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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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건성의 토루(土樓 투러우) 2~1

복건성의 토루(土樓 투러우) 2~1

콩지의 중국여행기|2020년 2월 24일

토루(土樓 투러우)에 관하여 종합적으로 정리를 다시 하여 올렸습니다중국의 차 생산지는 절강성을 비롯하여, 강소성, 복건성,사천성 등 전국에 걸쳐 유명차의 생산이 많습니다복건성의 무이산 차도 중국 명차의 하나인데, 당시엔 하문 주변에서 차를 생산하여 바로 하문 항구를 통해서 수출을 하였나 봅니다그런대 론리 플래닛 취재 팀은 중국 차에 대해 더 알아보기 위해서 토루에서 사는 하카족(客家人 객가인)을 찾아 갑니다전형적인 3층 토루 안의 전경 입니다약 천 년 전이라면 전진(前晉) 시대 입니다.이 때 객가인들이 북방민족의 침략과 박해를 피해서 황하를 건너 대거 서남쪽으로 대이동을 하였습니다그 후에도 당 말기와 남송 말기에도 객가인들의 서남쪽으로 대 이동이 있었습니다마지막으로 정착한 곳이 복건성 서쪽과 광동성 동북 일대 입니다하카 족들은 현지의 문화를 받아 들이면서도 그들의 언어(客家語)와 전통, 관습 그리고 음식문화는 그대로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순 흙 또는 흙과 나무로만 지은 토루 군락지의 하나 입니다복건성에만 토루 군락지가 아주 많습니다"추"는 하카족의 대표 입니다아래 층에서 뚫린 하늘을 향한 공간으로 찍은 사진 입니다지금까지도 이 토루 안에서 사는 하카인들이 있습니다현존하는 토루의 대부분은 명 청대에 지은 것들 입니다. 200~300년 된 것들이 많습니다중국 토루에 대하여는 몇 번 제가 포스팅을 한 바가 있습니다토루 구경을 마치고 하문(廈門 샤먼)으로 돌아가려면 5시간 이상이나 시외 버스를 타야 합니다하카족(객가인) 문화와 토루에 대한 이야기 복건성 객가인의 토루(客家人의 土樓)고대의 중원과 지금 하남성 지역에 살던 민족들이 북방 민족의 박해를 피해서 서쪽으로 서남쪽으로 이주하다가 지금의 복건성 서부와 광동성의 동북지역에 삶의 터를 마련했습니다. 일부는 인도차이나 쪽으로 가고 또 일부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는 물론 복건성의 동쪽인 대만으로도 건너 갔습니다지금도 대만의 신죽현(新竹縣 대북에서 남쪽으로 80여 km의 거리)에 객가인들이 옛 풍습과 고유의 객가어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유지하며 강인한 생활력으로 가족 중심으로 모여 살고 있습니다객가인을 대개는 하카족이라고 말을 하는데 이 하카는 “손님”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근년에 와서 객가인과 그들이 살아온 특이한 거주지인 흙으로 지은 토루(土樓 투러우)가 사진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모았기 때문에 사진 전문가들이나 민속, 소수민족 연구하는 학자들의 방문까지 많아지면서 우리나라의 호기심 많은 배낭 여행가와 사진작가들도 이곳 토루가 있는 곳을 많이 찾고 있습니다그런대 중국의 관광지들이 먼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것처럼 이 토루들도 이 도시 저 도시의 외곽 오지에 산재해 있기 때문에 자동차를 렌트하여 종일 다니기 전에는 단지 몇 개의 토루만 보고 오게 됩니다우리와는 다르게 중국이나 대만의 관광객들은 이 지역을 둘러보는데 5일간의 여행사의 패키지 일정으로 길게 잡기도 합니다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된 토루는 원형,타원형,사각형, 장방형 등 토루가 있는 지방에 따라 여러 모양을 하고 있으며, 대개 3층과 4층의 구조이며 지금도 객가인들 일부는 이 토루에서 옛날 방식대로 거주 해 오고 있습니다객가인이란 서진(西晉)말년에 황하 유역에 살던 한인(漢人)의 일부로 보고 있으며, 당나라 말기와 남송 말기 때도 전란을 피하여 황하를 건너 강남으로 대거 이주를 하였습니다.복건성에 지금 현존하는 산재된 토루를 모두 합하면 1만 채가 넘는다고 합니다. 비교적 규모가 큰 토루군으로는 영정현(永定縣), 화안(華安)현, 남정(南靖)현 등지에 위치하고 있는데 토루의 건축물들은 대개 명청시기의 것으로 200~300년 된 것들 입니다이 외에 장주시(漳州市)의 전라갱토루군(田螺坑土樓群),진성루(振成樓), 조가보(趙家堡), 배전(培田) 그리고 용암시(龍岩市)의 사보(四堡), 지계(淽溪 여기의 지는 수변이 없는 것임), 장정시(長汀市)의 화안이의루(華安二宜樓) 등이 있습니다장정시(長汀市)의 화안이의루(華安二宜樓)는 원형 토루의 보배로 꼽습니다. 청나라 때인 1770년에 보수한 것으로 지금까지 원형이 잘 보존된 것입니다지금도 장씨(蔣氏)네 30호가 넘는 가족 200여 명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의루(二宜樓)에서는 청나라 때의 채색 벽화도 볼 수 있습니다장정시는 객가인들의 역사 문화가 담겨 있는 중국역사문화의 도시 중 하나 로 객가인들이 수도로 삼고 있는 도시입니다. 객가인들의 가족들이 이뤄 놓은 작은 동네들은 검은 기와의 집들이 이색적이며, 3개의 고성루(古城樓)와 5개의 고성문(古城門) 그리고 1500개가 넘는 고성의 담장들은 사진 찍기 좋아하는 분들에게 좋은 작품의 소재를 제공 합니다장주시(漳州市)의 진성루(振成樓)는 1921년에 만들어진 사각형(方形) 토루의 대표로서 “토루왕자“ 란 별칭을 갖고 있습니다 층 마다 48칸의 방이 있습니다장주시(漳州市)의 전라갱토루군(田螺坑土樓群)은 5채의 토루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운데는 사각형이고 하나는 타원형 그리고 나머지 세 개는 원형입니다. 토루의 사진 중에서 대표적인 토루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6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처음 이곳에 이주해 온사람은 오리를 사육하고 있었는데 이 오리들이 논에 들어가서 전라(田螺) 즉 우렁이를 잡아 먹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토루에는 우렁이란 뜻의 전라(田螺) 두 글자가 이름 앞에 붙었다고 합니다용암시(龍岩市) 영정현(永定縣)의 영정토루(永定土樓)1960년대에 미국에서 인공위성으로 찍은 사진 분석 중에 중국의 탄도미사일 발사기지로 오인했던 곳이 바로 이 영정토루 입니다사진을 담으면 멋있게 객가인들의 강인한 삶의 의지가 보이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장소의 건축물들 입니다 tag : 복건성 토루, 토루에 관한 이야기, 토루의 소재지

