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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질리(Ridgely) 가문이 200년 동안 살았던 메릴랜드 햄튼 국립사적지(Hampton National Historic Site)

리질리(Ridgely) 가문이 200년 동안 살았던 메릴랜드 햄튼 국립사적지(Hampton National Historic Site)

지금 살고있는 워싱턴DC 지역에서 뉴욕(New York) 시까지 가는 중간에는 볼티모어(Baltimore)와 필라델피아(Philadelphia)의 두 대도시가 있지만, 이사 온지 3년이 다 되어가도록 아직 두 도시를 방문한 적이 없다. 딸이 사는 뉴욕을 자주 왕래하니까, 중간에 들릴 기회가 앞으로 많이 있을거라고 생각해서 자꾸 미루게 된다. 지난 5월 중순에 모처럼 뉴욕을 1박2일로 방문했던 둘쨋날 오후에, 볼티모어 시는 아니고 그 북쪽에 붙어있는 국립 공원 한 곳을 잠깐 구경했는데, 아래 어떤 여성의 전신 초상화를 하나 보여드리면서 그 곳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기 DC의 국립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라는 그림으로, 영국 태생의 미국 화가 토머스 설리(Thomas Sully)의 1818년 작품이다. 현대식 하프가 등장하는 그림들 중에서는 가장 유명하다는데, 모델의 이름이 Eliza Eichelberger Ridgely로 이제 소개하는 저택의 제3대 안주인(mistress)이다. 또 이 그림 덕택에 그 곳이 국립의 공원으로 보존될 수 있었기에 브로셔 표지에도 등장을 한다. 오전에 펜실베니아 주의 롱우드가든(Longwood Gardens)을 구경하고, 일부러 드라이브 삼아 1번 국도를 따라 천천히 달려서, 볼티모어 바로 북쪽에 있는 햄튼 국립사적지(Hampton National Historic Site)를 찾아왔다. 미동부 여기저기 '햄튼(Hampton, 햄프턴)'이 들어간 지명들은 대부분 식민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여기도 그렇다. 참고로 모텔 체인 '햄튼인(Hampton Inn)'의 역사와 관련된 곳은 아니다~^^ 그런데 오후 4시가 넘어서 비지터센터가 문을 닫았다... 저택 내부의 투어는 포기하고 왔지만, 관련 전시도 전혀 못 본 상태로, 다행히 밖에 비치해 둔 브로셔 하나만 챙겨서 일방통행 도로를 조금 더 달려서 위쪽 저택 옆에 만들어진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약간 바래지기는 했지만, 공원의 지도와 대략적인 소개를 함께 볼 수 있는 안내판 사진을 올린다. 영국군의 찰스 리질리 대령(Col. Charles Ridgley)이 1745년에 처음 여기 1,500에이커의 땅을 사서 담배농장을 시작했다가, 후에 아들과 함께 고향의 이름을 딴 노스햄턴 제철소(Northampton Ironworks)를 만들어 번창하는데, 독립전쟁 중에는 대륙군에 무기를 만들어 공급하기도 했단다. 그의 아들이 7년간의 공사를 거쳐 1790년에 완성한 저택이 바로 앞에 보이는 Hampton Mansion인데, 완공 당시로는 신생 독립국 미국에서 가장 큰 개인주택이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개인 소유로 남아서 만약 비싼 입장료를 받는 곳이 되었다면, 훨씬 더 깔끔한 모습이었을 듯한 느낌이 좀 들기도 했다. 이 저택의 다음 주인이었던 Charles Carnan Ridgley는 메릴랜드 주지사를 역임하기도 했는데, 그가 11명의 자녀에게 땅과 노예를 나눠서 물려주기 직전인 1829년 전성기에 햄튼 플랜테이션(Hampton Plantation)의 면적은 25,000에이커에 노예는 350명에 달했다고 한다. 저택 남쪽으로는 정사각형의 기하학적인 정원들이 여러 개 만들어져 있는데, 앞쪽 두 개만 그 모양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직전에 롱우드가든을 보고 와서 좀 시시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저택을 지을 당시부터 넓은 앞마당을 평평한 정원으로 만드는데 큰 공을 들였고, 현재의 모습으로 가꾼 것이 첫번째 그림의 주인공인 Eliza Ridgely라는 설명 등이 적혀있다. 