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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극

옛날 옛적 서부에서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1968)

옛날 옛적 서부에서 Once Upon A Time In The We.. 창졸간에 남편을 잃고 상속받은 집에 홀로 남겨진 '질'. 그 집 가까이로 철로 공사가 한창이다. 역세권(!)을 중심으로 마을과 상권이 들어차게 될 것이며, 고독한 협객과 악랄한 무법자들이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말 달리 땅이, 총잡이들이 발 붙일 자리가 점차 줄어들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서부시대의 황혼이다. 주인공 '하모니카'와 질에게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복수의 시간이 무한정 남아있지 않고, 로컬 깡패 샤이엔 역시 언젠가는 이름도 없이 사라질 이미 구시대의 불한당이다. 이렇듯 "의미적으로 시한부"인 이들의 시간은 어째서인지 천천히 흐르고 있다. 특히 가장 절박한 복수자인 하모니카는 마치 생사여탈의 찰나 앞에서 구도자가 되듯이 긴 텀을 즐기는 듯 보이기까지 한다. 관객이 눈치 볼 정도로 긴 침묵,

석양의 무법자 Il buono, il brutto, il cattivo (1966)

석양의 무법자 Il buono, il brutto, il cattivo (19.. '남북 전쟁'의 한복판에서 국가적 의식 같은 것에는 관심조차 없는 선수(The good), 악당(The bad), 괴인(The ugly) 세 총잡이의 물고 물리는 보물찾기 협잡 웨스턴 로망스 어드벤처, 라고 일단은 거창하게 운을 띄우고. 권총 한 두 자로 차고 다니는 건맨들에게 소총 굉음이 마른 공기를 가르고 포탄이 낙뢰처럼 쏟아지는 전쟁통이란 그들 개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세계관이다. 포연이 만든 자욱한 안개가 시야를 가리면 총납이들은 돈이라는 한 줄기 빛만을 등대삼아 이리저리 발길을 갈지자로 저어야만 한다. 국가 하나를 만들기 위해 너무나 큰 비용을 치러야만 했다는 남북 전쟁. 다리 하나 사이에 두고 의미 없는 소모전만을 지리하게 이어가는 영화 속 그 전투. 석양을 등진 채 황

석양의 건맨 Per Qualche Dollaro in Piu (1965)

석양의 건맨 Per Qualche Dollaro in Piu (1965) 이견이 있겠으나, 나는 이것이 세르조 레오네라는 "유파"에서 설법하는 스파게티 웨스턴의 궁극적인 깨달음에 도달한 순간을 담은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전작에서 아주 짧은 순간 내비친 휴머니즘으로 인해 죽을 고비를 넘긴 황야의 요짐보, 아니 브롱코, 아니 몽코는, 이번에는 보란듯이 마지막 남은 윤리관의 한 톨 마저 돈에 대한 욕망으로 교체해 돌아온다. 예전 명랑만화 등에선 간혹 주인공의 눈에 달러 마크($)가 그려지는 연출이 있곤 했는데, 이 영화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눈에 그게 있어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태도는 깔끔하나 오로지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 줌의 달러라도 더 쥘 생각만 하는 주인공. 악랄하나마 오히려 악당은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강박에 시달리는 등 나름대로의 인간적인 면모를

황야의 무법자 Per Un Pugno Di Dollari (1964)

황야의 무법자 Per Un Pugno Di Dollari (1964) 카피 대상인 [요짐보]와 결정적을 다른 점, 요짐보의주인공 무명의 방랑 검객 일명 '산주로'는 남루한 행색이나마 전직이 사무라이, 즉 특권 계층이었을 것임을 짐작하는 게 어렵지 않다. 그러나 본작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분한 (역시나 무명의) 건맨에게는 산주로가 가졌던 일말의 선민의식이 있을 수가 없다. 불분명한 시대적 배경이지만 대충 남북전쟁 전후라고 간주하더라도 작중에는 그 어떤 아프리카계 노예 출신들이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는 건 영화가 계급의식에 대해 이야기할 의도가 없다는 뜻이다. 즉, 사정 딱한 민초들을 구원하기 위해 같은 눈높이로 내려 온 특권계층이 산주로의 이미지였다면, 이쪽의 건맨은 총만 들었을 뿐 거기 뒹굴고 있는 멕시코인들과 하나 다를 것 없는 입장이다. 덕분에 건맨이 돈을 요구할

