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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posts남북전쟁 최초의 불런(Bull Run) 전쟁터인 매너서스 국립전장공원(Manassas National Battlefield Park)
반응형 미국의 남북전쟁은 링컨 대통령의 취임 직후인 1861년 4월 12일 새벽에, 이미 연방을 탈퇴한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계속 연방군이 주둔하고 있던 섬터 요새(Fort Sumter)를 남군이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일방적인 포격을 받은 요새의 지휘관이 다음 날 오후에 남군에 항복을 하고 요새를 내어주었기 때문에, 남과 북 사이에 직접적인 교전은 없었다. (북군이 철수하는 과정에서 예포를 발사하다가 대포가 폭발하는 사고로 2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한 것이 남북을 통틀어 첫번째 인명 피해임)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은 그로부터 약 3개월 후에 북부 버지니아에서 시작되었다. 대지가 완전히 초록으로 물들기 시작했던 지난 4월에, 버지니아 최대의 한인타운인 센터빌(Centreville)의 서쪽에 있는 게인스빌(Gainesville)에 일이 있어서 다녀오는 길에 그 두 마을의 사이에 있는 매너서스 국립전장공원(Manassas National Battlefield Park)을 방문했는데, 집에서는 30분 정도 거리이다. 국립공원청에서 관리하는 군사공원의 한 종류인 배틀필드파크(Battlefield Park)는 전적지공원 또는 전쟁터공원으로 부를 수도 있지만, 이 블로그에서는 그냥 전장공원(戰場公園)으로 한 글자 줄여서 부르기로 한다. 나무들 사이로 보이던 하얀 건물은 헨리힐 비지터센터(Henry Hill Visitor Center)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이 전쟁터는 1861년 7월 21일에 미국 남과 북의 첫번째 불런 전투(First Battle of Bull Run)가 벌어진 곳으로, 황소가 달리는 곳이 아니라 미동부에서는 물이 흐르는 개울을 '런(run)'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번역하자면 황소개울 싸움... 안내데스크 뒤로 공원의 지도가 보이는데, 우리는 비지터센터 뒤쪽 들판만 돌아보는 짧은 트레일을 했기 때문에, 전체 공원지도를 따로 보여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참고로 공원 서쪽에서 이듬해인 1862년 8월에도 전투가 벌어져서, 두 전쟁터를 묶어서 하나의 국립공원으로 관리가 되고 있다. 10시가 조금 지났는데 안내영화는 11시 정각에 시작한다고 해서, 트레일을 먼저 하고와서 보기로 했다. 비지터센터 뒷문으로 나오니 푸른 초원 너머로 옛날 건물들과 기념비가 나무 난간과 함께 만들어져 있고, 그 너머로는 하얀 천막들도 많이 보였다. 무엇보다도 우리 부부가 반가워 했던 것은... 이 대포들이다~ 지난 번 게티스버그 국립군사공원(Gettysburg National Military Park)에서 대포와 사랑에 빠지신 사모님... 안 말리면 그대로 주차장까지 끌고 가서 우리 차 뒤에 붙들어 메고 집으로 가지고 가실 것 같았다.^^ 대포들이 잘 나와야 한다고, 커플셀카를 몇 번이나 찍었는지 모른다. 아내가 쓰고있는 모자는 "Parents of 23"이라는 뜻인데, 정말로 내년이면 벌써 딸이 대학교 졸업이다. (미국은 한국과는 달리 입학연도가 아니라 졸업연도로 학년을 구분함) 불런 기념비(Bull Run Monument)는 4년간의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인 1865년에 6월에, 여기 헨리힐의 유해를 수습하는 임무를 맡았던 연방군 병사들이 3주만에 만들어서 세운 것으로, 남북전쟁과 관련된 기념물로는 최초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하얀 천막이 만들어져 있던 곳에는 이렇게 옛날 복장을 하고 마차를 끌고 나와서 무슨 장사를 하시는가 했는데, 과거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오신 분들은 이 두 명만이 아니었다! 