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버지니아
- 포스트 갯수: 4
- 조회수:
- LOCATION
거의 한 달만에 여행기를 쓰려니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 그래봐야 또 별볼일 없는 국립공원에 관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작년 여름부터 일부러 찾아다녀, 이제 집에서 2시간 이내 거리에는 NPS Official Unit들이 정말 2~3곳밖에 남지를 않았는데, 거기는 '별볼일 있는' 곳들이라서 아내와 함께 갈 장소로 계속 남겨두고 있다. 그래서 모처럼 혼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낼 수 있었던 지난 월요일에, 처음으로 범위를 넓혀서 편도 3시간 내외가 걸리는 여러 곳들을 묶어서 다녀온 첫번째 시리즈를 시작한다.
위의 경로와 같이 집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향해서,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주의 남서부에 있는 5개의 '내셔널'들과 다른 유명한 장소 하나까지 더해, 총 6곳을 하루만에 모두 둘러보았다. 저녁 8시에 집으로 돌아와 계기판을 확인해보니, 총 운전시간이 정확히 딱 10시간에 주행거리는 512마일(824 km)이었다. "오래간만에 쉬는 날 이게 뭐하는 짓이냐?"
새벽 4시반 출발의 긴장이 풀어지며 잠이 좀 온다는 느낌이 들때, 고맙게 등장해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분홍색 봄꽃 너머로 바라본 주황색 아침 여명이다~ 좀 더 기다려 일출까지 감상하려 했지만, 이 날 꽃샘추위가 극심해서 내리기 전 확인한 계기판의 온도계가 섭씨로 영하였다는...!
뒤돌아 본 메릴랜드 주의 사이들링힐 웰컴센터(Sideling Hill Welcome Center) 모습으로, 건물 오른편으로 도로를 만들기 위해 산을 깊이 깍은 것이 보인다. 저 고개를 넘어 계속 서쪽으로 달려야 하는 고속도로가 인터스테이트 68번 겸 국도 40번인데.
이 루트가 바로 1800년대 초에 신생국가 미국의 첫번째 국책사업으로 만들어진 동서를 잇는 마찻길인 '내셔널로드(National Road)' 구간임을 알려주는 안내판으로, 이에 대해서는 본 시리즈 여행기의 다음 편에서 자세히 설명될 예정이다.
1시간을 더 달려 "Wild and Wonderful" 웨스트버지니아 주에 들어가니까, 또 딱 맞취서 아주 잘 지어놓은 휴게소가 나온 덕택에, 졸음을 쫓고 보온병에 넣어간 커피와 아침을 먹었다. 그렇게 두 번이나 쉬면서 거의 4시간만에 펜실베니아 주에 있는 첫번째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프렌드쉽힐 국립사적지(Friendship Hill National Historic Site)라는 이름만으로는 어떤 곳인지 짐작하기 어려우니, 친절하게 그 밑에 누구의 집이었다고 적어 놓았다. 붉은 필기체 서명은 앨버트 갤러틴(Albert Gallatin)으로 그의 이름은 백악관과 그 주변을 소개했던 예전 포스팅에 이미 한 번 등장한 적이 있다. "LA 바닷가에 있는 우정의 종각은 가봤어도, 우정의 언덕은 또 처음이네~"
간판이 세워진 숲을 빠져 나오면, 파란 초원에 좌우로 가로수가 잘 심어진 진입로가 나와서, 언덕 위의 멋진 저택이 나올 것을 직감하게 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넓은 주차장에는 멀러 보이는 국립공원청 차량만 한 대 세워져 있었는데, 파크레인저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난 앨버트 갤러틴은 19살이던 1780년에 신생 독립국인 미국으로 와서 하버드 대학에서 프랑스어 강사를 한 후에, 22살에 느닷없이 당시로는 가장 변방인 서부 펜실베니아 시골에 땅을 사서는 지역 유지 및 정치인이 된다. 그 후 연방 하원의장을 거쳐서 불과 40세인 1801년에 미국 재무장관이 되어 무려 13년간 역임했고, 그 후에는 외교관으로 프랑스와 영국 대사를 거쳐서, 말년에는 지금의 뉴욕 대학교(New York University, NYU)를 설립하기도 했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중간에 그의 동상이 만들어져 있는데, 앞서 설명한 그가 활약한 분야들인 정치/경제/외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측량을 하는 모습이다.