 눈이 붓도록 울고 시집가는 토가족 신부

눈이 붓도록 울고 시집가는 토가족 신부

콩지의 중국여행기|2019년 9월 13일

토가족은 55개 소수민족 중에서 장족(壯族) 다음으로 인구가 많으며, 호북성,호남성,사천성 등에서 살아오고 있습니다여행사의 장가계 여행에서 패키지 일정은 무릉 등 토가족의 토사성을 방문하고 전통 공연을 볼 수도 있지만 이곳을 뻬고 다른 곳을 구경하기도 합니다장가계 입구에 버스가 서는 곳에 큰 탑이 서 있으며, 무릉(武陵)의 소개 광고판도 보입니다토사성(土司城)을 찾아 갑니다은시토사성(恩施 土司城) 입니다은시토사성(恩施 土司城)의 현판 입니다운남성, 귀주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우교(風雨橋) 입니다 이 계단식의 지붕에 비첨식의 처마를 가진 건축물은 어디선가 본 적이 있지요?사천성이나 귀주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면(儺面) 즉 가면들 입니다손님을 맞이하거나 전송 할 때 인사하면서 짓는 두 손의 모습이 남녀가 다릅니다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포토 존 입니다팁전통 복장을 한 토가족과 함께 기념 인증샷을 함께 찍으려면 소정의 팁을 지불해야 합니다하나의 공교(孔橋) 위에 비첨식의 지붕을 한 루각을 두 개 올려 놨습니다. 아름답습니다강소성의 양주 수서호(钖州 瘦西湖_에 가면 3개의 공교 위에 3개의 누각이 지어져 잇는 것도 사진에 잘 나오는 양주의 랜드마크 입니다중국의 관광지에서는 어딜가나 입구에 그곳의 소수민족들이 전통 복장을 하고서 손님들을 맞이 합니다관광객이 바로 앞에 걸어 올 때 까지 자기네끼리 노닥거리는 토가족 처녀들 입니다물레방아는 어느 농촌엘 가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전통 복장을 한 신부가 얼굴을 가리고 앉아서 소리내어 울고 있습니다토가족은 신부가 시집가는 날 까지 소리내어 울어야 하는 것이 관습입니다이렇게 소리내어 울게되면 지난 날의 나쁜 기억이 다 씻겨 없어진다고 믿습니다또한 많이 울수록 신부가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 합니다중국이든 대만이든 신부가 얼굴을 가리는 것은 역시 관습입니다신랑과 신부가 첫날 밤 동방(洞房)에 들면 신랑이 가린 것을 올려 신부의 예쁜 얼굴을 보게 됩니다결혼 후에는 좋은 일만 있고 나쁜 일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큰 소리로 곡(哭)을 합니다토가족의 결혼 풍습의 하나 입니다이것은 관광객들에게 토가족의 결혼 풍습을 소개하는 것 입니다이 역을 맡은 토가족 여인이 가렸던 것을 걷어 내고 예쁜 얼굴을 보여 줍니다 ~ 신랑측에서는 신부가 더 길게 울면 더 좋아한다고 말을 합니다신부가 신랑 집으로 떠나는 날까지 큰 소리로 곡을 오랫동안 한다는 것은 어린 신부에겐 무척 힘들 것입니다신부가 시집가서 곡을 했던 때를 생각하면 더 이상 힘든 일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사회의 전통과 관습이란 것도 참 여러 가지 입니다지방 여행에서 소수민족들의 이런 전통의 결혼식을 보면, 신부가 신랑과 함께 산부 부모에게 작별을 하고 떠날 때는 신부의 아버지가 앞에 나서지 않고 뒤로 숨어서 몰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엿볼 수도 있습니다 tag : 토루, 은시 토사정, 비첨식 지붕, 토가 신부의 곡 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