각양각색의 군복을 입고 머스킷 소총을 든 19세기 남부연합군 병사들이 20여명이나 모여 있었는데, 그들을 지금 지휘하고 있는 사람은 21세기의 국립공원청 파크레인저...^^ 마침 일요일이라서 'Living History: Civilian & Infantry' 행사를 하는 것인데, 여름철에 매주 일요일마다 진행이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재연배우까지는 아니지만 진지한 모습의 사람들로 왠지 자원봉사같지는 않았다. 요 근래에 뮤지컬 해밀턴(Hamilton: An American Musical)이나 넷플릭스 드라마 브리저튼(Bridgerton) 등의 역사극과 디즈니 영화에서도 인종불문 캐스팅이 유행이던데, 미국 남북전쟁 모습의 재연에 동양인도 받아줄까? 남부연합군과 함께 진군(?)하는 아내의 모습을 클릭해서 동영상으로 보실 수 있다. 비디오에서는 북소리도 나오고 마지막에는 아메리카 연합국(Confederate States of America)의 펄럭이는 깃발도 보실 수 있다. 저 분은 업무시작과 동시에 잔디밭에 드러누웠는데, 아마도 누워서 휴식하는 병사가 자신이 맡은 배역일 수도 있겠다.^^ 조금 주변을 둘러보다가 루프트레일도 다 돌지 않고, 비지터센터 근처에 있는 가장 유명한 동상을 보러 가기로 했다. 참, 이 때는 몰랐는데 11시 정각에 병사들이 머스킷(musket) 소총을 실제로 발사하는 재연행사를 했다고 하는데 직접 못 봐서 아쉬웠다~ 동상으로 걸어가는 길의 나무 아래에 있던 추모비 하나... 조지아 사바나(Savannah) 출신으로 켄터키 주의 부대를 이끌고 여기 버지니아에서 싸우다가, 이 자리에서 중상을 입고 사망한 Francis S. Bartow는 남북전쟁에서 최초로 사망한 남군의 장교라고 한다. 버지니아는 물론이고 미국 남부 곳곳에서 '스톤월(Stonewall)'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할 수 있는데, 바로 그 주인공이자 이 전쟁터에서 탄생한 스타라고 할 수 있는 남부연합의 토마스 잭슨(Thomas 'Stonewall' Jackson)의 동상이다. 한국에서도 뉴스 등을 통해서 본명보다는 오히려 '스톤월 잭슨'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고, 석벽(石壁) 또는 돌담 장군으로 번역해서 쓴 뉴스 기사나 글들도 많이 볼 수 있다. 동상의 반대편에는 잭슨에게 그러한 별명을 안긴 유명한 말이 씌여있는데, 북군에게 밀려서 후퇴하던 남군의 제3여단장이던 비(Barnard Elliott Bee, Jr.) 준장이 뒤쪽에 있던 버지니아 출신으로만 구성된 제1여단을 이끄는 잭슨 준장을 바라보며 아래와 같이 말했단다. "There is Jackson standing like a stone wall. Let us determine to die here, and we will conquer. Rally behind the Virginians!" 저기 잭슨이 돌담처럼 버티고 있다. 우리가 여기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반드시 이길 것이다. 버지니아인들을 지원하자! 돌담처럼 버티고 선 잭슨이 지휘한 남군은 지원군이 올 때까지 5시간 동안 북군의 공세를 막아낸 후 반격에 성공해서 남북전쟁 첫번째 전투는 남군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이 후 2년 동안 '스톤월 잭슨(Stonewall Jackson)'으로 불리며 셰넌도어 계곡 등에서 전설적인 지휘관의 면모를 보여주지만, 1863년 게티스버그 직전의 챈슬러스빌(Chancellorsville) 전투가 끝난 후에 어이없는 아군의 오인사격으로 사망한다. 만약 잭슨이 살아있었다면 게티스버그 전투의 첫날에 남군이 세메터리힐을 점령해서, 최소한 게티스버그 전투의 판도는 바뀌었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내가 동상 앞에서 찍은 사진의 왼편에 멀리 보이던 이 기념물은 바로 잭슨에게 '스톤월'이라는 별명을 선사한 비(Bee)의 추모비인데, 그는 위의 말을 한 직후에 여기서 사망했다. 일설에 의하면 그가 위와 같이 말한 것은 맞지만, 자신의 부대는 전방에서 싸우는데 잭슨은 도와주러 안 오고 뒤쪽에 "돌담처럼 우두커니 서있다"고 화가 나서 한 말이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몸통이 비틀어지고 위쪽도 부러진게 수령이 2백년은 넘어 보이니, 아마도 이 나무는 160년 전에 이 언덕에서 있었던 남북전쟁 최초의 전투를 직접 목격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비지터센터로 돌아갔다. 