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지의 중국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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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5 posts동생의 금혼식 참석하고
지난 10월5일(토) 오후 1시에 남산한옥마을에서 여동생의 금혼식이 있었습니다부부로 맺어진지 50년이란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3남매 다 잘 키웠고, 모두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모두 손주로 2명씩을안겨 주었으니 지금까지 무난히 행복하게 살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저는 기념사진을 제 나름대로 담아서 여기 올립니다식을 준비 하는 동안 풍악소리가 한옥마을에 울려 퍼집니다신랑으로 옷을 차려 입은 매제가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둘째 조카의 두 오누이가 청사초롱을 들고 신부 할머니의 입장을 기다립니다청사초롱을 든 손녀 딸이 할아버지 신랑을 인도 하려고 사회자의 입장이란 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우리 소리의 창으로 축가를 부르고 있습니다사회자의 말에 따라서 식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둘제 조카의 오누이가 청사초롱을 들고 의젓하게 서 있습니다사진 바로 앞은 둘째 조카의 옆 모습 입니다드디어 신부가 입장을 합니다상견레 등 절차가 이어집니다손에는 청사초롱을 들고 있는 모습이 의젓 합니다막내가 하늘에 고하는 글을 낭독하고 있습니다춘향가 중에서 " 업고 놀자~"의 노래를 부르면서 장내의 분위기를 즐겁게 띄웁니다이 집의 막내(조카) 내외 옆 모습입니다이 집의 큰 아들이 이 자리에 참석해준 하객들에게 감사의 말을 올립니다춘향가 중의 "업고 놀자 ~" 가사에는 사랑 사랑 사랑이란 말이 아주 자주 나오는데 그 떼 마다 신랑과 신부의 애정표현을 하도록 창 부르른 이가 특별히 미리 요청을 해 놓았는데, 지금 그 애정 표현을 하는 중 입니다 ~장남이 자식 대표로 그리고 가족 식구 모두를 대표해서 다 함께 부모님을 앞으로 더 잘 모시겠노라고 선서를 합니다둘째인 딸도 그동안의 부모님 사랑에 대한 감사를 올립니다그리고 때 맞추어 막 출판 된 "엄마의 편지"라는 연화 김신자의 책을 소개도 했습니다하객들에게 미리 배포한 이 책은 바로 컴퓨터 디자인과 설계, 편집 등에 전문인 이 둘째 딸이 그동안 사진과 원고 정리를 열심히 도와서 만들었습니다큰 조카 며느리와 막내 조카 며느리가 막내 조카와 나린히 앉아 있습니다카메라를 들고 사진 찍는 이는 이 집 사위 입니다조카 손녀 4명이 한 자리에 섰습니다3남매와 두 며느리, 사위 모두 한 자리에서 기념 사진을 남겼습니다 tag : 남산 한옥마을, 동생의 금혼식 사진
소동파의 마지막 유배지 해남도
오래 전에 올렸던 글이지만 소동파가 마지막 유배생활을 했던 곳 입니다하이퍼 링크를 걸어서 찾아보게 할 수도 있지만 한 번 더 글을 올리는 것이 보기에 편해서 이렇게 올립니다해남성(海南省 하이난 성)은 약칭이 경(琼 징)으로서 예전에는 광동성에 속해 있다가 1988년에 성(省)으로 승격된 면적 3.4만km2의 대만 섬 다음 가는 큰 섬입니다. 여족(黎族 리쭈)이 많이 사는 해남성의 인구는 약800만 명이고 성도(省都)는 해구(海口 하이커우)입니다. 