남북전쟁과 노예해방을 거치면서 대농장의 수익성은 점차 나빠져서 낙농업 중심으로 변화한 후에, 20세기 초부터 리질리 가문 소유의 땅들은 교외의 주택단지로 개발이 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1944년에 국립미술관 디렉터가 이 집에 걸려있던 맨 위의 그림을 직접 보기위해 방문했다가, 제6대 집주인 John Ridgely, Jr.로 부터 오래된 저택을 옛모습 그대로 관리하는 고충 등을 듣고는, 국립공원청과 여러 재단 등에 연락을 해서 보존 노력을 주도하게 된다. 참, 롱우드가든 포스팅에서 'Orangery'라는 단어를 다음에 설명하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안내판의 그림과 같이 바닥에 온돌(hypocaust)을 설치한 유리 온실을 그렇게 부른다. (뒤로 보이는 건물은 1976년에 복원한 것으로 뒤쪽은 화장실로 사용) 한겨울에도 오렌지 나무를 키워서 따먹기  위한 당시 부의 상징과 같은 건물로, 프랑스 파리의 유명한 오랑주리 미술관(Musee de l'Orangerie)도 루브르 궁전의 이런 온실이었다. 저택 옆으로도 다른 건물이 있고 길 건너편에 다른 집들도 있지만, 모두 둘러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맨션의 출입구에 해당하는 북쪽 면만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1948년에 저택과 주변 땅을 90,000달러에 팔고 마지막으로 북문을 나서는 John Ridgely, Jr. 부부의 모습으로, 사들인 재단이 정부에 바로 기증을 해서 현재의 국립사적지가 되었고, 2년의 수리를 거친 후에 일반 관람객에게 집 내부가 공개되게 된다. 무엇보다 이 곳의 가치는 200년 이상 한 집안의 소유였던 땅에, 6대에 걸쳐서 그대로 보존이 된 대저택이라는데 있단다. 햄튼 저택(Hampton Mansion) 내부의 중앙홀에 걸려있는 는 비록 모사품이지만, 음악실에 전시되어 있는 하프는 실제 위 그림에 등장했던 진품이라고 한다. 국립 공원이 된 덕택에 무료인 내부 투어를 꼭 해보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 번 방문을 해야할 듯 한데... 현재 목~일요일에 오전 10시, 오후 1시와 3시의 하루 3번만 진행되는 것을 기억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집에서 뉴욕을 왔다갔다하는 일정에 맞출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리질리(Ridgely) 가문이 200년 동안 살았던 메릴랜드 햄튼 국립사적지(Hampton National Historic Site)

리질리(Ridgely) 가문이 200년 동안 살았던 메릴랜드 햄튼 국립사적지(Hampton National Historic Site)

지금 살고있는 워싱턴DC 지역에서 뉴욕(New York) 시까지 가는 중간에는 볼티모어(Baltimore)와 필라델피아(Philadelphia)의 두 대도시가 있지만, 이사 온지 3년이 다 되어가도록 아직 두 도시를 방문한 적이 없다. 딸이 사는 뉴욕을 자주 왕래하니까, 중간에 들릴 기회가 앞으로 많이 있을거라고 생각해서 자꾸 미루게 된다. 지난 5월 중순에 모처럼 뉴욕을 1박2일로 방문했던 둘쨋날 오후에, 볼티모어 시는 아니고 그 북쪽에 붙어있는 국립 공원 한 곳을 잠깐 구경했는데, 아래 어떤 여성의 전신 초상화를 하나 보여드리면서 그 곳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기 DC의 국립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라는 그림으로, 영국 태생의 미국 화가 토머스 설리(Thomas Sully)의 1818년 작품이다. 현대식 하프가 등장하는 그림들 중에서는 가장 유명하다는데, 모델의 이름이 Eliza Eichelberger Ridgely로 이제 소개하는 저택의 제3대 안주인(mistress)이다. 또 이 그림 덕택에 그 곳이 국립의 공원으로 보존될 수 있었기에 브로셔 표지에도 등장을 한다. 오전에 펜실베니아 주의 롱우드가든(Longwood Gardens)을 구경하고, 일부러 드라이브 삼아 1번 국도를 따라 천천히 달려서, 볼티모어 바로 북쪽에 있는 햄튼 국립사적지(Hampton National Historic Site)를 찾아왔다. 