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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9년 5월 9일 |
지난 1월부터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에 제6기 작가들이 입주했습니다.4월 4일 '2019 프리뷰'전을 통해 올 한해 작가들의 작품활동 내용을 미리 볼 수 있었는데요.
입주작가들의 릴레이 개인전의 첫 테이프는 리혁종 작가가 끊었습니다.
지난 5월 2일부터 시작된 전시회 제목은 2 Piece : 두 조각의 세계를 잇다입니다.
리혁종 작가는 전시회를 통해 회화와 설치,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2 Piece : 두 조각의 세계를 잇다라는 전시회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같은 듯 다른 듯한 두 개의 작품이 서로 대비를 이룹니다.
하나의 작품은 본 작품과 전시실 바닥의 반영이 서로 대비되는 2 개의 조각이 됩니다.
제1전시실의 오누이 탑 (Two Towers)입니다. 오누이 탑은 인근 계룡산에 있는 두 개의 모양이 닮은 탑 이름지요. 리혁종작가가 이곳을 답사하면서 영감을 받아 크고 작은 돌맹이를 정성껏 쌓은 돌탑과, 플라스틱 류의 재료를 수집해 쌓아올린 수행적 작품이라고 하는데요.
한 쪽의 플라스틱 탑에는 3D 프린터로 제작했다는 얼굴도 숨어있고, 작가가 좋아하는 이카로스의 날개도 있습니다.모두 그대로 사용하기도 애매하고 버리기에도 왠지 아까운 그런 재료들입니다.
돌탑 주변에는 겹벚꽃잎들이 떨어져 있는데요. 이 작품에 사용한 돌맹이와 벚꽃잎은 대전테미예술장작센터와 접해있는 테미공원에서 주워온 것들입니다. 전시회가 끝나면 돌들은 모두 되돌려 놓을 거라네요. 계룡산과 테미공원이 서로 만난 현장일까요.
한 쪽 탑은 줍거나 얻어온 공공재이자 자연재료의 하나인 돌로, 한 쪽은 폐기된 플라스틱 제품과 생활재 숍에서 사온 플라스틱 재질의 물건으로 구성됐습니다.
작가는 "플라스틱은 석유화합물의 시대에 대량생산제를 대표하는 재료로 이전에 인류에게 번영을 주었지만 현재는 처치 곤란한 폐기물이 된 것처럼, 현장에서 가져온 돌과 그것을 플라스틱으로 복제한 두 재료는 현대사회의 자연물질과 인공물질에 대한 감정, 감각, 인식을 대조하여 연결시켰다"고 말합니다.
'버려야 할 것인지 다시 사용할 수도 있는 것인지 애매한 물건들로 쌓은 탑은, 다른 쪽 돌탑과 대비되는 모습입니다만, 탑을 쌓는 데 사용한 잡다한(?) 물건들도 찬찬히 살펴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이카로스의 그 날개와 함께 포즈를 취한 리혁종작가입니다. 날개 속에 그림자로 들어간 작가의 두상이 또 하나의 작품이 됐습니다.
작품 앞에 선 리혁종 작가
이 그림에서는 두 개의 이카로스가 있습니다. 하나는 태양에 너무 가까이 올라가 날개가 타버린 이카로스가 추락하고 있고, 하나는 낮지만 땅과 태양 사이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잘 날고 있습니다.
똑같은 모양과 색깔의 돌맹이 두 개가 각각 다른 유리 상자에 놓여 있습니다. 이 작품 속에는 자연과 최신과학이 서로 대비, 공존하고 있는데요. 과연 어떤 비밀이 담겨있는지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1층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아래 설치된 이 작품은 두 개의 손이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작가는 우리에게 친숙한 로댕을 생각했다고 해요. 로댕이 활동하던 시기가 제국주의 시기였고, 로댕은 프랑스에 있었지만 벨기에와 인접한 나라였고 국왕 2세가 식민지 콩고에서 수확물이 적을 때 사람들이 게으르다고 손목을 자르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하는데요. 흑인들의 손목과 함께 핍박을 제국주의를 황금색 손으로 표현했습니다.설명을 듣고 나니 섬뜩하네요. 황금손이 건은손의 영역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간 것은 작가의 의도일까요?
회화작품이 전시된 공간입니다.