영화시간까지 좀 남아서 전시장을 먼저 둘러봤는데, 입구에는 남군 병사들의 순진한 얼굴이 부조로 새겨져 있고, 사진 왼쪽에 처참한 흑백사진과 함께 '순수의 종말(The End of Innocence)'이라고 씌여있다. 이 말은 잠시 후에 본 무려 45분 길이의 안내영화의 제목이기도 한데, 이 첫번째 전투에서 남과 북은 각각 약 3만명의 군인들이 동원되어서 연방군 약 3천명과 남부군 약 2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전투에 참가했던 남북의 여러 부대의 군복을 모형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당시에는 남과 북 모두 통일된 군복이 없었기 때문에 200종에 가까운 유니폼이 등장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군복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위 사진에서도 알 수 있지만 남부연합국의 깃발이 당시 미연방 국기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아군인지 적군인지 멀리서는 도저히 구분이 불가능했단다. 결국 이 전투가 끝나고 남부연합은 군기를 새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지금도 남부지역이나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집회에서 볼 수 있는 X자 모양의 남부연합기(Confederate Flag)이다. 마지막으로 1차 불런 전투의 진행상황을 보여주는 LED가 깜박이는 지도인데, 인적물적 자원이 우세했던 북군이 첫 전투에서 참패하면서, 남북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는 장기전이 된 것이다. (상세한 전쟁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이듬해인 1862년 8월에 벌어진 2차 불런 전투의 비지터센터와 기념비 등도 공원 서쪽에 따로 만들어져 있는데, 집에서 가깝기는 하지만 언제 또 방문해서 거기도 가 볼 수 있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횡단과 횡단 사이... 버지니아에서 집을 계약하고 10년만의 워싱턴 방문, 그리고 2차 대륙횡단의 시작
반응형 포스팅의 제목이 이장호 감독, 안성기/이보희 주연의 1984년 영화 를 떠올리게 해서 좀 거시기 하지만... 출발한 곳으로 차를 몰고 돌아가는 왕복 대륙횡단의 가운데가 아니라, 같은 방향으로 별개의 대륙횡단을 연달아 했던 '두 횡단의 사이 기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정확히 표현하고 싶었다. LA에서 이삿짐을 싣고 무작정 미대륙을 횡단해서 북부 버지니아에 도착한 우리 부부는 다음 날부터 앞으로 살 집을 찾아 돌아다녀야 했다. 그런데...! 블로그에 올릴까말까 조금 망설였지만, 기록 차원에서 사실대로 적어보면... 8일 동안 약 5천 km의 대륙횡단을 아무 문제없이 잘 달려준 차가 바로 다음날 오후에 집을 보러 다니다가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이었다. 주행거리 25만 km의 17년된 차를 몰고 대륙횡단을 하겠다고 할 때, 많은 분들이 여행중에 고장이 나지 않도록 기도를 해주겠다고 하셨었는데, 이렇게 대륙횡단을 마친 바로 다음날에 문제가 터진 것은... 오직 그 분들의 '기도의 힘'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할렐루야~^^ 자동차는 정비소에 맡기고 우버를 타고 하루 더 집을 보러 다닌 후에 몇 군데 오퍼를 넣은 다음날,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했으니 홀가분하게 워싱턴DC에 놀러가기로 했다. 공항 근처 숙소에서 여기 레스톤 타운센터(Reston Town Center)까지 우버를 타고와서 점심을 먹은 후에, 최근에 새로 개통되었다는 근처 지하철 역으로 걸어갔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실버라인 제일 왼쪽에 우리가 출발한 Wiehle-Reston East 역이 보이는데, 이 노선은 올여름에는 덜레스 공항을 지나서 애쉬번(Ashburn)까지 연결이 된다고 한다. 