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상동 들말두레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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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방문의해 기념 숯뱅이 두레와 버드내 보싸움놀이

By 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9년 7월 22일 | 
13일 오후 2시에 엑스포시민광장에서 서구 탄방동 ‘숯뱅이 두레’와 ‘버드내 보싸움놀이’ 공연이 진행됐습니다. ‘2019~2021 대전 방문의해 기념’으로 대전 방문객과 대전 시민을 위해 선보이는 전통 민속놀이 공연입니다. <참석하신 내빈들 모습> 미리 도착하니 예행연습을 열심히 하고 계시더라고요.  <숯뱅이 두레 출연자> 숯뱅이 두레 먼저 ‘숯뱅이 두레’ 공연이 진행됐습니다.  바닥에는 논이 그려진 대형 천이 놓였고요. 그 위에 모가 심어 있었습니다. 양 옆에 논둑도 표시했네요.  깃발과 농악대가 입장했습니다. 용두레, 가래, 도롱 등 전통 농기구들도 준비됐는데요. 비를 내리게 해달라는 기우제가 주제였습니다. 제상에는 사과, 배, 시루떡, 곶감, 밤, 대추, 돼지머리가 놓였습니다. <흥겹게 춤을 추는 출연자 모습> 남자들이 모를 논에 심으면서 흥겨운 춤과 노래를 하는 동안 논 옆에서 아낙네들은 부침개를 합니다. 제사를 지내고 나서 시루떡과 대추, 밤, 곶감을 관람객에게 나눠줬습니다. 관람객 한 분이 막걸리도 한잔 하시라고요. <제를 지내는 모습> 한 출연자가 외줄타기처럼 멋지고 재미있게 춤을 췄습니다. 멋진 모습에 관람객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요즈음 보기 어려운 *도룡이 를 등에 입고 모를 심는 모습에서 많은 옛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축문을 읽는 모습> 숮뱅이들에서 형성된 대전서구 지역의 농경문화로 독창성이 강하고 멋과 흥이 뛰어났습니다. 타 지역과 달리 예술성이 탁월합니다. 숯뱅이 두레는 타 지역과 달리 모내기와 모찌기 과정이 없이 김매기로 시작됩니다. 다른 지역의 두레에서는 모심는 과정부터 타작이 포함되어 있는데요. 나아가 상여소리 까지 내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것과는 아주 구별되는 것입니다. <대평소를 연주하는 모습> 숯뱅이 두레는 농신제, 아시매기, 가래질소리, 이듬매기, 새참 액이, 못줄놀이, 만물매기, 뒤풀이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농신 제는 두레가 결성되고 두레 먹는 날, 들로 나가기 전에 드리는 간단한 의식입니다. 아시매기 소리는 모를 심고 15일 정도 지나서 논물을 빼고 호미로 김매기를 하며 부르는 노동요입니다. 이듬매기 소리는 아시매기를 한 뒤 20여 일이 지난 후에 논을 맬 때 부르는 노동요입니다. <모를 심는 농부의 모습> 못줄놀이는 못줄 펴기, 모눈 밟기, 외홍잽이, 깨금모눈밟기, 재주놀이를 하여 부르는 노동요입니다. <제사를 지낸 술을 음복하시는 모습> 만물매기 소리는 이듬매기 후 10여일 지난 뒤에는 논을 손으로 매며 댕댕이 손이라는 골무를 끼우고 김매기를 하며 부르는 노동요입니다. 뒤풀이는 민물매기를 마치고 좌상 댁에 가서 그동안의 수고를 위로하며 다 같이 신명나게 노는 흥겨운 두레농악놀이입니다. <못 줄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한 출연자 모습> 버드내 보싸움놀이 탄방동 ‘숯뱅이 두레’ 공연이 끝나고 공연 장비를 치우는 동안 ‘버드내 보싸움놀이’ 공연이 있기까지 잠시 휴식이 있었습니다. 제상에는 대추, 밤, 곶감, 배, 사과, 약과, 돼지머리, 시루떡, 명태와 양쪽에 촛대가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도롱이를 입고 모를 심는 농부들 모습> 농악대 선발로 전체 인원이 등장하여 제례가 시작이 되어 소지를 태우면서 끝났습니다. 참가자와 내빈들이 음복을 하는 사이에 백설기 떡을 시민들에게 나누워 주었습니다. 