제2의 도시인 삼아(三亞 싼야) : 관광객들은 공항이 있는 이 싼야를 통해서 비행기로 해남도를 방문 합니다 우리나라와는 일찍부터 직항로선이 개설되어 있어서 여행에 편리한 아열대가 아닌 중국 남방의 열대지역 관광 휴양지입니다. 방문시기는 태풍이 자주 부는가을은 피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야자나무의 숲이 울창하여 야자와 야자를 이용한 음료, 과자류,술 등의 특산물이 있으며, 빈랑(檳랑), 커 피,사탕수수와 고무 생산량도 많은 곳입니다. 소동파의 마지막 유배지인 해남성 단저우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 입니다 해남성은 예전에는 하늘 끝 땅 끝의 유배지로서 알려져 있었나 1990년대 중반부터는 무공해의 힐링을 즐 길 수 있는 관광 휴양지로서 급부상했습니다 EBS TV의 테마기행에서 중국한시기행은 4부로 나뉘어서 소개 되었는데 해남도의 소동파 마지막 유배지가 마지막으로 소개 되었습니다 소동파의 마지막 유배지는 담주(단저우) 입니다 야자나무와 야자나무 비슷한 빈랑나무의 숲이 울창합니다사진으로 얼른 보면 야자나무와 빈랑나무는 저도 구분이 쉽지 않습니다 동파서원(東坡書院 똥포 서원)이라고 하는 것이 이해가 쉽겠습니다 재주당(載酒堂)으로 표기하고 짜이지우탕이란 중국어 표기는 중국어를 모르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좀 무리인 것 같다는 생각 입니다 "東坡書院"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 것이 보입니다 소동파 선생은 동파거사(東坡居士)로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自題 金山畵像(자제 금산화상)의 일부가 소개 됩니다 중화고진(中和古鎭 중허꾸전)은 소동파가 마지막 유배생활을 했던 마을 입니다 한(漢) 나라 때 세워 진 마을이니 역사가 상당히 오랩니다 對聯은 春聯이라고도 합니다 우리나라 사대부의 옛 집 기둥에도 대련의 글씨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춘절(春節 구정)이 되면 집집 마다 붉은 종이에 대련으로 좋은 내용의 글씨를 써서 벽이나 대문 양 옆 기둥에다 붙입니다. 이 중허꾸전(中和古鎭 )이람 옛 역사가 깊은 마을은 시(詩)의 대구법(對句法)을 많이 사용해서인지 마을을 詩對之鄕(시대지향)이라고까지 부르고 있습니다 tag : 해남도, 동파서원, 소동파의 마지막 유배지
동파(東坡) 요리
사천성의 성도(省都)인 성도(成都 청뚜)에 가서 음식점에 들어가서 메뉴를 보면 않은 요리의 이름 앞에다 동파(東坡) 두 글자를 붙인 것을 보게 됩니다그 중에 동파육(東坡肉0 동파두부(東坡豆腐)가 먼저 눈길을 끕니다동파는 소동파(蘇軾)로 잘 알려져 있는데 소순,소식,소철 삼부자 모두 당송팔대가에 올라 있는 유명한 문인 안데 항주(절강성의 성도 杭州)의 서호(西湖)에 홍수방지로 제방을 쌓은 것이 소제(蘇堤)이며 지금까지도남아 있으며 소제 뚝길은 , 요즘도 옛날처럼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길이 되어 있습니다동파는 광서장족자치구,광동성, 해남성 등지로 오랜 유배생활을 했는데 다른 유배자들처럼 언제 또 황제가 다시 불러주려나에 목매달고 기다리거나 자신의 신게를 한탄하지 않고 유배지의 아름다운 주위 풀광을 즐기며 또 요리를 직접하면서 현지의 이웃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내면서 유배생활을 즐겼습니다(?)