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9년 6월 26일 |
따사로운 햇살 아래 푸른 잎이 여름을 알리고 있습니다. 향긋한 풀내음이 방문을 환영한다는 듯 향기롭게 퍼집니다. 입구에 다 다를수록 괜스레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도시의 답답함을 벗어나 오랜만의 한적한 휴식을 맞이합니다. 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와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대전은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는 지역으로 유명한데 많은 공원 중 유성 은구비공원은 드넓은 초원이 매력적인 곳입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파트나 빌딩 등 고층건물에만 익숙해진 눈의 피로를 푸는 느낌이었습니다. 탁 트인 초원을 보니 새삼 새롭기도 합니다.
대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나지막한 동산 덕에 걷는 시간이 더욱 즐거웠습니다.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는 나무와 맑은 하늘은 마치 한 폭의 그림 처럼 보입니다.
은구비공원 산책길에는 단풍나무, 이팝나무, 왕벚나무 등 다양한 나무가 어우러져 있습니다. 과가 다른 나무이지만 조화롭게 어울리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어느 곳이든 그 자리가 명당이고 포토존이었습니다. 어디서 사진을 찍든 간직하고 싶은 사진이 나왔고 햇빛이 사르륵 들었을 때와 그늘 졌을 때의 차이가 명확해서 찍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인위적이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 눈에 한가득 깃들어 기분 좋은 하루였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푸른 하늘입니다. 미세먼지 때문에 외출을 꺼렸는데 맑고 푸른 하늘 덕에 이 날의 산책은 편안했습니다.
뭉게뭉게 핀 커다란 하얀 구름은 눈을 의심할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하늘을 하염없이 감상하다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 아래로 산책을 이어나갔습니다.
잔디 한 쪽에는 노란 금계국이 피었습니다.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로 여름에 피는 꽃입니다. 강가나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금계국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머무르게 합니다. 꽃말은 '상쾌한 기분'으로 유성 은구비 공원과 잘 어울리는 꽃입니다. 금계국으로 차를 끓이기도 하는데 비타민과 항산화 성분이 들어있고 붓기와 체중 관리에 좋은 차입니다.
은구비공원은 꽃이 피는 계절이 오면 다시 방문하고 싶은 곳입니다. 다른 계절에는 어떤 꽃이 피어 있을지 궁금합니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많은 사람들이 캠핑을 즐기고 있습니다. 텐트 안에서 독서를 하며 여유로운 주말을 보내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 즐거운 담소를 나누기도 합니다.
은구비공원은 11만 2,270㎡로 상당히 넓은 면적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공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청동기시대 및 원삼국시대의 유적이 발견된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공원에는 노은동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는 대전선사박물관이 있어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하기 좋은 곳입니다.
고층 건물 없이 자연으로만 어우러진 풍경은 우리나라 특성 상 보기 힘든 풍경이기에 외국에 나온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수백 년 된 노송과 다양한 수종으로 꾸며져 보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나무가 즐비한 저 산책길 너머에는 어떤 곳이 있을까요?
↑이 곳은 땅 속에 묻힌 유적 유물들을 발굴하는 발굴 체험장입니다. 아이들에게 선사시대의 모습을 기록이 아닌 발굴을 통해 볼 수 있었음을 알려주고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습니다. 직접 체험하는 아이들에게는 알아가는 즐거움을, 어른들에게는 역사를 기억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대전 원신흥동 유적 주거지 노지
2010년 (재)백제문화연구원에서 조사한 대전 원신흥동 동서도로사업구간 유적 내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 1호 주거지의 노지시설 2개를 이전 복원해 놓은 모습입니다. 대전에서 발견되는 위석식 노지의 대부분은 바닥에 특별한 시설을 만들지 않는데 비해 이 노지는 바닥에 판석이 놓여있는 특이한 형태입니다.
푸른 나무들 사이로 개성을 뽐내는 단풍이 보입니다. 여전히 붉게 물든 단풍이 이 길의 포인트입니다. 할머니 한 분이 오후의 산책을 즐기십니다. 따사로운 햇살이 할머니를 향해 밝게 비추고 있습니다.
