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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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신난 그녀

너무 신난 그녀

행복자가발전소의 2024년 7월 5일 금요일의 이야기입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좋았어!! 밥부터 해놓자!! 일어나면 애들 먹일 생각부터 하게 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단 미역국도 끓여놔야지!! 지금 끓여놓으면 애들 일어났을 때, 딱 알맞는 온도가 됩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이제 블로그 써야지!!! ㅋㅋㅋㅋㅋㅋㅋ 오! 잘 잤어? 리예! 사랑해!!! 매일 하는 인사다보니 말이 점점 주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쩔 때는 잘 잤어? 로 끝나더라구요. 그래서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서 사랑해까지 이어서 쭉 했습니다. 오!! 봄보미야!! 일어났어!! 사랑해!! 완전 사랑스런 타이밍입니다.......

유관순 열사 사적지 2

유관순 열사 사적지 2편입니다. ▲ 유관순 열사가 다녔다는 매봉교회의 모습. ▲ 매봉교회 아래에 마련된 유관순 열사 전시실의 모습. ▲ 전시실 내부의 모습. ▲ 유관순 열사의 모습. ▲ 유관순 열사에게 영향을 미친 인물들 소개. ▲ 유관순 관련 서적 모음. ▲ 전시실 내부의 모습 2. ▲ 전시실을 나와서 발견한 유관순 열사의 생가지. ▲ 유관순 열사 생가지 입구의 모습.들어가 볼 수는 없다. ▲ 생가지 건물의 모습. ▲ 유관순 열사 생가 방문을 마치고 사적지로 다시 돌아왔다.사적지에 있는 유관순

유관순 열사 사적지 1

처음에 천안을 가기로 마음먹었을 때 천안에 있는 것 중 눈에 들어왔던 게 독립기념관과 병천순대, 그리고 유관순 열사 사적지였습니다.천안에 와서 유관순 열사 사적지가 어디 있는지 정확히 찾지 못해서 난감했는데 병천순대거리를 지나면 있더군요.ㅡㅡ;; 그래서 지친 몸을 이끌고 가보았습니다.그럼 사진 감상하세요. ▲ 병천순대거리를 벗어나 옆 길목으로 가봅니다. ▲ 걸어가다가 발견한 오이 멜론 조형물.천안의 특산품인가?;; ▲ 푸른 들판의 모습. ▲ 드디어 도착한 유관순 열사의 거리.이 거리를 따라 쭈-욱 올라가면 유관순 열사 사적지에 도착한다. ▲ 유관순 열사의 거리를 올라가다 보면 나오는 역사자료들의 모습.

3·1운동 100주년 기념 영화 '항거' 관람! 대한독립만세~

1900년대 초 일제강점기에는 의병 투쟁, 동학농민전쟁, 의열 투쟁 등 밑으로부터 전개되어 온 민중운동과 독립협회 같은 단체들의 활동이 있었습니다. 이 시기 일제는 한국인들을 대하면서 3일에 한 번 조선인과 명태는 두들겨 패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영화'항거-유관순 이야기'는  3월에 꼭 봐야할 영화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요. 대전시민사랑협의회가 시민과 함께 영화 '항거'를 관람하는 행사를 개최한다하기에 당연히 참여했습니다. 영화 '항거'는 1919년 3.1 만세운동 후 3평도 안 되는 서대문 감옥 8호실 속, 영혼만은 누구보다 자유로웠던 유관순과 8호실 여성들의 1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포스터부터가 의미심장해 보입니다. 유관순은 약자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삶의 마지막을 결정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강하다고 말했습니다. 유관순은 충분히 살 수 있는 기회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이 주도한 삶을 살고 독립운동에 헌신하다가 세상을 떠났죠. 무척이나 실용성이 있는 태극기 담요를 주어서 집에서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날 영화관람후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3.1 운동 이후 독립운동 과정에서 보인 여성들의 투쟁은 결코 남성들에게 못지않았다고 합니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따르면 3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전국 집회 횟수는 1,542회, 참여자는 2,051,448명에 달했습니다. 이중 사망자는 7,509명, 부상자는 15,850명, 체포된 사람은 46, 306명, 불탄 민가는 715채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영화의 제목은 '항거'이지만 점화라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이지 않을까란 생각도 해봅니다. 이화학당에서는 유관순에게 명예졸업장을 주었는데요. 천안의 유관순기념관에 가면 만날 수 있습니다.  영화를 봤으니 3.1 운동과 유관순을 다시 생각해보기 위해서 유관순 열사 사적지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지금 유관순 열사는 의사로 격상하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데 그 중심에 천안이 있습니다.  유관순 기념관은 3·1운동 100주년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유관순의 사진이 항상 어딘가 그늘져 보이고 그래서 유관순의 일상도 그러리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유관순은 상당히 쾌활한 소녀였다고 합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3·1운동 100주년을 대대적으로 알리고 있기 때문인지 몰라도 평일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유관순 사적지를 찾아서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감옥에 갇혀서도 항거를 멈추지 않았는데요. 3·1운동은 점화를 했을 뿐 그 불은 감옥에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비폭력 평화시위를 지향했던 것은 당시의 의미도 있었지만 막강한 일본의 군사력에 민중들이 다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10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이 땅에서 완전히 일제의 잔재를 씻어내지는 못했습니다. 이제 바로 설 때가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3·1운동 100주년인 올해가 매우 중요한 시기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