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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9년 7월 16일 |
2019년 대전방문의 해를 맞아 대전시립박물관에서는 우리옷을 테마로 한 특별전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은 우리옷 : 검이불루(儉而不陋)-전통직물전(展)』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내년 2020년 6월 14일(일)까지 3층 특별 전시실에서 계속된느데요. 대전지역 세거성씨 묘 출토 복식의 직물을 통해 마직, 견직, 면직 등 직조의 역사를 살펴보고 다양한 직물의 복식유물과 길쌈 관련 유물을 통해 우리 의생활 역사의 한 단면을 재조명해 보고자 마련됐습니다.
<대전시립박물관 전경>
전시기간 : 2019. 7. 10(수) ~ 2020. 6. 14(일)
개관시간 : 하절기(3월~10월) 10시 ~ 19시, 동절기(11월~2월) 10시 ~ 18시
관람료 : 무료
휴관일 :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 추석 명절
단체관람, 전시해설 예약이나 자세한 사항은 대전시립박물관 홈페이지( https://www.daejeon.go.kr/his/index.do ) 또는 전화 (042-270-8600~4)로 문의하면 됩니다.
<대전시립박물관 서포터즈 어린이합창단>
7월 10일(수) 개막식에서 대전시립박물관 서포터즈 어린이 합창단의 축하공연이 있었습니다.처음 선보인 무대였다는데도 아름다운 하모니로 너무 잘해 주었습니다. '다섯 글자 예쁜 말' 노래를 부르며 율동하는 어린 친구들의 모습이 귀엽고 예뻤어요.
<시립박물관장의 축사>
기증, 기탁한 분, 해설사 및 많은 분들이 참석했는데요. 대전지역 전통직물의 역사와 직조방법을 그림, 영상, 유물 등 흥미로운 자료로 알 수 있었습니다. 또 방학을 맞이한 자녀들과 함께 직접 직조 체험도 할 수 있어 오랜 시간 전승된 우리나라 전통 직조의 역사성과 그 가치를 배울 수 있습니다.
<테이프 컷팅>
이번 전시에서는 무덤에서 출토된 충주박씨, 용인이씨, 안정나씨, 여산송씨 등 대전에서 오랫동안 대대로 살아온 성씨 등의 전통복식 유물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전시실로 들어가는 모습>
전통복식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그동안 가치에 비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대전지역 출토 복식을 재조명하고 우리 전통복식의 역사와 제직방법에 대해서도 쉽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전시실 내부>
씨실과 날실에서 삶을 엮어내듯 옷감을 만들어내는 행위는 마치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얽혀 역사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옷감을 짜고 옷을 만드는 일은 인류의 삶과 함께 했습니다. 이 옷감은 복식의 재료라는 기능을 뛰어넘어 교역물, 공납품, 계급 상징 등 경제적, 사회적 기능도 담당했습니다.
<해설사의 해설을 듣는 관람객>
특별히 충남 무형문화재 1호인 한산세모시짜기 보유자의 전승품과 충남 무형문화재 25호인 청양춘포짜기 보유자가 실제 사용한 도구와 전승품, 지난해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특선작으로 선정된 춘포 등도 선보이고 있습니다.
<옷을 만드는과정 설명>
그럼 옷을 만드는 과정을 알아보겠습니다.
근대화와 함께 실을 뽑고 직물을 짜는 일이 기계화되면서, 민간에서 전통 방식으로 옷감을 짜고 옷감을 만들어 내는 일은 어느새 명맥이 끊어져 찾아보기 어려워졌죠. 그나마 전통 베틀로 제직되는 방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목화를 재배하고 누에 키우기, 실잣기 준비>
무명의 원료인 '목화'와 명주의 원료인 '누에고치', 모시의 속껍질로 만든 '태모시', 솜을 정리하는 솜타기를 하고 누에고치를 햇볕에 말리거나 끓는 물에 삶아 한 가닥씩 이로 가늘게 쪼개 섬유의 굵기를 일정하게 하는 실잣기 준비과정을 글, 사진, 영상으로 자세하게 볼 수 있습니다.
