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석촌동 고분군”
잠실 석촌호수 남쪽에는 “한성백제 시절”에 있었던 돌무지무덤(적석총)이 발견된 터가 있다. 이는 사적 제243호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다.
“잠실 : 석촌동 고분군”
잠실의 석촌동 고분군은 1911년 일제에 의해서 처음 유적 현황 조사가 이루어졌고, 한성백제의 무덤으로 인식이 되었다고 한다. 1912년에는 간단한 조사가 이루어졌고, 1916-1917년 정밀한 조사가 실시되었으며, 약 290여 기 이상의 무덤이 존재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광복 이후, 잊혀졌던 석촌동 고분군”
석촌동 고분군은 다른 대부분의 유적과 마찬가지로, 광복 이후 사회적인 혼란과 한국전쟁 등으로 인해서 사실상 잊힌 곳이 되었다. 그 결과 상당수의 무덤들이 흔적조차 없이 파묻혀서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1975년 잠실 일대를 개발하면서, 1974년부터 잔존해 있는 무덤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이 이루어졌고, 1987년 민가가 철거되면서 전면 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서 아주 극소수의 무덤만이 겨우 세상으로 나와 고분 고원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석촌동 고분군 공원”
현재에는 일부 남아있는 고분을 활용해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면서 이제는 새로운 배경의 공간이 되었다. 잠실 롯데월드타워가 들어서게 되면서, 고분군에서 잠실 롯데월드 타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과거의 고분과 현대적인 고층 탑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것이 독특한 느낌을 자아낸다.
“서울 잠실 : 석촌동 고분군”
강릉 “강릉 대도호부 관아”
강릉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강릉 중앙시장에서 걸어서 약 10분 정도의 거리에 “강릉 대도호부 관아”라는 유적지를 찾을 수 있다.
이는 고려시대에서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중앙의 관리들이 강릉에 내려오면 머물던 건물터이다. 조선시대 기록으로는 고려 태도 19년(936년)에 세워졌으나, 지금은 객사문만 남아 있다고 한다.
객사문은 참고로 국보 제51호이다. 객사문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몇 안 되는 고려시대 건축물 중의 하나로, 공민왕이 쓴 “임영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고 한다.
“임금의 위패를 모신 임영관”
임영관은 임금이 먼 곳에 있어서 직접 찾을 수 없으므로 임금을 대신한 위패를 모신 곳이다. 이곳에서 임금의 명을 받고, 취임식, 초하루와 보름에 인사를 드리는 곳이다.
임영관 삼문을 들어오면, 첫 대문인 중대청을 만나볼 수 있다. 이는 고려건축 양식의 건물로 건물의 용도는 알 수 없으나, 관찰사 순력 등을 위한 장소로 추정되고 있다. 중대청 뒤로 전대청은 객사의 정청이자 임영관의 중심 공간으로 건물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9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대청에 왕의 전패를 모셔두고 특별한 날에 의례를 행했다고 한다. 전대청 옆에 있는 서헌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온돌방과 마루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3품 관료가 숙식하던 장소이다. 동대청은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온돌방과 마루로 구성되었으며, 서헌보다 위계가 높은 곳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학교 건물로 이용되기도 한 곳”
이곳은 과거 일제강점기에는 학교 건물로 이용되기도 했다. 학교가 헐린 뒤 1967년에 강릉 경찰서가 들어서고 현재는 마당에 객사의 강릉 임영관 삼문만 남아있다가 2006년 복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객사문만 유일하게 역사 속에서 남아 있던 건물이라 아쉬움이 남지만, 강릉에서 고려, 조선시대의 역사를 느껴볼 수 있는 장소이다.
“강릉 대도호부 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