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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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몰리션 맨 Demolition Man (1993)

멧가비|2021년 1월 20일

동시대 3대 근육 배우들의 공통점, 나름대로 그럴싸한 SF 출연작 하나 씩은 갖고 있다. 아예 레전드인 [터미네이터]를 제외하고서라도 슈월츠네거에겐 [토탈 리콜]이 있고, 반담에겐 [타임 캅]이 있다. 스탤론한테는 이 영화가 있지. 욕설은 물론 섹스도 금지될 정도로 엄숙주의로 철갑을 두른 제도권 이면에는 쥐고기도 기꺼이 먹는 지하세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근육 배우들의 SF가 대개 그러했듯이, 그러한 양극화 디스토피아적 배경 설정은 근육으로 때려 부술 또 하나의 놀이터일 뿐 진지한 고찰 같은 건 기대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는 [토탈 리콜]도 언감생심이고, 슈월츠네거로 치자면 [여섯번째 날] 정도 되는 스탤론 필모라 봐도 되겠다. [타임 머신], [화씨 451] 등 개성 있는 SF 작품들의 세계관을

더 러닝 맨 The Running Man (1987)

멧가비|2021년 1월 20일

그러니까 이 플롯이, 우리로 치면 광주 항쟁의 현장에서 발포를 거부한 군인이 학살의 오명을 혼자 다 뒤집어 쓰고 체포되어 살인 엔터테인먼트의 무대에 불려진다는 이야기다. 비극적인 근대 시위 대학살의 역사가 없는 미국이니만큼, 소재를 가리지 않고 원작의 풍자적인 무게감을 걷어내면서 까지 굳이 슈월츠네거표 B급 오락 영화로 소비하는 게 정말 미국 답다면 답다고 할까. 주인공의 역삼각형 몸매를 잘 보여주기 위한 쫄쫄이에, 적당히 발목 잡아 줄 80년대식 미녀 히로인. 거리낌 없이 죽여도 왠지 괜찮을 것 같은 짜증나는 악역들 까지. 슈월츠네거의 오락배우로서의 상업성을 뽑아내려는 장치들로 범벅이 되어 있는데 완전히 적중하진 못하고 어딘가 빗나간 느낌이 들어 버린다. 슈월츠네거 필모 중 상대적으로 낮은

더 만달로리안 The Mandalorian (2019 - 2020)

멧가비|2021년 1월 20일

이 드라마의 가치를 논하기 위해서는 '클래식 삼부작'과 나머지 극장용 영화들을 비교해야 할 필요가 반드시 있다. '클래식'의 매력이 생활감 묻어나는 우주 어딘가에서 아웃사이더들이 좌충우돌 벌이는 흑백 뚜렷한 무용담이라는 점을 기준으로 비교해야 의미가 있을 것이다. '프리퀄 삼부작'의 문제는 바로 생활감의 부재에 있다. '클래식'에서와 달리 저 우주는 제다이 카운슬이라는 희대의 우주 꼰대 집단의 정치적 패착을 지루하게 보여주기 위한 공허한 공간일 뿐이다. 게다가 제다이 바겐세일이야, 신비감 마저 없다. 반대로 '시퀄 삼부작'은 그렇게 까지라도 하면서 '프리퀄'이 나름대로 쌓은 성과들을 도루묵 시켜버리는 무례한 스토리 진행. 그리고 '클래식'의 신드롬급 인기가 제다이의 사랑 놀음에서 오는 건 줄 인지부

제5원소 Le Cinquième Élément (1997)

멧가비|2021년 1월 18일

뤽 베송은 [레옹]과 마틸다를 어지간히도 떼어놓기 싫었던 게 아닌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으로부터 이 영화에 대한 기억이 시작된다. 레옹보다는 세속적인 아저씨인 우주 맥클레인이 나탈리 포트만과는 달리 적어도 성년의 "외모"를 하고 있는 우주 마틸다와 만나 기어이 육체적 사랑 까지를 완성하게 되는 대리 로맨스의 혐의가 짙기 때문이다. 물론 이쪽도 삼촌과 조카뻘처럼 보이는 매한가지이지만 최소한 상식적인 도덕을 운운할 수 없는 우주가 배경이긴 하다. 레옹과 마틸다의 이미지를 재사용하는 것은, 애초에 [레옹]은 이 영화를 찍기 위한 발판이었고 이 영화는 뤽 베송의 필생의 작품이었으니 두 작품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도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영화에 모든 감독 인생을 걸기라도

레옹 Léon (1994)

멧가비|2021년 1월 18일

반복적인 일상, 직무 수행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알지도 못하는 자폐 아저씨가, 나이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돼버린 소녀를 만난다. 직업 킬러와 거취 불명의 고아, 두 사람의 정서적 교감은 그렇게 제도권에서 벗어난 위태로운 환경에서 정서적 혼란과 함께 시작한다. 화분과 우유 외에는 아무 것도 없던 중년 남자의 무기질적인 삶에 불쑥 보호가 필요한 소녀가 끼어든다. 그러나 소녀는 아저씨에게 피보호자가 아닌 여자로 어필하고 싶다. 그 동상이몽 사이에서 교착상태에 빠진 둘의 관계는 그들의 삶 만큼이나 아슬아슬하다. 아저씨와 소녀는 그런 기묘한 동행 관계를 통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성장하거나 어딘가에 당도한다. 소녀는 복수라는 행위를 통해 천덕꾸러기로서의 끝이 안 보이는 불행한 삶을 상징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