무소터 발굴조사 기록
이곳은 현재 보존조치가 이루어졌고, 2019년 옛 대전형무소터에 대한 '종합정비계획용역'이 추진될 계획이라고 하는데요. 어떤 모습으로 재탄생 될지 자못 궁금합니다. 명문벽돌
2018년 대전형무소터에서 추가로 발굴된 유구
대전형무소에 대한 7분 47초 길이의 기록영상에는, 1950년 10월 30일~31일 대전형무소의 미군 25사단 기지에서 민간인과 북한인민군 포로들이 수용되는 장면, 포로들을 심문하는 미군, 사복을 입은 민간인들을 몸수색하는 장면, 형무소 내 감방을 순찰하는 군인 모습 등이 담겨 있습니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원의 전갑생 연구원이 발굴해 지난 2018년 8월 공개한 영상이라고 해요.1950년 대전형무소 기록영상 상영코너
이번 전시는 역사를 기념하는 가장 현명한 방식은 '기록'이라는 믿음에서 기획됐습니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개발로 인해 사라진 많은 역사적 장소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기록은 개발의 전제이며 보존의 기본'임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겨있습니다.
3.1 독립만세운동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에, 독립운동가들이 고초를 겪었던 옛 대전감옥소의 자료들을 보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내놓았던 선조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감사하는 시간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3.1운동 100주년 기념 대전근현대사전시관 특별전 <1919 대전감옥소>
전시일시 : 2019. 3. 1 - 6. 30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시간 : 10:00 -17:00
전시장소 : 대전시립박물관 대전근현대사전시관 제2,3기획전시실
관람료 : 무 료
2019 대전광역시 소셜미디어기자 조강숙 By
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9년 2월 22일 |
시간을 달리는 버스여행 금강오딧세이테마버스
아이들과 함께 금강오딧세이테마버스를 타고 떠나는 박물관 원도심투어!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의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참여하여 재미난 시간을 보냈는데요, 그 현장을 함께 다녀왔습니다.
대전시청에서 북문앞 버스정류장에서 모여 버스를 타고 옛충남도청인 대전근현대사전시관으로 출발하였습니다.
테마버스는 이동하는 순간에 1970대년대로 돌아가는 타임머신 버스입니다. 과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대전의 명소 대전근현대사전시관에서 아이들은 미션을 통해서 대전의 근현대사를 알아보게 됩니다.
옛충남도청사는 1932년충남도청이 충남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사하면서 도청사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2012년 12월 충남도청이 내포 신도시로 이전하면서 현재는 대전의 근현대사를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각자 미션지를 받아서 문제를 풀어볼 예정입니다. 대전 연표를 살펴보고, 구한말 대전의 애국계몽운동과 근대기 대전의 변화와 발전에 대해 꼼꼼히 살펴보고 답을 적어가고 있습니다.
단순히,문제의 답을 구하기보다는 근대의 역사와 생활상을 살펴보고 흥미롭게 문제를 풀어갈수 있도록 하여 다시한번 대전의 근현대사를 생각해볼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갔습니다.
두번째로 찾은 공간은 옛충남도지사관사촌입니다. 지금은 문화힐링의 공간이 테미오래로 새롭게 탄생했습니다.
문화해설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숨어 있는 비밀의 공간도 찾아보고, 지금 있는 현장의 의미도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특별한 공간에 온 만큼 기념사진을 빼 놓을순 없겠죠?
오전시간 대전의 과거여행을 다니다보니, 배가 고플때가 되었습니다. 점심으로 맛있는 찜닭으로 맛있고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자유롭게 먹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공주로 출발하여 도착한곳은 '국립공주박물관'입니다.
무령왕릉의 비밀 찾기! 백제가 한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웅진백제시대의 왕 이름 찾기, 무령왕릉 무덤 내부 벽돌에 장식된 무늬가 어떤 무늬인지 등 다양한 미션을 수행했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박물관을 찾아다니면서 미션을 하고 있습니다. 미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전시물을 관람하고 그 의미도 생각하면서 배움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1년 후 미래로 보내는 느리게 가는 엽서 체험과 '다리가 만든 은제 팔찌 만들기를 체험했습니다.