야외 승강장에서 한참을 기다려 지하철을 타고는 워싱턴 내셔널몰에 있는 Smithsonian 역이 내렸다. DC 시내의 방공호 겸용으로 설계되어서 굉장히 깊이 만들어져 있는 지하철역에서 땅 위로 올라오니, 바로 이렇게 10년만에 보는 '연필탑' 워싱턴 모뉴먼트가 보였다. 커플셀카를 찍는데 아내가 손가락을 뾰족하게 탑처럼 세워 보이고 있다. 맞은편에는 그 해 1월에 6일에 폭도들에게 점령당했다가 20일에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렸던 미국 국회의사당이 좀 특별한 느낌으로 서있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하나 들어가 볼까 하다가, 앞으로 이제 이 근처에 살건데 뭐... 그냥 동네사람들 처럼 커피나 한 잔 마시면서 이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 그래서 국립미술관 야외 조각정원의 카페에서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 잔을 사서 마시는 것으로 10년만의 워싱턴DC 방문은 목적달성에 충분했다. (조각정원과 또 뒤로 보이는 국립문서보관소는 최근에 방문을 해서 별도의 포스팅으로 소개될 예정임) 지하철 역 입구에 국립공원청에서 세워놓은 내셔널몰(National Mall)의 안내판을 보며 여기 있는 곳들 빨리 다 가봐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벌써 이 때로 부터 5개월이나 지났는데 당시 마음가짐보다는 별로 많이 둘러보지 않은 것 같다... 참, 지도 제일 오른쪽에 유명한 링컨기념관이 있는데, 올해 여름부터는 아래 사진과 같이 링컨 대통령의 좌상을 돌려서 뒷면이 밖으로 보이도록 전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난 주 4월 1일에 NPS 내셔널몰 홈페이지에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직접 기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정동쪽을 바라보는 링컨 대통령 조각의 정면 얼굴이 지난 100년동안 햇볕에 많이 손상이 되어서, 올여름부터는 180도 돌려서 전시하여 앞뒷면이 균일하게 되도록 할 예정이라고 하니까, 여름 이후로 링컨기념관을 방문하시는 분들은 위 사진처럼 링컨의 뒷통수와 뒤쪽에서 보이는 옆모습만 감상하실 수가 있다. 레스톤 전철역과 연결된 쇼핑몰로 돌아왔는데, 통로의 지붕에도 디스플레이 패널을 붙여서 파란 하늘을 보여주는 것 보고 처음에는 정말 깜박 속을 뻔 했다.^^ 이 날 저녁에 숙소에서 이주계획의 플랜B를 가동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데, 판매자 한 명이 우리의 오퍼를 수락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음날 우리의 무모한 대륙횡단 이사가 성공한 것을 기념해 북버지니아 한인타운의 페어옥스몰(Fair Oaks Mall)에 있는 일식뷔페에서 둘이 자축을 했다. 딱 맞춰서 정비소에 맡겼던 자동차도 스타팅모터 교체를 끝냈다고 찾아가라는 연락이 왔는데, 그 정비소가 우리가 앞으로 살게 될 집의 바로 근처였다. 차를 찾아서 드라이브 삼아 동네 북쪽의 알공키안 공원(Algonkian Park)에 잠시 들렀었다. 옛날 블로그에 소개한 적이 있는 로스앤젤레스 강(Los Angeles River)과는 완전히 다르게 녹색으로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흐르는 넓고 푸른 강물... 바로 버지니아와 메릴랜드의 주경계를 따라 흘러서 워싱턴으로 흘러가는 포토맥 강(Potomac River)이었다. 이제 1차 대륙횡단의 목적이었던 집계약을 완료했으니, 다음날 LA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아침 일찍 새 보금자리로 와서는 봇짐을 진 상태로 저 차는 차고 앞에 세워두고, 여행용 캐리어 하나만 챙겨서는 공항으로 가는 우버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캘리포니아 번호판을 단 이삿짐 차를 2주 정도 저기에 세워뒀더니, 나중에 만난 이 동네 이웃들이 우리가 캘리포니아에서 이사온 것을 전부 알고 있더라는...^^ 작년 8월에 LA에서 비행기로 보스턴 방문했다가 돌아갈 때 잠시 경유한 적이 있는 덜레스 국제공항(Dulles International Airport)인데, 이제 앞으로는 우리 버지니아 거주 가족의 허브공항이 된 셈이다. 