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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9년 7월 1일 |
대전은 송촌동, 무수동에서 뿌리공원까지 이어지는 유교 사상을 담은 도시이기도 하고, 국립대전현충원이 있는 등 근현대 나라사랑의 충정이 담긴 도시이기도 합니다.
국립대전현충원 주변 길은 대전방문의해를 맞아 우리나라 최초로 호국 보훈 테마거리인 나라사랑길로 조성되고 있습니다. 365일 어느 하루도 그 숭고함이 가시지 않는 날이 없는데요. 특히 아름다운 주변 경관과 함께 10㎞에 이르는 무지개 빛깔의 보훈둘레길이 있어서 많은 국민들이 끊이지 않고 찾아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국립대전현충원의 곳곳에는 순국선열을 되새기게 하는 좋은 글귀가 새겨진 석비가 곳곳에 서 있습니다. 지나면서 한번 씩 읽어보면 국립현충원의 의미가 더욱 진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생각해보는 투철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겨레의 자존과 나라의번영을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우리 민족이 반만년의 오랜 역사를 지켜오면서 찬란한 민족문화를 꽃 피우고 타민족의 무수한 침략을 물리치며 오늘날까지 민족사의 정통성을굳건히 지킬 수 었었던 것은 강인한 민족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석비를 읽어보고 충현지에 한가롭게 노니는 새들을 보며 발길을 옮긴 곳은 애국지사 묘역이었습니다. 국립대전현충원 곳곳의 묘비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거나 헌신하지 않으신 분이 없겠지만, 특히 애국지사 묘역에는 어떤 분이 영면하고 계신지 보고 싶었습니다.
묘역이 넓어서 하루에 다 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평소에 별로 가보지 못했던 애국지사 1묘역을 찾아갔습니다. 그곳에는 많은 애국지사들의 묘와 묘비가 가지런히 있고 말끔하게 정돈돼 있었습니다.
줄지어 있는 묘를 지나며 특히 눈 여겨 본 것은 여성 애국지사였습니다. 남성 애국지사의 이름은 줄줄이 댈 수 있을 정도로 학창 시절을 지나며 교육을 받았는데, 여성 애국지사는 유관순 열사, 조마리아(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곽낙원(김구선생의 어머니) 정도만 금방 성함을 댈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몇 년 전 영화인 '암살'에서 전지현이 열연했던 안옥윤은 실제 여성독립투사인 남자현을 그린 것이란 것을 알면서 남자현 열사의 성함을 한분 더 마음에 새겨 넣었지요.
최근에 여성톡립투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우리가 그동안 미처 새겨넣지 못한 많은 여성 독립투사가 있는 것도 알게됐습니다. 또한 직접적으로 전면에서 독립투쟁을 하지는 않았지만 후방에서 독립투사를 지원하는 역할을 한 많은 여성들 또한 우리나라 독립에 헌신 한 분들이라는 것까지 시각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애국지사 1묘역을 걸으며 성함을 살펴 보았습니다. 함자만으로는 여성인지 남성인지 구분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묘비 뒤의 가족사항까지 읽어봐야 했습니다.
애국지사 박현숙(1896~1980)
'삼일운동 때 (평양 숭의여학교 재학 중) 송죽결사대를 조직해 일제와 싸우다가 세 차례나 치르셨고 역시 독립운동하다가 반신불수가 된 남편(김성업-일제강점기 동아일보 평양지국장) 몫까지 일하며 자신에겐 냉혹하고 남에게는 너그러웠던 멋있는 여자고 대장부였다(시인 송현 씀)'고 합니다.
애국지사 최이옥(1926~1990), 박성관(1923~2009) 부부가 모두 평북 용천 출생의 애국지사로 함께 영면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한 곳 씩 이처럼 빈 곳이 보입니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 국립대전현충원을 떠난 분이겠지요.
애국지사 최갑순(1898~1990), 송세호(1893~1970), 부부가 모두 애국지사로 남편은 1970년 상해에서 서거하고 1981년에 영현을 조국으로 봉송했다고 합니다. 최갑순 애국지사는 1990년 홍콩에서 서거했습니다.