퀵 앤 데드, 1995

퀵 앤 데드, 1995 때는 서부시대. 절대권력을 가진 무법자. 그리고 그 옛날 그의 손에 부친을 잃었던 복수자. 무법자 처단을 위해 복수자를 돕는 조력자. 서부영화로써 기본적인 판은 다 짜여져 있는 셈이다. 다만 샘 레이미라는 괴짜가 연출했을 뿐. 열려라, 스포 천국! 샘 레이미가 장르 영화 매니아일 것이라는 건 안 봐도 비디오일테고, 그렇다면 왜 잘 만들던 호러가 아니라 웨스턴 신작으로 돌아온 것인가를 따져보자. 아니, 사실 뭐 따져볼 것도 없이 영화 줄거리가 딱 그거 하나만 집중하고 강조한다. 바로 서부영화에서 한 번쯤은 꼭 등장해줘야하는 총잡이들의 1vs1 데스 매치. 기존 서부영화에서 특급 양념 역할을 했던 그 건맨 데스매치를 이 영화는 아예 주된 소재로 삼아버렸다. 여기에 주인공의 복수 플롯이 오히려 양념

카우보이의 노래

카우보이의 노래 안 그래도 꼬인 상황이 갈수록 더 꼬여가는 이야기라든지, 아니면 우연과 운명이 적절히 혼합되어 탄생된 비극의 이야기라든지, 그도 아니면 이야기 구조 자체를 뒤섞어나 전위적으로 해석해내 새롭게 탄생시킨 이야기라든지. 코엔 형제의 영화들은 언제나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근데 이번 영화는 아예 책 펴고 관객에게 읽어주는 듯한 느낌에다가 심지어 구성도 옴니버스다. 이 정도면 코엔 형제의 취향이 극에 달했다고 느껴지는 부분. 이야기 순서는, '카우보이의 노래' - '알고도네스 인근' - '밥줄' - '금빛 협곡' - '낭패한 처자' - '시체' 스포일러의 노래! 0. 카우보이의 노래장르를 굳이 따지자면 액션과 뮤지컬이 짬뽕된 희극이라고나 할까. 누가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하는 양반

[시스터스 브라더스] 트레일러

[시스터스 브라더스] 트레일러 영화팬들을 흥분시킨 [예언자], [러스트앤본]의 자크 오디아르의 신작. 이번엔 소설 원작의 서부극입니다. 그것도 호아킨 피닉스와 제이크 질렌할이 서로 맞수로 등장하는 서부극입니다! [나이트크롤러]에서 제이크에게 등쳐먹힌 리즈아메드와 멍청한 왓슨 존 라일리도 출연.. 그나저나 제가 좋아하는 배우 둘이 거친 서부에서 쫓고 쫓기는 내용이라니... 제가 영화팬은 아니라서 감독 전작은 보질 못했지만 일단 기대 겁니다.

황야의 7인 The Magnificent Seven (1960)

황야의 7인 The Magnificent Seven (1960) 원작인 [7인의 사무라이]에서 일곱 칼잡이가 농민들의 마을을 구함에 있어서는 순수한 의협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사무라이들의 시대가 저물고 상업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명분을 잃어버린 직업 칼잡이들의 허무주의, 그리고 신분제와 전쟁의 주체였던 사무라이들의 평민들에 대한 속죄와 화해의 제스처 등 복잡한 것들이 뒤엉켜 있다. 사무라이들은 모시는 주군에게 목숨을 내놓는 이미지로 알려져 있따. 그런 사무라이들이 시대에 밀려 방랑하던 끝에 목숨을 걸고 지킬 대상을 찾았는데 이게 농민들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계급 구분이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해지는 시대 변화에 대한 메타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사무라이들이 시대에서 밀려난 방랑자라면 본작의 건맨들은 아직 한창인 시대의 바람을 타고 떠도는 풍운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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