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지의 중국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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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5 posts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
소동파가 1082년에 유명한 적벽부 前과 적벽부 後 두 편을 지은 곳인 적벽(동파적벽) 입니다적벽은 조조의 군사와 동오와 촉한의 연합군이 적벽 앞 강에서 큰 전쟁을 하여 조조가 화공전으로 인하여 대패하였던 적벽대전으로 유명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소동파 시인이 다른 적벽에서 읊은 두 편의 적벽부(赤壁賦)가 아주 유명합니다이부당(二賦堂)은 소동파의 적벽부 前과 後 두 편이벽에 쓰여 있습니다 tag : 황주, 소동파, 동파적벽부, 이부당 二賦堂
강소성 태호의 적벽(赤壁)
강소성의 무석시(無錫市)와 의흥시(宜興市)에 걸쳐 있는 태호(太湖)에는 중국 중앙TV에서 활영셋트장으로 조성한 삼국성.수호성이 있습니다 삼국성 안에 적벽대전의 중일합작영화를 촬영하기도 했던 적벽이 있습니다제가 2013년 5.31~6.7 기간 동안 남경,의흥시,무석시 그리고 최치원 기념관이 있는 양주시(揚州市)를 혼자서 여행하면서 담았던 사진이고 돌아와서 바로 포스팅을 하였으나 제가 그 포스팅들을 다시 찾는데도 상당히 애를 먹었습니다그래서 다시 한 번 더 요점만 추려서 여기에 올려드린 것이니 양지 바랍니다춘추전국 시대 이전의 위,한,동오 3국이 적벽에서 강 위에서 전쟁을 치루었으니 바로 적벽대전입니다동오 국을 나타내는 깃발이 펄럭 입니다.조조가 28만 대군을 이끌고 동오와 한의 연합군 5만을 섬멸하려고 왔습니다한(漢)의 유비 입니다위의 조조 입니다한의 수군 병영 입니다수군의 지휘본부 입니다저는 이곳에 와서 별도로 표를 사서 주변을 둘러보려교 배를 탔습니다화소적벽(火燒赤壁)이라고 붉은 글씨로 바위에다 새겨 놓았습니다저는 적벽 잔도를 따라 7성단 쪽으로 걸었고, 배풍대(拜風臺)도 구경했는데 동정호에서 본 적벽 주변 황경과 아주 같았습니다동오와 한의 수군훈련기지도 나옵니다소동파의 유명한 적벅부(赤壁賦)가 적벽대전과 관련이 없을텐데 왜 이곳에 적벽부가 새겨져 있는지 저는 의아했습니다소동파가 적벽부를 읊은 주변과 비슷한 풍광이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다음 번에 올리는 소동파의 적벽부 주변풍광을 비교 감상해 보십시오 제가 1995년8월에 장강삼협 쿠르즈 여행을 하면서 잠시 둘러 본 적벽과 아주 비슷했숩나더배에 올라가서 선실 안도 구경했습니다태호의 육지 맞은 편은 마치 바다처럼 수평선만 보입니다젊은 호기를 부리는 것도 장소를 가려가면서 해야 하겠지요?이 잔도를 따라서 걸으면 언덕도 오르면서 바다같이 넓은 태호의 풍광도 감상 합니다동오는 물이 많은 나라여서 수군의 기본실력이 높았습니다. 