대전에서는 눈이 내렸는데, 공주에 오니 날씨가 밝아졌네요~ 밝은 날씨에 모두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풀꽃시인 나태주 선생님의 공간인 풀꽃문학관이었습니다.
나태주선생님의 설명을 들을 수 있을 뻔 했는데, 방금 막 외출을 하시는 바람에 아쉽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공간을 둘러보며, 눈이 향기로운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보냈습니다.
옛 충청감영의 정문이었던 포정사 문루가 복원되어 공주 원도심인 공주대학교부설 고등학교, 중학교 정문에 복원됐습니다.
공주풀꽃문학관을 따라 원도심 골목여행! 대통사지, 공주목터, 공주제일교회, 공주하숙마을, 제민천으로 원도심 골목여행을 다닐 예정입니다.
원도심 골목여행을 다니던중 들려보게 된, 공주갑부라고 소문난 김갑순의 옛 집터에 들려 잠시 설명을 들었습니다.
대통사지의 당간지주와 공주제일교회 기독교박물관을 들렸습니다.
공주제일교회는 1902년 시작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고간의 역사속에서 신흥식 목사, 현석칠 목사, 김창홍 목사 등의 목회자들과 유관순, 그의 친오빠 유준석등의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배출되었습니다.
공주 원도심 제민천 하숙테마거리입니다. 1960~80년대 과거로의 감성 산책을 다니기에는 좋은 산책길입니다.
제민천에서 자유시간을 갖고 원도심의 벽화거리와 제민천에서 재미난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제민천을 마지막으로 대전으로 돌아가는 금강오딧세이 테마버스에 탑승하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나태주 선생님의 풀꽃 시 낭송도 해보고, 간단한 소감도 나누는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대전을 떠나 공주로 여행에 즐거워하였고, 다양한 체험과 맛있는 먹거리가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단순히 박물관에서 전시물을 관람하는 시간이 아닌, 그 의미까지 생각해볼 수 있는 소중하고 의미있는 시간이 아니었나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소중하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시간을 달리는 버스여행 금강오딧세이 테마버스를 타고 추억의 박물관 원도심 투어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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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9년 1월 21일 |
길을 가다가 이런 현수막이 걸린것을 보셨나요?
'대전웹툰캠퍼스전시회'라니, 궁금한 것은 가봐야겠지요? 대전근현대사전시관 기획전시실에서 하고 있답니다.
대전근현대사전시관으로 출또옹~~!
대전근현대사전시관 3층 대전웹툰캠퍼스
대전웹툰캠퍼스-대전근현대사전시관 3층
대전근현대사전시관 3층에 가면 웹툰창작센터가 있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대전광역시에서 웹툰 작가들에게 작업실을 지원해 웹툰 작가들의 창작을 돕는 공간이 있는데요. 2015년에 개관했습니다. 그 전에는 대전근현대사전시관에서 국제만화가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대전웹툰캠퍼스전시회에 가서 보니, 대전근현대사전시관 기획전시실3의 방 이름이 '만화웹툰전시실'로 바뀌어있도라고요. 전시 기간이 명시되지 않은 것을 보니 상설전시장으로 운영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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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웹툰캠퍼스 사이트 http://dcwcc.or.kr/
웹툰이 온라인에서 뿐만 아니라 드라마로도 만들어지고 영화화 되기도 하는 등 여러가지로 대세인 창작의 시대입니다.
몇 년 전에는 서울 서초동에 있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대대적으로 웹툰 전시를 한 적도 있었는데, 그걸 보겠다고 아들과 함께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을 간 적도 있거든요. 필자는 웹툰을 즐겨 보지는 않지만(사실 볼 시간이 없지만) 어떤 상황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아들과 공감대를 갖고 싶어서 함께 보러갔었죠. 당시 내노라~하는 웹툰 작가들의 작품을 모두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대전웹툰캠퍼스 만화웹툰전시실에서 만나는 만화의 역사
대전근현대사전시관의 '만화웹툰전시실'은 만화가 지나온 역사부터 현재 어떤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지까지 알짜만 보여줍니다.