애국지사 민영숙(1905~1988) 충남 천안 출신으로 천안국 입장면 화립광명여학교 재학중 독립만세운동을 하다가 보안법 위반으로 공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뤘다고 합니다.
애국지사 신경애(1907~1964)는 개성에서 출생해 근우회 집행위원, 신간회 간사로 활약, 반전동맹조직 활동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뤘고 돌아가신 후 44년이 지난 2008년에야 건국포장에 추서됐다고 합니다.
순국선열은 산화(散華) 하셨고 묘비 주변의 흰 꽃은 말 그대로 산화(散花)한 모습이 뭔가 처연함을 불러일으킵니다. 산화한 흰 꽃을 지나 만난 묘비는 애국지사 조신성의 묘입니다.
애국지사 조신성(1871~1953) 평북 의주에서 출생, 22세에 남편과 사별한 후 34세에 일본에 유학해 교육학을 공부했습니다. 이화학당 기숙사 사감을 지내고 평양에서 안창호 주도로 설립한 진명여학교에서 교장으로서 민족교육을 했고, 대한독립청년단을 결성(1920)하여 항일무장투쟁활동 중 일경에 잡혀 옥고를 치뤘다고 합니다.
조신성은 근우회 평양지회를 조직(1928)하고 중앙집행위원장, 여성실업장려회를 조직해 회장(1930)을 지냈습니다. 헌납금을 임시정부에 보내고 독립운동가를 피신시키는 등 적극적으로 항일민족운동을 하신 분입니다. 조선교육학교를 설립(1932)하고 해방 후에는 북조선 여성동맹위원장으로 있다가 70이 넘은 나이로 월남(1945)해 대한부인회 부총재(1948)를 역임했습니다.
한국전쟁 중인 1953년에 부산에서 병사했는데, 자식도 없이 교육에 매진한 조신성의 헌신을 기리면서 1956년에 5월8일을 어머니날로 정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날은 1973년에 어버이날로 바뀌었습니다.)
묘비에는 1871년 출생으로 되어 있는데 여러가지 자료 기록에는 1873년 출생으로 되어 있으니 아무래도 묘비가 잘못 새겨진 것 같습니다.
애국지사 1-1 묘역, 국가*사회공현자 묘역으로 가면 여성 독립운동가는 아니지만 익숙한 이름이 보입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대회 마라톤 당시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한 손기정(1912~2002)의 묘가 보이고 신현확 전 국무총리부부의 묘도 있습니다. 신현확 전 총리는 일제강점기에 고등문과시험 행정과에 합격(1943)했고 1979년 10.26 사건을 맞아 국무총리직을 수행했습니다.
필자가 어렸던 시절, 단시 정치는 군사독재시대였는데도 불구하고 표면으로는 정치가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로 삼권분립이라고 강조하던 시절의 사법부 수장이 민복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민복기는 일제강점기인 1937년 일본고등문과시험 사법과에 합격했고, 일제 후작인 이완용과 사돈지간인 민병석(일제 자작)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이런 자세한 내용까진 이번에 처음 알게 됐네요.
얼마전에 매스컴에도 등장했던 탈북인사 황장엽(1923~2010)의 묘도 이곳에 있습니다. 일반 북한 사람이 넘어오면 탈북인이라고 하는데 황장엽은 자료를 찾아보니 굳이 '망명'이라고 고급진 단어를 썼네요. 1997년에 대한민국으로 넘어왔는데, 북한의 '주체사상'을 창시한 이론가입니다.
여성 애국지사 김신희(1899~1993) 은 전주 기전여학교 재학 중 1919년에 독립만세운동 결사대 일원으로 활약하고 일제의 보안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뤘습니다. 당시 기전여학교의 여학생들이 일경에게 무더기로 잡혀갔다고 하네요.