원래 리혁종 작가는 회화를 전공했지만, 이후 행태주의적인 탐구 등의 조각에서 버려진 재료들로 구성을 하는 설치까지 하게 된 거라는데요. 이번 전시회에서 오랜만에 회화를 다시 시작하는 시기기도 해서 개인적으로 의미가 새롭다고 합니다.
이 두 작품은 원래 있는 타 작가의 작품에 그물 같이 촘촘히 망점을 찍거나, 그림을 첨가하는 형식으로 완성한 작품입니다.
회화작품 전시실 안쪽으로는 두 켤레의 짚신과 영상이 있습니다.
이 짚신은 작가의 아버지가 아들인 작가의 작품 콘셉트에 대한 대화를 나누면서 삼은 것인데요. 보통의 볏짚과 황금색 끈으로 삼아 서로 대비가 됩니다. 그런데 짚신의 올 사이에는 꽤 많은 양의 머리카락이 들어있네요?
영상은 아버지와 작업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답겼습니다. 두 켤레의 짚신은 각각 무엇을 상징할까요? 그리고 짚신 짤 때 재료로 쓴 머리카락에는 어떤 사연이 담겼을까요?
저는 이 방에 들어서는 순간 상갓집 문 앞에 놓인 짚신의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올랐는데요. 요즘을 보기 어려운 광경이지요. 리혁종 작가는 '좋은 신발은 좋은 곳으로 데려간다'고 말합니다.
또 하나의 지하전시실에는 대부분 버려진 나무둥치 등의 폐목재를 재료로 한 섬세한 조각작품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무릎 정도 높이라서 자세히 보려면 쭈그리고 앉아야 합니다. 아니면 그양 선 채로, 소인국에 온 걸리버가 돼보는 것도 좋습니다.
또다른 전시실에는 그동안 리혁종작가가 시행했던 프로젝트 등의 과정이 담긴 자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기획에서부터 진행과정 등을 자세히 볼 수 있기 때문에, 비슷한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작가나 기획자라면 천천히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리혁종 작가와 작품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 옥상의 ‘테미 쉘터’ 작품을 자세히 보지 못 했습니다.
첨탑으로 다이달로스 복제물을 세우는 진행형 작업으로 배치된 이 작품도 빼놓지 마시고요.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최창희팀장은 "리혁종 작가가 창작센터 공간 구성을 분석하고 각각의 공간에 맞는 작품을 분산 배치해 관람자는 여행자처럼 지도 속의 공간들을 찾아나서게 된다"고 합니다.
지층은 ‘미궁’으로 설정하고, 작가가 다시 재생시키고 있는 ‘이카로스 프로젝트’에 관한 작품, 정보, 영상 작업이 배치됐습니다. 옥상에는 ‘테미 쉘터’ 작품이 현재 진행형 작업으로 배치돼 에콜로지와 자본주의의 충돌을 유기적으로 완충·연결되니다. 더 나아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예술을 찾아 나서는 모험과 여행이 되는거죠.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2Piece: 두 조각의 세계를 잇다
리혁종(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6기 입주작가} 기인전
기 간 : 2019년 5월 2일(목) - 13(월)10:00-18:00(전시기간 중 휴관일 없음)
관람료 : 무료관람 및 단체관람 문의 : 042.253.9810~13
대전광역시 중구 보문로 199번길 37-1
2019 대전광역시 소셜미디어기자 조강숙 By
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8년 8월 9일 |
3대째 북메우기를 이어 온 대전무형문화재 김관식 악기장 인터뷰
"북에 제 인생을 걸었습니다."
7월 20일부터 대전전통나래관에서는 '화양연화 -북으로 메워낸 순간들'이라는, 악기장 김관식선생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대전무형문화재 제12호 김관식 악기장(북 메우기)
이번 전시회는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 30주년을 기념해 마련을 했는데요. 북메우기 악기장과 88서울 올림픽이 무슨 관계가 있었을까요. 답은 바로 '서울올림픽 개회식' 안에 있습니다.
굴렁쇠 소년과 함께 88서울올림픽 개회식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한 장면은 '어가행렬' 재현이었는데요. 어가행렬에서 임금님이 앉는 자리에 올려져 메인스타디움으로 입장했던 (당시) 세계 최대의 용고가 전세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평화통일의 북'으로 이름 붙인 이 북은 울림판 지름이 2.2m, 북통길이 2.3m, 무게 480㎏으로 1988년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북으로 기록이 됐고, 지금은 서울올림픽 기념관에 전시돼 있습니다.