만화는 사물이나 사건의 성격을 과장되거나 생략된 표현으로 웃음의 소재나 풍자의 대상으로 삼은 회화인데요. 일반적으로는 스토리를 갖고 있는 연속적인 글과 그림이 조합을 말합니다.
만화는 2차원 시각예술로 시작해 음성과 음향효과, 음악 등이 삽입된 움직이는 만화로서 종합예술의 한 분야가 됐습니다.
우리나라 만화의 시작은 1909년 6월2일이라고 합니다. 당시 대한민보 창간호에 이도영 화백의 만평 삽화가 그 시작이었는데요. 그러고보니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10년 전의 일입니다.
1909년에는 순종황제가 경부선 기차를 타고 남순행길에 대전에 내린 해이기도 하고, 우리나라 만화가 시작된 해이기도 합니다.
'9'라는 숫자는 꽉찬 숫자라고 해서 동서양 모두에서 좋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올해는 1919년 삼일운동 이후 임시정부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고요. 대전시가 시 출범 70주년, 광역시 승격 30주년(1949년에 시가 되었다가 1989년에 광역시로 승격)을 맞이해 대전 방문의 해로(2019~2021) 지정한 해이기도 합니다. 한국 만화도 올해 110년을 맞았습니다.
4컷 만화는 1923년에 조선일보에 연재된 노수현의 '멍텅구리 헛물켜기'가 큰 인기를 끌었고, 1946년에는 김용환(1912~1998)의 36쪽짜리 '토끼와 거북이'가 단행본 만화의 원조라고 합니다.
김용환은 1955년에 대한만화가협회 초대회장을 맡기도 했는데, 1952년에 발행된 청소년 매거진 '학원'에 '코주부 삼국지'를 연재하며 전쟁시기 청소년의 마음을 위로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새소년 클로버문고로 발행된 정영숙 작가의 '유리의 성'은 1970년대 순정만화로 당시 큰 인기를 누렸는데요. 알고보니 일본 작가 와타나베 마사코의 '유리의 성'을 표절한 작품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정보가 신속하지 못했던 시절이어서 만화 뿐망 아니라 방송 프로그램에도 표절이 적지 않았던 시절이지요.
아래 연대기에서 코주부삼국지 옆에 있는 '세태만상'의 작가 김성환(1932~ )은 고바우 영감 만화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1960년대 이전부터 연대표를 만들어 유명했던 만화책 제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60~70년대 그 시절에는 만화방이란 곳이 있었고 그곳에서는 10원이나 20원 등의 적은 돈으로 만화책을 몇 권 빌려 읽을 수 있었죠.
그런 만화방의 모습을 이곳 만화웹툰전시실에 재현해놨고 별도로 설치된 책꽂이에서 만화를 골라 현장에서 읽을 수도 있습니다.
1970년대는 '선데이서울'과 '일간스포츠'가 창단되며 성인만화 시대를 열기도 했는데요. 만화의 암흑기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군사독재정권에서 불량만화를 핑계로 어린이 만화를 모아 공개장소에서 태우기도 하고 만화방의 만화책 수만 권을 폐기처분했는데 그 해 10월에 유신을 선포했지요.
필자는 1970년대 말, '베르사이유의 장미', '들장미 소녀 캔디'와 같은 일본만화 번역판에 빠져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1980년대는 장편만화가 대세를 이루기 시작했는데, 이현세의 장편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은 청소년 뿐만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인기를 얻으며 만화 전질을 구매하기도 했습니다.
어린이 만화잡지 '보물섬' 생각나시죠? 1982년에 육영재단에서 창간했는데, 1996년까지 14년동안 지속됐습니다.