그는 일찌기 서부개척에 미국의 미래가 있음을 예견해서 이리로 이사를 왔고, 지리학에 밝아서 상기의 National Road를 어디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이 지역을 방문한 워싱턴 대통령을 직접 만나 설명하기도 했단다. 그래서 재무장관 시절에 루이지애나 매입과 루이스/클라크 탐험대 후원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게 된다. 또한 언어학에도 뛰어나서 원주민 언어를 최초로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통해서 남북 아메리카 인디언이 모두 아시아에서 이주해왔다는 주장을 처음 한 사람으로 '미국 민족학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단다. 한 마디로 다재다능, 박학다식 그 자체!
그가 여기를 '우정의 언덕(Friendship Hill)'으로 부르며 1789년부터 집을 짓고, 아래쪽 강가에 자신의 고향을 기려 뉴제네바(New Geneva)라는 마을을 만들어서 유리 공장을 세웠단다. 하지만 중앙 정계로 진출해 장관과 외교관이 되고, 그 후에도 뉴욕시에서 계속 활동했기 때문에 여기에 살았던 기간은 길지 않으며, 결국 1832년에 다른 사람에게 집과 땅을 모두 팔았다고 한다.
제일 왼편의 돌로 된 외벽 부분과 우물 정도가 갤러틴이 소유했을 때 모습이고, 그 오른편과 나머지 많은 부분들은 다음 집주인이 개보수와 증축을 한 것이란다.
왠지 전설이 있을 것 같은 우물 속이 궁금해서 내려다 보니, 현대적 자물쇠로 옛날 나무로 된 입구를 잠궈 놓은게 특이했다.
비지터센터가 건물 안에 만들어져 있고, 그리로 통해서 자유롭게 집 내부도 일부 구경을 할 수 있지만, 4월말까지는 주말에만 문을 열기 때문에 직접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새로운 주인이 강을 내려다 보는 곳에 만든 정자(gazebo)는 이 지역의 사교장으로 유명했는데, 절벽이 무너질 위험이 있어서 국립공원 지정 후에 안쪽으로 옮겨 다시 만든 것이라는 설명이 안내판에 적혀 있다. 저 끝에서 축대 아래쪽을 내려다 보면,
그 옛날에는 수 많은 배들이 오가던 모논가헬라 강(Monongahela River)이 지금은 조용히 흐르고 있다. 이 강은 사진 오른편 북쪽으로 흘러 피츠버그에서 앨러게니 강(Allegheny River)과 합류해 오하이오 강이 되어 결국 미시시피 강과 연결되기 때문에, 갤러틴이 그 당시에는 모든 산업의 동맥인 뱃길을 끼고 있는 이 땅을 구입했던 것이다.
앞마당 잔디밭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주인이 바뀌며 증축이 많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1960년대 국가유적으로 등록될 때까지 개인소유였다가, 정부가 구입해서 필요한 수리를 거친 후에 1978년에 국립사적지가 되었다.