계절에 따라 바뀌는 산책길을 걷는 시간은 참 즐겁습니다. 왕벚나무와 이팝나무가 울창하게 자란 이 길에서 천천히 시간을 보냅니다. 왕벚나무는 장미과에 속하는 나무로 꽃은 4월경에 피며 색은 백색이거나 연한 홍색을 띕니다. 6월에 오니 꽃이 지어있고 푸릇푸릇한 새 잎을 내어 새로운 모습으로 반기는 모습이 시원합니다. 푸릇푸릇한 여름날도 좋지만 왕벚나무가 화려하게 만개하는 날도 기대됩니다.
산책로는 가끔 약간의 굴곡이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 평평하게 되어 있어 유모차를 끌고 오는 사람들이나 휠체어로 다니는 사람들도 접근하기 편리해 보였습니다.
은구비 공원 곳곳에는 벤치나 정자와 같은 쉼터가 있습니다.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여 재미난 이야기를 펼쳐갑니다. 더운 여름날 시원한 화채가 먹고 싶은 풍경입니다.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쉬어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연신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오늘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추억 하나를 남기고 갑니다. 은구비 공원 가득 사람들의 즐거운 대화가 오갔고 활기찬 풍경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계단을 내려가면 배드민턴을 칠 수 있는 공간이 보입니다. 이 운동장 좌우에는 벤치가 나열되어 있어 휴식을 취할 수도 경기를 관람할 수도 있습니다. 시원하게 땀을 빼고 얼음물 마시면 스트레스가 확 풀릴 것 같은 곳이었습니다.
아이스크림 내기를 하고 배드민턴 한판! 과연 누가 이길까요?
대전 선사박물관 입구에 다다를 즈음 목달동 문석인 동자석인도 보입니다. 조선 16세기 후반에 제작된 석인(石人)은 조선시대에서는 왕실의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물로서 왕릉 영역에 석물을 조성하였다고 합니다. 목달동 문석인은 실제 문신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며, 동자석인은 16~18세기에 왕릉을 제외한 왕실과 사대부가의 묘역에 조성된 독특한 석인으로 묘를 수호하는 성격을 강조한 것입니다.
대전선사박물관 앞에는 추억의 사방치기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누군가 던져놓은 돌멩이 하나를 가지고 추억을 더듬어 봅니다. 서로 사방치기 하는 방식이 달라 내가 맞다 너가 맞다 한참을 장난을 쳤습니다. 그 때 그 시절 사방치기가 왜 그리 재밌었는지 모릅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진지한 마음으로 사방치기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 같습니다.
사방치기 추억을 뒤로하고 선사박물관 입구를 향했습니다. 입구에는 고고한 '고대 미술 산책'이라는 박물관 아카데미 현수막이 붙어 있었습니다. 한국 고대 미술 문화에 대한 총체적인 예술 강좌가 열린다고 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신청바랍니다. 이 아카데미 이외에도 '2019년도 2분기 재능 나눔 프로젝트 썰&끼'가 매주 화~금요일에 열린다고 합니다. 대바늘인형 만들기부터 경기민요, 명상수업, 퀼트 등등 재미있는 수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구석기인이 되어'는 구석기인이 입었던 옷과 도구로 나를 꾸미는 사진기입니다. 꾸며지는 모습이 상당히 재밌어서 성인들도 유쾌하게 할 수 있습니다. 다 꾸민 후의 모습은 개인 메일로 전송할 수 있으니 즐거운 추억 남기기에 좋은 수단이 될 듯합니다.
사진 촬영을 원하는 사람은 장치 맞은편에 붙은 발모양 스티커에 서서 손을 움직이면 마우스 커서가 인식이 됩니다. 커서를 이동하려면 손바닥을 움직이면 되고 클릭하려면 주먹을 쥐면 됩니다.
대전 선사박물관은 박물관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게임과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설명 또한 쉽게 되어 있어서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글로써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도록 신석기시대의 주거생활 공간을 만들어 두었고, 그 안에서 신석기시대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팔을 마구 흔들며 도구를 만드는 게임 덕에 팔 운동 실컷 했습니다. 엄청난 양의 무기도 만들고 목책진지 점령에 성공까지 했습니다. 단순한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재미있게 익히도록 유도하는 방식이어서 아이들도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떤 게임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해하다가 한번 실패했습니다. 오기가 생겨 열심히 팔을 휘저었더니 이번에는 성공! 했습니다.