1990년대는 만화가 산업화의 길로 들어섭니다. '아이큐점프', '소년챔프' 등 만화잡지가 만들어져 엄청나게 팔렸고, 일본만화 '드래곤볼'이 정식으로 라이센스를 얻어 '소년챔프'에 연재됐습니다. 드래곤볼에 이어 역시 일본만화인 '슬램덩크'가 인기를 이어갔고, '나루토', '원피스'로 바톤을 넘겼습니다.
국내 작품도 중에는'바람의 나라','열혈강호', '풀하우스'가 인기를 끌었고, 1980년대 만화인 '아기공룡 둘리', '달려라 하니', '떠돌이 까치','날아라 슈퍼보드', '머털도사' 등의 작품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시청률이 엄청났었죠.
21세기는 웹툰 전성시대
21세기는 초고속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온라인으로 연재되는 웹툰이 새로운 장르로 자리잡았습니다. 탄탄한 스토리를 갖추며 인기를 끌기 시작해 웹툰 원작을 바탕으로 영화도 만들어지고 드라마도 촬영했는데 지금까지도 웹툰,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상물이 꾸준히 촬영되고 있습니다.
2000년에는 한국애니메이션교등학교가 개교하고, 2002년에는 충남애니메이션고등학교가 생기는 등 특성화학교도 생기며 웹툰의 바탕을 탄탄하게 하고 있지요.
가장 최근에 웹툰 '신과 함께'를 원작으로 한 영과가 개봉됐죠. '신과 함께-죄와 벌'(2017)에 이어 '신과 함께-인과 연'(2018)이 개봉돼 각각 1,000만 관객을 넘기는 성공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웹툰의 장면을 그대로 영상화하면서 만화와 싱크로율 100%의 배역이 등장했고,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것 같은 남자), 만찢녀 등의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21세기에는 진짜 만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 같은 미모와 체형의 사람들이 참 많아졌습니다. 생활수준의 향상은 사람의 생김새도 변화시키는 것 같습니다.
대전근현대사전시관 3층에 있는 대전만화웹툰창작센터는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만들어진 만화 웹툰 창작을 지원하는 전문 공간으로 9개 작가실에 18명의 작가가 입주해 2015년부터 작업을 해왔습니다.
2018년에 전국공모사업인 '지역웹툰캠퍼스 조성 사업'에 선정돼 작년 9월부터 '대전웹툰캠퍼스'로 명칭이 바뀌었고, 14개실에 27명의 작가가 입주해 활동을 하는 등 그 내용이 더욱 확대됐습니다. 유명 플랫폼에 연재도 하고 있고 작품이 중국으로 수출되는 등의 성과도 내고 있다고 합니다.
4차산업혁명과 대전웹툰캠퍼스
감상을 모두 마친 후엔 SNS에 인증샷도 올려보시고, 나뭇잎 포스트잇에 감상도 남겨보세요~!
전시 첫날 갔더니 나뭇잎이 늦가을인데 지금쯤은 알록달록 초가을의 가득한 단풍을 보여주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영화등 영상산업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며 완성품 뿐만 아니라 포맷을 판매하기도 하는데, 최근에는 미국 FOX에서 우리나라 프로그램인 '복면가왕'의 라이센스를 구입해 미국판 복면가왕인 'Masked Man'을 방송해 인기를 끌었습니다.
인기 아이돌 '방탄소년단'은 '제2의 비틀즈'라고 불리우면서 전 세계에서 승승장구하며 엄청난 경제효과를 일으키고 있는데요. 창의력과 기획력이 바탕이 되는 '소프트 파워(soft power)'의 시대입니다.
대전은 대한민국 4차산업혁명의 특별시를 선포한만큼 그 내용 또한 알차게 운영되길 랍니다. 대전웹툰캠퍼스도 4차산업혁명의 일부로서 알찬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 이른 성과를 요구하는 압박 같은 것이 없는, 자유롭고 신선한 생각으로 운영되는 창의력 가득한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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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9년 1월 18일 |
대전의 중요한 근대유산인 옛 충남도청사(현재 대전근현대사전시관). 2층에 있던 충남도지사실 전시관이 지난해 말 내포신도시 충청남도청으로 완전히 옮겨졌죠. 시민의 품으로 돌아와 꾸준히 변화하고 있는 옛 충남도청사랍니다.