그리고 언덕 아래로 아침 햇살에 빛나는 평화로운 초원의 풍경을 바라보니, 그냥 바로 떠나기는 좀 섭섭한 듯 하길래...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만난
앨버트 옹과 셀카 한 장 함께 찍었다.ㅎㅎ 공원 홈페이지 서두에는 그를 '잊혀진 건국의 아버지(America's Forgotten Founding Father)'로 부르지만, 실제 미국의 독립보다는 그 후에 주로 활동을 한 사람이다. 그러나 제4대 재무부 장관으로 미국이 지금의 세계최대 경제대국이 되는 토대(foundation)를 마련한 사람이기에 꼭 틀린 말도 아닌 듯 하다. 타주의 별볼일 없는 국립공원들까지 돌아봤던 나들이의 다음 편은, 누구나 다 아는 '국부(國父)' 조지 워싱턴의 젊은 시절 이야기로 이어진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거의 한 달만에 여행기를 쓰려니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 그래봐야 또 별볼일 없는 국립공원에 관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작년 여름부터 일부러 찾아다녀, 이제 집에서 2시간 이내 거리에는 NPS Official Unit들이 정말 2~3곳밖에 남지를 않았는데, 거기는 '별볼일 있는' 곳들이라서 아내와 함께 갈 장소로 계속 남겨두고 있다. 그래서 모처럼 혼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낼 수 있었던 지난 월요일에, 처음으로 범위를 넓혀서 편도 3시간 내외가 걸리는 여러 곳들을 묶어서 다녀온 첫번째 시리즈를 시작한다.
위의 경로와 같이 집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향해서,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주의 남서부에 있는 5개의 '내셔널'들과 다른 유명한 장소 하나까지 더해, 총 6곳을 하루만에 모두 둘러보았다. 저녁 8시에 집으로 돌아와 계기판을 확인해보니, 총 운전시간이 정확히 딱 10시간에 주행거리는 512마일(824 km)이었다. "오래간만에 쉬는 날 이게 뭐하는 짓이냐?"
새벽 4시반 출발의 긴장이 풀어지며 잠이 좀 온다는 느낌이 들때, 고맙게 등장해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분홍색 봄꽃 너머로 바라본 주황색 아침 여명이다~ 좀 더 기다려 일출까지 감상하려 했지만, 이 날 꽃샘추위가 극심해서 내리기 전 확인한 계기판의 온도계가 섭씨로 영하였다는...!
뒤돌아 본 메릴랜드 주의 사이들링힐 웰컴센터(Sideling Hill Welcome Center) 모습으로, 건물 오른편으로 도로를 만들기 위해 산을 깊이 깍은 것이 보인다. 저 고개를 넘어 계속 서쪽으로 달려야 하는 고속도로가 인터스테이트 68번 겸 국도 40번인데.
이 루트가 바로 1800년대 초에 신생국가 미국의 첫번째 국책사업으로 만들어진 동서를 잇는 마찻길인 '내셔널로드(National Road)' 구간임을 알려주는 안내판으로, 이에 대해서는 본 시리즈 여행기의 다음 편에서 자세히 설명될 예정이다.
1시간을 더 달려 "Wild and Wonderful" 웨스트버지니아 주에 들어가니까, 또 딱 맞취서 아주 잘 지어놓은 휴게소가 나온 덕택에, 졸음을 쫓고 보온병에 넣어간 커피와 아침을 먹었다. 그렇게 두 번이나 쉬면서 거의 4시간만에 펜실베니아 주에 있는 첫번째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프렌드쉽힐 국립사적지(Friendship Hill National Historic Site)라는 이름만으로는 어떤 곳인지 짐작하기 어려우니, 친절하게 그 밑에 누구의 집이었다고 적어 놓았다. 붉은 필기체 서명은 앨버트 갤러틴(Albert Gallatin)으로 그의 이름은 백악관과 그 주변을 소개했던 예전 포스팅에 이미 한 번 등장한 적이 있다. "LA 바닷가에 있는 우정의 종각은 가봤어도, 우정의 언덕은 또 처음이네~"
간판이 세워진 숲을 빠져 나오면, 파란 초원에 좌우로 가로수가 잘 심어진 진입로가 나와서, 언덕 위의 멋진 저택이 나올 것을 직감하게 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넓은 주차장에는 멀러 보이는 국립공원청 차량만 한 대 세워져 있었는데, 파크레인저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난 앨버트 갤러틴은 19살이던 1780년에 신생 독립국인 미국으로 와서 하버드 대학에서 프랑스어 강사를 한 후에, 22살에 느닷없이 당시로는 가장 변방인 서부 펜실베니아 시골에 땅을 사서는 지역 유지 및 정치인이 된다. 그 후 연방 하원의장을 거쳐서 불과 40세인 1801년에 미국 재무장관이 되어 무려 13년간 역임했고, 그 후에는 외교관으로 프랑스와 영국 대사를 거쳐서, 말년에는 지금의 뉴욕 대학교(New York University, NYU)를 설립하기도 했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중간에 그의 동상이 만들어져 있는데, 앞서 설명한 그가 활약한 분야들인 정치/경제/외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측량을 하는 모습이다.