반면에 육지에서는 강한 전투력을 가진 조조의 군사들은 물 위에서의 싸움 경험이 없었기에 병사의 수가 많음에 관계없이 이 전쟁은 동오와 한의 연합군이 유리한데다 바람마저 불어줘서 화공(火攻)으로 대승을 거두게 되었던 것 입니다 화소적벽화소적벽에 대한 설명입니다중일 합작영화인 "적벽대전"에서는 불타는 선박들이 장관을 연출하였는데 이 장면을 찍기 위해서 엄청난 양의 기름과 장비 그리고 경비를 소진했다고 합니다적벽잔도를 빠져 나와 출구쪽으로 걸어가면서 담장넝클로 뒤덮인 성곽도 여유있게 바라봤습니다이 문을 통과하면 출구가 나옵니다삼국지의 촬영 장소들을 둘러보는 지도를 만들어 놨습니다미리 안내지도를 구입해서 선별하여 구경하는 것도 요령 입니다그리고 수호성 출구에서 전동차를 타면 조조의 군영까지 한참 걸어가는 피로와 시간을 줄일 수 딨습니다전동차 종점 옆 경기장에서는 삼국지의 영웅호걸들이 적장과 말타고 겨루는 장면을 실감나게 관람할 수 있습니다공연시간에 맞추어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안 쪽에서 바라 본 출입구 입니다입장권 매표소 입니다이렇게 삼국성 적벽을 구경하고 밖으로 나오니 어느듯 해가 저물고 있었습니다택시는 보이지 않고, 마냥 언제올지 모를 82번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태호의 일몰을 시내로 들어가는 82번 버스(무석기차역 및 종합버스터미널 행)의 차창에서 바라봤습니다 tag : 적벽대전, 적벽부, 체호, 화소 火燒)
호북성 동정호의 적벽(赤壁)
적벽(赤壁 츠삐)호북성엔 삼국지에서 조조군사 20만(80만) 명과 손권.유비의 연합군사 5만이 맞붙은 적벽대전으로 유명한 적벽이 있으며, 또 하나의 적벽은 강소성의 무석(無錫)에 있는 태호(太湖)에 지어놓은 삼국성,수호성의 영화촬영지에 있습니다 그리고 소동파가 적벽부(赤壁賦)를 읊은 적벽이 또 있습니다. 적벽대전의 적벽은 무한(武漢 우한)에서 남쪽으로 약 160km 떨어진 장강의 남쪽 강변에 있습니다. 이곳은 중국에서 담수호로는 두 번 째로 큰 호수인 동정호(洞庭湖)에 속하는데, 장강의 흐르는 물이 동정호에 들렀다가 다시 빠져 나가는 것인데 워낙 바다처럼 넓은 호수여서 첫 눈에는 강인지 바다인지 구분이 안될 지경입니다 한편 중일 합작영화 "적벽대전(赤壁大戰)"의 촬영지가 강소성의 무석(无錫) 우시)에 있는 태호(太湖)인데 어쩌면 동정호의 적벽 지형과 그리도 빼닮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호북성의 성도 무한(武漢 우한) 입니다중국 3대 찜통 도시의 하나인데 중경처럼 안개가 자주 낍니다중경의 개들처럼 무한의 개들도 해 나는 날이면 해를 보고 개들이 짖어댈라나? ㅋㅋㅋ 삼국지의 적벽대전지(赤壁大戰地)였던 유적을 재현하려고 한 곳입니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소설 속에서는 80만 대군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명나라 시대의 작가인 나관중은 항간(巷間)애서 구전으로 내려오던 삼국지 이야기와 이미 나와 있던 삼국지연의 소설들(정삼국지 소설은 정사 등 한 권이 아니라 여러 권이 있음)을 재편성해서 독자들이 더 재미있게 읽도록 썼습니다.원래 역사적 소설은 사실을 근거로 쓴다고는 하지만 작가의 기량에 따라서 가끔은 뻥도 적당히 치면서 독자들의 재미를 돋구었다고 생각되며(한 예로 화타는 관우가 맞은 독화살을 외과적으로 집도하여 치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시대적으로 그 때는 화타가 이미 세상을뜨고 없었음 등), 나관중은 천부의 재능을 지닌 작가라고 생각 됩니다. 