나무 떨공이로 둑을 다진 이후 양쪽마을의 물꼬싸움으로 승패가 갈리자 승자와 패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끝에는 농악대의 공연으로 화합의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버드내 보싸움놀이 출연자> 보란 논에 물을 대기 위하여 시냇물에 둑을 쌓고 물을 가두어 두는 곳을 말합니다. 그러나 저수지나 방죽과 같이 물길을 완전히 차단해서 가두어 두는 것이 아닙니다. <입장하기 전 대기하는 출연자들> 물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용하여 일부는 밑으로 흘러 보내고 일부는 수로를 길게 내어 논으로 물을 대주는 것이 보의 핵심적인 기능입니다. <제사를 지내는 모습> 보싸움놀이는 농경이 필수조건인 보의 축조와 그것을 둘러싼 주민들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민속놀이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흥겹게 공연하는 모습> 이러한 놀이가 언제부터 유래한 것인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벼농사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대평소를 연주하는 모습> 버드내 보싸움 놀이가 전승되고 있는 유등천 주변만해도 안영동 아들바위 밑 자리한 성산보, 버드내 주민들의 젖줄인 원대보(물문보), 안영리 후보, 복수보, 도마보, 용두보 등이 자리했는데요. 과거 이 지역이 벼농사를 위주로 하는 곡창지대였음을 여실히 입증해주고 있었습니다. 버드내 보싸움놀이의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원대보를 막고 수로를 개보수하는 보막기 2). 농사의 풍년을 빌고 보가 무너지지 않기를 비는 보제 3). 작인들(소작인들)간에 벌어지는 물꼬싸움 4). 보와보, 즉 마을과 마을 간에 벌이는 보싸움 5). 보싸움의 갈등을 해소하고 두 마을이 화해의 자리를 갖는 화합의 장으로 구성됩니다. * 도롱이 : 짚으로 만든 비옷을 말한다. 다른 말은 드렁이 되랭이, 도랭이 등으로 불린다.

산내 공주말 디딜방아뱅이 재현 ! 돌림병아 물렀거라

By 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9년 7월 16일 | 
6일 목척교 수변공원에서 '산내 공주말 디빌방아뱅이' 재현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번 행사는 2019~2021 대전방문의해 기념으로 열린 대전전통 민속놀이 공연입니다. <디딜방아를 하는 여인들 모습> 대전 목척교 수변공원에서 지난달 8일에는 문창동 ‘서정 엿장수놀이’와 15일에는 산성동 ‘무수동산신토제마짐대놀이’ 공연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엑스포 대전시민광장에서는 '부사동 부사 칠석놀이’, ‘목상동 들말두레놀이’, 전민동 ‘유성 산소골 상여놀이’ 공연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29일에 열릴 예정이었던 탄방동 ‘숯뱅이두레’와 유천1동 ‘버드네 보싸움놀이’는 비로 인하여 7월 13일 오후2시로 연기됐습니다.. 촬영을 위해 조금 일찍 목척교에서 내려다보니 예행연습을 하시기에 빠르게 수변공원으로 내려갔습니다.  <예행 연습하는 모습을 목척교에서 내려다 본 전경> 날씨가 무척이나 더워서 참가자분들이 땀을 흘리면서 하고 계셨으며, 관중들은 대부분 나무그늘아래에서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공연을 관람객들이 시원한 나무 그날아래서 관람하는 모습>   <'산내 공주말 디딜방아뱅이'를 공연하는 모습> 예로부터 산내지역에는 홍역이나 염병, 손님마마와 같은 돌림병이 발생하면 목신제와 거리제를 지냈습니다. 그래도 효험이 없다고 판단이 되면 마지막 수단으로 디딜방아뱅이를 모의하여 죽음의 역신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역병에 걸려 쓰려진 아이들 모습> 이러한 것은 전통사회에서 돌림병 을 물리치는 의식과 함께 다양한 방식으로 전승됐습니다. 산내주민들은 동네의 오랜 전통을 기반으로 산내 공주말디딜방아뱅이를 발굴했습니다.