자기가 처한 어려운 유배생활의 환경을 자기가 즐기는 것으로 하여 살았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동파육(東坡肉) 입니다 돼지 삼겹살로 만듭니다사진엔 색갈이 검정색이 많이 보이지만 일반적으로는 홍색을 띕니다아래의 홍사오러우(홍소육)과 비슷하지만 맛은 먹어봐야 차리를 느낍니다 이 홍사오러우는 호남성 소산 모택동의 고향 동네에서 아주 유명합니다모택동이 즐겨 먹었던 오리 입니다사천성의 마파두부는 전국을 대표할 정도로 유명 합니다삼겹살의 겉에다가 손으로 하나 하나 글자를 새겼습니다고기의 기름진 맛을 메이차이(매채)와 함께 올린 것이 커우러우 입니다촉도 검문관에서는 장비가 조조의 군사를 맞아 싸워서 물리치기도 하여 촉도 검문관이나 장비의 릉이 있는 광원시에서는 장비가 즐겨 먹었다는 쇠고기 육포가 유명한데, 장비육포로 포장하여 팝니다약간 매우면서 짠 맛이 자꾸만 손이 나가게 하는데 여행시 심심풀이로 또는 맥주 안주로도 잘 어울립니다장비 육포는 사진에서 처럼 햄처럼 만들어 가지고 칼로 잘라가면서 먹기도 합니다중국 여행하다 보면 그 지방마다의 특별한 내용이 담긴 먹거리들이 있습니다촉도 검문관은 강유장군과 관련한 강유 두부가 유명 합니다사천성의 목조 주택의 문틀 등 나무 조각은 귀주성의 유명한 나무 조각들처럼 예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사천성의 주택도 북경에서 쉽게 만나는 사합원(四合院) 식이 보입니다촉도 검문관 아래의 마을 입니다이런 거리를 옛거리 즉 라오지에(老街)라고 부릅니다강유두부 입니다 흰 두부 위에다 마랄을 섞은 고추가루를 뿌려서 철판 위에서 지지면서 먹기도 하는데 생각보다는 그다지 맵지는 않습니다귀주성 귀양(貴陽)이나 광서장족자치구의 계림,양삭을 가도 이런 두부를 거리에서 쉽게 사 먹을 수 있습니다 강유두부 도는 검문관두부란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야채(野菜)는 산채를 말 합니다한 껏 모양을 냈습니다모두부 모양 입니다모양을 낸 강유두부 입니다이 두부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릅니다마치 감추어져 있는 조조의 책략같아서 붙여진 이름 입니다공명의 책상자란 이름의 두부 입니다중국의 두부요리는 세계의 식품영양사(단백질)에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다라서 중국의 두부요리는 그 가지 수가 셀 수 없을만큼 많으며, 먹는 방식 역시 지방에 따라 각양각색 입니다 tag : 동파육, 동파두부, 소동파 요리, 강유두부, 장비육
소동파의 삼부자 과연 "그 애비에 그 자식"이로다
是父是子(시부시자) 즉 쉽게 풀이 해보면 그 아비에 그 자식 입니다훌륭한 아버지에 역시 훌륭한 아들을 두었다는 뜻이 되겠습니다부친인 소순(蘇洵) 그리고 동파 형제인 소식(蘇軾)과 소철(蘇轍) 삼부자 모두 과거에 응시하여 합격 했으니 대단한 집 안이지요 도로표지에는 성도 시내에서 고속도로 진입까지 36km, 낙산까지 123km, 아미산은 141km라고 적혀 있습니다삼소사가 있는 미산(眉山 메이산)은 여기서63km 입니다, 성도(成都 청뚜)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정도의 거리 입니다미산 출구를 빠져서도 한 40분 가량 더 들어가야 하기 때문 입니다 동파루 입니다 소식과 소철 형제가 과거시험을 함께 보러 갔는데.아버지 소순은 이 연못 주위를 메일 거닐면서 두 아들의 합격을 기원했을 것입니다 정자 이름이 재주성(載酒亭) 입니다 굳이 소동파가 아니라도 누구든 동네에서 술 항아리 싣고와서 여시서 퍼 마시다보면 시 한 구절 읊을 것 같습니다그러나 소동파는 세 가지를 못하였는데 술과 바둑 그리고 춤이었다고 합니다정자의 기둥엔 시구가 조각되어 있고 주변엔 대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소동파의 명문인 적벽부 전문이 스여 있습니다소동파의 글인데,글씨는 안진경(顔眞卿)이 썼다고 하는데, 석각은 누구의 솜씨인지 저도 모르겠습다 이 삼소사 안에는 서련지(瑞蓮池)라는 작은 연못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소동파(蘇東坡, 1037~1101) - 중국 북송 시대의 시인이자 문장가. 