화타재생(華陀再生)이 절묘하게 흥미를 돋구어 준 부분입니다 ㅎㅎㅎ 이 배풍대(拜風臺,1936년 중건한 것임)는 적벽이 새겨진 바위 뒤 편의 공원 아래 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제갈량이 화공전법(火攻戰法)으로 조조군을 완전 소멸시키기로 하면서 그 전투 당일에 에측한대로 동풍이 불어주기를 기원한 장소 입니다 무한(武漢)과 160여 km 거리에 있는 이 적벽은 장강 쿠르즈 배를 타면 이 부근에서 하선하여 둘러 볼 시간을 줍니다저는 1995년8월에 이 곳을 장강 쿠르즈 배를 타고 와서 구경을 했습니다 붉은 색의 적벽(赤壁) 두 글자는 상당히 큽니다. 중국 말로는 "츠삐"라고 발음을 합니다 제갈량의 화공전법은 평범한 전술이 아닌 기발한 전략의 전쟁이었습니다주유와 제갈량이 조조의 병사와 싸울 전략을 논의하는 중에 각자가 마음에 둔 생각을 손바닥에 써 놓기로 하였는데 손바닥을 각자 표 보이는데 두 사람 다 "화(火)"자를 썼으니 두 사람 모두 대단한 전략가였습니다즉 화공법(火攻法) 전략을 이용하기로 했던 것 입니다 제가 1995년에 이곳 적벽을 찾아서 동산을 올라가니 말을 탄 늠름한 주유의 상이 있었습니다지금은 미남이며 키가 큰 주유의 큰 입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스카이 트라블에서 소개한 삼국지 유적지를 여기 아래에 다시 옮겼습니다무한(武漢), 악주(鄂州 어저우)에서 육로로 적벽시를 경유하여 삼국적벽고전장(三國赤壁古戰場)을 찾아 갈 수도 있습니다북경을 경(京),산동성을 로(魯)라고 부르듯이 악(鄂 어)은 호북성을 지칭하는 약어 이기도 합니다적벽대전을 준비했던 옛 진지 입니다이곳 광장은 옛 전쟁의 모습을 재연해 보여 주는 공연장 입니다항상 부채를 들고 있는 제갈량과 수염이 긴 관우 입니다 유비(劉備 리우뻬이) 입니다적벽 공원에 세워져 있는 주유(周瑜)의 8.68m의 큰 입상 입니다조조의 수군이 주유와 제갈량의 화공법에 의해서 불타고 있습니다이것을 적벽대전의 화소(火燒)의 전투라고 말 합니다적벽대전의 날에 바람이 일기를 빌면서 제사를 지낸 배풍대 입니다무석(無錫)의 적벽대전 영화촬영지는 아래 주소를 클릭해서 다시 보실 수 있으며, 또 다른 적벽(赤壁)이 있는 소동파가 지은 적벽부(赤壁賦)의 장소와 이야기는 아래 주소에 담겨 있습니다그런데 제가 블로그 조인스에 올렸던 글과 이미지들이 조인스가 폐괘되면서 자료들도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ㅠㅠ동오와 한의 연합 군영 입니다 tag : 동정호, 장강의 적벽, 적벽대전 화소, 배충대.주유 기마상
장강 따라 기 본 심극지 이야기(형주)
형주성(荊州城)호북성 장강 중류에 위치하는 형주시(荊州市)는 시구(市區)의 인구가 100만 명이 넘는 큰 도시입니다. 1895년에 이미 통상을 위한 개항이 되어 중국에서 일찍 내항(內港)으로서 개방이 된 4대 대외개방항구의 하나입니다.형주는 춘추전국 시대엔 초(楚)나라 땅 이었으며,삼국시대엔 촉,위,동오의 군사요충지로서 서로 차지하려고 했던 곳입니다동오와 촉이 함께 위나라의 조조 군사를 적벽대전으로 큰 승리를 걷우고 유비가 이 중요한 곡창지대이며 군사요충지의 형주를 빌리는 형식으로 차지하고 나서 관우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습니다관우는 이 형주에 성을 쌓고 큰 꿈을 키우려고 하였으나 동오의 급습에 목숨을 잃었고, 이어서 관우 형의 원수를 갚으려고 출정을 급히 서두르던 장비는 부하의 손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의형제를 맺었던 두 동생의 비보를 접한 유비 또한 원수를 갚으려 동오를 공격했지만 크게 패하고 백제성(白帝城)에 돌아와서 결국은 숨을 거두면서 제갈량에게 후사를 부탁하였습니다. 