대전근현대사전시관이 이제 창조적인 메이킹 공간 등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기획전시실에서는 대전역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전시<1905 대전역을 만나다>가 열리고 있습니다.
1905,
대전역을 만나다
The Modern Daejeon Station
Since 1905
2018.12.20~
매주 월요일, 새해 첫날, 설날추석 휴관 / 10:00~18:00
무료 관람
김기수는 1877년에 쓴 '일동기유'에서 기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화륜거火輪車는 반드시 철로를 따라가게 되어 있다. 양쪽 수레바퀴가 닿는 곳에는 선로를 깔았으니 수레바퀴가 짓밟고 지나가도 궤도를 벗어나지 않았다. 정거장에 내려서 노고를 위문하기를 마치자 화륜거는 즉시 불을 밟고 회오리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보이지 않으니 말문이 막혀 머리를 긁으며 놀랄 뿐이로다."
김기수는 1876년에 강화도조약 체결 후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사람인데요. 메이지유신 이후 발전된 일본의 문물을 시찰하고 돌아와 황해도 곡산 군수로 있으면서 4권으로 나눠 기행문 '일동기유'(1877년 2월 제작)을 썼습니다.
1.대전역의 탄생
대전역 승객 운행은 일제강점기인 1904년 11월부터 시작됐는데, 경부철도의 보통역으로 정식으로 개통된 것은 1905년1월1일이라고 합니다.
철로가 놓이기 전에 이 부근은 과수원이었고 주변에는 커다란 호수인 소제호가 있었다고 하지요. 1905년 경부철도의 역으로, 1914년에 호남철도의 보통역으로 이용하되서 삼남철도의 분기점이 됐는데요. 역 주변에 시장이 발달하며 빠르게 도시화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 철로를 통해 학도병도 끌려가고 강제 징용도 당하고, 식량과 각종 자원이 부산 등의 항구로 가서 일본으로 실려갔다는….
대전역이 들어서고 1932년에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겨오면서 대전역과 도청을 잇는 길, 중앙로는 대전의 번화한 중심로가 됐습니다.
1932년에 호남일보사가 발행한 지도는 서쪽에서 바라본 모습을 담은 지도인데요. 중앙에 대전이 보이고 대전을 향해 달리는 기차까지 그려져있는 그림지도입니다. 저 멀리 백두산도 표기된 것이 보입니다
1929년에 이병연이 편집한 '조선환여승람'도 활자인쇄를 했지만 서양식 제본이 아니라 조선식으로 만들어진 책인데요. 이 책 속에서 대전의 지리, 기후, 인물, 산천, 기차역 등이 기록돼 있습니다. 대전역은 북으로는 회덕역에 접하고 남으로는 세천역에 접한다고 했고 신탄역, 회덕역도 있습니다.
대전역은 처음에는 작은 대전정거장이었는데 사진 속 건물로 넓직하게 지은 것은 1918년이라고 합니다. 2층 건물에 반원형 감실을 만들어 원형 벽시계를 달았습니다. 양 옆으로는 구리판을 씌운 돔지붕을 2개 덮었습니다. 1915년에 개축한 대구역사와 거의 유사한 건축입니다.
일본의 목조건축과 서양의 고전양식을 혼합한 역사건축 유형이라고 합니다.