88서울올림픽 개회식에 등장한 '어가행렬' 속 용고 (김관식악기장 소장 사진)
이번 전시회의 제목은 '花樣年華(화양연화), 북으로 메워낸 순간들'인데요. 김관식 악기장에게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시기, 즉 화양연화는 단연코 88서울올림픽 때라고 말합니다.
김관식 악기장을 만나 88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에 세계최대의 북의 제작 기증에 얽힌 이야기, 조부님부터 아드님에 이르기까지 4대가 우리 전통북 제작을 전승하고 있는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Q. 어떤 동기로 88서울올림픽 때 용고를 제작하시게 됐나요.
"충남 강경에서 태어나신 할아버지께서 북과 장구를 제작하셨고, 아버지도 그것을 이어받아 대전 성남동으로 이사를 한 뒤로도 이어나갔습니다. 1955년생인 저는 어려서부터 북과 장구를 가지고 놀았어요. 15-6세 되던 무렵 '어른이 되면 우리나라에 있는 북 중 가장 큰 북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죠.
1981년 바덴바덴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당시 사마란치 위원장이 88 올림픽 개최지로 "서울 꼬레"라고 외치는 순간 '아, 이 때다. 세계에서 가장 큰 북을 제작해 우리나라 전통문화와 큰북 소리를 세계인들에게 들려 주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김관식 악기장은 15-6세 때부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북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Q. 88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나 가족, 친지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셨나요.
"가족을 비롯해 주변 사람 누구도 찬성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하지만 차근차근 이해를 시켰고 비용에 있어서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장장 2년 6개월간의 준비와 제작과정을 거쳐 1987년 4월 25일에 용고 제작을 마쳤고요. 올림픽조직위원회에 기증을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매스컴에서는 온통 화제가 됐지만, 정작 기증을 받을 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 아무런 답변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8개월 정도 지난 12월 4일 (※ 관련된 날짜를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김), 조직위원회로부터 기증을 받기로 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원본의 57% 축소제작해 전시된 서울올림픽 '평화통일의 북'
Q. 세계에서 가장 큰 북이다 보니 가죽 등 재료를 구하는 것부터 제작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북 제작을 결심하자마자 뉴질랜드에서 북통으로 쓸 수령 150년 이상 된 나무 47쪽과, 1.5톤 이상의 종자소 5마리와 황소 3마리 분의 가죽 8장을 들여왔어요. 그것들을 잘 말리고 가공하면서 2년간 보관을 하다가 북통에 가죽을 메우고 마지막으로 단청을 했습니다. 이 기간이 2년 6개월이었어요. 북이 완성된 후 기증의사를 발표했고, 8개월을 기다린 끝에 조직위원회로부터 기증수락을 받았습니다.
완성된 북을 서울까지 직접 싣고 갔어요. 담당과장은 북이 이렇게 큰 것인줄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북을 제작하시는 분이라서 연세가 많으신 분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젊은 분이셨냐"며 또 한번 놀라워했죠."
Q. 88서울올림픽 개회식 때 선생님이 기증하신 용고가 등장했을 때 남다른 감동을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1988년 9월 17일 올림픽 개회식 첫번째 순서로 강상제에 이어 메인스타디움으로 용고행렬이 입장을 하는데, 아나운서가 "대한민속국악사 김관식씨가 제작한 용고로, 현존하는 북 중 세계에서 가장 큰 북입니다"하고 소개를 하는데, 눈물이 앞을 가렸어요. 하지만 울 수도 없었던 게, 그 때부터 전화가 빗발쳤기 때문이에요. 장하다, 대단하다, 세계가 보고 있다, 당신은 진정 나라를 위해 살고 있는 사람이다... 3일 내내 축하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왼쪽부터 올림픽 용고에 대한 기사, 용고기증 수령증, 박세직위원장의 자필 감사편지, 표창장
Q. 당시 88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로부터 엄청난 감사인사와 표창도 받으셨겠네요.
"사실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올림픽 이후 그 어떤 감사표시도 없어서 많이 서운했어요. 올림픽 폐회식과 함께 올림픽 유치와 개최 등에 있어서 유공자 표창을 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죠. 안기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박세직 조직위원장을 통해 뒤늦게 표창을 받았습니다."