여성 애국지사 주윤애(1903~1995)는 전남 해남 출신으로 목포 정명여학교 재학 중 만세운동을 주도한 주모자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뤘다고 합니다. 이후 배화여고를 졸업하고 남편과 함께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하며 교육을 통한 민족의식 고취에 기여했다고 합니다.
지나며 보니 익숙한 이름이 다시 등장합니다. 아동문학가 윤석중(1911~2003), 사랑방송님과 어머니를 쓴 주요섭의 묘도 있습니다. 윤석중은 80년 가까이 동시를 지어 1200 편이 넘는 작품을 남겼는데 그 중 800여 편이 동요로 불리고 있습니다. 가장 많이 오래 불리고 있는 노래는 바로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로 부르는 어린이날 노래입니다. 1948년 동시집 굴렁쇠에 실렸다고 합니다.
애국지사 주요섭(1902~1972)은 17세인 1919년에 지하신문을 만들다가 일제에 잡혀서 옥고를 치뤘습니다. 1930년대에 당시 사회를 배경으로 한 소설, '사랑손님과 어머니' 등을 쓴 작가이기도 합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을 졸업(1941)한 후 북경에서 대학교수로 재직하다가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죄로 일제에 점령된 중국에서 옥고를 치뤘습니다.
일단 애국지사 1묘역과1-1묘역에는 여성애국지사가 많이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몇몇분의 활약을 보더라도 그 분들이 당시에 쓰개치마를 쓰고 다니며 최소한 '조신'하게 살던 분은 아니라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알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 서훈을 받은 전체 14000여 명 중 여성 독립운동가가 270여 명으로 1.9%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자료가 많지 않다고 하는데 그럴 수록 더욱 적극적으로 발굴해서 그 뜻을 기려야 하며, 이것도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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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9년 5월 22일 |
"어린이들의 맑고 고운 동심을 통해 아름다운 사회를 만듭니다!"
새싹들의 나라사랑 마음을 키우며 숭고한 보훈정신을 함양하는 '제4회 보훈 새싹동요제' 예선이 5월 18일(토)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개최열렸는데요. 이날 본선 진출 12팀이 확정됐습니다.
이번 예선에서는 서울, 대구, 문경, 군산 등 전국의 초등학교 학생 35개팀이 참가해 열띤 경연을 벌였는데요. 이날 경연자 중에서 본선 진출이 확정된 중창 8팀, 독창 4팀은 6월 15일 오후 5시 KBS청주방송총국에서 본선 경연을 치룰 예정입니다.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아동문학계의 거목이신 석동 윤석중 선생을 추모하는 동요제는 전국대회로 발전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미래의 주인공인 어린이들에게 자신의 끼와 재능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12시 30분경부터 보훈공연장에서 경연이 시작되려 했으나 우천으로 인하여 현충관에서 14시 30분부터 경연이 시작되어 늦은 시간에 끝났습니다.
권율정 국립대전현충원장은 공정한 심사를 맡은 심사위원들에게는 위촉장을 수여했습니다.
권율정 국립대전현충원장은 "대한민국의 미래이고 희망이며 통일시대의 주역인 우리 아이들과 학생들이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최고의 VIP"라며 "실력의 차이는 아주 미미하지만 박수와 위로를 해주면서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함께 즐기면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보훈 새싹동요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전 추첨을 거쳐 순번을 정하고 긴장도 많이 되겠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그동안 준비했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줄 거라 생각됩니다.
이날 사회는 KBS청주방송국 정다운 아나운서가 맡았는데요. 그녀는 '6시 내고향' 리포터로도 활약하고 있습니다.
3분의 심사위원과 함께 심사위원장을 맡은 류미해 심사위원장은 비오는 날 어린이들의 순수한 목소리가 청아하고 정확하게 잘 들릴 거라면서 심사기준을 말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음정의 정확성, 표현력, 가창력는 물론이고, 소리와 음색들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엄정한 심사를 한다고 합니다.
2학년 귀여운 초등학생부터 6학년의 고학년까지 개인, 중창이 참여했고요. 쌍둥이, 자매도 있었습니다. 의상과 소품까지 완벽히 준비했더라고요.