아메리칸에어 항공사의 저 비행기를 타고 텍사스 오스틴(Austin)을 경유해서, LA의 살던 집 주차장에 세워두었던 다른 차를 가지러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갔다. 비행기 창문 밖으로 보이는 메마른 바둑판 위의 LA 다운타운과 그 너머의 샌가브리엘 산맥... 앞으로 당분간은 다시 보기 힘들거라는 것을 알기에, 왠지 조금은 뭉클하고 울컥했던 것 같기도 하고...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마치 동부에서 LA에 놀러온 사람인 것처럼 "Welcome to Los Angeles" 광고판 앞에서 사진도 한 장 찍었다.^^ 우리 부부가 1차 횡단을 마치고 다시 LA로 돌아온 것을 알고는, 저녁시간이니까 와서 밥 먹고 자고 내일 출발하라는 분들이 계셨다. 하지만, 그러면 고맙고 반갑겠지만 이미 했던 이별을 또 해야 하고, 왠지 오늘밤 LA를 벗어나지 않으면 발목이 잡힐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거절을 했던 것이니 다시 한 번 양해를 구한다. 살던 집으로 돌아가서 하나 가지고 있던 차고 열쇠로 대륙횡단 이삿짐 2호차를 찾은 후에 열쇠는 집주인에게 전달하고, 자주 다니던 동네 한인마트에 가서 김밥 2개만 사서는 바로 출발을 했다. 이 101번 고속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조금 달리니 그 전에 살던 집으로 가는 길 표지판이 나와서 아내가 한 장 찍었다. 그렇게 2021년 10월 중순의 달 밝은 밤에 우리는 14년 동안 살았던 미서부 LA를 영영(?) 떠났다~ 2시간 정도를 쉬지 않고 달려서 밤 9시반 정도에 바스토우(Barstow)의 이 숙소에서 2차 대륙횡단의 첫밤을 보내기로 했다. 비록 1호차처럼 봇짐은 지지 않았지만 저 2호차도 트렁크는 당연하고 뒷자리의 바닥부터 천정과 뒷 유리창 아래까지 이삿짐을 최대한 꼭꼭 맞춰서 쑤셔 넣었는데, 이 사진으로도 뒤쪽 차체가 아래로 많이 내려가 있는 것이 보인다. "자, 또 가로질러 보는거야~"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애팔래치안 트레일(Appalachian Trail)을 처음 걸어 찾아간 쉐난도어의 스토니맨(Stony Man) 전망대
미국대륙을 자동차로 누가 빨리 횡단하는 지를 겨루는 '캐논볼런(Cannonball Run)'이라는 불법적이고 비공식적인 기록도전이 있다. 뉴욕 맨하탄 Red Ball Garage에서 LA 레돈도비치 Portofino Hotel까지 2,906마일(4,677 km)을 특별 개조한 차량에 보통 3명이 탑승해서 달리는데, 작년 10월에 새로 수립된 최단기록이 25시간 39분으로 전구간을 무려 110 mph, 시속 180 km라는 믿기지 않는 평균속도로 계속 달린 것이다! 위기주부가 이 도전에 참가할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걱정은 접어두시고, 자동차 대륙횡단이라고 하면 보통 LA와 뉴욕 사이를 달려줘야 한다는 것을 알려드리려 했다. 같은 작년 10월에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에서 출발했던 위기주부의 첫번째 자동차 대륙횡단은 비록 뉴욕(New York)까지 가지는 않고 워싱턴DC 부근에서 끝났는데, 이제 정확히 20번째 횡단여행기인 이 마지막 글로 대미를 장식할 차례이다. 특별 개조는 고사하고, 뒷자리와 트렁크도 모자라서 지붕 위까지 이삿짐을 가득 싣고 대륙횡단에 나섰던 우리집 차가 가운데 보인다. 대륙횡단 8일째 오후에 2시간 정도 거리에 최종목적지를 남겨두고서, 또 하이킹을 하기 위해 주차를 한 이 곳은 버지니아 주의 쉐난도어 국립공원(Shenandoah National Park)의 스카이랜드 리조트(Skyland Resort) 입구이다. 스토니맨(Stony Man) 트레일이 시작되는 곳의 안내판 옆에서 아내가 손을 흔들고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오솔길 건너편 큰 나무에 흰색과 파란색의 페인트가 세로로 길쭉한 직사각형으로 칠해져 있는 것이 보이는데, 바로 이 길이 국립공원청이 관리하는 423개의 Official Units에 독립적으로 포함되는 애팔래치안 국립경관로(Appalachian National Scenic Trail)임을 알려주고 있다. 