제갈량이 위나라와 최후의 한 판을 겨루기로 하여 출정하면서 유비의 아들 유선에게 남긴 글이 유명한 출사표(出師表) 입니다 그런즉 이 형주는 나관중(羅貫中)이 쓴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큰 주인공들이 무대에서 거의 다 사라지는 비극의 옛 성(古城)이 되었으며, 중국 역사문화의 도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형주성(荊州城)은 지금의 장강 중류의 형주시 강능현(江陵縣)에 소재하고 있는데 “유비차형주(劉備借荊州)” 또는 “관우대의실형주(關羽大意失荊州)”라는 말로 대표하고 있습니다원래 형주성은 토성으로 쌓은 것이었던 것을 남송(南宋)시대부터 벽돌로 쌓기를 시작했는데, 오늘날의 성곽은 청나라 때인 1646년에 중건한 것입니다성벽의 높이는 9m, 두께가 10m 그리고 길이는 9.3km로 동서는 길고 남북은 짧습니다. 규모가 웅장하고 철통같은 성으로서 보존이 잘 되어 있는 중국 남방의 유일한 고성입니다. 3층의 고성 외곽은 수성(水城),중간은 벽돌로 쌓은 전성(磚城) 그리고 안은 토성(土城)인데, 벽돌로 쌓을 때는 찹쌀 풀을 사용하여 붙였기에 지금까지도 단단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가 본 남경의 성곽 역시 찹쌀 풀을 사용했다고 합니다형주는 중국어 발음으로 "징저우"가 됩니다원래 형주성에는 루각이 여러 개 있었으나 지금은 사진에 보이는 루각 하나만 남기고 다른 것들은 파손되어 모두 사라졌습니다적벽(赤壁 츠삐)과 형주성의 지도를 올려 놓았습니다이 적벽은 장강삼협 쿠르즈 여행을 하게되면 배에서 하선하여 구경을 할 시간을 줍니다제가 1995년 8월에 여쿠르즈 여행을 할 때는 적벽 바위 뒤로 올라가서 배풍대와 주유가 말타고 있는 동상도 봤습니다손권의 오나라는 동오(東吳)로 표시하곤 합니다조조의 위와 유비의 한(촉)을 알기쉽게 그려 놓았습니다낙양 옆의 쉬창(許昌)은 조조의 고향이며 위의 도읍으로 정하였다가 나중에 낙양으로 옮깁니다 오른 쪽의 남경을 젠예라고 쓴 것은 남경의 옛 이름인 건업(建業 지엔이에)를 말 합니다 팁 형주박물관은 형주시 동편의 강능현 서편에다 1958년에 세웠는데, 이 박물관에서는 전국(戰國)시대의 실크제품, 신석기시대의 옥조각품, 월왕 구천(越王句踐)의 보검(寶劍)이 전시되어 있으니 놓치지 말고 꼭 봐야 할 볼거리 입니다이 글은 오래 전에 올린 적이 있으나 3개의 적벽(赤壁)을 한 자리에서 소개하려고 다시 올렸습니다3개의 적벽이란 형주성 옆 적벽대전이 있었던 장소와 강소성의 태호에 만들어 놓은 영화촬영지로서의 삼국성 안에 있는 적벽 (赤壁)그리고 소동파가 적벽에(赤壁)서 읊은 적벽부(赤壁賦)를 함께 소개하여 이해를 쉽게 해드리고자 해서 올렸던 프스팅 자료를 뒤적여서 정리한 것입니다 tag : 호북성 형주, 적벽츠삐), 장강삼협 크르즈 여행
천안 독립기념관
9월 모임은 천안으로 해서 독립기념관을 찾았습니다12시가 가까워서 우선 병천 아우네 시장의 순대 동네를 찾았습니다 큰길과 작은 골목길에도 병천 순대의 간판이 걸려 있습니다버스 정거장과 가까운 아우네 장터순대집으로 들어가서 모듬순대 한 접시와 순대국을 시켜 먹었는데 서울에서 먹던 맛과는 확실히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구수한 맛이었습니다 일제시대에 이곳 아우네 시장에서 만세를 불렀던 이곳은 지금은 병천순대로 더 유명해졌습니다 천안역 앞에서 