본명은 소식(蘇軾). 당나라의 한유(韓愈)와 유종원(柳宗元) 두 명과 송나라의 소동파 삼부자, 구양수(歐陽修)․증공(曾鞏)․왕안석(王安石) 등 6명이 함께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에 속하고 있습니다. 팁 (좋은 이야기)寧可食無肉이나 不可居無竹이라 無肉令人瘦하고 無竹令人俗이라 고기는 안 먹어도 될지언정 대나무 없는 곳에선 살 수가 없지 고기 없으면 몸이 야위어지지만 대나무 없으면 사람이 속되지나니선비가 세속에 물들면 고쳐낼 방법이 없다네 ~ tag : 미산, 삼소당, 소동파 삼부자, 당송팔대가, 서련지
소동파 삼부자의 삼소당(三蘇堂)
삼소사(三蘇祠) 삼소사는 소동파의 삼부자를 모셔 놓은 사당입니다 사천성의 성도인 성도에서 125km 떨어진 낙산대불을 찾아가다 보면 도로 표지판에 삼소사가 보입니다. 이곳에서 오른 쪽으로 빠져서 30분~한 시간 정도 더 가면 삼소사가 나옵니다 소동파가 시나 산문에 능하기도 하였지만 항주에 관리로 두 번이나 근무했었고, 서호에 물을 다스리기 위해서 제방을 쌓았기에 이 제방을 소제(蘇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200년 쯤 후에 백거이(白居易)도 항주에 근무시 제방을 쌓았는데 이 제방은 백제(白堤)라고 부릅니다. 적벽부(赤壁賦) 여기서 적벽은 조조 군사와 손권,유비 연함군사가 대전을 치룬 곳이 아니고, 소동파가 적벽부를 지은 곳 입니다 적벽(赤壁)이란 글씨가 오른 편에 보입니다 적벽(赤壁)이란 글씨를 크게 봅니다 서예하는 분들이라면 금새 알아보겠지만 보통사람은 벽자가 이상하게 보입니다 아래에 벽자에서 土(토)자가 조그맣게 평시 보던 글시와 다르게 쓰였기 때문입니다 소동파의 명작인 적벽부(赤壁賦)를 간당히 소개 합니다 소동파의 상 입니다 서호는 안개 낀 풍경과 달 빛 아래의 풍경을 가장 아름답다고들 합니다.제가 사진 찍을 때도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작은 배 두 척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 사진은 삼담인월(三譚印月)이란 작은 섬의 선착장 중 하나입니다. 개별적으로 유람선을 타면 이곳에 내려주며, 이 섬 안을 둘러보고 쉬다가 선착장에서 아무 배나 기다렸다가 타고 출발했던 선착장으로 호수 주변을 구경하며 돌아가면 됩니다.이 섬 안에는 작은 호수가 또 있고, 그 호수 안에는 또 작은 섬이 있습니다. 호수 위에는 석등 세 개가 있습니다. 하나만 사진에 잘 나왔습니다. 추석 무렵에 달이 뜨고 세 석등에 불이 켜지고 그 빛이 호수에 비취게 되면 술 한 잔에 시가 한 수 떠 오르겠습니다. 서호에는 백거이(白居易) 시인과 소동파(蘇東坡) 시인이 각각 이 서호에 와서 3년간 씩 관리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각각 관리시절 서호에 제방을 쌓았는데 이름을 각각 소제(蘇提)와 백제(白提)로 부릅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제방 길을 산책하면 좋습니다. 단체유람선 타러 가면서 소제의 길을 5~10분 정도 걷기도 합니다. 소제나 백제나 산책하기에 아주 좋은 코스여서 지금도 늘어진 수양버들 아래를 연인들이 즐겨 찾는 곳의 하나입니다 소동파의 시 한 수가 초서체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저는 읽을 수가 없어서 뒷 부분을 사진으로 여기 실었습니다. 끝 부분에 있는 동파(東坡)라는 두 글자만 읽었습니다.