서울에서 온 아이가 부른 '내리는 빗방울 소리만큼 아빠를 사랑한다'는 가사에 눈물을 훔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친구와 부르고 나서 서로 꼭 안아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팀의 이름들도 우리아이들 만큼이나 예뻤어요. 예쁜우정 중창단, 다디 자매, 아이리스에인절 중창단···.
'작은 힘이 모여서 꿈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으로도 가슴 뛰는 미래가 펼쳐질 거야~~ 서로 나누고 서로 베풀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는~~'
12명의 학생들로 구성된 경북 문경팀이 무대에 올랐는데요. 아이들이 생각하는 밝은 미래를 볼 수 있었습니다. 중창은 12명 이내로 제한되었으며 참가곡은 창작곡이 포함된 자유곡이었습니다.
11명으로 구성된 충북 충주 국원초등학생의 노래 '축구 대장'은 마치 축구장에 온 듯한 느낌으로 신나고 유쾌했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태극기와 함께 'I ♥ KOREA'가 그려져 있고, 다문화 가정의 아이도 있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전반 경영이 끝나고 잠시 휴식시간이 있을때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은 잠시 휴식도 취하면서 전년도 현충원 전국사진공모전에 입상된 사진이 전시된 곳에서 전시작을 관람하였습니다.
아~~ 제 사진도 전시되어 있네요.
휴식시간이 있은 후, 후반 경연에서도 질서 있고 열띤 경연이 되었습니다.
세종대왕이 펼친 한글의 우수성을 표현한 팀도 있었습니다. 세종대왕을 분장하고 나온 어린이 귀여웠죠.
색색의 원피스를 입고 귀엽게 율동까지 완벽한 청주 아이리스 팀을 보면서 학생과 지도 선생님의 대단함도 느꼈습니다.
내 아이가 아니어도 실수하지 않았으면 하는 엄마, 아빠들의 마음이 들었고, 응원의 눈빛들이 참가자들한테 용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엄마, 아빠 사랑해요." 응원해주는 가족과 지도해주신 선생님,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모든 경연이 끝나고 심사와 상장이 제작될때의 시간을 이용하여 비가 내림에도 불구하고 참가자 전원이 현충탑으로 이동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를 했습니다.
류미해 심사위원장의 강평이 있은후 심사결과 발표와 시상이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진출하지 못한 팀중에서 독창 5명, 중창 3팀이 장려상을 받았습니다.
제가 들어도 다 본선 진출의 실력들을 가지고 있는데 내년에 다시 도전하라는 거겠죠~~
본선 진출이 확정된 개인이나 팀을 부를 때에는 모두가 환호성에 박수를 쳤습니다. 이보다 더 기쁠 수가 없겠죠~~
본선에 진출한 영광의 12팀은 기념촬영을 하고 정식 행사를 끝냈으며, 본선 진출자 전원은 6월 15일(토)에 있을 광고영상을 촬영했습니다.
그런 거 있잖아요. 미스코리아나 가요제 본선에 진출하는 사람이나 팀들은 개성있는 이미지를 연출하려고 홍보하는거요.
본선에서는 대상 1팀 에게는 국가보훈처장상 및 상금 100만 원, 최우수상 3팀 에게는 국립 대전현충원장상 및 상금 각 50만 원, 우수상 8팀 에게는 국립 대전현충원장상 및 상금 30만 원이 각각 수여됩니다.
6월 15일(토) 17시경 KBS청주방송총국에서의 열띤 경연 기다려지지 않나요?
보훈 새싹동요제 예선전을 보고 오랫동안 잊은 동요의 향수가 그리워지기도 하고, 오랫만에 순수한 아이들의 맑고 고운 목소리를 들으니 저또한 심신이 맑아진 느낌입니다.
느린 달팽이의 하루처럼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성장하면서 꽃향기도 맡아보고, 살랑거리는 바람도 쐬면서 좋은 꿈 이루는 새싹들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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