<실잣기, 베매기>
가늘게 쪼개 한 올씩 빼어 양쪽 끝을 모아 무릎 위에서 손바닥으로 비벼 연결하여 만드는 실잣기와 베를 짜기 전 '베매기 솔'을 사용해 날실에 풀을 먹여 날실의 강도를 높이고, 매끄럽게 하는 베매기 과정을 글, 사진, 영상으로도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베짜기, 다듬이질>
베매기가 끝난 날실을 베틀에 걸고 날실과 씨실을 교차시켜 베를 만드는 '베짜기'와 옷을 짓기 전 천의 구김을 펴고 부드러운 광택과 촉감을 살리기 위해 옷감을 방망이로 두드려 다듬는 과정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면(緜)과 면(棉) 설명>
'면(緜)'자는 우리가 흔히 쓰는 '면(綿)'자의 고자(古字)이긴 하지만, 누에고치의 비단솜을 가리키는 경우로도 쓰며, 꼭 면직물을 뜻한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삼국시대에 면이 다량으로 재배되고 있던 남방 지역과 교류했기때문에 직접 면이 재배되지는 않았다 해도 교역품으로 반입된 면섬유를 이용하여 우리의 섬세한 제직기술로 면직물을 제작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장의와 저고리, 단령>
16세기 안정나씨묘역 용인이씨묘에서 출토한 명주로 된 솜누비 장의입니다. 겉감은 쪽색명주이고 안감은 소색의 견면교직으로 짜였습니다.또 17세기 여산송씨묘역에서 출토된 솜저고리는 겉감이 아름다운 화문단이 사용됐습니다. (사진왼쪽)
15세기 말로 추정되는 여산송씨묘역과 송효상 묘역에서 출토된, 견면직으로 짜여있는 단령을 볼 수 있습니다. (사진오른쪽)
이외에도 여러 종류의 유물들이 조선전기부터 후기까지 다양한 복식문화를 보여줍니다. 무명, 명주, 모시, 교직 등 다양한 직물로 제작된 우리복식의 소박함과 화려함, 정교한 제직기술 등을 보여줘 학술적, 심미적 가치가 뛰어납니다.
<전시실을 둘러보는 관람객>
대전에서 발굴된 가락바퀴, 어망추 등 선사시대 유물부터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농서인 '농사직설', '증보산림경제'를 볼 수 있습니다.
구멍이 뚫려 있어 누에고치로 부터 뽑아낸 견직물은 매우 가늘고 힘이 있으며 우아한 광택을 띕니다. 땀과 수분을 잘 빨아들여 오늘날까지 생활직물로 널리 사용되는 면직물을 비롯한 각종 출토복식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옷감 들여다보기 체험존>
직물의 길이 방향을 경사(날실)라 하고, 경사에 직각이 되게 파여있는 방향을 위사(씨실)라 한데요. 자세히 설명된 내용을 읽어보고 옷감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체험도 할 수 있습니다.
<함께 짜는 옷감 체험존>
준비된 씨실을 세로로 걸린 날실 사이로 이리저리 엮어 아름다운 옷감을 짤 수 있고 짜임을 감상해 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색깔과 재료의 시실을 사용하거나 평직, 능직, 수자직 등 실을 엮는 방법을 달리하면서 원하는 문자나 문양도 만들어 볼 수 있어 어른들이나 아이들이 신기하고 재미있게 체험해 볼 수 있습니다.
전시를 기획하고 준비할 때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대전시립박물관은 대전 유성구 도안대로 398(상대동)에 위치하고 있스빈다. 대중교통 버스 이용시 106, 115, 312, 706, 601, 11번을 타면되고, 지하철 이용시 유성온천역에서 106번, 구암역에서 312번으로 각각 환승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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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9년 1월 21일 |
"아! 천추만세에 내 슬픔을 알리라"- 충암 김정-
선비들이 죽음을 겪거나 유배를 가는 등 정치적인 탄압을 받는 사건을 보통 '사화(士禍)'라고 부르는데요. 당대 권력은 지우려고 했지만 세상은 기억하는 사람들의 흔적을 만나러 대전시립박물관 기획전 '1519 선비의 화- 김정과 그의 조선'을 찾았습니다.
이번 전시는 대전지역의 중요한 역사인물인 '충암 김정' 선생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1519년에 발생한 정치적 사건 '기묘사화(己卯士禍)'를 재조명해 보는 자리입니다.
대전시립박물관에는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이 따로 운영이 되고 있는데요. 기획전시공간은 두 곳이 있어 주제가 다르거나, 주제가 이어지는 전시를 동시에 만날 수 있습니다.