아이들이 이리 저리 뛰어가며 최선을 다해 축구를 하고 있습니다. 돌멩이 없이 폭신한 잔디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기 좋습니다. 아이들의 보호자들은 텐트 안에서 그런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도시의 소음 없이 나른한 주말의 휴식. 은구비공원이 있어 다행입니다.
By
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9년 2월 28일 |
동춘당 공원 (대덕구 송촌동)
2019년 새해 타종식을 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입춘(2월 4일)도 지나고 우수(2월 19일)도 지났어요. 이제 며칠 후 경칩(3월 6일)이 지나면 그야말로 봄인데요.
우수 겸 정월 대보름을 지난 동춘당 공원을,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산책을 했습니다. 동춘당 공원은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학자인 송준길(1606-1672)의 호를 따서 지은 별당 이름에서 붙여진 이름이에요.
동춘당 송준길선생은 조선 효종 때 대사헌,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지냈는데요. 모든 관직을 물러난 후 거처하던 종택과 더불어, 늘 봄과 같다는 뜻인 선생의 호 동춘당(同春堂)을 따서 지은 별당 건물입니다.
동춘당은 1963년에 보물 제 209호로 지정될 정도로 건축학적 의미가 크다고 해요.
보물 제209호 회덕동춘당
동춘당은 조선시대 별당 건축의 유형을 잘 보여주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조는 앞면 3칸·옆면 2칸 총 6칸인데요. 오른쪽 4칸은 대청마루, 왼쪽 2칸은 온돌방입니다. 대청의 앞면·오른쪽·뒷면 등 3면에 쪽마루를 냈고, 들어서 여는 열개문을 모두 들어 열면 내부와 외부가 따로 없이 모두 열리는데요. 아직은 날씨가 쌀쌀해 문을 열어놓지 않았네요. 여름에는 열개문이 모두 열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대청과 온돌방 사이의 문도 들어 열 수 있게 돼 있는데요. 대청과 온돌방의 구분없이 별당채 전체를 하나의 큰 공간으로 활용해 무대가 있는 정자 같은 느낌을 줍니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건물 전체를 4각형의 키가 높은 돌로 받쳐놓은 것인데요. 이런 양식은 조선 후기의 주택건물에서 많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건물 전체를 돌로 맏쳐놓아 대청 아래 공간이 높은 동춘당
동춘당이라고 쓰인 현판은 송준길 선생이 돌아가신 6년 후 숙종 4년(1678)에 우암 송시열이 쓴 글씨라고 합니다.
동춘당 뒤쪽으로는 종택이 있어요. 이곳은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로서, 지난 2016년에는 국가민속문화재 제289호로도 지정됐습니다.
동춘당 왼쪽 담장을 끼고 진입로를 지나 대문을 들어서면 一자 모양의 사랑채와 ㄷ자 모양의 안채가 있고요. 그 오른쪽에는 사당인 가묘와 별묘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동춘당 종택에 대한 안내판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아직도 동춘당에 대한 불천위 제사와 기타 졔례가 행해진다고 합니다. 또 건축학적으로는, 사랑채와 안채, 부엌, 마루 등이 한 채에 달려 있는 양통집이라고 합니다.
동춘당 종택 대문
사랑채는 앞면 6칸·옆면 6칸입니다.
부엌 위는 다락으로 꾸몄고, 앞에는 1칸 살림집을 달았는데, 여기에서는 집안의 여러가지 일을 맡아보던 청지기가 살았다고 합니다. 또 대청마루와 큰 사랑방 앞에는 툇마루가, 작은 사랑방 앞에는 툇마루보다 2배 정도 높은 누마루가 있고요. 그 아래로는 아궁이가 있습니다. 참 독특한 구조이지요. ㅡ자 모양의 동춘당 종택 사랑채
안채에는 현재 송준길선생의 후손이 살고 있어요.