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 주민 센터 마당에서 디딜방아 놀이 시연활동을 해오면서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마을축제로 계승하고 있습니다. <신나게 공연하는 모습> 제15회 한국민속 경연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한 작품인 '산내 공주말 디딜방아뱅이' 행사에는 약 80여명의 주민들이 참여했습니다.  <공연 모습> ‘산내 공주말 디딜방아뱅이’의 유래는 다음과 같아요. 삼괴동 공주말에서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공주말 디딜방아뱅이는 조상들이 의료기술이 발달하기 전 홍역이나 마마 같은 돌림병이 마을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전염병이 마을에 발생을 하면 공주말 부녀자들은 날을 잡아서 이웃인 덕산, 송촌, 소령골 등에 있는 이웃마을에서 디딜방아를 저녁에 몰래 훔쳐서 함께 메고 오면서 상여소리를 내면서 마을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디딜방아 나무를 Y자 모양으로 거꾸로 마을 입구에 새워 여인의 달거리한 속옷을 디딜방아에 걸어 놓습니다. 그 주변에 왼새끼를 꼬아 금줄을 친 후 세워진 디딜방아 가랑이에 달거리한 여인의 속옷을 걸쳐 놓습니다. 그리고 주위에 팥죽을 끓여 뿌리거나 붉은색 황토 칠을 하는 제의식 행사입니다. <디딜방아 나무를 거꾸로 놓는 장면> 돌림병을 옮겨 오는 잡귀나 잡신들이 여인의 속옷에 묻은 붉은 핏물을 보면 마을에 들어오지를 않는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왜 공주말이라고 했을까요? 공주말이란 유래는 대전천을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는 회덕, 서쪽으로는 공주 땅에 속했기 때문인데요., 예전에 산내동의 마을이름이 공주말, 마들령, 산정말, 소룡골 등으로 불렸습니다. <관람자들에게 진행 내용을 설명하는 모습> 상여를 담당하는 여성들은 하얀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머리 수건을 두르고 손에는 흰 장갑과 하얀 고무신을 신었습니다. 농악대는 풍악을 울리면서 행사를 알리고 있었습니다. 그 뒤편으로 만장기를 들고 계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농기구를 담당하시는 어머니들은 밤색 저고리와 검정치마를 입었습니다. 어린이 출연자 4명은 엷은 황토색 상하의와 하얀 고무신을 신었습니다. 무대 중앙에는 대형 나무모형에는 왼새끼가 둘러져 있었습니다. 앞에는 제상과 디딜방아, 상여틀, 나무절구, 채반, 쌀키, 바가지 등이 놓였습니다. 공연이 시작할 무렵 제상에 비틀어져 붙어있는 하얀 한지를 부착하는 일과  상차림을 도와드렸습니다.  <제사용 술을 음복하는 참가자분> 대형 모형나무 앞에는 칼이 거꾸로 꽂혔습니다. 제상을 살펴볼까요. 1열에는 배, 밤, 술잔, 대추, 사과가, 2열에는 명태, 3열에는 수박, 돼지머리, 떡이 놓였습니다. 양옆에는 촛대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바람이 조금 불어서 안전상 향불과 촛불을 점화하는 과정을 생략했습니다.  <소지를 태우는 아낙네들 모습> 통나무 절구통에 벼를 넣고 디딜방아를 발로 밟아 찧습니다. 아낙네들은 부침개를 부칩니다. 전염병에 걸린 어린아이들은 쓰러져 있습니다. 이웃동네에서 디딜방아를 훔쳐와 다리(Y자 모양)를 하늘로 향하게 했습니다.  ,<공연을 마치고 기념사진 촬영>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대전천 분수가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냈습니다.. 소지 태우기를 끝으로 행사가 마무리됐습니다.  <관람객에 인사 말씀을 드리는 황인호 동구청장과 길공섭 대전동구문화원장 모습> 제사를 지낸 떡은 관중들에게 나누워 드렸으며, 막걸리는 참가자분들이 한잔씩 마시기도 했습니다. 모든 공연이 끝날 무렵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