1918년에 개축한 대전역사 건물과 주변 모습
대전이 번듯한 역사를 갖기 전인 1909년 1월13일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황제가 기차를 타고 대전역에 내렸습니다. 1월7일부터 13일까지 7일동안 경상도와 충청도를 돌아보는 남순행길이었다고 합니다. 서울을 출발해 대전에 7일에 내렸다가, 대구, 부산, 마산 등을 거쳐 상경길에도 13일에 내렸는데요. 지금으로부터 딱 110년 전의 일입니다. 7일에는 회덕 군수와 57명이 맞이했고, 13일에는 충남관찰사 등 관리와 유생 494명이 맞이했다고 합니다. 당시 충남관찰사는 공주에 있었으니, 공주에서부터 순종황제를 알현하러 공주에서부터 말을 타고 산넘고 물건너 대전으로 왔겠군요.
당시 소식은 융희3년(1909) 1월16일에 발행한 관보(제 4276호)에도 실려있습니다.
"대황제폐하게옵셔 충청남도 회덕군 태전역에~~~"
이 남순행길은 국내 반일감정을 완화하려는 목적으로 이토 히로부미와 일본이 추진했습니다. 고종 황제 강제 퇴위와 군대해산으로 반일 의병 항쟁이 격화되자 이런 남순행길을 계획해 실행하게 한 것인데, 일본의 의도와는 다르게 가는 곳마다 일장기를 거부하고 황제폐하 만세를 외치는 등 애국심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이듬해인 1910년 8월29일에 대한제국이 사라지는 국치일을 맞게 됐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서 양면성이 있는데 대전역도 그렇습니다. 기차역이 개통되어 신문물이 들어오면서 과수원이었던 곳이 신흥도시로 발전하기도 했지만, 이 철도 건설은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려고 징병, 징용, 물자 공출 등 침략과 수탈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목적이 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도시설은 독립운동가들의 주요 공격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순종황제의 남순행길 전인 1904년과 1907년에 의병이 대전역과 기차를 습격했고 잡힌 의병이 처형당하는 사진도 보입니다. 밀양 사람 김원봉이 단장이었던 의열단의 다섯 가지 파괴 대상은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매일신보사, 경찰서, 왜적의 중요기관이었는데요. 철도시설이 중요 기관이어서 공격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2.한국전쟁과 대전역
1918년에 지어진 대전역은 한국전쟁 때 파괴됐습니다. 사진 자료에 보면 한국전쟁 때 피난가려고 대전역 광장에 모여든 사람들과 함께 군인들이 많이 오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촬영 시점은 6월 말에서 7월초 정도일 것입니다.
이 사진에는 대전역이 보이는데, 1950년 7월에 대전 지역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후 대전은 북한군의 거점이 됐습니다. 9월29일에 연합군이 대전을 탈환했는데, 탈환하기 위한 미 공군의 북한군 거점 공격으로 대전역이 파괴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육군 통신부대 사진파견대가 남긴 기록사진에도 대전과 관련된 사진이 여러 장 있습니다. 전쟁 전에 호남선 기차 안에서 먹을 것을 파는 여인의 모습도 있고, 한국전쟁 당시 대전역에 처음 내린 미군의 모습(1950.7.2.)도 있습니다.
1948년 9월에는 대전 부근에서 조선해방자호 열차가 충돌사고도 있었다는군요. 그 사진에는 대전과 연관이 깊은 딘소장도 등장합니다. 전쟁 발발 후 대전 거리의 피난민의 모습, 거리에 무기를 배치하는 미군의 모습도 있고, 대전철수(1950.7.21.)를 하며 텅빈 대전 거리의 모습도, 9월 탈환 전에 폐허가 된 도심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관람을 하실 때, 사진 하나 하나를 눈여겨 보시면서 그 시절의 역사를 느껴보시길 권합니다.
대전역 동광장에 서있는 동상의 주인공인 김재현 기관사(1923~1950)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7월19일, 딘소장을 구하고 탄약을 운반하는 미군의 작전에 투입됐다가 특공대원 30명 중 29명이 전사했고 김재현 기관사도 순직했습니다. 1983년에 참전유공자가 됐고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습니다. 당시 미카 3-129 중기기관차는 근대등록문화재 415호로 지정됐고 국립대전현충원에 전시되며 자료관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고 김재현 기관사는 대전기관차 사무소 소속이었던 역사가 있는 만큼 대전현충원에 안장되면 더 좋을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故김재현 기관사가 1950년 5월 5일부터 7월 14일까지 직접 기록한 운전일지도 볼 수 있고 동기생들과 찍은 사진도 있습니다.