미동부 여기저기 '햄튼(Hampton, 햄프턴)'이 들어간 지명들은 대부분 식민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여기도 그렇다. 참고로 모텔 체인 '햄튼인(Hampton Inn)'의 역사와 관련된 곳은 아니다~^^ 그런데 오후 4시가 넘어서 비지터센터가 문을 닫았다... 저택 내부의 투어는 포기하고 왔지만, 관련 전시도 전혀 못 본 상태로, 다행히 밖에 비치해 둔 브로셔 하나만 챙겨서 일방통행 도로를 조금 더 달려서 위쪽 저택 옆에 만들어진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약간 바래지기는 했지만, 공원의 지도와 대략적인 소개를 함께 볼 수 있는 안내판 사진을 올린다. 영국군의 찰스 리질리 대령(Col. Charles Ridgley)이 1745년에 처음 여기 1,500에이커의 땅을 사서 담배농장을 시작했다가, 후에 아들과 함께 고향의 이름을 딴 노스햄턴 제철소(Northampton Ironworks)를 만들어 번창하는데, 독립전쟁 중에는 대륙군에 무기를 만들어 공급하기도 했단다. 그의 아들이 7년간의 공사를 거쳐 1790년에 완성한 저택이 바로 앞에 보이는 Hampton Mansion인데, 완공 당시로는 신생 독립국 미국에서 가장 큰 개인주택이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개인 소유로 남아서 만약 비싼 입장료를 받는 곳이 되었다면, 훨씬 더 깔끔한 모습이었을 듯한 느낌이 좀 들기도 했다. 이 저택의 다음 주인이었던 Charles Carnan Ridgley는 메릴랜드 주지사를 역임하기도 했는데, 그가 11명의 자녀에게 땅과 노예를 나눠서 물려주기 직전인 1829년 전성기에 햄튼 플랜테이션(Hampton Plantation)의 면적은 25,000에이커에 노예는 350명에 달했다고 한다. 저택 남쪽으로는 정사각형의 기하학적인 정원들이 여러 개 만들어져 있는데, 앞쪽 두 개만 그 모양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직전에 롱우드가든을 보고 와서 좀 시시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저택을 지을 당시부터 넓은 앞마당을 평평한 정원으로 만드는데 큰 공을 들였고, 현재의 모습으로 가꾼 것이 첫번째 그림의 주인공인 Eliza Ridgely라는 설명 등이 적혀있다. 남북전쟁과 노예해방을 거치면서 대농장의 수익성은 점차 나빠져서 낙농업 중심으로 변화한 후에, 20세기 초부터 리질리 가문 소유의 땅들은 교외의 주택단지로 개발이 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1944년에 국립미술관 디렉터가 이 집에 걸려있던 맨 위의 그림을 직접 보기위해 방문했다가, 제6대 집주인 John Ridgely, Jr.로 부터 오래된 저택을 옛모습 그대로 관리하는 고충 등을 듣고는, 국립공원청과 여러 재단 등에 연락을 해서 보존 노력을 주도하게 된다. 참, 롱우드가든 포스팅에서 'Orangery'라는 단어를 다음에 설명하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안내판의 그림과 같이 바닥에 온돌(hypocaust)을 설치한 유리 온실을 그렇게 부른다. (뒤로 보이는 건물은 1976년에 복원한 것으로 뒤쪽은 화장실로 사용) 한겨울에도 오렌지 나무를 키워서 따먹기  위한 당시 부의 상징과 같은 건물로, 프랑스 파리의 유명한 오랑주리 미술관(Musee de l'Orangerie)도 루브르 궁전의 이런 온실이었다. 저택 옆으로도 다른 건물이 있고 길 건너편에 다른 집들도 있지만, 모두 둘러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맨션의 출입구에 해당하는 북쪽 면만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1948년에 저택과 주변 땅을 90,000달러에 팔고 마지막으로 북문을 나서는 John Ridgely, Jr. 부부의 모습으로, 사들인 재단이 정부에 바로 기증을 해서 현재의 국립사적지가 되었고, 2년의 수리를 거친 후에 일반 관람객에게 집 내부가 공개되게 된다. 무엇보다 이 곳의 가치는 200년 이상 한 집안의 소유였던 땅에, 6대에 걸쳐서 그대로 보존이 된 대저택이라는데 있단다. 햄튼 저택(Hampton Mansion) 내부의 중앙홀에 걸려있는 는 비록 모사품이지만, 음악실에 전시되어 있는 하프는 실제 위 그림에 등장했던 진품이라고 한다. 