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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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나의 것 (2002)

멧가비|2020년 12월 30일

두 번 이상 재감상할 마음이 안 들(그러나 이미 세 번 이상 봤고) 정도로 잔인하고 지긋지긋한 운명론이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서로에게 가한다는 복수는 어쩌면 자신을 옭아맨 더러운 운명에게 향하는 악다구니처럼 보인다. 평범한 노동계급 청년 류를 하루아침에 유괴범으로 만든 건 장기밀매 사기꾼들이 아니라 사기 이후 들려온, 사기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기회를 놓쳐버린(절박함이라는 형태의) 운명 앞에서의 무력함과 좌절이다. 영미는 좋은 유괴론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지만, 정말 "좋은 유괴"로 끝내려던 류와 영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괴의 근본 원인이었던 류 누나의 죽음으로 인해 유괴 대상인 동진의 딸도 죽고 만다. 운명 혹은 그와 비슷한 어떤 거대한 의지가 좋은 유괴 따위란 없다고 비웃는 듯이 말이다.

살인의 추억 (2003)

멧가비|2020년 12월 30일

언제 멈춰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치킨 게임 같다. 관객의 심리를 난처한 지점으로 까지 끌고 가면서 결국 모순에 빠지게 만드는 기술이 탁월한 영화. 적어도 내게는 태어나 봤던 영화들이 내게 걸었던 심리 싸움 중 가장 힘들었다. 언제 빠져나가야 될지 결국 영화가 끝날 때 까지 선택하지 못했다. 미궁에 빠진 사건, 이를 추적하는 80년대 난폭한 형사들. 관객들로 하여금 이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파렴치하기 까지 한 구시대의 유물들에게 팀웍을 느끼게 만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기서 이미 나는 심리게임에 말려든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유재하의 노래, 이 운치 있는 미장센은 극악무도한 범죄를 수식한다. 여기서는 마치 [시계태엽 오렌지]에서의 '싱잉 인 더 레인'처럼 모순적인 감정이 들끓는다. 경찰들은

바람 (2009)

멧가비|2020년 12월 30일

고등학생들이 주요 인물인 영화이지만 그걸 보는 당시의 나도 그보다 얼마 더 먹지 않았었다. 그 시절을 지나온지 얼마 안 됐으니 자연히 처음엔 그저 낄낄거리면서 감상하는 거지. 시간이 지나 어느 계기를 통해 개인적인 성찰을 거친 후에 다시 보니 유행어 빼면 아무 것도 없는 코빅 극장판. 시사회 가서 배우들 무대인사 보면서 신나하고, 그 당시 홍보 영상에 같이보러 갔던 여자친구 얼굴 찍힌 것도 재미있어 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 때 생각한 그런 영화가 아니네. 내러티브는 파편적이고, 코미디 끝에 눈물 한 방울은 너무나 90년대스럽고. 캐릭터들은 마치 피구왕 통키의 험상궂은 초등학생들처럼 개성있으나, 그들을 살아있는 캐릭터로서 기억하게 만들 좋은 시나리오는 없고. 다큐멘터리도 아니면서 최소한의 문학적 플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カメラを止めるな! (2017)

멧가비|2020년 12월 29일

아이디어 좋고 그걸 살려내는 배우들 연기도 재치있고, 다 알겠는데, 이 영화를 온전히 즐기기 위해 참아야 하는 그 30분이 너무 길다. 그렇다고 그 부분을 대충 딴짓 하며 넘기면 그 다음 파트들의 존재 의외와 반전의 쾌감 등이 아예 성립되질 않는다. 즉, 처음부터 관객에게 불편할 정도의 인내심을 요구하는, 구조적으로 기형인 아이디어에서 탄생한 영화. 입소문 타더라. 그런데 그 입소문도 추상적이야. 말해줄 수는 없지만 일단 참고 보란다. 왜 참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견디고 보는데, 여기서 갈린다. 그냥 떨어져 나가는 관객과, 끝내 인내의 열매를 따 먹는 관객. 그러나 그 참아야 하는 시간 만큼 달콤한 열매는 아니다. 노동에 대한 보상이 너무 약해. 그게 다야? 게다가 초반의 진부함을 참고 견디

좀비랜드 더블 탭 Zombieland Double Tap (2019)

멧가비|2020년 12월 29일

패턴 반복이라면 반복인데, 플롯의 뼈대는 그대로 두고 디테일에서만 변주한다. 10년만의 동창회랍시고 바짝 힘줘서 뭔가 무리수를 두려고 했으면 크게 실망했을 거다. 말 그대로 동창회다. 10년의 세월을 겪는 동안 어리버리한 좀비들이 적당한 개체수를 유지하는 등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고, 인물들이 갈등을 겪는 건 좀비와 관련된 생존의 문제 따위가 아니라 그저 그들의 생활 때문이다. 우디 해럴슨은 여전히 수집에 탐닉하며 꽤 원숙해진 과거의 틴에이저들은 여전히 사랑싸움으로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한다. 여기에 새로운 틴에이저의 고민 하나만 끼어들 뿐. 근데 얘는 원래 꼬마 취급 받는 걸 싫어하던 녀석이었고, 우디 해럴슨과 엮이던 유사 부모자식 관계의 나머지 한 축을 바톤 터치 받았을 뿐이다. 사랑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