故 김재현 기관사는 2012년에 미국 국방부 행정관리국장으로부터 미국 방위 공로 훈장을 받았습니다. 희생된지 무려 62년 만에 받은 훈장이로군요.
딘 소장은 북한군에 포로로 잡혀있다가 정전협정 이후 포로교환 1호로 석방됐다고 합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군사정보를 북한군에게 절대 발설하지 않았고 부하를 아끼는 마음이 각별했다고는 하는데요. 한국전쟁 전 1948년에 한국에서 미군정 장관을 하면서 제주 4.3 민간인 학살 같은 일이 벌어지게 한 것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으니 역시 양면이 존재합니다.
1959년 준공한 대전역 낙성식
미국의 전쟁 복구기금으로 대전역사를 다시 지었는데, 1958년에 착공해 1959년에 완공했습니다. 평지붕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인데 한국전쟁이 정전된 이후로도 5, 6년이 지나 지어졌군요.
이 역사의 모습으로 40년 넘게 유지되다가 2004년 경부고속철도가 개통될 때 더욱 현대적인 모습으로 변모했습니다.
필자가 기차타고 여행다니던 시절, 대전역에서 3분인가 정차하는 동안 기차에서 뛰어내려와 별미인 가락국수를 후루룩먹던 당시에도 역 앞에 광장이 넓은 이 역사였습니다.
아래 사진처럼 현대적인 역사가 지어진 이후에도 역 앞 광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여러 가지 이유'로 광장이 사라지고 매우 복잡해졌죠.
3. 만남과 이별의 대전발 0시50분
1960~70년대에 대전은 남한의 가운데에서 교통의 요지로 대중 문화의 단골소재였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부르고 있는 '대전부르스' 노래는 대전 원도심 축제의 주제로 이용되고 있기도 한데, 대전에서 호남선으로 가는 목포행 완행열차가 자정이 지나 0시 50분이라는 한밤중에 출발했나보군요.
이 당시 완행 열차는 비둘기호라는 '칙칙폭폭 열차였습니다. 1967년부터 2000년까지 운행됐고 서울에서 출발해 이 열차를 타고 여행을 하면 비용이 싸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오랜 시간 타면 좌석 등받이가 직각으로 서 있어서 허리가 매우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대전역에서 잠시 내려서 플래폼에서 급히 주문해 먹던 가락국수는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기차 승차권이 있었죠 차장이 돌아다니면서 기차표를 하나씩 확인하며 펀칭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기차표 확인도 하지 않고 모두 온라인으로 통하니 참 세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일제 강점기 대전역을 담은 사진이나 기록에는 대전(大田)을 태전(太田)으로 기록한 것도 보입니다. 아래 사진에는 대전을 일본어로 읽을 때 뜻이 아닌 음으로 읽어서 '타이덴'이라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05년부터 1960~70년대까지 시간 여행을 한 기분입니다.
이 기획전시실에서 나와 안쪽으로 보면 대한민국 발전기의 시민들의 일상을 전시한 '특별한 일상' 전시도 있습니다. 대전역 전시를 보시고 특별한 일상 전시까지 두루두루 보시면 20세기를 여행하실 수 있습니다.
대전의 관문인 대전역부터 시작해 100년간의 시간 여행 한번 떠나보실까요? 앞으로는 정세가 흘러가는 상황에 따라 대전역에서 출발해 유럽 끝까지 기차를 타고 갈 수 있을 날도 꿈꿀 수 있게 되어 좋습니다.
한반도에서 대륙으로 이어지는 운송수단을 다시 잇는 것에 한반도를 둘러싼 여러 나라들이 선점하려고 하는데, 통일 한국의 우리 땅인 만큼 우리가 주도권을 갖고 진행하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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