국립 공원이 된 덕택에 무료인 내부 투어를 꼭 해보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 번 방문을 해야할 듯 한데... 현재 목~일요일에 오전 10시, 오후 1시와 3시의 하루 3번만 진행되는 것을 기억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집에서 뉴욕을 왔다갔다하는 일정에 맞출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앨버트 갤러틴을 아시나요? 펜실베니아의 프렌드쉽힐 국립사적지(Friendship Hill National Historic Site)

앨버트 갤러틴을 아시나요? 펜실베니아의 프렌드쉽힐 국립사적지(Friendship Hill National Historic Site)

거의 한 달만에 여행기를 쓰려니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 그래봐야 또 별볼일 없는 국립공원에 관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작년 여름부터 일부러 찾아다녀, 이제 집에서 2시간 이내 거리에는 NPS Official Unit들이 정말 2~3곳밖에 남지를 않았는데, 거기는 '별볼일 있는' 곳들이라서 아내와 함께 갈 장소로 계속 남겨두고 있다. 그래서 모처럼 혼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낼 수 있었던 지난 월요일에, 처음으로 범위를 넓혀서 편도 3시간 내외가 걸리는 여러 곳들을 묶어서 다녀온 첫번째 시리즈를 시작한다. 위의 경로와 같이 집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향해서,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주의 남서부에 있는 5개의 '내셔널'들과 다른 유명한 장소 하나까지 더해, 총 6곳을 하루만에 모두 둘러보았다. 저녁 8시에 집으로 돌아와 계기판을 확인해보니, 총 운전시간이 정확히 딱 10시간에 주행거리는 512마일(824 km)이었다. "오래간만에 쉬는 날 이게 뭐하는 짓이냐?" 새벽 4시반 출발의 긴장이 풀어지며 잠이 좀 온다는 느낌이 들때, 고맙게 등장해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분홍색 봄꽃 너머로 바라본 주황색 아침 여명이다~ 좀 더 기다려 일출까지 감상하려 했지만, 이 날 꽃샘추위가 극심해서 내리기 전 확인한 계기판의 온도계가 섭씨로 영하였다는...! 뒤돌아 본 메릴랜드 주의 사이들링힐 웰컴센터(Sideling Hill Welcome Center) 모습으로, 건물 오른편으로 도로를 만들기 위해 산을 깊이 깍은 것이 보인다. 저 고개를 넘어 계속 서쪽으로 달려야 하는 고속도로가 인터스테이트 68번 겸 국도 40번인데. 이 루트가 바로 1800년대 초에 신생국가 미국의 첫번째 국책사업으로 만들어진 동서를 잇는 마찻길인 '내셔널로드(National Road)' 구간임을 알려주는 안내판으로, 이에 대해서는 본 시리즈 여행기의 다음 편에서 자세히 설명될 예정이다. 1시간을 더 달려 "Wild and Wonderful" 웨스트버지니아 주에 들어가니까, 또 딱 맞취서 아주 잘 지어놓은 휴게소가 나온 덕택에, 졸음을 쫓고 보온병에 넣어간 커피와 아침을 먹었다. 그렇게 두 번이나 쉬면서 거의 4시간만에 펜실베니아 주에 있는 첫번째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프렌드쉽힐 국립사적지(Friendship Hill National Historic Site)라는 이름만으로는 어떤 곳인지 짐작하기 어려우니, 친절하게 그 밑에 누구의 집이었다고 적어 놓았다. 붉은 필기체 서명은 앨버트 갤러틴(Albert Gallatin)으로 그의 이름은 백악관과 그 주변을 소개했던 예전 포스팅에 이미 한 번 등장한 적이 있다. "LA 바닷가에 있는 우정의 종각은 가봤어도, 우정의 언덕은 또 처음이네~" 간판이 세워진 숲을 빠져 나오면, 파란 초원에 좌우로 가로수가 잘 심어진 진입로가 나와서, 언덕 위의 멋진 저택이 나올 것을 직감하게 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넓은 주차장에는 멀러 보이는 국립공원청 차량만 한 대 세워져 있었는데, 파크레인저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난 앨버트 갤러틴은 19살이던 1780년에 신생 독립국인 미국으로 와서 하버드 대학에서 프랑스어 강사를 한 후에, 22살에 느닷없이 당시로는 가장 변방인 서부 펜실베니아 시골에 땅을 사서는 지역 유지 및 정치인이 된다. 