애팔래치안 트레일(Appalachian Trail, AT)은 지도와 같이 남쪽 조지아(Georgia) 주의 Springer Mountain에서 출발해, 미동부의 14개 주를 거쳐서 북쪽 메인(Maine) 주의 Mount Katahdin에서 끝나는 총길이 약 2,180마일(3,500 km)의 등산로로 1937년에 완성되었다. 흔히 미서부를 남북으로 종주하는 PCT(Pacific Crest Trail), 대륙경계를 따라가는 CDT(Continental Divide Trail)와 함께 묶어서 '하이킹의 3관왕(Triple Crown of Hiking)'으로 불린다. 예전에 PCT를 소재로 한 리즈 위더스푼(Reese Witherspoon) 주연의 2014년도 영화 를 소개해드린 적이 있는데, 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와 닉 놀테(Nick Nolte)가 출연한 2015년 영화 는 애팔래치안 트레일이 무대다. 영화는 두 분 나이와 비슷해지면 보기로 하고, 그 전에 그들이 서있는 장소로 AT 전구간에서 가장 유명한 버지니아에 있는 바위산인 맥아피놉(McAfee Knob) 등산은 빨리 해보고 싶다. 노란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 정취가 느껴지시나요? (왼팔로 나뭇가지를 힘껏 흔드는 중...^^) 애팔래치안 트레일의 가을 단풍을 배경으로 커플셀카도 많이 찍었다. 다른 하이커들도 많이 없고 나무줄기가 검어서 약간 으스스한 느낌도 들었지만, 공기는 상쾌했던 듯... 기억이 가물가물~ 그렇게 애팔래치안 트레일을 따라서 0.4마일 정도만 걸은 후에 갈림길에서 스토니맨(Stony Man) 정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옛말에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그러면 절반을 더해서 AT 전구간의 50.02%를 걸은 셈인가? ㅎㅎ 등산로를 따라 걸어가면 정상 조금 아래에 있는 여기 스토니맨 룩아웃(Stony Man Lookout)이 나온다. 등산로에서는 별로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전망좋은 바위에 많이 모여있어서 약간 놀랐던 기억이 난다. 서쪽 아래로 보이는 골짜기는 동굴로 유명한 루레이(Luray) 마을이 있는 페이지 밸리(Page Valley)이고, 그 너머를 가로막고 있는 산맥은 마사누텐 마운틴(Massanutten Mountain)으로 모두 북동쪽으로 나란히 뻗어있다. 전망대 바위에서 한바퀴 돌면서 찍은 360도의 풍경을 클릭해서 동영상으로 보실 수 있다. 우리가 지나왔던 블루리지 산맥(Blue Ridge Mountains)의 쉐난도어 국립공원의 언덕들을 배경으로도 한 장~ 기억하시는 분은 없겠지만 대륙횡단 여행계획 포스팅에서 목표로 했던 6개의 내셔널파크에 여기 셰넌도어는 포함되지 않았었다. 앞으로 살 집에서 2시간 거리라서 이사 후에 홀가분하게 다녀오려고 했던 것인데, 이렇게 마지막 날에 두 곳의 하이킹까지 하면서 끝내 둘러보게 되다니... V자 하고 계신 분도 참 대단하십니다! 우리 동네에 왔으니 이 하이킹도 가이아GPS로 기록을 했다. A와 T를 세로로 합친 모양의 애팔래치안 트레일 로고와 함께, 우리가 걸었던 구간을 따라서 Appalachian Trail이라고 씌여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LA에서 DC까지 7박8일 1차 대륙횡단 이야기의 마지막 포스팅이다 보니, 자꾸 출발전 계획을 세울 때가 떠오른다. 맨아래 대륙횡단 배너를 클릭하시면 그 때 계획과 함께 20편의 여행기를 모두 차례로 보실 수 있는데, 그 글의 제일 마지막에 노란 단풍이 든 숲속 두 갈래 길의 사진이 있다... 그 중에서 선택한 이 하나의 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돌아가서, 1차 대륙횡단의 마지막 도착지 주소를 네비게이션에 입력했다. 그곳은 바로 북부 버지니아에서 한국분들이 가장 많이 모여사는 곳인 센터빌(Centreville) 쇼핑몰의 파리바게트 빵집이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비록 주문은 영어로 했지만, 직원과 손님들 대부분이 한국사람이라서 마치 웜홀을 통해서 순식간에 LA 코리아타운의 마당몰로 돌아간 것으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최초의 자동차 대륙횡단은 1915년에 Erwin George "Cannon Ball" Baker가 11일 7시간이 걸렸다는데, 우리 부부의 2021년 1차 대륙횡단 '캐논볼런'은 만으로 7일 6시간이 걸렸고, 주행거리는 LA에서 뉴욕까지보다 더 긴 3,045마일인 정확히 4,900 km로 기록되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버지니아 주 유일의 셰넌도어(Shenandoah) 국립공원의 다크할로우 폭포(Dark Hollow Falls) 트레일