88서울 올림픽 유공 감사패와 트로피
Q. 늦게라도 유공 표창을 받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어떻게 된 일인가요?
"박세직 조직위원장이 안기부장으로 재직하면서 모신문에 '서울 올림픽 이야기'를 연재했어요. 박위원장은 서울올림픽 개회식 최고의 장면으로 굴렁쇠 소년, 성화점화, 그리고 단연 1위는 용고행렬을 꼽으면서, "조직위원회가 감사장 하나 챙기지 못했다니 깜짝 놀랐다. 올림픽 개최에 있어서 공이 있는 사람을 세심하게 파악해 표창을 했는데 어떻게 용고 제작자는 챙기지 못하다니 미안한 마음 금할 길 없다"고 지면에 썼죠."
김관식 악기장이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88서울올림픽 관련 자료들
Q. 박세직 조직위원장과는 그 후로도 특별한 관계를 이어 오셨다고요.
"지면 게재 후 안기부로 초청을 받았어요. 접견실에서 진심에서 우러나온 사과와 함께 표창장과 감사패, 감사장, 기장증, 직원용 넥타이와 스카프 등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 인연으로 우리 집안의 행사에도 4차례나 참석했죠. 아들의 결혼식 주례를 맡아주시기도 했어요."
Q. 88서울 올림픽 이후에도 아주 중요한 대북(용고)를 제작하셨지요? 대표적으로 어떤 게 있나요?
"1991년, 현재 청와대 춘추관 옥상에 설치된 신문고(용고)를 제작했어요. 조선시대 백성들이 왕에게 억울함을 직접 알리는 한 수단으로 대궐 밖 문루에 매달았던 신문고(申聞鼓)를 이용했습니다. 민의상달(民意上達)의 역사와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제작한, 울림판 지름 200cm, 북통길이 230cm의 대북이었습니다. 88서울 올림픽에서의 용고를 보고 청와대에서 요청이 왔고, 마침 올림픽 용고 제작을 위해 마련해 두었던 가죽의 여분이 있어서 곧장 제작에 들어갔죠."
왼쪽부터 청와대춘추관 용고(1991), 통일기원북 (1992, 통일전망대), 평화우정의북(1993, 대전엑스포기념관), 전진의북-진고(2008) / 축소재현본
▶ 울림판 지름 200cm, 북통길이 230cm, 총중량 600kg에 달하는 통일기원북은 1992년 6월에 통일기원의 큰 뜻을 담아 제작 ·기증했다. 현재는 오두산 통일전망대에 설치돼 있다.
▶ 1993년 대전엑스포 개회식에 사용된 <평화우정의 북>은 울림판 지름 216cm, 북통길이 245cm, 중량 1,000kg의 대형 북으로 30개월의 기간동안 1,000명이 동원되어 제작되었다. 원본은 대전엑스포 기념관에 설치되어 있다.
▶ 2008년 건군 60주년을 기념하여, 광복이후 지나온 60년을 바탕으로 미래의 60주년을 다짐하여 선진강군에게 미래로 세계로의 출정을 명령하는 국민의 뜻을 담아 <전진의 북-진고>를 제작하였다. 호랑이 문양은 용맹스러운 우리 군의 강한 모습을 표현한 것이며, 북에 둘러진 도자는 순국선열들의 호국의지를 계승하기 위해 전국대학생 국토순례단원들이 수집한 전적지의 흙과 물로 빚었다. 원본은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대전전통나래관 상설전시실에 전시된 김관식 악기장 자료
Q. 93대전엑스포는 대전시민에게는 자부심을 갖게 해준 행사였는데, 평화우정의북 기증에 있어서 오해가 있어서 조금 서운하셨다고요.
"대전에서 정말 의미있는 행사를 하게 되니까 대전시민의 한사람으로서 기쁜 마음에, 조직위원회에 대북 제작기증 의사를 밝혔지만, 혹시 무슨 대가를 원하느냐는 반응이었어요. 하지만 정성껏 북을 제작해 기증을 했고, 개회식에 사용됐죠."