그 후 연방 하원의장을 거쳐서 불과 40세인 1801년에 미국 재무장관이 되어 무려 13년간 역임했고, 그 후에는 외교관으로 프랑스와 영국 대사를 거쳐서, 말년에는 지금의 뉴욕 대학교(New York University, NYU)를 설립하기도 했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중간에 그의 동상이 만들어져 있는데, 앞서 설명한 그가 활약한 분야들인 정치/경제/외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측량을 하는 모습이다. 그는 일찌기 서부개척에 미국의 미래가 있음을 예견해서 이리로 이사를 왔고, 지리학에 밝아서 상기의 National Road를 어디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이 지역을 방문한 워싱턴 대통령을 직접 만나 설명하기도 했단다. 그래서 재무장관 시절에 루이지애나 매입과 루이스/클라크 탐험대 후원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게 된다. 또한 언어학에도 뛰어나서 원주민 언어를 최초로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통해서 남북 아메리카 인디언이 모두 아시아에서 이주해왔다는 주장을 처음 한 사람으로 '미국 민족학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단다. 한 마디로 다재다능, 박학다식 그 자체! 그가 여기를 '우정의 언덕(Friendship Hill)'으로 부르며 1789년부터 집을 짓고, 아래쪽 강가에 자신의 고향을 기려 뉴제네바(New Geneva)라는 마을을 만들어서 유리 공장을 세웠단다. 하지만 중앙 정계로 진출해 장관과 외교관이 되고, 그 후에도 뉴욕시에서 계속 활동했기 때문에 여기에 살았던 기간은 길지 않으며, 결국 1832년에 다른 사람에게 집과 땅을 모두 팔았다고 한다. 제일 왼편의 돌로 된 외벽 부분과 우물 정도가 갤러틴이 소유했을 때 모습이고, 그 오른편과 나머지 많은 부분들은 다음 집주인이 개보수와 증축을 한 것이란다. 왠지 전설이 있을 것 같은 우물 속이 궁금해서 내려다 보니, 현대적 자물쇠로 옛날 나무로 된 입구를 잠궈 놓은게 특이했다. 비지터센터가 건물 안에 만들어져 있고, 그리로 통해서 자유롭게 집 내부도 일부 구경을 할 수 있지만, 4월말까지는 주말에만 문을 열기 때문에 직접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새로운 주인이 강을 내려다 보는 곳에 만든 정자(gazebo)는 이 지역의 사교장으로 유명했는데, 절벽이 무너질 위험이 있어서 국립공원 지정 후에 안쪽으로 옮겨 다시 만든 것이라는 설명이 안내판에 적혀 있다. 저 끝에서 축대 아래쪽을 내려다 보면, 그 옛날에는 수 많은 배들이 오가던 모논가헬라 강(Monongahela River)이 지금은 조용히 흐르고 있다. 이 강은 사진 오른편 북쪽으로 흘러 피츠버그에서 앨러게니 강(Allegheny River)과 합류해 오하이오 강이 되어 결국 미시시피 강과 연결되기 때문에, 갤러틴이 그 당시에는 모든 산업의 동맥인 뱃길을 끼고 있는 이 땅을 구입했던 것이다. 앞마당 잔디밭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주인이 바뀌며 증축이 많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1960년대 국가유적으로 등록될 때까지 개인소유였다가, 정부가 구입해서 필요한 수리를 거친 후에 1978년에 국립사적지가 되었다. 그리고 언덕 아래로 아침 햇살에 빛나는 평화로운 초원의 풍경을 바라보니, 그냥 바로 떠나기는 좀 섭섭한 듯 하길래...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만난 앨버트 옹과 셀카 한 장 함께 찍었다.ㅎㅎ 공원 홈페이지 서두에는 그를 '잊혀진 건국의 아버지(America's Forgotten Founding Father)'로 부르지만, 실제 미국의 독립보다는 그 후에 주로 활동을 한 사람이다. 그러나 제4대 재무부 장관으로 미국이 지금의 세계최대 경제대국이 되는 토대(foundation)를 마련한 사람이기에 꼭 틀린 말도 아닌 듯 하다. 타주의 별볼일 없는 국립공원들까지 돌아봤던 나들이의 다음 편은, 누구나 다 아는 '국부(國父)' 조지 워싱턴의 젊은 시절 이야기로 이어진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앨버트 갤러틴을 아시나요? 펜실베니아의 프렌드쉽힐 국립사적지(Friendship Hill National Historic Site)

