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브레의 밤

'남자'에게 보낸다: 명량

By  | 2014년 8월 8일 | 
"한국인이라면 봐야할 영화", No No, 남자라면 보기 좋을 영화, Yes. '액션 쾌감'을 촉진하는 것은 무엇일까. 싸워야 할 적이 있는 것은 당연하고, 역사적 명분에 의거한 싸움이면 더 좋고, '17:1로 싸워서 이겼다' 등의 전설이 있으면 환장할 것이며, 묘한 운명론-'그놈과 나의 질기고 질긴 인연' 등등의 서사-을 풍겨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위해 '이순신'과 '명량해전'을 선택하다니, 여기서부터 탁월하다. (적어도 그것을 위해 '탐관오리에 저항하는 빈민 도적'을 선택하는 것 보다는. <- 대체 이 계급적이고 정치적인 연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냔 말이다.) '이순신과 명량해전'을 선택하고 나서는, 그것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와 정서를 고려한 흔적도 역력하다.

review: 혹성탈출-반격의 서막

By  | 2014년 7월 21일 | 
얘기가 좀 길어질 것 같으면, 트위터 대신 블로그를 하자.고 작정한게 6개월 전인데 쉽지 않다. 바빴기 때문이다. 트위터를 꺼리는 이유는"140자의 한계.." 등등이 아니고, 내 글을 스스로 값진 콘텐츠로 대우하자는 생각이 들어서다. (읽는 사람이 별로 없는 건, 트위터나 블로그나 똑같다. 그럴 바에야 '내 눈'에 좋은 걸로 하지.) (스포주의!) 전편 <진화의 시작>은 못 봤다. 흘러 들어오는 이야기와 이번 작품을 통해서 스케일과 서사가 얼추 가늠되는 정도. 스토리보다는 구조가 먼저 들어오는 영화다. 1:1의 대칭 구조. 대비*가 아니라 대칭이다. -인간(계약을 깨고 총을 반입한 인간)이 유인원의 자식을 가격하여 긴장감을 주면, 스토리 상 멀지 않은 지점에서 유인원(코바)이 인간(

마지막에 남는 문제는 늘 '정치적인 것'이다-영화 <변호인>

By  | 2013년 12월 22일 | 
(이 글은 특정 필자가 아니라 그와 비슷한 관점을 갖고 있는 일군의 화자와 대중들을 겨냥한 것입니다. 참, 스포 있습니다. 당연한 것 아닌가요?) ------------------------------------ 몇몇 사람들은 이 영화가 (허지웅씨가 창안하여 우리에게 안겨준) '분노 보부상'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아니, 걱정했다. 그들은 故노무현 대통령이 현정권의 反민주성을 드러내는 효'율'적 코드임을 알기 때문이다...... . . . . 프로파 간다로부터 영화를 지켜라. <26년>과 <노리개> 등이 분노 보부상인 까닭은 그 영화들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만듦새를 희생시켰다는 데 있다. 적어도 허지웅 씨 본인이 정리한 바로는 그렇다. 그러나 불행은 방점이 '만듦새'에 찍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