서울로 돌아와서 다시 한번 서호를 생각하며 소동파가 읊은 시 하나를 읽어보았습니다. 제 졸역을 여기 소개합니다. 欽湖上初晴後雨 水光瀲灩晴方好, 山色空蒙雨亦奇. 欲把西湖比西子, 淡妝濃抹總相宜. 물 빛이 남실되는 맑은 날 경치가 좋고, 보슬 비에 산색이 바래지는 모습도 일품이네. 서호는 엷운 화장, 서시는 짙은 화장이라야 나름대로 서로 잘 어울리겠구나. 주: 서자(西子)는 미인 서시(西施)를 지칭하며, 소동파는서호(西湖)를 여인의 화장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렴염(瀲灩) 소제춘효(蘇堤春曉)란 봄 이른 새벽에 보는 소제(蘇堤)의 모습을 말하며, 서호 10경의 하나로 꼽습니다. 동파육(東坡肉)배를 타고 릉운산을 향해 가서는 낙산 대불을 구경하고는 왔던 길로 다시 민강을 거슬러 승선했던 자리로 되돌아 옵니다. 한 시간도 안걸리지만 아주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했습니다.강변에 안개가 내려앉기 시작하니 정박하고 있는 배들도 여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음에 아미산과 三蘇祠를 보러 올 기회가 있다면 그 때는 릉운산의 정상에서 잔도의 길을 따라 대불의 옆 모습과 얼굴을 자세히 보리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면서 낙산을 떠났습니다.성도(成都)로 돌아가면서 낙산시의 넓은 6차선의 길인 成樂高速道路를 시원스레 달려 갑니다점심식사 때 소동파의 동파육을 먹었고, 동파두부도 먹었으니,이젠 소동파의 시라도 한 수 (식당 벽에 걸렸던 것을 제가 사진으로 미리 담아 둔 것을) 여기에다 올려드립니다사천성에서는 소동파가 유명하고 두보와 백거이 시인도 잘 알려진 곳인데, 특히 소동파는 사천요리의 이름 앞에다 동파짜를 붙일만큼 유명합니다. 사천의 마파두부가 유명하지만 동파두부도 많이 알려져 있고 특히 동파육(東坡肉)이 아주 유명합니다.이 집의 간판에도 두부 두 글자가 들어 있습니다 동파육의 사진이 잘 안나왔습니다. 맛이 어떠냐고요? 돼지고기 좋아하는 분은 까빡하고 반합니다. 푹 삶은 고기여서 입에 넣기만 하면 살살 녹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먹어 본 동파육과는 비교가 안될만큼 맛이 있어서 국물도 남김없이 먹었습니다. 보기엔 기름지고 느끼해 보이지만 먹을 때는 담백합니다. 이것은 제가 일행들에게 인민폐 10원씩 따로 걷우어서 한 접시에 50원씩 두 접시 시킨 것이었습니다. 처음 맛보는 것이었지만 제가 동파육에 대해 설명까지 해주었더니 모두들 좋아라 했습니다낙산대불 보러 가는 길이어서 30분 정도만 시간 내주면 삼소사도 볼 수 잇었을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쉽습니다물론 저는 1995년 8월에 짝궁과 한 번 와 본 적이 있지만 그 때는 사진을 잘 못 찍었거든요 ㅠ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올라 있는 이 대불을 뒤돌아보면서 성도로 되돌아 갔습니다사진에 배꼽만 있는 것은 제가 나중에 다시 보완을 하겠으니 양지 바랍니다 tag : 동파육, 소동파, 적벽부, 삼소사, 동파두부, 낙산시


![[웹툰단행본] 『통제구역관리부』 1권 후기 : 이상한 변칙과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는 공간에 대하여](https://img.zoomtrend.com/2026/06/09/1780996474-SE-5eda86fa-0d63-4afd-b8dd-b801879fed5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