앨버트 갤러틴을 아시나요? 펜실베니아의 프렌드쉽힐 국립사적지(Friendship Hill National Historic Site)

거의 한 달만에 여행기를 쓰려니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 그래봐야 또 별볼일 없는 국립공원에 관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작년 여름부터 일부러 찾아다녀, 이제 집에서 2시간 이내 거리에는 NPS Official Unit들이 정말 2~3곳밖에 남지를 않았는데, 거기는 '별볼일 있는' 곳들이라서 아내와 함께 갈 장소로 계속 남겨두고 있다. 그래서 모처럼 혼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낼 수 있었던 지난 월요일에, 처음으로 범위를 넓혀서 편도 3시간 내외가 걸리는 여러 곳들을 묶어서 다녀온 첫번째 시리즈를 시작한다. 위의 경로와 같이 집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향해서,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주의 남서부에 있는 5개의 '내셔널'들과 다른 유명한 장소 하나까지 더해, 총 6곳을 하루만에 모두 둘러보았다. 저녁 8시에 집으로 돌아와 계기판을 확인해보니, 총 운전시간이 정확히 딱 10시간에 주행거리는 512마일(824 km)이었다. "오래간만에 쉬는 날 이게 뭐하는 짓이냐?" 새벽 4시반 출발의 긴장이 풀어지며 잠이 좀 온다는 느낌이 들때, 고맙게 등장해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분홍색 봄꽃 너머로 바라본 주황색 아침 여명이다~ 좀 더 기다려 일출까지 감상하려 했지만, 이 날 꽃샘추위가 극심해서 내리기 전 확인한 계기판의 온도계가 섭씨로 영하였다는...! 뒤돌아 본 메릴랜드 주의 사이들링힐 웰컴센터(Sideling Hill Welcome Center) 모습으로, 건물 오른편으로 도로를 만들기 위해 산을 깊이 깍은 것이 보인다. 저 고개를 넘어 계속 서쪽으로 달려야 하는 고속도로가 인터스테이트 68번 겸 국도 40번인데. 이 루트가 바로 1800년대 초에 신생국가 미국의 첫번째 국책사업으로 만들어진 동서를 잇는 마찻길인 '내셔널로드(National Road)' 구간임을 알려주는 안내판으로, 이에 대해서는 본 시리즈 여행기의 다음 편에서 자세히 설명될 예정이다. 1시간을 더 달려 "Wild and Wonderful" 웨스트버지니아 주에 들어가니까, 또 딱 맞취서 아주 잘 지어놓은 휴게소가 나온 덕택에, 졸음을 쫓고 보온병에 넣어간 커피와 아침을 먹었다. 그렇게 두 번이나 쉬면서 거의 4시간만에 펜실베니아 주에 있는 첫번째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프렌드쉽힐 국립사적지(Friendship Hill National Historic Site)라는 이름만으로는 어떤 곳인지 짐작하기 어려우니, 친절하게 그 밑에 누구의 집이었다고 적어 놓았다. 붉은 필기체 서명은 앨버트 갤러틴(Albert Gallatin)으로 그의 이름은 백악관과 그 주변을 소개했던 예전 포스팅에 이미 한 번 등장한 적이 있다. "LA 바닷가에 있는 우정의 종각은 가봤어도, 우정의 언덕은 또 처음이네~" 간판이 세워진 숲을 빠져 나오면, 파란 초원에 좌우로 가로수가 잘 심어진 진입로가 나와서, 언덕 위의 멋진 저택이 나올 것을 직감하게 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넓은 주차장에는 멀러 보이는 국립공원청 차량만 한 대 세워져 있었는데, 파크레인저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난 앨버트 갤러틴은 19살이던 1780년에 신생 독립국인 미국으로 와서 하버드 대학에서 프랑스어 강사를 한 후에, 22살에 느닷없이 당시로는 가장 변방인 서부 펜실베니아 시골에 땅을 사서는 지역 유지 및 정치인이 된다. 