동춘당가의 가양주로 오래 내려오고 있는 '국화주'가 대전무형문화재 제9-나호로 지정돼 있는데요. 이 곳에서 살고 있는 동춘당의 13대 종부 김정순 보유자가 아드님, 따님과 함께 보존 전승을 하고 있습니다.이곳에서는 동춘당가에서 전해 내려오는 음식과 국화주 등을 테마로 하는 여러가지 행사가 열리고 있어요. '동춘당가 500년 여름 생신상' 행사가 대표적이죠.
동춘당 종택 별묘(왼쪽)와 가묘(오른쪽)
동춘당과 종택의 오른쪽 뒤로는 또 하나 전통 가옥이 보입니다. 건물 앞에는 빗과 비녀 모양의 조형물과 함께 소나무 아래로 시비가 있습니다. 바로 호연재 김씨의 시비입니다.
이곳에 소대헌·호연재 고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동춘당 송준길의 둘째 손자 송병하가 분가하면서 짓고 살기 시작해서,송병하의 아들 소대헌 송요화가 1714년 이곳으로 이전해 지었습니다. 그 이후 현재 11대손 까지 살아오고 있는 집으로, 송요화의 부인인 호연재 김씨는 17세기에서 18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많은 시를 남겼습니다. 조선시대 여류 문장가로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을 꼽지만, 호연재는 이들을 뛰어넘을 만큼의 문재를 보여 134 수의 한시를 남김으로써, 여류문학사의 공백을 메꾸어 줄만하다는 평가를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을 소대헌·호연재 고택이라고 합니다. 안채와 큰사랑채(소대헌)·작은사랑채(오숙재), 가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소대헌 호연재 고택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큰사랑채인 소대헌이 있고 오른쪽에 작은사랑채인 오숙재가 있습니다.큰 사랑채 소대헌
한 집안에 이렇게 사랑채가 두개나 있는데, 이런 양식은 충청지역에서는 아주 드물다고 해요. 사랑채의 처마가 좀 길면서도 전체적으로 그 모양이 아주 단아합니다.작은사랑채 오숙재
ㄱ자 모양의 안채는 작은사랑채의 왼쪽에 나있는 중문을 지나서 출입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호연재 김씨가 기거하면서, 여성이라서 펼치지 못한 꿈에 대한 울분을 삭히면서 시를 지었을 안채. 지금은 너무도 조용합니다. 이곳에 호연재 김씨가 지은 시가 모두 보관돼 있다고 합니다.소대헌 호연재 고택의 안채
안채 뒤로는 약간 높은 위치에 가묘가 있어요. 宋氏家廟라는 현판이 붙어 있습니다.
소대헌 호연재 고택 앞에는 자그마한 바위에 '금암(琴巖)'이라고 암각이 선명히 남아 있는데요, 금암 송몽인이 여기에 걸터앉아 거문고를 탔다고 합니다. 참 운치가 있지요?
또 동춘당 공원 한가운데는 '송씨 3세 효자정려 구허비'가 세워져 있는데요. 뜬금없이 비석이 이곳에 서있는 이유가 있어요.
원래의 효자 정려는 1861년에 후손들이 이사하면서 정문이 대화동으로 옮겨 가게 되자, 이곳에 그 터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라고 하는데요. 송씨삼세 효자는 선교랑 송경창과 그의 손자인 지평 송시승, 그리고 시승의 아들인 도사 송유관을 지칭한 것이라고 해요. 이들은 모두 쌍청당 송유의 후손이며 3세가 모두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겨 나라에서 정려가 내려졌고요. 그 사적이 국가가 반포한 '삼강행실록'에 기록되었다고 설명이 돼 있네요. 조선시대에는 효행을 굉장히 중요시 한 것 같아요.
동춘당 공원에 세우진 이정표를 보니, 공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시직 공정려각, 송애당, 은진송씨 정려각이 있네요. 조만간 이곳들도 둘러볼 생각입니다.
이처럼 동춘당 공원은 동춘당과 동춘당 종택, 소대헌 호연재 고택 등을 통해 조선시대 양반가의 집이 어떻게 건축되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대덕구에서 조성한 '200리 로하스길' 중 약 5km 구간에 이르는 '동춘당 생애길' 중에 속해 있는 동춘당공원에서, 2019년 새봄을 맞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2019 대전광역시 소셜미디어기자 조강숙 zoomtr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