그는 일찌기 서부개척에 미국의 미래가 있음을 예견해서 이리로 이사를 왔고, 지리학에 밝아서 상기의 National Road를 어디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이 지역을 방문한 워싱턴 대통령을 직접 만나 설명하기도 했단다. 그래서 재무장관 시절에 루이지애나 매입과 루이스/클라크 탐험대 후원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게 된다. 또한 언어학에도 뛰어나서 원주민 언어를 최초로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통해서 남북 아메리카 인디언이 모두 아시아에서 이주해왔다는 주장을 처음 한 사람으로 '미국 민족학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단다. 한 마디로 다재다능, 박학다식 그 자체!
그가 여기를 '우정의 언덕(Friendship Hill)'으로 부르며 1789년부터 집을 짓고, 아래쪽 강가에 자신의 고향을 기려 뉴제네바(New Geneva)라는 마을을 만들어서 유리 공장을 세웠단다. 하지만 중앙 정계로 진출해 장관과 외교관이 되고, 그 후에도 뉴욕시에서 계속 활동했기 때문에 여기에 살았던 기간은 길지 않으며, 결국 1832년에 다른 사람에게 집과 땅을 모두 팔았다고 한다.
제일 왼편의 돌로 된 외벽 부분과 우물 정도가 갤러틴이 소유했을 때 모습이고, 그 오른편과 나머지 많은 부분들은 다음 집주인이 개보수와 증축을 한 것이란다.
왠지 전설이 있을 것 같은 우물 속이 궁금해서 내려다 보니, 현대적 자물쇠로 옛날 나무로 된 입구를 잠궈 놓은게 특이했다.
비지터센터가 건물 안에 만들어져 있고, 그리로 통해서 자유롭게 집 내부도 일부 구경을 할 수 있지만, 4월말까지는 주말에만 문을 열기 때문에 직접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새로운 주인이 강을 내려다 보는 곳에 만든 정자(gazebo)는 이 지역의 사교장으로 유명했는데, 절벽이 무너질 위험이 있어서 국립공원 지정 후에 안쪽으로 옮겨 다시 만든 것이라는 설명이 안내판에 적혀 있다. 저 끝에서 축대 아래쪽을 내려다 보면,
그 옛날에는 수 많은 배들이 오가던 모논가헬라 강(Monongahela River)이 지금은 조용히 흐르고 있다. 이 강은 사진 오른편 북쪽으로 흘러 피츠버그에서 앨러게니 강(Allegheny River)과 합류해 오하이오 강이 되어 결국 미시시피 강과 연결되기 때문에, 갤러틴이 그 당시에는 모든 산업의 동맥인 뱃길을 끼고 있는 이 땅을 구입했던 것이다.
앞마당 잔디밭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주인이 바뀌며 증축이 많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1960년대 국가유적으로 등록될 때까지 개인소유였다가, 정부가 구입해서 필요한 수리를 거친 후에 1978년에 국립사적지가 되었다.
