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ilisk S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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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세월의 유리창 너머 - <화양연화>

Basilisk Station|2017년 9월 19일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귀하지만 작품의 주제에 부합하는 아름다움은 심미적인 것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왕가위 감독을 연기처럼 흩어지는 아름다움을 잘 그리는 사람이다. 길지 않은 사랑을 그리는 이 영화는 전등 아래로 흩어지는 담배연기조차 아름답다. 영화는 흔한 로맨틱 코메디처럼 시작한다. 우연히 옆집에 살게 된 남자와 여자. 하지만 그들은 이미 배우자가 있다. 이웃으로 지내던 그들이 따로 만남을 가지기 시작한 건 서로의 배우자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의심 때문이다. 그것은 사실이었고 그들은 서로에게 서로의 의심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자 자신의 괴로움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서로가 사랑에 빠지는 이유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만나게 되는 이유일 뿐이다. 그들은 서로가

충족되지 못할 기대 - <컨택트>

Basilisk Station|2017년 2월 12일

테드 창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들 중 하나다. 드뇌 빌뇌브 역시 내가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감독 가운데 하나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 중에는 훌륭한 작품도 많지만 아끼는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하면 기대보다는 불안함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감독이 정해지고 나는 처음으로 영화화에 대한 기대를 하게 되었다. 감독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감독이 보여준 좋은 모습은 에 부합하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대로 영화화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영화다. 어떤 식으로든 각색이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그 각색을 원작보다 좋아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나의 불안은 예정된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이 영화를 보러 갈 거라고 생

그 화려함 속에서도 - <라라랜드>

Basilisk Station|2017년 1월 2일

0. 뮤지컬로 시작 캘리포니아 교통국을 설득해 고가도로를 이틀간 막고 찍었다는 이 장면은 노래가 아주 좋다거나 퍼포먼트가 놀랍지는 않았다. 이 장면이 좋았던 첫 번째 이유는 촬영이고, 나머지 이유는 이 오프닝이 작품 전체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이 블로그에서 말했듯이 결말은 작가를 말해주고 시작은 작품을 말해준다. 오프닝인 은 우리 주위에 있는 백색 소음과 함께 각 차에서 나오는 음악을 차례대로 들려주고 어느 순간 그것은 노래가 된다. 그 노래는 마법처럼 도로 위의 모두를 사로잡고, 내리쬐는 캘리포니아의 태양 아래에서 수많은 젊은 남녀들이 돌아가며, 혹은 함께 노래하면서 꿈과 사랑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모두가 함께하는 짧고 달콤한 마법같은 순간

나의 사랑하는 영화 - <헤일, 시저> (+스포일러)

Basilisk Station|2016년 3월 19일

코엔 형제는 내가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감독 중 하나다(둘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코엔 형제는 우울한 영화와 코믹한 영화를 만드는데 이 둘이 꼭 분리되어 있지는 않았다. 내가 이 감독(들)을 결정적으로 좋아하게 된 계기는 를 보고 나서 을 봤을 때였다. 는 (아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코엔 형제의 작품일 텐데 이어지는 은 약간 다른 의미로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정반대의 톤으로 동일한 혹은 유사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니. 엉킨 실의 양쪽 끝을 따라오다 중간에서 만나는 느낌이었다. 부작용이 있다면, 그 뒤로 코엔 형제의 영화를 볼 때마다 '이 영화도

우리는 소망한다,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을 - <더 랍스터>

Basilisk Station|2015년 12월 3일

이 영화는 SF지만 SF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되고 부조리극이지만 부조리극에 대한 이해가 없어도 된다. 영화를 이해하려면 영화가 깔고 있는 기본적인 설정을 이해해야 하는데 이런 설정들은 각종 설명과 반복을 통해 충분하게 제시된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상당히 친절하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주인공인 데이비드가 아내와 이별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아내의 모습은 나오지 않으며 데이비드가 새로운 남자에 대해 묻는 짧은 대화만 나온다. 무심코 넘기게 되지만 이것은 작품의 중반에 이르러 뚜렷해지는 암시다. 이 영화에서의 커플은 어떠한 동질성에 의해 맺어지는데 첫 장면은 데이비드의 전 아내와 그녀의 새로운 남자 역시 근시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호텔에서와 같이 도시에서도(뒤에 나오는 레아 세두의 부모님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