출발한 버스는 독립기념관을 경유하여 병천 까지 오가는 401 시내버스가 있어서 좋았습니다순대 먹고 401 버스 타고 다시 독립기냠관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천안까지 거리도 있고 소요시간도 3시간 가까이 되어서 오늘 9월의 산들바람 모임에는 3명만이 참가 하여서 기념 사진을 남겼습니다 버스정거장 바로 옆에서 꼬마열차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1인당 경로우대로 700원씩이었는데, 기념관의 지붕이 보이지만 막상 걸어가면 15분 이상이 걸립니다 저는 이 독립기념관을 다섯 번 이상 왔었기에 오늘 사진은 골라서 적당히 찍었습니다 독림기념관의 큰 홀 입니다 이 태극기는 작은 점들이 찍힌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글씨들이 가득 실려 있습니다 소원 태극기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습니다 중앙 홀을 지나 전시실 1번부터 6번까지 그리고 기획전시실을 보려고 갑니다 중국의 막고굴 (敦煌石窟)에 한 동굴에 가면 해외 사신들이 둘러 서 있는 가운데 조우(鳥羽)를 꽂은 모자를 쓴 사신이 보입니다(막고굴 관람은 한 번에 다 볼 수 없고, 해설사가 그날 그날 방문한 팀에게 10개 정도만 보여주므로 조우를 꽂은 사람의 상은 못 볼 수가 있습니다중국이든 중앙아시아든 조우를 모자에 꽂은 이는 없기 때문에 고구려 아니면 최소한 한반도에서 건너가서 참석했다고 역사학자들은 말 합니다 황룡사 9층 목탑 입니다 황룡사의 치미 입니다 해인사 승려들이 8만 대장경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 입니다 8만 대장경의 한 경판 입니다 거북선의 큰 모형도 있습니다 의병 곽재우의 보검 입니다 세 동상은 윤봉길, 안중근 그리고 김좌진 장군의 상 입니다 김좌진 장군 (1889~1930) 광복군총사령부 창립기념회애 참석한 분들이 사인들을 해 놓았습니다제 눈길을 끈 중국사람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국민당 정부가 남경에 있을 때 장개석 총통으로 부터 감찰위원장을 맡았던 우우임(于佑任)의 이름이 보였습니다(오른쪽 아래에 이름이 보입니다)이 분의 글씨는 매우 유영하여 대만에서는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가장 높은 3950m 玉山 정상 바위에 써 놓은 글도 이 분의 글씨 입니다중경의 장강삼협박물관 안에도 이 분의 글씨가 걸려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놓치지 말고 감t상하기 바랍니ㅏ 아래 사진은 지금의 상해 로쉰공원(魯迅 옛 이름은 홍구공원) 에서 매헌 윤봉길이 도시락 폭탄을 던지는 광경 입니다 tag : 독립기념관, 병천 순대, 아우내 시장
![[웹툰단행본] 『통제구역관리부』 1권 후기 : 이상한 변칙과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는 공간에 대하여](https://img.zoomtrend.com/2026/06/09/1780996474-SE-5eda86fa-0d63-4afd-b8dd-b801879fed5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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