그리고 언덕 아래로 아침 햇살에 빛나는 평화로운 초원의 풍경을 바라보니, 그냥 바로 떠나기는 좀 섭섭한 듯 하길래...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만난
앨버트 옹과 셀카 한 장 함께 찍었다.ㅎㅎ 공원 홈페이지 서두에는 그를 '잊혀진 건국의 아버지(America's Forgotten Founding Father)'로 부르지만, 실제 미국의 독립보다는 그 후에 주로 활동을 한 사람이다. 그러나 제4대 재무부 장관으로 미국이 지금의 세계최대 경제대국이 되는 토대(foundation)를 마련한 사람이기에 꼭 틀린 말도 아닌 듯 하다. 타주의 별볼일 없는 국립공원들까지 돌아봤던 나들이의 다음 편은, 누구나 다 아는 '국부(國父)' 조지 워싱턴의 젊은 시절 이야기로 이어진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2년여 전에 대륙횡단 이사를 하면서 테네시와 노스캐롤라이나 주경계에서 처음으로 애팔래치안 트레일(Appalachian Trail, AT)을 아주 잠깐 만났었다. AT는 더 남쪽 조지아 주에서 출발해 버지니아 서쪽 산악지대를 따라 북동쪽으로 계속 올라가 메인 주에서 끝나는데, 앞서 소개했던 쉐난도어 국립공원 내의 메리스락(Mary's Rock) 등산로도 거기에 포함된다. 그 후 일주일만에 이번에는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애팔래치안 트레일 구간을 또 찾아가 보았다.
집에서 35분 정도 운전을 해서 Raven Rocks Trailhead의 비포장 주차장에 2등 은메달로 도착을 했다.
여기는 버지니아 북부를 동서로 잇는 7번 주도(State Route)인 Harry Byrd Hwy가 블루리지(Blue Ridge) 산맥을 넘어가는 스닉커스 고개(Snickers Gap)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초콜렛바 제품과 이름이 같다. "그럼, 스니커즈를 등산 간식으로 가져올걸 그랬나?"
북쪽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시작점의 안내판에는 많은 코팅된 종이들이 붙어 있었고, 안내판 기둥과 뒤쪽 나무에 하얀색 직사각형으로 페인트칠이 된 '블레이즈(Blaze)'가 이 길이 애팔래치안 트레일임을 알려주고 있다.
가이아GPS로 기록한 경로로 왕복거리는 6.3마일에 3시간여가 걸렸는데, 목적지인 '까마귀 바위' 전망대가 이 앱에는 Crescent Rock Vista라 표시되고, 그 너머 이름 없는 언덕이 해발고도 1453피트(443 m)의 Raven Rocks로 나와서, 쓸데없이 지나쳐서 한참을 헤매는 바람에 30분 이상을 허비했었다. 등고선을 보면 산비탈과 계곡을 교대로 2번씩 지난 후에 주경계를 넘게되고, 지도 좌상단에 파란색으로 표시된 것은 쉐난도어(Shenandoah) 강이다.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산이라고 전날 약간 내렸던 눈이 첫번째 산비탈에 녹지 않고 남아 있었다. 등산로는 예상보다 험하고 바위가 많아서 하이킹 스틱을 가져오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정면에 보이는 나무에도 있는 트레일 표시가 잘 되어 있어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첫번째 계곡의 넓은 개울을 이제 건너가려고 하는데, 이 날은 딱 재미있게 건너기 좋은 정도였지만, 비가 많이 온 직후에는 등산화를 제법 적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 오르막으로 언덕을 넘어가는 황량하고 쓸쓸한 겨울산행의 모습이지만, 나무들에 잎이 달린 봄~가을에는 이 부근에서 가장 인기있는 등산로로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불평하는 후기를 종종 볼 수 있을 정도이다.
두번째 계곡의 바위에 앉아서 스니커즈 대신에 초코파이와 보온병 커피로 간식을 먹고, 계속해서 마지막 오르막을 올라가면 이 등산로에서 가장 사진이 많이 찍히는 유일한 이정표가 나온다.