Q. 3대째 전통방식으로 북을 만들어오시고, 아드님까지 4대째 이어오고 계시지요?
"조부 (고 김재권선생)는 충남 논산시 채춘면에서 30여 년간 북을 제작했고, 조부의 유업을 이어받는 부친(고 김귀평선생)은 대전으로 옮겨 50여 년간 북을 만들었어요. 저는 7살 때부터 두 분 곁에서 북 만드는 일을 도우면서 자연스럽게 가죽 만지는 데 재미를 느꼈죠. 가죽 냄새를 맡으며 북통 안에 들어가 놀면서 북과 가죽은 삶의 조건이자 존재의 이유가 됐어요. 아들에게도 이어져 4대째 가업을 잇고 있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죽을 때까지 북을 제작할겁니다. 전국에 북을 제작하는 곳이 20여 곳 되는데, 전통방식을 고수하는 데는 많지 않아요. 대부분 임가공해 온 재료를 사용합니다. 전통방식으로 북통을 만드는 과정과 가죽을 손질하는 것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이 드는 과정이지만 우리의 전통이기 때문에 대대손손 이어갈 생각입니다."
아직 건강은 괜찮아 북을 만드는 데 문제가 없다는 김관식 악기장 그는 "나는 북에 인생을 걸었다"라고 말하며 특별한 전시회에 찾아온 많은 축하객들 사이에서 환하게 웃음 짓습니다.
2018/07/18 - [대전문화생활/전시ㆍ강연] - 대전무형문화재 제12호 김관식 악기장의 화양연화(花樣年華)는?
= 대전전통나래관 기획전시 =
花樣年華(화양연화), 북으로 메워낸 순간들
일 시 : 2018년 7월 20일(금) - 8월 19일(일) 10:00-17:00 (월요일 휴관)
장 소 : 대전전통나래관 3층 기획전시실
관람료 : 무료
관람문의 : 대전전통나래관 홈페이지 narae.djichc.or.kr:4445
☏ 042-636-8008, 8061
2018 대전광역시 소셜미디어기자 조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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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8년 8월 20일 |
연일 최고 35도℃를 넘나드는 더위.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통농악을 익히느라 땀흘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대전웃다리농악전수교육관에서 2주간 진행된 '하계전수마당' 현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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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웃다리농악 전수교육관
지난 7월 30일부터 8월 3일까지 5일간 '심쿵∼마음을 울려라'라는 제목으로 열린 프로그램은, (재)대전문화재단에서 주최하고 대전웃다리농악보존회에서 진행하는 하계전수마당으로, 올해로 벌써 22회째를 맞았는데요. 일반 청소년 30여 명이 참여해, 비합숙(수강료 무료)으로 진행됐어요.
2차는 대전웃다리농악보존회 주최로 열렸는데요. 웃다리농악을 배우고 있는 초등학생부터 60대까지, 100 명 안팎의 인원이 참가해 (수강료는 유료) 6일부터 5일간 합숙을 하며 실력을 다졌습니다.
하계전수마당이 진행되는 기간인 지난 7월 31일과 8월 6일에는 프로그램 참가자들과 일반시민 관람자가 모인 가운데 웃다리농악보존회의 공연이 펼쳐졌습니다.
웃다리농악 보존회의 공연 '북치고 장구치고'
2차 웃다리농악 하계전수마당에는 대암초등학교와 유천초등학교 농악반 어린이들과, 유성생명과학고등학교 '구암풍물부', 을지대학교 풍물동아리 '악', 법2동 풍물단, 옥천군 청성면 풍물단, 청양웃다리농악보존회, 대전무형문화전수학교 문하생 등 100 여 명이 참석을 했는데요. 가장 어린 초등학교 4학년생부터 65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모였습니다.
저는 현장에서 유성생명과학고등학교 풍물부 학생들을 만나보았어요.
유성생명과학고등학교 풍물부. 왼쪽에서 두번째 세번째가 이현재군, 한상희양
한상희 양(1학년)은 '구암풍물단'에서 꽹과리를 치고 있는데요. 초등학교 때는 북을 쳐본 경험이 있다고 해요.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붕물부에 가입을 했고, 이런 합숙훈련을 처음이라서 기대가 많이 된다고 합니다.
이현재 군(2학년)은 소고와 상모를 돌리고 있다고 하는데요. 소고잽이라고 하지요. 아는 형의 추천으로 풍물부에 들었는데, 4물 악기보다 상모에 매력을 느껴 시작하게 됐답니다. 주변에서 완전히 프로의 실력을 가졌다며 부러워 하는데요. 앞으로 취미에서 나아가 전통연희학과 진학 등 전공으로 택할 생각이라고 해요.