정확히 10년전에 캘리포니아 주의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에서 살고 있을 때 "LA에서 가장 가까운 국립공원(National Park)은 어디일까?"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캘리포니아에는 국립공원이 주별로는 최다인 9개나 있어서 이러한 질문이 가능했었지만, 위기주부가 작년에 이사를 온 여기 버지니아(Virginia)에서는 그런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고, 대신에 이렇게 물어봐야 한다... "버지니아 주의 유일한 내셔널파크는 어디일까요?" 참, 10년전 질문에 대한 '의외의 답변'은 여기를 클릭해서 설명과 함께 보실 수 있다. 작년 10월의 대륙횡단 이사 겸 여행의 마지막 날인 8일째, 버지니아 서쪽에 81번과 64번의 두 고속도로가 만나는 스톤튼(Staunton)에서 출발해 64번 고속도로를 동쪽으로 조금 달리다가 락피시갭(Rockfish Gap)에서 빠져서, 버지니아 유일의 내셔널파크인 쉐난도어 국립공원(Shenandoah National Park)에 들어서고 있다. 남쪽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시작되었던 755 km의 공원도로인 블루리지 파크웨이가 그 이름만 스카이라인 드라이브(Skyline Drive)로 바뀌면서 계속 북쪽으로 이어지는 곳이다. 블루리지 파크웨이(Blue Ridge Parkway)와 그 아래 그레이트스모키마운틴(Great Smoky Mountains) 국립공원은 입장료가 없지만, 여기는 공원으로 들어가는 모든 도로에 이렇게 게이트가 만들어져서 입장료를 받고 있다. 물론 우리는 여름에 캘리포니아 래슨볼캐닉 국립공원에서 샀던, 위기주부가 미국에 와서 11번째로 구입한 연간회원권을 보여주고 그냥 통과했다. 남쪽 공원입구는 해발 580 m 정도였지만 계속 고도를 높여서 다시 1천미터가 넘어가니까, 이렇게 도로변이 다시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도로 옆의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하이킹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다음 편에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동부 산악지역을 종주하는 Appalachian Trail이 Skyline Drive를 따라서 쉐난도어 국립공원을 남북으로 지나가기 때문이다. 전체 길이 105.5마일로 약 170 km인 스카이라인 드라이브의 거의 절반을 1시간20분 정도에 쉬지 않고 달려서 빅메도우(Big Meadows) 지역의 비지터센터를 찾아갔다. 아래의 공원지도를 보시면 블루리지(Blue Ridge) 산맥을 따라서 남북으로 이어진 국립공원을 1/3씩으로 나누면서 국도 33번과 211번의 두 도로가 동서로 관통하는데, 우리는 국도 33번을 건너서 공원의 거의 가운데까지 온 것이다. 그리고 공원의 북쪽은 역시 66번 고속도로가 산맥을 가로지르는 프론트로얄(Front Royal)을 만나면서 끝나게 된다. 위와 같이 남북으로 길죽한 형상의 쉐난도어 국립공원(Shenandoah National Park)은 1935년에 만들어졌는데, 이 지역을 국립공원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190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지만 사유지가 많아서 계속 지연된 것이라 한다. 결국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땅 안에서도 40명 정도가 한동안 계속 거주를 했고, 대부분은 조용히 이사를 나갔지만 Annie 할머니는 1979년에 92세로 사망할 때까지 마지막으로 계속 집을 지켰단다. 비지터센터의 이름인 Harry F. Byrd Sr.