그것은 바로 버지니아(Virginia, VA)와 웨스트버지니아(West Virginia, WV)의 주경계를 나타내는 표지판으로, 아마도 산속을 걸어서 '스테이트 라인(state line)'을 넘어간 것은 처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애팔래치안 트레일은 이후 두 주의 경계선을 계속 들락날락하며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3개의 주가 만나는 하퍼스페리(Harpers Ferry)에서 쉐난도어 강과 포토맥 강을 차례로 건너서 메릴랜드 주로 완전히 넘어간다.
그리고 예습에서 봤던 것 같은 바위 절벽이 나왔는데, 앞서 언급했듯이 트레일 지도앱에는 다른 이름으로 나와 있어서 사진 한두장 찍고는 계속해서 북쪽 능선을 향해 걸어갔다.
길이 내리막으로 바뀐 다음에야 잘못된 것을 알고 뒤돌아 다시 올라온 위치로, 여기 사거리(?) 비슷한 곳에서 오른편 나무가 빽빽한 언덕이 가이아GPS에는 Raven Rocks로 나와서 눈을 헤치고 좀 들어가 보았다.
그랬더니 백패킹을 하는 '쓰루하이커(thru-hiker)'들이 불을 피우고 텐트를 친 흔적이 나왔다. 여기까지만 확인하고 내려갔어도 충분했는데, 기어코 등산로도 없는 언덕 꼭대기를 찾아 끝까지 올라간 위기주부...
거기에는 아무도 밟지 않은 눈에 덮힌 낙엽과 나뭇가지들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흑흑~
다시 힘들게 애팔래치안 트레일로 돌아와 지나쳤던 바위를 찾아가는데, 거의 20명쯤 되어 보이는 단체 등산객을 만났다. 평균 연령이 65세는 되어 보이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었지만, 사진처럼 장비와 자세는 모두 전문산악인 레벨이었다.
가운데 보이는 절벽이 올라오며 앞서 보여드린 사진을 찍었던 곳으로, 여기 레이븐락스(Raven Rocks)는 암벽등반 훈련장소로도 사용될 만큼 높이와 폭이 제법 되었다. 얼굴만 크게 나오는 셀카나 또 찍어야 겠다고 생각하는데, 할머니 한 분이 나타나시길래 지나간 일행에서 혼자 뒤떨어지셨나 걱정했지만... 배낭 대신 비닐봉지 하나만 들고서, 자신은 AT의 이 섹션을 담당하는 '트레일앤젤(Trail Angel)'이라며 매일 주차장에서 여기까지 다니면서 쓰레기를 줍는단다!
그러면서 장갑까지 벗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어정쩡한 자세의 전신 사진을 찍어주셨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리고 뒤돌아 먼저 하산을 하셨는데, 잠시 후에 위기주부도 뒤따라 출발했을 때는 뒷모습이 잠깐 보였지만, 코너를 돌아서 직선의 긴 내리막이 나왔는데도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시는 것이 아닌가... "정말로 천사라서, 날개가 나와 날아가셨나?"
왕복 등산로라서 다른 사진은 없고, 주차장이 내려다 보이는 마지막 모습인데, 겨울철 주중 평일인데도 주차장이 거의 찼다. 이 포스팅을 본다고 여길 등산하실 분은 아무도 없겠지만, 여름철에는 아침 8시만 지나면 매일 주차장이 꽉 찬다고 하니 참고하시길... 이렇게 애팔래치안 트레일은 도로와 교차하는 곳에 무료 주차장이 많이 있어서 구간 산행이 가능한데, 만약 이런 식으로 전구간을 나눠서 모두 걷는다면 'NoBo와 SoBo' 즉, 남북 양방향으로 두 번을 종주한 셈이 되는건가? ㅎㅎ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