유성생명과학고등학교 구암풍물부는 해마다 전국농악대회에서 상을 휩쓸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어요. 올해도 10월에 있을 전국대회를 대비해서, 이번 합숙훈련기간동안 확실히 연습을 하겠다고 하네요.
대전웃다리농악보존회 송덕수회장은 "웃다리농악의 진법, 상모, 스텝 등 웃다리농악의 판굿을 참가자들의 실력 수준과 연주 분야에 따라 맞춤 집중교육으로 운영할 예정"이라며 "실력을 다지기 위해 참여한 만큼 열심히 임해주기를 바란다고"고 당부했습니다.
대전무형문화재 제1호 웃다리농악 송덕수보유자(대전웃다리농악보존회장)
대전웃다리농악 하계전수마당은 송덕수 대전무형문화재 제1호 대전웃다리농악 보유자를 비롯한, 보존회의 이수자들이 참여해 악기별 기능별로 꼼꼼히 지도해줍니다.
이번 하계전수마당에 참여한 어린이와 청소년을 비롯한 웃다리농악 문하생들의 열정이 폭염을 이길만큼 뜨거웠다는 소식입니다.
2018 대전광역시 소셜미디어기자 조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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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8년 12월 28일 |
12월 27일. 옛 충남도지사 관사에서 '테미오래' 개관행사가 있었습니다. 영하 10℃ 안팎의 한파에도 많은 시민들이 참여를 했는데요. 특히 관사촌 인근 대흥동 주민들이 관심을 갖고 참석을 했습니다.
개관식 행사는 허태정 대전시장과 문화예술인, 지역주민 등이 함께 테이프 커팅을 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테미오래 개관 테이프 커팅
이어서 도지사 공간 대문 안 마당에 박을 엎어놓고 발로 밟아 깨는 '박깨기'를 했습니다. 박을 힘차게 밟아 깨면, 그 소리에 귀신이 도망을 간다고 하는데요. 보통 새집으로 이사를 할 때 많이 행하던 풍습입니다. 테미오래가 앞으로 잘 운영이 되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겠지요.
박깨기
그리고 참석자들은 옛 충남도지사공관을 둘러보았는데요. 외관은 예전에 비해 창틀을 새로 교체하고, 내부 안내판 등이 정비가 되었을 뿐 대부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옛 도지사공관을 둘러보는 개관식 참석자들
옛 충남 도지사공관
옛 충남도지사공관 내부.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옛 충남도지사공관 2층 회의실. 앞으로 회의 및 세미나실로 쓰인다
'테미오래'는 지역의 옛명칭인 테미로 '오라'는 뜻과, 테미와 관사촌의 오랜 역사라는 두가지 의미를 담은 명칭입니다.
전국에서 유일한 관사촌으로 1932년도에 조성됐는데요. 충청남도가 홍성으로 이전한 후 대전시에서 매입해 시민을 위한 문화예술 힐링공간으로 조성한 겁니다.
개관식에서는 테미오래를 맡아 운영할 (사)대전마을기업연합회로부터 운영에 대한 계획 등 브리핑을 받았는데요.
앞으로 옛 충남도지사 공관은 전시실과 세미나실, 아카이브실, 문화정원 등으로 쓰인다고 해요. 그리고 2, 4, 5, 6호 관사는 근대건축전시관과 도서관, 시민 및 작가의 공방으로, 3호관사는 지원센터와 아트숍, 마을 사랑방으로, 7~10호 관사는 지역 및 해외작가 레지던스와 청년 공유공간 등으로 활용된다고 합니다.
공식적인 개관행사가 끝나고, 공관 바로 앞에 있는 1호관사에 들러 봤어요.
'테미오래 관사촌 아트빌리지 계획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1호관사
이 전시회를 통해 테미오래가 어떤 모습으로 변신할 지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1호관사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
테미오래가 어떻게 조성될지를 보여주는 전시자료
내년 1월부터는 도지사공관과 1호관사를 중심으로 일반시민에게 개방하고, 4월에는 벚꽃축제와 연계한 '개관 축하행사'가 열린다고 합니다.
2018 대전광역시소셜미디어기자 조강숙 zoomtr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