는 버지니아 주지사를 역임하고, 연방 상원의원으로 쉐난도어 국립공원 법안 통과를 주도했는데, 우리집 앞의 가장 큰 길인 버지니아 7번 도로도 그의 이름을 따서 해리버드 하이웨이(Harry Byrd Hwy)라 부른다. 오른편에 보이는 웃통을 벗고 도끼를 들고 있는 동상은 그 주지사님은 아니고, 대공황 시절에 동원되었던 CCC(Civilian Conservation Corps) Workers로 1995년부터 미국전역에 세워지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똑같은 동상이 전국에 76개나 만들어졌다고! 당시에는 오미크론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오기 전이라서, 레인저들이 야외에서 방문객들 안내를 하고 실내 전시장은 폐쇄된 상태였다. 이제는 사실상 모든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오미크론에 다 걸렸는지, 미국은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벗으면서 팬데믹이 거의 끝난 분위기이다. 실내 전시실은 닫았지만 기념품 가게들은 항상 문을 열었었다는...^^ 입구 위쪽에 붙여놓은 클래식한 디자인의 포스터들이 마음에 들었는데, 현재 63개 국립공원들의 모든 포스터들을 작게 모아놓은 액자같은 것을 요즘 계속 살까말까 고민중이다. 참고로 이 때 쉐난도어는 그 중에서 위기주부가 당시 38번째로 방문한 내셔널파크(National Park)였다. 아직 공식적으로 버지니아 주민등록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동네 국립공원에 처음 왔으니까 트레일을 해야지~ 그래서 비지터센터 조금 북쪽에서 시작되는 다크할로우 폭포(Dark Hollow Falls) 트레일이 시작되는 곳으로 왔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해발 3,490피트(1,064 m)의 주차장에서 작은 개울을 따라서 밑으로 내려가는 등산로는 노란 단풍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작은 연못을 만나서 '90년대 단풍놀이 감성'을 떠올리는 포즈로 사진 한 장~ 그런데 30년전에는 없던 아랫배가...^^ 약간 경사가 있는 등산로를 사진을 찍으면서 천천히 30분 정도 걸려서 내려오니, 쉐난도어 국립공원에서 가장 인기있는 하이킹 장소들 중의 하나라는 다크할로우폴(Dark Hollow Falls)을 만날 수 있었다. 바로 앞에서 광각으로 찍은 이 사진으로는 그냥 짧은 급류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저 꼭대기에서부터 떨어지는 전체 낙차가 70피트(21 m)로 제법 큰 폭포이다. 무엇보다도 눈이 내리기 전인 10월 중순이었는데도 이 정도의 수량이 있는 것을 보면서, 동부는 확실히 서부와는 다른 기후라는 것을 떠올렸었다. 대륙횡단 여행기에서 빠질 수 없는 '중년의 커플셀카'를 이 날은 10장 이상 찍었던 것 같다... 내려왔던 길로 다시 올라가면서는 이렇게 계곡물에 손도 담궈보고, 내려오면서도 지겹게 찍었던 단풍놀이 사진을 올라가면서도 찍고 또 찍었다. 나중에 컴퓨터로 사진들을 보는데, 다 그 사진이 그 사진으로 전부 노랗기만 하더라는...^^ 우리동네에 도착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랬는지, 대륙횡단 중의 짧은 트레일을 하면서는 켜지 않았던, 가이아GPS 앱으로 이 날의 하이킹을 처음 기록했다. LA를 떠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하이킹 포스팅을 올리면서 정리해보니까, 옛날 동네에 있던 산타모니카 산맥(Santa Monica Mountains)에서만 약 50곳의 하이킹 코스를 찾아다녔던데, 새로 이사를 온 여기 북부 버지니아의 집에서도 그렇게 구석구석 돌아다닐 수 있을까? 일단 쉐난도어 국립공원은 집에서 2시간 거리라서 자주 오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다, 30분 이내의 거리에는 등산을 할만한 언덕은 하나도 없고, 강이나 개울을 따라서 걷는 작은 산책로(?)들 뿐이지만... 나무에 잎이 돋고 꽃이 피는 봄이 오면 쉬운 곳들 부터 조금씩 찾아 다녀야 겠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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