그 후 연방 하원의장을 거쳐서 불과 40세인 1801년에 미국 재무장관이 되어 무려 13년간 역임했고, 그 후에는 외교관으로 프랑스와 영국 대사를 거쳐서, 말년에는 지금의 뉴욕 대학교(New York University, NYU)를 설립하기도 했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중간에 그의 동상이 만들어져 있는데, 앞서 설명한 그가 활약한 분야들인 정치/경제/외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측량을 하는 모습이다. 그는 일찌기 서부개척에 미국의 미래가 있음을 예견해서 이리로 이사를 왔고, 지리학에 밝아서 상기의 National Road를 어디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이 지역을 방문한 워싱턴 대통령을 직접 만나 설명하기도 했단다. 그래서 재무장관 시절에 루이지애나 매입과 루이스/클라크 탐험대 후원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게 된다. 또한 언어학에도 뛰어나서 원주민 언어를 최초로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통해서 남북 아메리카 인디언이 모두 아시아에서 이주해왔다는 주장을 처음 한 사람으로 '미국 민족학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단다. 한 마디로 다재다능, 박학다식 그 자체! 그가 여기를 '우정의 언덕(Friendship Hill)'으로 부르며 1789년부터 집을 짓고, 아래쪽 강가에 자신의 고향을 기려 뉴제네바(New Geneva)라는 마을을 만들어서 유리 공장을 세웠단다. 하지만 중앙 정계로 진출해 장관과 외교관이 되고, 그 후에도 뉴욕시에서 계속 활동했기 때문에 여기에 살았던 기간은 길지 않으며, 결국 1832년에 다른 사람에게 집과 땅을 모두 팔았다고 한다. 제일 왼편의 돌로 된 외벽 부분과 우물 정도가 갤러틴이 소유했을 때 모습이고, 그 오른편과 나머지 많은 부분들은 다음 집주인이 개보수와 증축을 한 것이란다. 왠지 전설이 있을 것 같은 우물 속이 궁금해서 내려다 보니, 현대적 자물쇠로 옛날 나무로 된 입구를 잠궈 놓은게 특이했다. 비지터센터가 건물 안에 만들어져 있고, 그리로 통해서 자유롭게 집 내부도 일부 구경을 할 수 있지만, 4월말까지는 주말에만 문을 열기 때문에 직접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새로운 주인이 강을 내려다 보는 곳에 만든 정자(gazebo)는 이 지역의 사교장으로 유명했는데, 절벽이 무너질 위험이 있어서 국립공원 지정 후에 안쪽으로 옮겨 다시 만든 것이라는 설명이 안내판에 적혀 있다. 저 끝에서 축대 아래쪽을 내려다 보면, 그 옛날에는 수 많은 배들이 오가던 모논가헬라 강(Monongahela River)이 지금은 조용히 흐르고 있다. 이 강은 사진 오른편 북쪽으로 흘러 피츠버그에서 앨러게니 강(Allegheny River)과 합류해 오하이오 강이 되어 결국 미시시피 강과 연결되기 때문에, 갤러틴이 그 당시에는 모든 산업의 동맥인 뱃길을 끼고 있는 이 땅을 구입했던 것이다. 앞마당 잔디밭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주인이 바뀌며 증축이 많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1960년대 국가유적으로 등록될 때까지 개인소유였다가, 정부가 구입해서 필요한 수리를 거친 후에 1978년에 국립사적지가 되었다. 그리고 언덕 아래로 아침 햇살에 빛나는 평화로운 초원의 풍경을 바라보니, 그냥 바로 떠나기는 좀 섭섭한 듯 하길래...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만난 앨버트 옹과 셀카 한 장 함께 찍었다.ㅎㅎ 공원 홈페이지 서두에는 그를 '잊혀진 건국의 아버지(America's Forgotten Founding Father)'로 부르지만, 실제 미국의 독립보다는 그 후에 주로 활동을 한 사람이다. 그러나 제4대 재무부 장관으로 미국이 지금의 세계최대 경제대국이 되는 토대(foundation)를 마련한 사람이기에 꼭 틀린 말도 아닌 듯 하다. 타주의 별볼일 없는 국립공원들까지 돌아봤던 나들이의 다음 편은, 누구나 다 아는 '국부(國父)' 조지 워싱턴의 젊은 시절 이야기로 이어진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