충암 김정은 정암 조광조 등과 함께 개혁정치에 참여했다가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36세의 젊은 나이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충암은 겨우 목숨을 건져 금산에 유배됐다가, 진도를 거쳐 제주로 옮겨졌는데요. 충암은 외로운 섬 제주도에서 36년의 삶을 마감하면서 사약을 들고 '임절사'를 읊조립니다.
"외딴섬에 버려져 외로운 넋이 되려 하니
어머님 두고 감이 천륜을 어기었네
이 세상을 만나서 나의 목숨 마쳐도
구름을 타고 가면 하늘문에 이르리
굴원을 따라 떠돌고도 싶으나
기나긴 어두운 밤 언제면 날이 새리
빛나던 일편단심 쑥밭에 묻게 되면
당당하고 장하던 뜻 중도에서 꺾임이니
아! 천추만세에 내 슬픔을 알리리"
충암은 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을 옹립한 정국공신의 공을 가려내는 '위훈삭제'를 추진하다가 기존 세력인 훈구파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충암은 중종 14년(1519년)에 일어난 기묘사화에 연루돼 그 화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이야 정치적인 생명이 끝나는 선에서 머물 수도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죽음까지 감내해야 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개인적인 이야기에 국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선의 정치적인 생명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전시입니다. 화를 당해 유배를 당하기도 하고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할 수도 있었지만 새로운 깨달음 얻거나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고 빛나는 계기로 삼은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조선시대 첫 사화는 역사상 유명한 폭군인 연산군 때 일어났습니다. 조선시대에 사화를 일으키게 만든 왕들은 정치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확고하게 만들기 위해 활용했죠.
연산군 역시 초기에 폭정의 결과라기보다는 자유로우면서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기 위해 삼사와 사관들에게 정치적인 경고를 한 것이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등장한 유배지는 모두 408곳이라고 합니다. 지역별로 보면 경상도가 81곳, 전라도가 74곳, 충청도는 70곳에 달하며 횟수로 보면 전라도는 915회, 경상도는 670회, 충청도는 320회에 이릅니다. 지역으로는 제주도가 81회로 가장 많습니다. 가장 먼 섬이고 지금이야 쉽게 갈 수 있지만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제주도는 아주 멀고 쉽게 갈 수도 없고 나오기도 힘든 곳이었죠.
지금도 적지 않은 정치적인 충돌이 일어나고 있지만 사화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통치자에 의해 죽음에 이르기까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김정이 출사 한 것은 연산군이 폐위된 직후였다고 합니다. 연산군을 몰아내고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중종)을 왕으로 추대한 사건인 '중종반정'은 충을 숭상하는 성리학을 국가철학이자 통치이념으로 삼아 건국한 나라였기에 그 의미가 상당히 컸습니다.
충암은 11가지 잠언이라는 '십일잠'을 적었는데, 이는 그가 약관의 나이에 방대한 고금의 문헌들을 읽고 그것을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들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1515년(중종 10) 8월 순창군수 김정은 담양부사 박상과 함께 폐비 신 씨의 복위를 주청 하는 상소를 올렸다. 신 씨는 중종의 즉위와 함께 왕비가 되었으나 반정세력들은 신 씨의 아버지 신수근이 반정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그를 폐위시켰다. 감정의 상소는 부부의 연을 강제로 끊어버린 반정공신들의 폐륜과 자신의 아내를 지키기 못한 중종의 무능, 모두를 공격한 것으로 파장은 클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대간들조차 김정을 비난했고 결국 파직된 그는 충북 보은에 유배되었다."
현재 김정을 배향하는 서원들은 충북 보은의 상현서원, 충북 청주 신항서원, 대전의 숭현서원, 정북 장수 화산사가 있습니다. 또 지금은 사라졌지만 화산서원, 성곡서원, 귤림서원이 있었습다.
화를 입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안위보다는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는 의미의 반증이기도 합니다. 소신으로 세상을 살았던 사람만이 겪었던 화를 보면서 소신의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충암 김정은 1576년(선조9)에 문간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1758년(영조34) 영의정에 추증됩니다.
한편, 기획전시실 입구에 가면 국보 제233호로 지정된 '근정전'이 눈에 들어옵니다. 1395년에 지은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고, 현재의 건물은 1867년 중건되었는데요. 앞면 5칸, 옆면 5칸의 팔작지붕으로 아래층의 고주가 위층의 변주가 되는 구조로, 조선시대 궁궐의 정전 중에서 가장 높고 규모가 크며, 조선 후기 다포계 건축의 특징을 대표하는 건물입니다. 신하들의 조하를 받던 곳으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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